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37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12. 9. 12:41

예림의집 2637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부서진 석상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P.B. 셸리가 쓴 <오지만 디아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고대 대륙에서의 한 여행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황량한 사막에 몸통은 사라지고 두 다리만 높이 서 있는 석상의 잔해를 발견했습니다. 석상은 몸통이 없이 거대한 다리 두 개만 서 있었고 그 다리 근처에 얼굴 부분은 사막에 반쯤 파묻혀 흉하게 모래바람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는 석상의 주춧대 표면에 쓰여있는 글을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왕 중의 왕인 나는 오지만 디아스다. 나의 업적을 보고 너희 강하다는 자들아 절망하라! 온 인류가 나를 영원토록 기억할 것이다!" 그 옛날 파라오의 야심과 열정을 온 힘을 다해 조각가가 생명 없는 돌 위에 찍어놓았던 흔적이지만, 그 어떤 위대함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오지만 디아스"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의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실제로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 역사에 길이 남은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이 위대했던 왕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자신의 위대함이 영원히 잊히지 않고 기억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대함은 결국 큰 건축물이나 보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에 남는 진정한 위대함은 사람의 언행과 세상에 남긴 정신을 가진 위대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우리 인간이 아닙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 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강아지를 바라보면서 웃어대는, 입이 찢어질 것 같은 그런 웃음을 아이에게 보여주게 된 것은, 참으로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실 거의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딸은 여전히 저로 하여금 죄책감을 갖게 하는 생성기였습니다. 꿀짱아는 도무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훗날 알게 된 바, 꿀짱아는 기질적으로 말이 없고 표정이 적은 아이였습니다. "행복한 아이는 까르르 웃는다."라는 것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 중의 하나였습니다. 행복해도 큰 소리로 웃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꿀짱아가 그랬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소리 없이 벙긋 웃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초보 엄마였던 저는 제가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꿀짱아가 내내 뚱한 표정으로는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 수시로 쫓겼습니다. 우리가 허둥거린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심한 낯가림이었습니다. 꿀짱아는 정말 치가 떨리도록 낯을 가렸습니다. 아이가 피부 접촉을 용납하는 사람은 친정엄마와 저 두 사람뿐이었고, 낯선 얼굴이 있으면 내내 불편해했습니다. 그러나 친정엄마는 아이의 낯가림에 관대했습니다. “괜찮다. 똑똑한 아이들이 낯을 가린다. 뭘 좀 안다는 뜻이거든.” 
하지만, 저는 미래에 아이가 똑똑할 것이라는 희망만으로는 쉽사리 관대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낯을 심하게 가리는 바람에, 저는 타인과의 교류가 어려웠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몹시 피곤했습니다. 낯을 가리지 않고 벙긋벙긋 웃으면서 낯선 사람의 품에도 척척 안기는 이웃집 아이들이 너무너무 부러웠습니다. “네가 어릴 때 한 짓을 생각하면, 네 딸이 낯을 가리는 것은 당연하지. 너처럼 심하게 낯을 가린 아이가 세상에 또 있었을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가 옳았습니다. 사실 딸더러 뭐라고 할 수도 없는 게, 꿀짱아의 낯가림은 유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낯가림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삼촌들이나 고모부처럼 남자목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저는 기겁을 하고 자지러져서, 할머니가 저를 데리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숨어야 했습니다.(심윤경)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부모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한테서도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부모나 자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바로잡도록 힘써야 합니다. 요컨대, 누굴 탓하거나 원망할 일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는 모순과 허물을 고쳐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린도전서 1장 8-9의 바울의 격려입니다!

 

예림단장 칼럼

새 계명, 새로운 사랑법
 
예수님은 십자가 형벌을 앞두고 체포되시던 날 밤,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그분의 뜻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전한 마지막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그리 오래 머물 수 없다고 말씀하신 뒤에 그들을 향한 그분의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를 상기시키셨습니다. 34절에서 그 목적이 나타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것은 새로운 제안이나 아이디어, 입장, 추천 사항이 아니라 새로운 "명령"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것을 "새" 계명이라 하셨을까요?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처음부터 예수님이 전하신 메시지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이 명령을 새로운 명령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사랑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방금 발을 깨끗이 씻은 상태로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방금 전에 예수님이 그들 앞에 무릎을 꿇으시고는 그들의 발을 잡고 발가락 사이사이에 낀 때까지 깨끗이 씻겨 주시지 않았던가요!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사랑한 것같이 남들을 사랑하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똑똑히 알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필요보다 남들의 필요를 먼저 챙기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자신보다 남들을 더 생각하는 사랑이니다. 그것은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남의 잘못을 마음에 품지 않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담아낸 단어 가운데 하나는 "근접(proximity)입니다. 즉 가까이 다가가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탄절마다 예수님이 우리 곁으로 오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함께 축하합니다. 바로 이것이 "임마누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은 예수님의 사랑법이 근접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누군가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발산하시고 싶으십니까? 먼저 새로운 사랑법을 배우십시오. 먼저 그 누군가에게 다가가십시오. 근접한 거리까지..!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하나님 없는 삶의 실체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전도서 1장 1-11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1절의 "전도자"는 히브리어로 "코헬렛",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스테스"입니다. 회중에게 말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전도서를 시작하면서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로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해 아래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으며, 만물은 피곤하고 족함이 없습니다. 이미 있던 것이 다시 있고 이미 한 일을 다시 하니 해 아래 새것이 없습니다. 이전 세대가 잊히는 것처럼 장래 세대도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없는 삶의 실체를 허무함과 무의미함으로 결론지어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헛되다(1-3절).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설 것을 의식하며 살지 않는 사람은 순간의 만족이 전부인 망령된 삶, 헛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삶에 지친 사람은 희망과 긍정의 말씀을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2절의 전도자가 들려주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은 실망스러우며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다섯 번의 반복되는 "헛되다"라는 단어에서 비관과 허무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벨"은 "쉽게 사라질 숨, 호흡, 미세한 수증기" 등을 가리킵니다. 모두가 곧 없어질 것들입니다.
여기서 전도자의 진술을 "삶은 무의미하다"라는 염세주의적 선언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이는 "하나님 없이" 해 아래서 사른 삶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절한 삶은 무기력하며,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은 허무합니다. 해 아래의 삶은 허무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희망적이고 값진 삶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안개처럼 사라질 것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것을 경험한 성도는 세상의 산물을 은혜로 누리되, 그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4-11절).
사람들은 옛것보다 새것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9절,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라고 말합니다. 땅은 영원하나 인생은 유한하고, 태양 바람 강은 끊임없이 대지를 순환하나 인간의 삶은 짧다고 말합니다. 그런 후 순환하는 자연조차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10절, 이전 세대에도 이미 자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해 아래"는 타락한 상태에 있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죄로 물든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낡고 유한한 것은 예수님 안에서만 영원하고 아름다운 새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의 만족과 기쁨은 유한한 세상이 아니라 영원하신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성경은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선언합니다. "허물과 조로 죽었던"(에베소서 2:1)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학 되어 새것이 되는 것, 이것이 복음입니다. 전도자가 "헛되다"를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말한 이유와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봅시다. 오늘날 해 아래 새것이 없는 세상에서 예수님으로 인해 내 삶은 어떻게 새로워졌는지 마음 깊이 묵상합시다.
 
"오늘부터 잠언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이 없는 삶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영원하지 않은 눈앞의 일로 아등바등하며 살아왔던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허무와 절망에 휩싸여 오늘을 버거워하지 않고, 쾌락과 만족만 좇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말씀을 우리 안에 충만히 채워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이 없는 삶과 함께하시는 삶의 그 큰 차이를 깨닫게 하시고 늘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삶의 의미를 주시는 분
 
2012년도에 나는 영국 옥스퍼드 타운 홀에서 회의론자가 대부분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매우 기뻤습니다. 뉴욕시에서 오랜 세월 목회하면서 회의론자들을 만나 그들의 논지를 들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독특성을 규명하는 데 그들의 논지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누구보다 회의적이었던 대학 시절 내 모습이 떠올라, 결코 그들의 질문을 교만한 자세로 일축하지 않았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이런 만남이 적절한 이유가 또 하나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회의론자를 만나 인류 보편의 커다란 의문인 "삶의 의미"를 다루신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어떻게 잘못되었는가? 그 문제를 해결할 길은 무엇이며 우리는 거기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의 답을 애초에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이는 모든 사람이 해야 하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산다면, 누구나 머지않아 걷잡을 수 없는 허무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런 희망 없이, 의미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또한 인생을 바칠 만한 가치 있는 일이 있다는 확신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런 근본 질문들에 대한 답을 탄탄하고 사려 깊게 제시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크리스천은 인생에 대한 기독교의 해답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잘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팀 켈러의 인생 질문/ 팀 켈러)

 

신앙생활 가이드

사도 신경-아버지②
 
하나님이 범우주적인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과 인류가 범우주적으로 형제가 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누누이 들어왔으나, 이것은 어디까지 잠재적인 것이지 실제적인 것은 아닙니다. 모든 남자와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거듭날 때 비로소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소유하고 있는 엄청난 특권들을 가장해서 말하기란 오히려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요한일서 3:1).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뿐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 또한 우리가 그분을 신뢰할 때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그와 같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두려워 말라!" 이는 예수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인생, 의식주, 미래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염려에 대한 그분의 해결책입니다(마태복음 6:25-34). 따라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일 뿐만 아니라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안절부절못하거나 뾰로통할 이유가 없습니다. 의심과 불만이야말로 우링게는 걸맞지 않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무한하신 사랑과 지혜와 권능을 지니신 아버지를 신뢰하고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마도 "의지하다"란 말이 이번 장에서 꼭 기도해 두어야 할 단어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시며 보존자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로서 그분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분이 또한 우리의 천부가 되신다면, 우리는 그분의 자녀로서 그분을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이야말로 겸손히 확신을 가지고 그분을 바라볼 수 있는 두 가지 훌륭한 이유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양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따라하는 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①
 
살아계신 주님,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심을 선포합니다. 우리 가정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제게 가정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가정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시옵소서. 무엇보다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가정이 도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 되는 가정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엎드려 기도하고 고마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정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믿는 것과 사는 것이 하나 되는 가정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언제나 한결같이 모습으로 살아가는 진실한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가족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의 연약함까지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랑스러운 눈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고백해줄 수 있는 축복의 입술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마음속 깊은 이야기까지도 들어줄 수 있는 세심한 귀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어려운 이웃들을 끌어안을 따뜻한 가슴을 허락해 주셔서 마르지 않는 축복의 샘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처럼 서로의 발을 씻기는 겸손한 손을 주시고, 좁은 길도 마다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의 발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어떤 힘든 순간에도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함께 고난을 이겨 나가게 하시고, 좋은 일이 있을 대마다 그 기쁨을 함께 나누며 서로에게 감사하는 가정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희생하고 용서하며 천국 가정을 세우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우리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훈으로 삼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주님의 가정이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탄 찬양

그 밤은 어땠을까 by Dive into Worship 찬양덕후

https://cafe.daum.net/HomeOfYERIM/NjKF/4?svc=cafeapi

 

날마다 감사

사도 바울의 고백
 
사도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20)와 같은 말씀처럼 크리스천은 언제나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감사와 감격은 어디서 왔을까요? 첫째, 그는 과거에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지를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고, 죄인의 괴수였는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형벌을 받아 죽어도 마땅할 만큼 큰 죄인이었음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둘째,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많은 죄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다 용서하셨고, 깨끗이 씻어 주셨고, 그뿐 아니라 자기와 같은 죄인에게 사도의 직분까지 맡겨주신 것에 너무 감사, 감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깨닫는 자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크게 깨달았기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