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으심①
신조들은 예수님의 탄생에서 그분의 죽으심으로, 다시 말해서 그를 낳은 어머니로부터 그를 정죄한 재판장에게로 곧장 화제를 돌리고 있습니다. "동전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로마의 악명 높은 총독, 유능하지만 무자비한 통치자였던 빌라도에 대한 언급은 십자가 사건이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탄생에서 죽으심으로 곧장 건너뛰는데, 이것은 그것의 구심점이 무엇인지를 은연중에 암시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은 죽기 위해 태어나셨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죽음을 필연적인 것이라고 계속해서 예언하시면서,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바로 이 "때"를 위함이라고 언급하셨습니다(요한복음 12:27). 체포되기 전 마지막 저녁에 그분은 자신을 기념할 저녁 만찬을 배설하셨는데, 그때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던 떡과 포도주는 그분의 탄생이나 생명, 그분의 가르침이나 기적 등에 대해서는 시사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십자가에서 있을 그분의 잔혹한 죽음만을 의미했습니다. 그분이 다른 무엇보다도 꼭 기억되기를 바라셨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도는 그분의 죽으심이
"먼저" 였음을 이해하게 되었고(고린도전서 15:3), 바울도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하거나 전파하지 않겠노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갈라디아서 6:14; 고린도전서 2:2). 그러므로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죽으셨을까요? 신조들은 이에 대해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실제로 여러 가지 이유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분은 자신의 위대함 때문에 순교자가 되셨습니다. 즉 어리석고 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의 희생자였습니다(사도행전 2:23).
또한 불의한 고난을 아무런 보복 없이 어떻게 감내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귀감이 되고자 죽으셨습니다(베드로전서 2:21-23). 그리고 결코 마르지 안혹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로마서 5:8; 요한일서 4:10). 또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으며, 따러서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 자신도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 수 있습니다(베드로전서 2:24). 요컨대 그분은 순교자로서, 모범으로서, 계시로서 그리고 대표로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