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고
누가복음 8장 27절에는 "벌거벗은 채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 무덤 가에서 살던 남자"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남자는 우리 대부분이 피하고 싶어 하는 부류였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그 남자의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을 살펴보겠지만, 먼저 그 배경이 되는 마가복음 4장을 읽어 봐야 합니다. 예수님 가르침을 펼치시자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마가복음 4;1). "무리" 예수님은 언제나 인파를 몰고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데 하루의 대부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도 우리가 저편으로 건나가자 하시니"(마가복음 4:35).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로 고개를 돌려 호수 건너편으로 가야 하니 어서 배에 올라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저편"은 거라사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거라사는 당시 사람들이 피하던 곳이었기에 당연히 제자들은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가 내린 지시인데 감히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마가복음 4:36). 제자들은 아직 몰랐지만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 한 사람에게로 향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때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 배로 호수를 건너는 중에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거대한 풍랑이 몰려와 배가 뒤집힐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어부로 잔뼈가 굵은 이들까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습니다. "물에 빠져 죽게 생겼습니다!" 합리적인 행동은 배를 돌리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거라사 지역까지 "반드시" 가셔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야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주 잠시만 마물렀습니다. 아마 두어 시간쯤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오직 "한 가지 일"만 일어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곧장 돌아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제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입니다. '겨우 이거 하나 하자고 죽을 고비까지 넘겨 가며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그 하나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한 사람. 단 한 사람. 이 남자의 삶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너무 위험한 존재로 여겨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공동묘지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는 오래도록 옷을 입지 않고 살았을뿐더러 무덤가에서 발견한 삐쭉삐쭉한 돌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곤 했습니다.
모두가 그를 괴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줌렌즈로 그를 보면 괴물이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쌍한 한 남자가 보였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어떻게든 그를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 가운데 하나는 한 번에 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한 사람에게, 지치게 만드는 한 사람에게, 나와 다른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그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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