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41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12. 16. 14:39

예림의집 2641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칭찬을 아끼지 마세요

늘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어느 회사원이 아침마다 어떤 넥타이를 메야할지 항상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 회사 동료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넥타이가 환상적입니다." 다음 날부터 그는 넥타이를 고르느라 아침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환상적이라는 넥타이에 주저 없이 손이 갔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처럼 칭찬의 능력과 에너지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몸무게 3톤이 넘는 범고래가 관중들 앞에서 멋진 쇼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것은 고래를 대하는 조련사의 긍정적 태도와 칭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한 일이나 의견에 대해 칭찬 혹은 기분 좋은 답변을 들어 본 적 있을 것입니다. 그때 느꼈던 기분을 다시 상상해 보세요.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과 머리를 꽉 채우는 기분 좋은 기운이 느껴질 것입니다. 그만큼 칭찬은 긍정적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칭찬에 대해 어색해하지 마세요. 칭찬에 대해 인색하지도 마세요. 오늘부터 "잘했어요, 멋집니다, 좋습니다!"라고 한번 말해 보세요!

 

예림가족 이야기

저는 단순하게 살 뿐입니다

저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살 뿐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왜 그토록 호들갑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작은 집에 살고, 보잘것없는 살림살이에, 낡은 자동차를 몰아선가요? 이게 어찌 뉴스거리가 되는가요? 그렇다면, 세상이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을 놀라워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가난한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절대 가난하지 않습니다. 삶에는 가격이 없습니다. 저는 저만의 생활방식이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바꾸진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족할지 몰라도, 저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의무입니다. 저는 ‘가난’의 옹호자로 비춰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낭비와 불필요한 지출과, 에너지 고갈과, 그리고 뭐든지 탕진하며 사는 것을 견딜 수 없을 따름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살 때, 그것은 돈으로 구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쓴 시간으로 구입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대하여 인색해져야 합니다. 시간을 아껴서, 정말 좋아하는 일에, 우리에게 힘이 되는 일에 써야 합니다. 
당신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예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당신 자신을 위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하여 시간을 쓸 수 있을 때, 저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릅니다.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소비에 냉정해져야 합니다. 그 반대의 길은, 과시적 소비를 위하여 ‘일의 노예’가 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 자신의 삶을 위하여 살아갈 시간’을 빼앗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작게 소비하는 것’입니다. 천 번을 넘어질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용기를 내어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딱 한 종류의 실패자들이 있는데, 이는 ‘싸우기’와 ‘꿈꾸기’와 ‘사랑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삶이 특별한 것은, ‘그 내용을 우리가 채워나갈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임순형)

임순형 님이 소개한 앞의 글은 우루과이 40대 대통령 "무히카"의 어록입니다. 무히카는 대통령 재직 시절, 월급의 90%를 기부하고, 노숙자에게 대통령궁을 내주는 등, 전 세계 그 어느 지도자들보다 검소한 대통령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도 그는, 허름한 농가에서 농사지으면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답니다. 무히카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야말로 명언(名言)입니다. 그리고 위의 글을 볼 때, 무히카의 삶은 명품(名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야 할 명언이고, 또한 본받고 따라가야 할 명품인생이라 여겨집니다. 저도 단순한 삶을 추구합니다!

 

예림단장 칼럼

왜 아무도 길을 건너오지 않았을까②
 
일요일에 그 남자가 차고에서 오토바이를 손보고 있을 때면 사람들이 말끔하게 차려입고 이 작은 동네 교회로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분명 그 남자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유심히 보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습니다. 교회와 유일한 접촉은, 그의 집 잔디가 너무 길어 보기 흉하니 깎으라고 교회 측에서 촉구하는 메모를 그 남자의 집 우편함에 붙여 놓은 사건이 전부였습니다. 그 남자는 이 이야기를 한 뒤에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적어도 길을 건너와 내게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아무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전도해도 내가 가지 않을지 모르지만 말이라도 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이무도 내게 교회에 나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예배 후에 길을 건너아 내게 한마디 말을 건네는 사람조차 한 명도 없었을까요?" 그 남자는 그때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했더라면 삶이 완전히 달라졌을 거라며 한숨을 푹 내쉬었습니다. 그는 만취한 상태로 사람을 죽였고, 그 죄로 수 십 년간 복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 길 건너편에 있는 집의 앞마당에서 찍은 사진을 성경책에 기워 놓고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는 정말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바로 길만 건너면 되었습니다. 바로 길만 건너면 되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현관 앞에 나와 건너편 건물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의 그림자 위에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훗날 그의 삶을 변화시켰던 사람처럼 성경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그 건물을 들락거렸습니다. 그는 알고 싶었습니다. "왜 아무도 길을 건너오는 것조차 하지 않았을까요?" 처음에는 그의 질문이 질문을 가장한 질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에서 자란 우리와 같은 사람에게는 답이 뻔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목사님을 응시하는 그를 보고 그가 정말로 모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진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그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요. 그들은 두려웠던 겁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설명하기는 했지만 그는 그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믿고 싶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그는 화가 나 있었습니다. 아니,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물론 그 남자의 말이 옳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에게는 전혀 뜻밖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놀라지 않은 것은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길을 건너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무언가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경외함으로 회복할 경건과 공의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 땅의 소산물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나니 왕도 밭의 소산을 받느니라"(전도서 5장 1-9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어떠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들이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말을 내지 말고 말을 적게 하며,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반드시 갚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빈민을 학대하고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더 높은 자가 감찰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갈 때 반드시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삼가라(1-7절).
불의로 가득 찬 이 땅을 고칠 희망은 예배자에게 있습니다. 전도서 4장 1절에서 해 아래의 불의와 학대를 보고 탄식하던 전도자가 시선을 돌려 "성전과 예배자"를 바라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전도자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는 예배자에게 1절, "네 발을 삼갈지어다"라고 권면합니다. 발을 삼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살핀다는 의미입니다. 전도자는 바른 예배를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1절, 형식적인 제물을 드리려 하지 말고 말씀을 청종할 것. 2-3절,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지 말 것.
4-7절, 성급한 서원 혹은 거짓 맹세를 하지 말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마태복음 5장 33-37절, 6장 7절 7장 24절, 예수님의 산상 수훈에서도 강조된 바 있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하고, 성급하게 서원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입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교만에 빠져 있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절제할 줄 압니다. 그는 자기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시하고, 말하기보다 듣기에 집중하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회복해야 하는 경건 생활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불의와 학대가 일상이 된 세상(8-9).
기도하지 않고 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패망의 전조입니다. 그러하기에 성도는 입술을 열기 전에 귀를 열고,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 세상에서 불의는 특별한 일이나 놀랄 일이 아닌 일상입니다. 전도자는 권력을 잡은 "높은 자"에게 빈민이 학대를 당하고, 정의와 공의가 무너지는 현실을 목격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8절, "높은 자"의 불의한 행위를 감찰하는 "더 높은 자"의 존재를 우리들에게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전도자가 알려 준 "더 높은 자"는 히브리서 12장 23절, 만만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입니다. 또한 시편 10편 14, 18절,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악인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악인의 승리가 당연해 보이는 불의한 세상을 보면서도 성도가 좌절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이니다. 그리스도인은 일상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의를 행하며, 불의한 이 세상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의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책무입니다. 오늘날 "더 높은 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우리가 공의로 행할 일은 무엇인지 마음 깊이 묵상합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를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바른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소망합니다. 매일 제 입술과 삶을 구석구석 살피며 삼가게 하시고, 말씀에 귀 기울여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복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불의가 가득한 세상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기도하고, 세상에 진리의 말씀 전하기를 쉬지 않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바른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세상의 어떠한 불의한 행위에도 놀라지 않고, 꿋꿋이 믿음을 지켜나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예배자가 따를 기준
 
많은 사람에게 성경 말씀은 삶과 사회의 기준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배자는 세상과 다른 기준으로 삽니다. 예배자는 매번 상세한 안내를 주시는 말씀 중심으로 모든 일을 진행하는 사람, 거룩한 사람, 그리고 구별된 사람입니다. 성경은 세상 모든 것의 매뉴얼이자 법전인데, 이를 무시하고 개인의 철학을 주장하면 당장 여러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그런 예가 역사에 수도 없이 많습니다. 경제사를 봅시다. 화폐를 만들었더니 가치 판단이 문제가 되었고,
자유 경제 시스템을 내놓았더니 이번에는 공정성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어느 대안이든 다시 문제가 되었던 역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새로운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며, 인간이 해답으로 내놓은 방편들이 마지막에 가서 또 다른 혼란의 주체가 되곤 했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이루는 세상은 불의하기 때문입니다. 예배자는 다수의 사람과 다릅니다. 예배자는 다수결을 따르지 않습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배자의 중심에는 항상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더는 자의나 사견으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로 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새로워져 그리스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새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입니다.(나 홀로 예배/송준기 목사)

 

신앙생활 가이드

예수님의 신성②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며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초청하면서, 목마른 자들의 갈증을 풀어 주며 지친 자들에게 안식을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더욱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바 백성들의 죄를 사하여 주겠다고 감히 주장함으로써 신성 모독이라는 가장 무서운 죄를 스스로 청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의 마지막에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겠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자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너무나 담담하면서도 겸손하게 확신을 가지고 제시했던,
이러한 엄청난 주장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는 단지 서른 살에 불과한 청년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 자랑하던 고급 교육을 받은 적도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팔레스틴 이외의 지역을 여행한 일도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엄청난 주장들을 거듭해서 자신 있게 일체의 거만도 떨지 않은 채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미친 사람이었을까요? 과대망상증 환자였을까요? 자신에 관한 어떤 지나친 환상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의 대해 그와 같은 주장이 종종 제기되어 왔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해 줄 증거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정신 이상자는 고사하고 광신자라는 아무런 징표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 외에는 다른 사람들을 결코 망상에 사로잡히게 하지 못하는 데 반해서, 예수님은 수백만 명의 사람을 설득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주장과 그의 인격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는 자신이 주장했던 대로 바로 그 인물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겸손을 예로 들어봅시다.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에게 사로잡히기 마련입니다. 만약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와 같이 행동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비판자들을 오히려 당황하게 합니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믿고 있으면서도 마치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행동했습니다. 또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면서도 하인이 걸치는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주인이 종이 된 것입니다. 더욱이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과 친구가 되었으며 창기들을 환대했고 접촉이 금지된 자들과 오히려 접촉했습니다. 그는 이타적인 섬김을 통해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불의한 체포와 심문과 정죄를 당하셨습니다!

 

따라하는 기도

일터를 위한 기도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 태초부터 일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일을 기뻐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하나님, 저도 하나님처럼 집중해서 일하고 일의 기쁨을 누리고 일의 열매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즐거워하며 살아갈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주님, 부족하고 연약한 저를 주님의 파트너로 불러주시고,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는 사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하는 일이 세상을 파괴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도게 해 주시옵소서.
저의 일을 통해 이웃을 더 잘 섬기게 하시고, 저의 일을 통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저의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은 순간순간 드리는 저의 작은 기도 하나에도 언제나 귀 기울여 들어주심을 믿습니다. 출근길의 버스 안에서, 컴퓨터의 전원을 켜면서, 회의를 시작하면서, 거래처의 사람을 만나면서, 순간순간 하나님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하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주님 저를 위해 최선의 계획을 가지고 저의 걸음걸음을 인도학 계심을 믿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주님의 저를 지켜주시고 주님이 저와 함께하시기에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절망하지 않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실수하고, 넘어지고, 죄의 길에 들어서지만, 주님의 은혜가 언제나 저를 바른길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주님, 수많은 결정의 순간에 지혜를 주시고, 실패 앞에서 주눅 들지 않게 하시고, 다시 일어설 용기와 끈기를 주시옵소서. 일터에서는 제가 빛이고 제가 소금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꾼으로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께 하듯 일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위해 하듯 일하게 해 주시옵소서!

 

성탄 찬양

 

날마다 감사

내가 받은 선물..!
 
노트르담 사원의 반주자로 있는 어느 오르간 연주자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놀랍게도 오르간의 수많은 스위치를 전부 활용하여 연주할 분 아니라,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는 데 있어서 세계적인 권위자였습니다. 그의 연주 솜씨에 감탄한 한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연주를 잘할 수 있냐?"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는 빙긋 웃더니 "저는 다른 것은 할 수 없으니까요!"라고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보지는 못해도 들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는 눈이 안 보였기에 귀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귀를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로 받았습니다.
못 가진 것을 달라고 원망만 하지 않았습니다. 눈은 없어도 귀가 있고, 눈은 없어도 손이 있고, 발이 있고, 연주할 수 있는 섬세한 마음이 있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가진 것을 선물로 알고 소중하게 활용하는 사람에게는 영광이 있습니다. 가진 것을 소중하게 알지 못하고 없는 것에 대해 원망만 하는 사람은 결국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