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36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12. 8. 09:14

예림의집 2636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파랑새는 언제나..

벨기에의 극작가 마테를링크가 쓴 <파랑새>라는 동화의 내용입니다. 가난한 나무꾼의 어린 남매 치르치르와 미치르에게 어느 날 요정 할머니가 찾아와 병든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파랑새"를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남매는 할머니의 딸을 살릴 파랑새를 찾기 위해 꿈의 세계로 떠납니다. 남매는 추억의 나라에서 죽은 혼령을 만나고, 밤의 궁전에서 재앙의 실상을 보고, 숲에서 자연의 두려움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파랑새는 찾을 수 없었고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다음 행선지인 행복의 궁전에서 물질적인 행복의 허무함을 보았고 참다운 행복은 건강과 정의이고,
특히 어머니의 사랑이며, 파랑새는 마음속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끝으로 미래의 나라에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만나고 꿈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문득 자기들의 머리맡에 있는 새장을 보았고 그곳에 그토록 찾았던 파랑새가 있었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돈을 모읍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사람을 만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더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행복을 타인의 행복과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행복의 파랑새를 잡으려고 내일과 먼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지만, 행복의 파랑새는 내일에 있지 않고 바로 오늘 내 마음속에,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세요? 그러면 결정하세요. 행복하기로..! 나의 힘만으로는 온전한 행복을 이룰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도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에게는 행복으로 가는 문을 찾는 것이 필요한데, 그 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사랑한다는 것, 좋아한다는 것

너무 많이 웃는 바람에, 그동안 오래도록 쓰지 않은 근육들을 너무 지나치게 사용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 웃어서 광대뼈 옆 근육이 잔뜩 뭉쳐있었습니다. 저는 뻣뻣하게 이물감이 느껴지는 광대뼈를 꾹꾹 눌러서 마사지를 했습니다. 꿀짱아(아기 별칭)는 그가 처음 보는 강아지라는 신기한 존재에 홀딱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보채는 것도 잠시 잊고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제가 아이를 볼 때와 강아지를 볼 때 사용하는 얼굴 근육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아지를 보면서, 저는 입이 찢어지도록 웃고 있었습니다.
함박웃음이라는 단어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웃음이었고, 그 웃음에 쓰이는 근육은 매우 특별해서 일상의 웃음과는 달랐습니다. 제가 지극정성으로 꿀짱아를 돌보면서도 무언가가 빠졌다고, 부족하다고, 완전하지 못하다고 느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함박웃음이었습니다. 저는 제 아이에게 이처럼 웃어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동안 많이 웃었습니다. 아이를 낳은 것이 행복했고, 엄마가 된 것이 신기했습니다. 꿀짱아를 보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웃음은 무언가에 많이 짓눌려 있었습니다.
엄마 노릇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잘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조바심, 이런 여러 가지 무거운 맷돌들에 짓눌려서, 저의 웃음은 쾌활하지 않고 어딘가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검은색 얼룩이 있는 하얀 강아지와 놀아준 그날, 놀이터의 우레탄 바닥에서, 저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았습니다. 사랑한다는 것, 좋아한다는 것의 원래 모습, 몸을 낮추고, 손으로 바닥을 두드리고, 데굴데굴 구르고, 입이 찢어지도록 웃는 것, 만지고 부비고 냄새 맡고 즐기는 것, 제가 강아지를 보자마자 자동으로 쉽게 할 수 있었던 것, 딸에게 그동안 해주지 못한 것들, 바로 이런 것들을 이제야 찾아낸 것입니다. 
아이를 낳고서도 1년이 넘도록 찾지 못했던 퍼즐 조각을 찾아들고, 저는 그토록 단순한 것을 그처럼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저는 스스로가 놀라고 말았습니다. 앞으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짜릿한 기분으로 꿀짱아를 다시 보았습니다.(심윤경) 

그렇습니다. 심윤경 님은 자신의 웃음을 "찌그러진 웃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웃음이 아니라, 엄마 노릇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잘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조바심을 가지고, 아기에게 억지로 웃어 보였던 웃음을 말하는 듯싶습니다. 고(故) 황수관 박사는 그런 웃음을 "비(非) 웃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웃음은 건강에 도움이 되나, 비웃음은 그 자신과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다."라고 했습니다. 심윤경 님의 글을 읽으면서 새삼 황 박사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웃으면서 살고 있나요? 오늘 하루 동안 함박웃음을 얼마나 웃었을까요?

 

예림단장 칼럼

언젠가는 이 길을 갈 거야!
 
마일스 하비가 쓴 책 <잃어버린 지도들의 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30대 때 나는 시카고에 있는 한 여행자 카페에 자주 들렀다. 벽은 발리에서 가져온 지도들로 도배되어 있고, 선반에도 머나먼 땅의 지도와 안내서가 가득 쌓여 있었다. 당시 나는 <아웃사이드 매거진>에 글을 싣는 문학 평론가였다. 좋은 직업이었지만 점점 무료해졌다. 알다시피 내가 읽는 책들은 히말라야 최고봉을 오르고, 자전거로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고, 목선으로 대서양을 건너고, 중국의 제한구역까지 들어가 탐험한 살마들에 관한 책이었다. 내 하루와 머릿속은 이런 모험 이야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정작 내 삶은 모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카페 내부는 시계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각 시계는 머나먼 지역의 시간을 보여 주었다. 이 머나먼 땅들에서 시간이 가는 것을 보면서 나의 모험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여길 갈 거야!" 다들 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험을 약속하는 지도를 보며 생각합니다. "언젠가! 언젠가 여길 갈 거야. 비록 지금은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언젠가는 갈 거야. 맡은 책임이 너무 많아서 당장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갈 거야. 조금만 더 준비가 되면, 시간이 조금만 더 생기면, 방향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고 나면,
좀 더 안전해지면, 언젠가는 여길 갈 거야!" 그래서 우리는 가만히 앉아 시계만 쳐다보며 세월을 흘려보냅니다. 누군가가 살고 있는 흥미진진한 삶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봅니다. 그러면서 자기 삶의 아이러니를 깨닫지 못합니다. 종일 지도만 바라볼 뿐 과감히 모험에는 뛰어들지 못합니다. 나도 성경에서 한 번에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연구하거나 선교사들의 전기를 읽을 때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살아납니다. 하지만 대게 거기서 끝입니다. 더 이상 나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멋진 모험을 예비하셨지만 그 모험 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마련하신 목적이 있지만 당신이 그 목적대로 살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당신 앞에 기회를 보내 주셨지만 당신이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면? 당신이 참여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지만 당신이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면? 지난 세월을 돌아볼 때 이런 것이 보인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나도 당신이 이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좋은 소식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지도도 함께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이로써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시편 41편 -13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41편에 나오는 "가난"은 돈이 부족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마음적으로, 재정적으로 기갈에 시달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복"은 부자가 되고 잘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 주시고, 나를 붙드시는 것을 말합니다. 가난한 이를 보살피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재앙의 날에 하나님이 그를 건지시고 지키시며 살게 하실 것입니다. 병상에 있는 다윗은 주님께 죄를 자백하며, 자신을 고치시고 일으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악담하며 해하려는 원수에게 자신이 보응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의 복(1-3절).
궁핍한 이를 향한 너그럽고 희생적인 나눔의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 짓는 특징입니다. 본문은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라고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나타내며 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보살피는(히, 사칼)"이라는 말에는 "지혜로운"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도우려는 마음만 있으며 안 되고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도움은 상대방을 더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연약한 자를 "지혜롭게 보살피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사람을 보살피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그를 보살펴 주십니다. 원수들의 손에 멸망하지 않도록 지키시며 질병을 치료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니 그가 세상에서 복을 누립니다. 남들보다 잘 되는 것만이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책임지시고, 인도하심이 바로 복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 좁은 시각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 말씀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오늘날 우리가 지혜롭게 보살펴야 하는 이웃은 누구인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죄 고백과 회복을 위한 간구(4-13절).
다윗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며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합니다. 나의 죄를 고백하는 길은 은혜로 향하는 최고의 지름길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말하며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일상은 죄의 유혹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고치소서!"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십니다. 회개는 가장 위대한 기도요, 죄로 넘어진 사람에게 필요한 최고의 처방입니다. 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해야 합니다.
몸이 아픈 것도 힘든데, 주변 사람들의 악한 말들이 그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그들은 그를 동정하는 척하지만 돌아가서는 나쁜 소문을 퍼뜨립니다. 그와 식사 교제를 나누던 친구도 그를 대적합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시고 배신당하셨습니다. 다윗은 질병과 심적 고통을 해결해 줄 이가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성도의 구원과 승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는 자신이 그분 앞에서 영원히 설 것을 믿습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고통 중에 있는 나를 두고 악담할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할까요?
 
"가난한 자를 돌아보고 보살피라고, 그러면 복을 주실 거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어비지, 눈앞에 놓인 문제 해결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먼저이고 더 중요한 일임을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날마다 하나님께 자복하고 회개하며,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의 능력을 덧입게 하시옵소서. 연약한 자들을 향해 함부로 말하지 않고, 묵묵히 기도해주고, 손을 내밀어 그들을 위로하며 도와주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고 함께하시며 보살펴주시는 것 같이 우리도 그리 행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고난을 받는 태도
 
나는 만성 통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 삶이 그 통증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되도록 그 통증에 관해 생각하거나 걱정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내 고통은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육체의 고통을 그저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여길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고통은 무의미한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일 수 있습니다. 물론 고통 그 자체는 "선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분명 나쁜 것입니다. 
하지만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안에서는 다릅니다. 무가치해 보이는 고통이 유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유익은 바로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로마서 8:17). 다만 하나의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린 옛 습관, 하나님 없이 내 뜻대로 살려는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고난 자체가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해 주지 않습니다. 즉 고난이 저절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해 주지 않습니다. 매일 내 힘이 아닌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고난을 은혜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 예수님께로 더 나아가려는 선한 의도를 품어야 합니다.(내 모습 이대로 기도합니다/카일 스트로벨)

 

신앙생활 가이드

사도 신경-아버지①
 
사도 신경은 하나님의 위엄과 자비, 즉 그분의 위대하심과 인자하심을 하나로 묶어 놓음으로써 성경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이들의 아버지로 자신의 심분을 낮추신다는 사실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이미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알려 준 바 있었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그 칭호를 좀 더 개인적이고 친밀한 것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하나님을 부를 때, 즉 그분을 언급할 때 아버지라는 칭호를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에수님은 열두 살 되던 해에 성전에 올라가셨는데 그곳을 일컬어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셨으며(누가복음 2:49),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최후의 말씀도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누가복음 23:4). 그분 자신이 하나님을 이렇게 아버지라 불렀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마태복음 6:9; 누가복음 11:2). 따라서 "아버지"는 하나님을 부르는 기독교의 독특한 칭호입니다. 고대 유대교의 기도문에 보면 하나님을 "아바(Abba)"로 부른 것은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 반면에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언제나 이 칭호를 사용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 알라신에 대해 "창조자, 지존자, 공급자, 통치자" 등. 아흔아홉 개의 이름과 칭호를 두고 있지만, 그것들 중 아버지란 칭호는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차별 없이 모든 남자와 여자의 아버지는 아니십니다. 분명히 그분은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인류가 그분의 피조물이라는 점에서는 분명히 그분의 "소생"입니다(사도행전 17:28). 그러나 "아버지"란 호칭은 예수님이 특별히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호칭입니다. 
바울과 요한도 우리가 오로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만 그분의 가족 안에서 그분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라디아서 3:26).

 

따라하는 기도

예배를 위한 기도②
 
오늘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꿈과 비전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예배하는 예배자들들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알기를 소원하고 하나님 만나기를 소망하는 갈급한 마음을 주시고, 준비된 마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예배하는 예배팀을 위해 기도합니다. 찬양팀 가운데 놀라운 성령님의 기름을 부어주시옵소서. 영감이 넘치는 찬양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게 해 주시옵소서.
음향팀, 영상팀, 조명팀, 주차, 안내로 섬기는 모든 이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섬김이 기도되고, 봉사가 찬양되고, 헌신의 자리가 예배의 자리되게 해 주시옵소서. 저들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환하게 빛나게 하셔서 저들의 예배하는 모습을 통해 함께 예배하는 이들 모두 하나님을 깊이 예배하게 되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를 인도하는 인도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부어주시고,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하시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모든 예배자를 인도하게 해 주시옵소서.
말씀을 증거 하는 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말씀의 권세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은혜의 말씀, 진리의 말씀, 소망의 말씀이 선포될 때 듣는 이마다 그 심령이 뜨거워지고, 내면이 변화되고, 영이 다시 살아나고, 삶이 새로워지게 해 주시옵소서. 말씀을 들을 때 기도가 회복되고, 찬양이 회복되고,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회복되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 예배의 모든 순서 가운데 하나님 함께해 주시옵소서. 찬양과 기도와 말씀, 헌금과 광고, 시간 시간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게 하시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예배를 훼방하는 어둠의 영들을 대적합니다. 죄악에 이끌려 살아가게 하는 영, 미혹케 하는 영, 분주하게 하는 영, 나누어지게 하는 영,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영, 좌절하게 하고, 하나님을 기대하지 못하게 하고, 거짓되게 하는 영, 시기하게 하고, 미워하게 하고,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더러운 영. 우리의 예배를 훼방하는 모든 어둠의 영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날갈지어다! 빛 되신 주님, 주님의 빛으로 우리의 영혼을 환하게 비춰주시고, 그 영혼이 온전히 주님의 다스림 안에 거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이 개어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탄 찬양

 

날마다 감사

사랑하며 감사하며..
 
맑은 공기, 맑은 하늘 살아 호흡하는 이 생명을 감사합니다. 계곡의 시냇물 소리,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 소리, 까치를 벗 삼아 오솔길 산책로를 걷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 보고 싶은 얼굴들.. 가슴에 머무르는 이들을 떠올리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기적처럼 다가오는 매일의 삶.. 그 하루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에 무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펼쳐 놓으신 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