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38번째 이야기
절벽을 향해 달리는 스프링 벅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 사막에는 "스프링 벅"이란 산양이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작은 무리를 지어 평화롭게 풀을 뜯다가 점점 큰 무리를 이루게 되면 아주 이상한 습성이 나온다고 합니다. 무리가 커지면 앞에 있는 양들이 풀을 먹어버리고 결국 뒤쪽에 따라가는 양들이 뜯어먹을 풀이 없게 되자 좀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다시 제일 뒤로 처진 양들은 다른 양들이 풀을 다 뜯어먹기 전에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모든 양들이 풀을 먹기 위해 경쟁적으로 앞으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면 앞에 있는 양들은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더 빨리 내달립니다. 앞에서 뛰니 뒤에서도 따라 뛰고 그러다 보면 모두가 필사적으로 달음박질을 합니다. 결국 풀을 뜯으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오로지 다른 양들보다 앞서겠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뛰게 됩니다. 그렇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계속 뛰다가 절벽을 만나면 그대로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고민 없이 그저 남들처럼 되기 위해 남이 달리면 나도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삶이 다르기에 인생의 속도와 방향도 모두가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남이 얼마나 잘 달리느냐가 아니라 나는 잘 가고 있는가입니다. |
스르르 사라져 소멸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낯가림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삼촌들이나 고모부처럼, 남자목소리가 들리면 기겁을 하고 자지러져서, 할머니가 저를 데리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숨어야 했습니다. 할머니가 어린 저와 단둘이 방에만 있어야 했던 시간들이 꽤나 무료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야 들었습니다. 할머니도 마루에 나가서 오랜만에 찾아온 친척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제가 울고불고 자지러지는 바람에, 할머니는 저와 함께 방에 있는 역할을 맡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 번도 낯가림으로 비난받거나 야단을 맞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낯가림의 순간마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뿐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낯가림이 잘못된 것이거나 영원히 문제가 될 거라는 암시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생의 초기에 잠시 제 곁을 떠돌다가 유쾌한 농담 같은 자취만을 남기고, 열 살이 넘은 어느 날 스르르 사라졌습니다. 낯가림이 영원한 병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다소 지나치게 극복한 경향이 없지 않아서, 오늘날 저는 어딜 가나 친구를 한 두름 만들고 화목한 관계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편식도 그랬습니다. 저는 지독하게 입이 짧은 아기였습니다. 영양실조로 죽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할 만큼 대차게 굶어서, 저에게 무언가를 먹이기 위한 엄마의 노력은 눈물겨웠습니다. 주걱에 묻은 밥풀은 좀 떼어먹는 편이라서, 엄마는 주걱에 밥 한 공기를 다 붙이기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밥풀을 조금만 많이 붙였다 싶으면, 저는 어김없이 고개를 홱 돌려버렸습니다. 그래 놓곤 기운이 없어서, 지나가는 선풍기 바람에도 쿠당탕 소리를 내면서 뒤로 자빠졌습니다. 가끔 야단맞을 때도 있었지만, 저의 부모님은 편식에 대체로 관대했습니다. 낯가림도 편식도 하염없는 관용 속에 스르르 사라져 소멸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대수롭지 않게 사라졌습니다.(심윤경) 혹시 당신의 자녀나 손주가 낯가림이나 편식이 심하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글쓴이의 부모님처럼 관대하게 대하시겠는지요? 아니면, 조금은 엄하게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시겠는지요? 글쓴이의 경우, 제 생각엔, 낯가림은 타고난 성품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편식의 경우는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할머니의 너그러운 태도입니다. 손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감정을 컨트롤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올바른 교육을 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감정부터 먼저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
내 본능은 "거리 두기" 코로나 팬데믹이 진행되면서 "거리 두기"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코로나를 이기는 법 두 가지, 바로 "거리 두기"와 "마스크 쓰기"입니다. 오늘은 거리 두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마음이 말랑말랑한 편입니다. 반대로 저의 아내는 완벽주의에 가깝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저의 아내는 정말 좋은 여자입니다. 단지 아내의 완벽주의가 짜증 날 뿐입니다. 아내는 제가 보이기에 결벽증이 있는가 싶을 만큼 깔끔한 걸 좋아합니다. 오십견이 와서 어깨와 손목, 이곳저곳 쑤시는 곳이 많은데도 하루도 쉬지를 않고 이곳저곳 방청소를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아내가 몹시도 불편했습니다. 아직 그냥 두어도 될 터인데 아내는 한 번 마음에 생각이 들면 바로 처리해 버려야 속이 시원한 듯싶습니다. 반대로 저는 좀 여유를 가지고 설렁설렁하는 것을 좋아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자주 부딪혔습니다. 가끔은 하나님께서 너무 심심하셔서 그 무료함을 달래시기 위해 우리를 평생의 동반자로 짝지어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신혼 초기에 그렇게 다툼이 많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지금도 우리의 대화는 꼭 싸우는 톤이 되어 버립니다. 저는 그런 아내를 사랑하지만 "거리 두기"를 시도했었습니다. 나는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고, 반골 기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이렇게 하자고 하면 꼭 한 번쯤은 그 반대로 반응을 해서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저는 엉뚱한 말과 행동과 결정도 가끔 합니다. 당연히 그 결과도 엉망일 때가 많습니다. 옳은 방향이다 싶어 가 보면 언제나 엉뚱한 곳에 이릅니다 솔직히 내 본능을 따라가면 좀처럼 사람들을 사랑할 기회 앞에 이르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가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 사랑하시려는 장소나 사람들 앞에 좀처럼 이르지 못합니다. 사실, 내 자연적인 성향은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본능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것입니다. 제 본능은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특히, 앞으로 계속해서 다룰 다음 네 범주의 사람들을 멀리하고 싶은 것이 내 본능입니다. 첫째,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들. 둘째, 지치게 만드는 사람들, 셋째, 나와 다른 사람들. 넷째, 누군가를 죽이거나 짓밟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처럼 사람들을 사랑하려면 결국 내 자연스러운 본능을 거스르는 방향, 즉 부담스러운 방향으로 갈 수박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일부터는 그 깨달은 바 "단 한 사람에게 다가가기 이한 수고"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
죽음 앞에선 헛됨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전도서 2장 12-26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죽음 앞에선 지혜자도 어리석은 자도 동일하게 헛되고, 해 아래 죽음 앞에선 모든 것이 의미 없다고 가르칩니다.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뛰어나도 당하는 일을 같습니다. 지혜자와 우매자 모두 영원히 기억되지 않고 후일에는 잊히고 죽을 것입니다. 지혜를 다해 수고한 결과도 뒤를 이을 자가 관리하므로 결국은 헛됩니다. 일평생 근심하며 수고해도 슬픔뿐이지만,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기쁨은 하나님의 손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그 행사하는 모든 것이 헛되며 결국에는 죽음으로 소멸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지혜자나 우매자나 죽음은 일반이다(12-17절). 지혜는 어리석음보다 확연히 우월합니다. 전도자도 이를 잘 알기에 13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14절,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릿속에 있고"라고 밝힙니다. 즉, 지혜자는 머리에 사물을 밝히 보는 눈이 있는 것처럼, 삶에 대한 분별력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매자는 그런 눈이 없기 맹인처럼 어둠 속을 다닙니다. 그럼에도 전도자는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행복하다고 단언하지 않습니다. 둘 다 그 끝이 죽음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18절, 하나님이 주신 것은 나눌 때 더 빛납니다. 우매한 사람은 자기 수고의 열매를 자기 것으로 고집하며 그 유익을 혼자 누리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누리는 모든 것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땅에서는 생명이 영한이 있기에 삶의 누림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의 누림은 누군가를 향한 나눔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자기 것을 이웃들과 후대에 나누는 사람이야말로 이 땅에서 영원을 사는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죽은 후에 누구에게 어떻게 기억되는 존재가 되고 싶은지 자신을 깊이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 수고의 결실도 내 것이 아니다(18-26절). 지혜자든 우매자든 궁극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 이후 잊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같습니다. 가장 큰 은총은 현재도, 죽음 후에도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기도할 때 발견되는 길이 세상의 어떤 방법보다 더 지혜로운 길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일궈 낸 업적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탁월한 능력을 입증해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전도자는 자신이 일궈 낸 수고의 모든 산물을 미워합니다. 모두 허무하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그것을 후계자에게 물려주게 되는데, 그가 우매자일 경우 그 성과물이 쉽게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도자는 밤에도 쉬지 못할 만큼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가 결국 슬픔뿐이라고 탄식합니다. 그럼에도 24절, 노동의 유익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26절, "지혜, 지식, 희락, 재물"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죄 사함과 영생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일평생 수고하며 일궈 낸 업적은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묵상합시다. "죽음 앞에 지혜자나 우매자의 허무함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집착하고 염려하는 모습을 멈추고 인생의 시선을 하나님께 다시 맞추기를 원합니다. 값진 선물로 주신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모하고 기뻐하게 하시옵소서. 세상에서는 잊혀도 하나님께 선명히 기억되는 날을 살아내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여 자주 넘어지오니 주님 주시는 권능으로 힘을 얻게 하시옵소서. 오직 주님의 말씀을 굳게 잡고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전문가의 함정 우리 시대 많은 사람이 "전문가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붙은 사람에게 심적으로 실질적으로 무한한 권위를 부여합니다. 전문가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전문가라도 "지식"이 있을 뿐, "경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도 미래의 일까지 경험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전문가의 실력을 믿는다 해도 그의 인격까지 완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기에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자의적 판단과 해석을 할 가능성이 분명 있습니다. 이러한 잣대를 자신에게도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라는 자의식에 젖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사진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 결과 어이없을 만큼 한심한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유혹은 보통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즉 통제 가능하다는 믿음 아래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그 유혹의 자리에 가게 되고 부지중에 유혹에 넘어가 무너집니다. 전문가를 찾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말해줍니다. 인간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말씀에 비추어 성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일상의 유혹/손성찬 장로) |
예수의 인성 사도 신경의 첫 번째 항이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면, 두 번째 항은 성자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항은 다른 두 항목보다 내용이 더 깁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주된 논쟁이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관련되었다는 사실과 기독교 즉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한다면, 내용이 긴 것에 대해 그리 놀랄 일도 아닐 것입니다. 사도 신경은 그분이 누구시며 무엇을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지, 이 두 가지 사항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의 신성과 인성, 그분의 구원 사역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부터 "그리스도의 위격-그분은 누구인가?"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도 신경,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 구체적인 진술은 나사렛 예수께서 인간(마리아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신(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목수이자 선지자였던 그분이 진정으로 인간이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 어머니(마리아)에게서 태어났으며, 우리와 마찬가지로 청소년기를 거쳐서 성인으로 성장하셨습니다. 그는 인간의 육체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허기아 갈증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또한 쉴 새 없이 계속되는 사역으로 말미암아 피곤을 느끼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물 곁에 앉아 쉬기도 하셨고, 배 밑창에서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고통이 얼마나 극에 달했던지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의 형벌이 그분을 죽게 했습니다. 그분의 시신은 십자가에서 내려져서 세마포로 감싸진 후 무덤 속에 안장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인간의 감정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부자 청년 관원을 보시고 연민을 느끼셨고,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으며, 예루살렘이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기쁨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 기쁨을 제자들도 함께 느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고통당하는 개인들과 목자 ㅇ벗는 양 같은 무리를 보시며 측은히 여기셨고, 반면에 바리새인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완악함 때문에 분을 토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육체와 감정 외에도 인간의 정신을 소유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유지하셨으며, 기도하시기 위해 정기적으로 산속에서의 고독을 추구하시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증거들이야말로 그분이 완전한 인간이셨음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의심할 나위 없이 그분은 "삶이신 그리스도 예수"셨습니다(디모데전서 2:5)! |
가정을 위한 기도② 사랑하는 남편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영적인 권위를 허락해주시고,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갖게 하시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 줄 수 있는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아내를 보내주신 주님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날마다 사랑스러움이 더해지게 하시고, 말의 지혜를 더해 주시고, 가정의 머리인 남편에게 기쁨으로 순종하며, 자녀들을 주의 교훈으로 가르치게 해 주시옵소서.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허락하신 주님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이들로 자라나게 해 주시옵소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며 자랑스러워하고,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녀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건강의 복을 주시고, 만남의 축복을 허락하시고, 물질의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날마다 지혜가 자라게 하시고,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일평생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복을 주시옵소서. 또한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자녀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부모님을 보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부모님에게 눈이 흐려지지 않는 건강과 장수의 복을 주시옵소서. 믿음과 삶이 하나 된 모습으로 자녀들의 영적 모델로 살아오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감정을 잘 다스리게 하셔서 자녀들이 억울하고 화난 마음이 아니라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부모님의 기도가 자녀들을 살리는 줄 믿습니다. 부모님의 입술에 자녀들을 향한 축복의 기도가 넘쳐나게 해 주시옵소서. 해 주시옵소서. 자녀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부모 되게 하시고, 자녀들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는 성숙한 인격을 갖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는 다양한 모습의 가정들이 있습니다. 한부모 가정, 조손가정, 형제자매 가정, 노인 가정, 장애인 가정, 다문화 가정, 새터민 가정, 노숙인 가정, 이혼가정, 미혼모 가정, 1인 가정 등. 여러 모습의 가정들이 함께합니다. 하나님, 이러한 다양한 가정의 모습들을 가슴에 품어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가정임을 믿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며 하나님 나라가 날마다 임하는 가정이 도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가정을 천국 가정으로 세워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탄 찬양 메들리(피아 시스터즈 버전) by F.I.A LIVE WORSHIP https://cafe.daum.net/HomeOfYERIM/NjKF/5?svc=cafeapi |
감사의 위력 존 헨리의 말입니다. "감사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높이고, 변화나 위기에 대한 대처 능력을 증진시킨다.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이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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