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애굽기 33장 17-23절).
지난주에 이어서, 14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와 함께할 것이니 편안학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쉴 수 있게까지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당시 모세의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책임에 압도당해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백성들을 잘 인도할 수 있을지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금송아지에게 경배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얼마나 제멋대로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허용한 아론의 나약한 리더십에 대해서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누가 그를 도울 것인지, 어떻게 해야 이들이 하나님 앞에 신실한 민족이 될 수 있을지, 날마다 그에게 가져오는 산더미 같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그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그를 짓눌렀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안식이 없는 모세의 심정을 조금은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압박 가운데서도 그와 함께하실 것이고, 그의 마음을 고요케 하실 것이며, 그의 마음의 평안과 휴식을 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이 모세에게는 참으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15-16절은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현존이 그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말을 듣자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모세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대담한 발언이었지만 사실 이 말은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한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시다.
첫째, 모세는 만일 여호와의 현존이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약속의 땅으로 가고 싶지 않다고 하나님께 말했는데 지금 모세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의 말의 요지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가실 것인지 아닌지에 다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현존 없이 그 백성들을 인도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 일을 혼자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가지 않으신다면 그도 가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세상의 소망을 부여잡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하나님의 임재 없이도 만족하는 교회에 다닌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애써 진행시키려는 죄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는 모세처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주님, 주님이 제가 하고 있는 사역에 함께 하시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그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만 하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늘 갈급해야 합니다.
둘째, 16절에서 모세가 한 말의 다른 면을 살펴봅시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징표가 바로 하나님의 현존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신자들의 삶 속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능력이 아니겠습니까? 불신자들이 신자들을 볼 때 그들은 우리를 통해 마땅히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는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불신자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변화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모습과 그분의 성품과 능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현존이 증거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불신자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모세는 두 가지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현존이 그의 힘과 지혜와 능력의 근원이라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들이 매일매일의 삶에서 그분의 임재를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자신들이 그분께 속해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의 심령의 외침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청을 기뻐하셨습니다.
17절에서 하나님은 모세가 요구한 대로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을 확인이라도 하듯 모세는 하나님께 그분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담대하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 약속에 대한 증표를 보여주실 때까지 그는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모세에게 보여주시기로 결심하신 하나님께서는 19절, 그분의 은총이 모세 앞을 지나갈 것이고 그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그분의 이름을 선포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시대의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그분의 이름을 선포할 것이라고 말씀드리자 하나님이 자신의 인격의 한 부분을 보여주시겠다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은총과 자비와 긍휼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실 때 모세를 바위틈에 넣으시고 그분이 다 지나가실 때까지 그분의 손으로 가려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3절, 하나님이 모세를 덮었던 그분의 손을 치우시면 모세는 하나님의 등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물로 ㄴ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를 보게 되겠지만, 그보다는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와 긍휼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모세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와 긍휼을 드러내야 할 많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반역적인 민족과 함께 일하게 되면서 이 같은 하나님의 성품들을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날 모세가 배웠던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와 긍휼에 대해 우리는 상상만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책도 모세에게 그런 강력한 체험과 교훈을 가르쳐 줄 수 없었습니다. 그날 하나님이 직접 모세에게 자신의 인격의 한 부분을 보여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단지 모세의 여정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한 순간이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은 모세의 여생을 통해 더욱 충만하게 그분의 인격을 드러내셨습니다. 모세보다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세처럼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은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조차 도 하나님을 완전하게 알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사람들이 교리라는 일정한 틀 속에 하나님을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교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극히 일부분을 요약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굳게 붙잡고 믿어야 하되 그것이 하나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성품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지만, 하나님에 대해 공부하는 것과 그분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은 사람들이 신학적으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크신 분이십니다. 이사야서 55장 8-9절을 읽어드림으로 오늘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오늘 본문 모세의 요청에 따르면 신자는 불신자와 무엇으로 구별됩니까? 내 바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구별됩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원했습니다. 우리도 이는 절대적입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임재를 알지 못한 채 하나님께 봉사하면서 만족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끝은 고갈이요, 지침입니다. 우리의 삶과 교회 공동체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증거가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성경을 통해 주님이 보여주시는 그분은 성품의 목적을 끝가지 붙들고 마침내 승리하는 삶을 살아내는 모든 성도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사역에 하나님께서 더 깊은 방법으로 주님의 임재를 드러내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인정하며, 주님께서 알게 하신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더욱 주님을 알아가기에 열심을 내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개인적인 방법으로 우리 각자에게 임재해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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