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40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12. 15. 13:46

예림의집 2640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부부란 다 그렇고 그런 것

금실 좋은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한 지 20년이 넘어가면서 부부는 서로에 대한 관심도 사랑도 식어갔습니다. 이렇게 살기보다는 헤어짐을 결심하기 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친한 지인을 찾아갔습니다. 지인은 평소 다정했던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는 놀랐지만, 다음에 다시 만날 때 그동안 서로가 감사했던 것들을 종이 한 장에 써 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음 만남의 시간이 되었을 때,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 대한 감사했던 것들과 칭찬을 서로에게 읽어주고, 잠잠히 들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칭찬이 다 끝나자 남편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 한 가지를 들어주고 싶어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원해요." 부부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행복한 부부는 서로를 당연시하지 않고 섬기며 사는 부부입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요즘, 저는 정말 살맛이 납니다!
저는 무언가를 강조할 때 "죽겠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힘들어 죽겠다!"라고 말하는 저와 달리, 여든이 넘은 외할머니는 마른걸레로 방바닥을 훔치면서 “살겠네, 살겠어!”하고 읊조리곤 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 배불러 죽겠다!”라고 하면, 외할머니는 저의 등을 가볍게 치면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무슨 일이 있어도 살겠다고 해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코로나가 심해졌을 때, 저는 7년간 다닌 회사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여러 회사에 지원해서 한 곳에 들어갔지만, 거기에서도 금방 나와야 했습니다.

한 회사에 들어가면 길게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맞는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세 번이나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잦은 이직으로, 이력서에 많은 이직 내용이 남을까 봐 불안했습니다. 세 번째 회사에 사표를 던진 후의 어느 여름날, 청계천에 앉아 저도 모르게 "진짜 죽겠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한순간 튀어나온 저의 목소리에 스스로 놀라고 서러워서 눈물이 핑 도는 그때, 외할머니께서 흥얼거리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살겠네. 살겠어!” 어색했지만 몇 번 반복하니, 이상하게 힘이 솟았습니다.
저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외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외할머니는 평소처럼 저를 반겼습니다. “우리 강아지, 바쁜데 뭐 하러 와! 미리 말했으면 고기라도 사놨지. 할머니가 금방 밥 차려 줄게.” 그렇게 오랜만에 할머니의 따뜻한 집밥을 먹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내온 참외와 포도를 먹으면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곧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제가 나아갈 방향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 다시 이력서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합격이 되어 새로운 곳에서 일 년 넘게 일한 요즘, 저는 정말 살맛이 납니다.(김성혜)

그렇습니다. 습관적으로 "죽겠어!"라는 말을 덧붙이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무의식 중에 "죽겠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말을 하게 되지만, 그 반대로 우리가 어떤 말을 자주 하느냐에 따라서 그 행동이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컨대, 부정적인 언어를 자주 사용하면, 그 삶이 어두워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한 긍정적인 언어를 자주 사용할 경우엔, 그 삶이 자연히 밝아지게 됩니다. 아무튼, 우리는 되도록 밝고 긍정적인 언어로 구성된 좋은 말을 많이 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림단장 칼럼

왜 아무도 길을 건너오지 않았을까①
 
우리는 두려움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지인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자주 가서 설교하는 곳들이 있는데, 교도소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오랫동안 그는 그곳을 피해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끈덕지게 내게 그 방향을 가리키셨습니다. 그는 그저 책과 영상 자료만 보내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가 직접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가 몇 해 전, 한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에게 설교를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은 한 남자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녁 예배 시간에 그 나자를 만났는데 자꾸만 눈길이 갔습니다. 목사님과 그 남자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 남자는 덩치가 크고 근육이 우람했습니다. 헬스클럽 좀 들락거린 사람이 분명했습니다. 또한 문신이 양팔을 타고 올라가 목까지 뒤덮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목사님에게 다가와 자기 성경책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습니다. 더 젊은 시적의 그가 어느 집 앞마당에 서 있었습니다. 그의 뒤로 거리가 보였습니다. 그 남자는 목사님께 사진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 집에서 7년을 살았습니다. 한번 잘 보세요. 뭔가 특별한 게 있는지 찾아보시겠어요?
목사님은 몇 분간 그 사진을 살펴보았습니다. 일단, 여름날에 찍은 듯 보였습니다. 소매를 걷은 팔에 문신이 보였습니다. 앞주머니에는 기름 닦는 걸레가 삐져나와 있었고, 한 손으로 맥주잔을 들어 카메라 쪽으로 내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뭘 찾으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남자의 낯빛이 점점 변하는 것을 보니 조바심이 났습니다. 어서 이 남자가 의미하는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때 배경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것, 초점이 조금 벗어나 흐릿해 보였습니다. 목사님은 사진을 그 남자에게 돌려주며 말했습니다. "길 건너편에 교회가 있군요!"
그러고 나서 거의 본능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갔습니다. 그곳은 그분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교회의 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미안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그 교회 안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미안했습니다. 어떤 사연인지 짐작이 갔기 때문입니다. 그 남자는 그곳에서 7년간 살았지만 그 교회 사람이 그의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또한 그 교회의 목사가 인사를 하러 온 적도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인 목사님은 한 교회라는 마음으로 진정으로 미안해했습니다(계속!)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모순된 세상을 견디는 힘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전도서 4장 1-16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 전도자는 이 세상이 모순 투성이 임을 밝히며 그 모순된 세상을 견디는 힘은 세 겹 줄 같은 친구 관계라고 합니다. 12절의 "세 겹 줄"은 세 번 겹겹이 꼬인 줄을 말하며,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할 때 나오는 위력을 의미합니다. 학대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지만 학대받는 자에게는 위로자가 없습니다. 전도자는 살아 있는 자보다 죽은 자가 복되고, 출생하지 않아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는 더 복되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고,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가난해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한 왕보다 낫습니다.
 
세상을 가득 채운 학대와 시기(1-10절).
우리의 삶은 신실한 동역자의 존재 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동역자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그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폭력을 싫어하십니다. 로마서 14장 17절, 하나님 나라의 속성인 의와 평강과 희락에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전도자가 목격한 것은 권력자에게 학대받는 자 곧 약한 자의 눈물이었습니다. 더구나 1절, 학대받는 자는 자신을 위로해 줄 사람조차 없습니다. 모슨과 불의로 점철된 세상을 바라보던 전도자는 이 악한 세상에서 지금 살아 있는 자보다 오래전에 죽은 자가 복되다고 합니다.
전도자는 나아가 아직 출생하지 않은 자가 더 복되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해 아래의 악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도자는 4절, 타인의 명성을 시기하는 이웃의 태도에 한탄하며, 양손에 가득하고 번민하는 것보다 적게 가지면서 평온한 것이 더 낫다고 권면합니다. 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내려면 인생의 동행할 친구가 필요합니다. 친구는 넘어질 때 붙잡아 주는 존재입니다. 이는 산악이 많은 유대 지역을 여행할 때 넘어지기 쉬운 상황을 반영한 표현입니다. 오늘날 타인이 이룬 승리와 명성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자신을 깊이 돌아봅시다.
 
친구의 유익(11-16절).
진정한 친구는 11절, 서로의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입니다. 일교차가 큰 유대 지역은 밤이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기에 서로 체온을 나누어야 추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여행 중 만날 강도의 위험에서 보해해 줄 12절, "세 겹 줄" 같은 존재입니다. 신앙 여정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길입니다. 세상은 복잡한 둘보다 편리한 혼자를 선택하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이는 교회에서도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고 서로 섬기지도 헌신하지도 않는 신앙생활의 개인주의로 이어져, 교회 연합에 큰 방해 요소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부르십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연합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숫자가 아니라 성도의 연합에 있습니다. 이어서 전도자는 가난한 젊은이가 출세해서 왕이 되어도 퇴위 후에는 그 업적과 명성이 사라진다며 권력의 허무함을 지적합니다. 영원한 친구 예수님처럼, 인생 여정에서 힘들 때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 줄 우리의 친구는 누구인지 묵상합시다.
 
"우리의 영원하고 참된 친구가 되어주시는 주님, 경쟁을 부추기며 힘을 앞세우는 세상 풍조로 관계가 깨어지고 공동체가 쇠약해져 감을 고백합니다. 두 손을 다 채우려는 자기 욕심을 버리고, 넘어진 지체를 일으켜 붙드는 사랑의 손을 소유하게 하시옵소서. 서로 섬기고 협력해 하늘의 상을 얻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옵소서.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겸비하게 하시고, 온유한 마음과 긍휼을 마음을 부어 주셔서 든든한 좋은 친구가 되어 어둡고 힘든 세상을 이겨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영혼의 친구
 
아일랜드 순례 여행 때 "아남카라(anancara)"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게일어로 "아남(anam)"은 "영혼"을, "카라(cara)"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남카라는 영혼의 친구를 말합니다. 원래 이 단어는 비밀과 치부를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을 지칭했는데, 나중에는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영적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투명하게 드러내고 마음의 긴장을 풀 수 있는 친구 말입니다.
토머스 머튼은 "영혼은 야생 동물처럼 수줍음을 탄다."라고 했습니다. 영혼은 오직 안전한 곳에서만 원래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안전하다고 느낄 때,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느낄 때, 비로소 자신의 가식과 허울을 벗어 버립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의 비밀과 꿈, 두려움, 실패, 희망을 터놓습니다. 그러한 영적 우정은 시간과 땀,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고도 실망과 좌절, 깊은 상심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 우정은 그런 아픔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쓰신 시간은 천일 정도였습니다. 그분은 열두 명의 제자가 모두 자신을 버리고, 그중 한 명은 배신까지 할 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그 천일의 대부분을 그들에게 투자하셨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는 "아남카라"가 되어야 합니다.(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기로 했다/겐 시게마츠)

 

신앙생활 가이드

예수님의 신성①
 
사도 신경은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로 언급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사실상 "그 외아들 우리 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니케아 신경에서는 예수님 신성을 이보다 더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성부로부터 영원히 나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 빛으로부터 나오신 빛,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참 하나님"라고 언급합니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에서는 이러한 진리를 좀 더 명확하게 밝히는데, 예수님은 "만들어지거나 창조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나오셨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구별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재료. 예를 들어 나무, 금속, 직물 등을 가지고 사물을 만듭니다. 또한 무영의 것. 즉, 관념, 시, 곡조 등으로부터 사물을 창조합니다. 그러나 오로지 그것들만 가지고는 아이들을 낳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자는 "아버지로부터 영원히 나오신" 분, 즉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라 언급되고 있으며, 그러므로 "성부와 동일한 존재"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성육신 하사 사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셨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종교적 신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지나치게 잘 속는, 그분의 제자들이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축적된 증거는 종종 실제보다도 훨씬 더 강력합니다. 복음서의 영감 문제는 잠시 뒤로 접어 두고라도, 복음서를 일반적인 역사적 문서로 바라봅니다. 그들은 보잘것없는 작은 도시의 보잘것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농사를 겸하고 있는 한 목수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그 목수는 우리가 볼 때 과연 제정신인가 싶은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주장들을 거침없이 제시하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자신을 "아들"이라는 절대적인 표현으로 지칭하면서 하나님과 자신이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은연중에 나타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고대했던 하나님 나라의 막을 열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하면서, 오직 자신에게 응답하는 사람들만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감히 단언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선지자도, 또한 선지자 중에서 가장 위해한 선지자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모든 예언의 성취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성경 말씀이 자신에 대해 그렇게 증거 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하는 기도

교회를 위한 기도②
 
사랑하는 주님, 이 땅의 교회를 축복합니다. 이 땅의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어떤 과거, 어떤 배경이 있을지라도 복음으로 다 용서받고 용납되고 하나 되는 교회.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하나 되는 교회. 한 지체가 고통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아파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는,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는 교회.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과 평안이 넘치는 교회.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편지되어 끊임없이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는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 세상을 위로하고 세상에 축복이 되고 세상의 소망이 되는 교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교회. 이 땅의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게 하시고, 제가 이런 교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교회에 영적인 목회자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다라 지진하여 섬기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는 건강한 목회자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본을 보이는 인격적인 리더, 하늘의 면류관을 바라볼 줄 아는 거룩한 리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교회가 목회자를 영적인 리더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교회가 교회다워지게 해 주시옵소서. 이 땅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그 일,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병든 자를 고쳐주는 그 일을 감당하는 주님의 교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교회가 거룩하고 순결한 신부로 세상에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 주님이 꿈꾸시는 바로 그 교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이 몸 된 교회를 위해 모든 힘을 다해 헌신하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탄 찬양

 

날마다 감사

사막에서 물의 고마움을 깨닫는다..!
 
사람은 역경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사막에서 물의 고마움을 알게 되고, 추운 겨울에 햇볕의 고마움을 알게 되고, 배고플 때 밥 한 숟가락의 귀함을 알게 되고, 병석에서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삶에서 불평가 불만이 없이 만족과 감사의 생활을 한다면 이미 그 사람의 마음속은 천국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조상들은 그들의 삶이 감사의 삶이 되도록 힘썼으며 다른 모든 성도들에게도 감사하는 생활을 가르쳤습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편 100:1-5).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