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42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12. 19. 10:03

예림의집 2642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나의 아름다운 내일에게..

긴 시간 살아온 세상임에도 나름의 열정으로 그려 오던 미래가 흐려지고, 가혹하게 느껴지고, 스스로가 무능하게 느껴지며, 눈을 뜨면 한숨만 나오는 하루의 시작이 무겁기만 합니다. 씻고 나서야 하는데 이불 밖으로 나서기조차 싫고, 출근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하여 깊은 한숨만 뿜어대죠. 세수를 하다 바라본 나의 어두운 표정과 부쩍 늙어버린 거울 속 나의 모습을 보니 처량합니다. 출근길에서도 일 걱정, 사람 걱정, 앞날의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요.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인지 언제부터인가 동료들의 시선도 신경 쓰입니다. "나중에 나는 무얼 하며 먹고살까?"
"나는 정말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 삶을 쫓아 바쁘게 살다 보니 의식하지 못했는데 마음은 지치고, 불편하고, 한숨만 늘고 어깨는 축 처집니다. 왜 이런 걸까요? 당신의 오늘이 힘든 이유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좋게 생각하려 하지 말고, 억지로 나쁘게 생각하려고도 하지 마세요. 우리네 삶은 희극도 비극도 아닌, 때로 기쁘고, 슬프고, 절망하고, 행복하며 특별한 감흥이 없는 일상들이 그사이 사이를 채우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지친 날에도 구름은 아름다웠고, 노을은 아련했으며, 달과 별은 밝게 빛나고 반짝였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묵묵히 이를 악물며 버텨온 자신을 안아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을 넘어 다시 일어선 자신을 보듬어 주세요. - 김유영 '나의 아름다운 내일에게' 중에서 -

 

예림가족 이야기

기독교는 왜 그리 배타적이냐?

지금도 시골 농촌에서는 이맘때쯤 "콩 고르기"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도 해마다 겨울이 돌아오면 콩 고르기를 했습니다. 개다리밥상 위에 콩을 한 움큼씩 펼쳐놓고 벌레 먹거나 충실치 못한 콩들을 골라냈습니다. 그래서 그 콩들은 삶아 돼지에게 주어서 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충실한 콩은 밥할 때에 넣어서 먹고, 그중 일부는 다음 농사 지을 씨앗으로 남겨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벌레 먹거나 충실치 못해서 골라놓은 것들을 바라보면서 "올해 콩 농사는 망쳤다!"라고 후회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처음부터 구도자(求道者)의 자세로 교회 출석하는 사람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대개는 진리와는 상관없이 세상적인 생각으로 교회에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교회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리고 결코 신앙인이라 할 수 없는 사람도 당연히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모범적인 신앙인은 다 젖혀두고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들만 골라놓고, "나는 저런 사람들처럼 될까 봐 교회 나가기 싫다!"라고 한다면, 과연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있을까요? 아주 쬐끔이라도 믿음이 필요함을 인정한다면, 모범적인 신앙인을 찾아내어 그를 모델로 삼고 신앙생활부터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은 믿어. 예수는 잘 몰라도..” 목사가 된 동생에게 평소에 형님이 신조처럼 상기시켜주시곤 하는 말입니다. 형님은 제가 섬기는 교회에도 몇 번 오실 만큼 기독교에 특히 관심이 많으신 것을 압니다. 형수님 배경이 불교인지라, 가족의 화목을 중시한다면서 내내 개인적인 결단을 미루고 계신 줄도 알고요. 그렇다면, 형님께는 지금이 어쩌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편견 없이 더욱 명확하게 파악해 놓는 일이 중요한 때가 아닐까 싶네요. 사실은, 그분이 바로, 형님이 믿는다는 그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왜 그리 배타적이냐? 각자 좋은 대로 믿음을 갖고 사는 종교인들을 그냥 그대로 놔두면 될 걸!” 기독교가 여느 종교의 하나라면, 형님이 가끔 이렇게 성토하시는 말씀이 백 번 옳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창시자인 "예수"라는 분이 곧 모든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 각자의 구원과 심판에 관여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믿습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기독교는 모든 사람의 삶이나 죽음과 관련되고,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르는 형님과도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단순히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창조 질서 그 자체라는 겁니다.(안환균 목사)

 

예림단장 칼럼

현재 자리에 머물러선 안 된다①
 
사도행전은 첫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가까이 다가가는 일의 중요성을 증명해 보인 빌립이라는 제자가 나옵니다. 그는 사마리아의 신생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흥회"를 인도하는 중이었습니다. "빌립이 하나니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계를 받으니"(사도행전 8:12). 여기서 "남녀가 다"라는 말을 눈여겨보십시오. 그렇습니다. 빌립은 하나님께 그야말로 한창 크게 쓰임 받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전환점에 이르렀습니다.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사도행전 8:26-27상). 왜 하나님은 초대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리더인 빌립을 수백 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광야로 보내셨을까요? 단 한 사람, 하나님은 단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토록 먼 길을 감수하십니다. 사마리아에는 군중이 있었지만 "한 번에 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천사가 빌립에게 성공적인 목회를 내려놓고 먼 길을 떠나라고 했을 때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한마디 설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빌립은 그냥 일어나 갔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빌립은 자신이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지만 군말 없이 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면 하나님이 쓰고 계시며 우리도 참여하기를 원하시는 놀라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빌립은 왜 그곳으로 가라 명령하셨는지 알지 못했지만 일어나 갔고, 가서 "에티오피아 사람 곧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사도행전 8:27)를 만났습니다. 내시란 남성의 고환을 제거한 사람을 말하는데, 당시 궁중에서 일하는 남성들이 궁중 내의 여인들을 건드리지 않도록 그런 조치를 취했습니다. 한마디로 이는 업무 규정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에티오피아 내시가 내시인 이유입니다. 그는 에티오피아인이었고 그것도 내시였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을 그를 하나님이 위하시지 않은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그는 너무도 "달랐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사람들을 그분의 눈으로, 줌렌즈로 보도록 도와주십니다.(계속..!)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지혜자와 우매자의 다른 선택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도서 7장 1-14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전도자는 지혜자와 우매자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데 그것은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1절에서 "이름"과 "기름"이 순서대로 나한이 쓰인 것은 명예(이름)가 물질(기름) 보다 더 중요함을 의미합니다.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고, 우매자의 노래보다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낫습니다. 탐욕과 뇌물이 지혜자를 망하게 합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셔서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십니다.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1-10절).
삶에는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1절,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라고 진술합니다 지혜자는 "좋은 이름" 곧 하나님 앞에서 얻는 "좋은 평판"을 더 가치 있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는 그에 맞는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땅의 삶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열정으로 재물을 쌓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도 삶이 있음을 믿는 지혜로운 사람은 좋은 이름, 즉 성도로서의 명예와 품위를 선택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시며, 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성도의 삶은 온전한 품위를 보이신 우리의 참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자는 "출생"보다 부조리한 세상을 떠나 안식에 들어가는 "죽음"을 더 좋은 것으로 여깁니다. 또한 전도자는 4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다"라고 합니다. 지혜자는 죽음을 보며 "지금의 삶"을 성찰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8-9절을 통해 우매자의 특징을 "조급함과 분노"로 규정하고, 일의 시작보다 끝이 더 낫다고 강조하여 말합니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11-14절).
일의 시작은 열정으로 가능하지만, 일의 끝은 그 끝을 이루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기다림이 요구됩니다. 성도는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탐욕과 이기심에 대해 죽는 사람이 궁극적 지혜와 생명을 얻는 나라입니다. 뜨거운 사막에서 그늘은 생명을 보호해 줍니다. 전도자는 "그늘"이란 이미지를 사용해 지혜와 돈을 비교합니다. 12절, 사람이 "돈의 그늘"에 있으면 가난에서만 벗어나지만, "지혜의 그늘"에 있으면 삶의 위험에서 건짐을 받기에 지혜가 돈보다 유익합니다.
그럼에도 13절,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 곧 결정하신 일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14절, 인생에게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번갈아 주심으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형통할 때 기뻐하고, 곤고할 때 자기의 삶을 성찰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코람데오"의 정신입니다.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 우리가 포기할 부분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곤고할 때 하나님 앞에서 어떠해야 할지, 하나님께서 곤고를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인지 깊이 묵상합시다.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의 차이를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형통한 날에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곤고한 날에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겸비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겸손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코끝에서 호흡이 멈추는 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는 인생의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평생의 인도자이시며, 구원자이신 주님만을 높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곤고한 날의 묵상
 
청소년기를 힘들게 보낸 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간 큰아들이 1학년 2학기를 보내다가 자퇴를 했습니다. 그간 아들의 불안 장애가 호전되어 이제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며 학교에 다닐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2학기가 되자 도저히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아들과 함께 자퇴서를 제출하고 오던 날 나는 방문을 닫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소망하던 바가 좌절된 데서 온 슬픔이었습니다. 평범한 길, 표준화된 길을 가지 못하는 큰아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나는 온종일 방구석에 틀어박혀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서를 통해 "너는 큰아들의 자퇴 때문에 울지 말고,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를 위해 울라!"라고 일관되게 말씀하셨습니다. 큰아들이 자퇴한 일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 세대를 품고 중보 기도자로 살라는 소명도 일깨워 주셨습니다. 진리로 상황이 분별되자 염려와 고민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맑아졌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수년간 해 왔던 "우리 아이도 다른 아이처럼 학교에 정상적으로 다니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멈추었습니다. 큰아들을 그의 기질과 특성과 능력에 맞는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소망하며 내 자녀를 넘어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곤고함 가운데 묵상한 말씀이 내 기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나를 진리 안에 거하게 했습니다.(나는 기도하기로 했다/한근영 사모)

 

신앙생활 가이드

예수님의 신성③
 
예수님은 이타적인 섬김을 통해 잣니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불의한 체포와 심문과 정죄를 당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며 때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에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고문하고 죽이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모든 증거는 요컨대 특별한 역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활동은 절대적으로 타인 중심적이었습니다. 그분의 어조는 교만하게 들렸으나 실상 그분은 겸손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에는 자신이 부각되었으나, 사역을 하실 때는 성부의 뜻과 백성의 행복을 위해 작 자신을 돌보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자기 중심성과 겸손의 조화는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며 지금도 그러하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역설에 또 하나 추가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부활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는 완벽합니다. 무덤에 있던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설명 외에는 이제까지 만족할 만한 설명이 제시된 바 없습니다.
우리는 시신의 사라짐과 더불어 주님의 출현 또한 나란히 놓고 살펴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분을 보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도 여러 차례, 여러 장소에서 목격했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들은 한때 거친 어부들이었으며, 환상 같은 것은 절대 믿지 않았던 자들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부활을 못 믿겠다고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회의적인 자세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보여 준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마음이 변화되었음을 여실이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변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환멸이나 위협에 시달리지 않았으며,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유대 당국과 맞섰으며, 예수님과 그분의 부활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투옥과 죽음의 위험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을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예수님이 실제로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분이 마리아의 아들이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의 인성과 신성, 이 양자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는 압도적입니다.
더욱이 여러 신경들에서는 그분에 관한 이 두 가지 진리를 적당히 얼버무리기보다는 오히려 지혜롭게 확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시다, 즉 성부와 동일한 본질이시며, 세계가 창조되기 전에 나셨다는 점에서 하나님이시다. 도한 그의 모친과 동일한 본질이시며, 세상에 나셨다는 점에서 인간이시다.  따라서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시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온전하고 완전한 두 가지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둘로 나누어질 수 없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하는 기도

일터를 위한 기도②
 
제가 일하고, 나누고, 이끌고, 따르는 모든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나게 하시고,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게 해 주시옵소서. 완벽할 순 없지만,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제가 하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품고 정직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일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탁월하게 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일이든지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게 하시고, 친절을 베풀면서 일하게 해 주시옵소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필요를 돌보게 하시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잘되도록 도움을 주는 제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예수님이 높임을 받으시고, 예수님이 전해지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은 쉼이 필요 없으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하루를 쉬셨습니다. 주님, 제가 일을 사랑하되 일이 전부가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일이 우상이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제가 일하는 목적이 바벨탑의 사람들처럼 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제가 일하는 이유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제가 일을 잘하는 것을 넘어 일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옆에 있는 사람보다 내가 더 먼저 승진하고, 내가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올라가야만 행복해하는 삶이 되지 않게 하시고, 일 자체를 통한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시옵소서. 정신없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기쁨을 맛보며 일할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주시옵소서. 일을 소중히 여기되 무엇보다 하나님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가족을 돌보고 나 자신을 돌보는 것 또한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그 일을 통해 가정을 잘 부양하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CM 배우기

 

날마다 감사

평생 감사..!
 
행복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선 아침에 편안히 잠을 자고 일어나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수 한 잔을 마시며 오늘 하루의 일을 생각해 봅니다.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제가 만일 목이 아프거나 병원에 있다면 이렇게 마음대로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를 꺼낼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살아서 숨 쉬는 일도, 한 걸음씩 걸으며 걸음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인생의 모토를 "평생 감사"로 삼고, 그저 "감사, 감사"가 입술에서 떠나지 않게 합시다.
가족들 모두가 "여보 감사해. 어머니 감사합니다. 모두 감사해요!"가 입에 붙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치인이 헛공약을 남발하면 안 될 일이지만,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감사를 남발하는 것은 행복지수를 높이고 더욱 감사거리가 넘쳐나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