예수님의 신성③
예수님은 이타적인 섬김을 통해 잣니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불의한 체포와 심문과 정죄를 당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며 때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에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고문하고 죽이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모든 증거는 요컨대 특별한 역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활동은 절대적으로 타인 중심적이었습니다. 그분의 어조는 교만하게 들렸으나 실상 그분은 겸손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에는 자신이 부각되었으나, 사역을 하실 때는 성부의 뜻과 백성의 행복을 위해 작 자신을 돌보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자기 중심성과 겸손의 조화는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며 지금도 그러하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역설에 또 하나 추가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부활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는 완벽합니다. 무덤에 있던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설명 외에는 이제까지 만족할 만한 설명이 제시된 바 없습니다.
우리는 시신의 사라짐과 더불어 주님의 출현 또한 나란히 놓고 살펴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분을 보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도 여러 차례, 여러 장소에서 목격했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들은 한때 거친 어부들이었으며, 환상 같은 것은 절대 믿지 않았던 자들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부활을 못 믿겠다고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회의적인 자세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보여 준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마음이 변화되었음을 여실이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변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환멸이나 위협에 시달리지 않았으며,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유대 당국과 맞섰으며, 예수님과 그분의 부활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투옥과 죽음의 위험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을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예수님이 실제로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분이 마리아의 아들이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의 인성과 신성, 이 양자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는 압도적입니다.
더욱이 여러 신경들에서는 그분에 관한 이 두 가지 진리를 적당히 얼버무리기보다는 오히려 지혜롭게 확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시다, 즉 성부와 동일한 본질이시며, 세계가 창조되기 전에 나셨다는 점에서 하나님이시다. 도한 그의 모친과 동일한 본질이시며, 세상에 나셨다는 점에서 인간이시다. 따라서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시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온전하고 완전한 두 가지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둘로 나누어질 수 없는 그리스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