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송아지 사건..!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출애굽기 32장 15-20절).
모세는 시내산에서 사십일을 머물렀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위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모세가 언제 산에서 내려올 것인지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론 주위에 모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모세가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어느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들은 멀리서 그분의 영광을 본 것만으로도 너무나 두려웠는데 그런 경이로운 하나님의 현존 앞에 그리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자 아론이 백성들에게 귀고리를 빼서 가져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올 때 애굽 사람들에게서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론의 말을 듣고 귀고리를 건네주었고, 아론은 이것을 모아 송아지 모양의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도구를 사용하여 송아지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송아지 형상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는 말입니다.
4절에서 송아지를 보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주목해 봅시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4절을 함께 읽습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그들은 순식간에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강력한 방법으로 이 백성들에게 그분의 현존을 드러내셨던 것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우상으로 가득했던 애굽 땅을 멸망시키셨고, 바다를 갈라 백성들이 마른땅으로 건널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산에서도 자신의 영광스러운 현존을 드러내셨습니다. 사실 그들이 우상을 만들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은 여전히 모세와 말씀하시던 산꼭대기에서 그분의 현존을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 있는 산 아래에서 백성들은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에서 그들이 보았던 하나님은 경이로우시고 거룩하신 분이셨습니다.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던 그분은 백성들에게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요구하셨지만, 그들은 그런 하나님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분께 순종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신을 선택했습니다. 그 신은 그다지 크지도 않았고 자신들이 만족할 만큼 많은 자유도 허락해 주었습니다. 백성들의 태도와 열망을 본 아론은 그 송아지 앞에서 제단을 쌓고 다음날 여호와를 위한 절기를 지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아론이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합시다. 그가 비록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지만, 다음날 지킬 절기는 여호와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그 재물을 백성들에게 가져왔지만, 사실은 송아지 우상 앞에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6절, 제사가 끝나자 그들은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어놀았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파티를 즐기면서 많은 기쁨과 웃음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원했던 신이었습니다. 그 신은 결코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백성들이 바로 그런 신을 원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안에도 영적인 욕구가 존재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확실한 경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내면에 죄악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악한 본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의 이 장면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원하는 그들은 악한 본성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상황을 보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들이 타락에 빠졌으니 산을 내려가 그들에게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 그들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거기에 절하면서 그것이 애굽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준 신이라고 주장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그 민족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신 말씀에 주목해 봅시다. 10절에서 하나님은 산 아래 있는 백성들을 멸망시키겠지만 모세의 후손을 통해 큰 나라를 일으켜 자신의 뜻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민족을 멸망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백성들을 위해 간절히 애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키시면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기 위해 광야로 데려가신 것으로 믿게 될 것이라고 모세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고 하신 약속을 기억해 달락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14절에서 모세의 말씀을 들으신 하나님은 그의 청대로 그 백성들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기로 마음을 돌리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백성들을 멸망시키려 하셨지만 백성들을 위한 모세의 간청으로 그 뜻을 바꾸셨습니다. 다시 말해 모세가 하나님께 간청함으로써 그 백성들을 구원해 낸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모세의 간절한 소원을 보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해 주셨고, 이 장면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울부짖음과 간절한 소망에 무관심하거나 냉담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고 모세의 자손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심으로 그분의 뜻을 이루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간절한 소원을 보시고 그들을 살려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줍니다. 모세는 자신의 소원을 갖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에 굉장히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모세의 말을 기꺼이 경청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도 그분의 뜻을 얼마든지 이루실 수 있으시지만, 우리 마음속에 갖고 있는 간절한 소망에도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두 번째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이 뜻을 이루시거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지금의 이 패역한 백성들이 반드시 필요하셨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의 자손으로 뜻을 이루실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실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일에 적합한 다른 사람을 찾으십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마태복음 25:28-30). 하나님은 우리의 불순종이 그분의 뜻을 가로막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진실하시고, 주신 약속은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신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신실하게 일할 사람들에게 그 임무를 맡기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 은사를 우리에게서 옮겨 다른 사람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어느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15절에서 모세는 양손에 하나님이 주신 돌판 두 개를 들고 하나님의 현존을 떠나 내려왔는데 16절, 그 돌판에는 하나님이 손수 쓰신 그분의 계명이 돌판 양면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17절에서 여호수아의 행적에 주목해 봅시다. 그 무렵 여호수아는 모세를 기다리며 산 중턱에서 기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와 함께 산을 내려올 때 산 아래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적이 장막을 공격해 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18절, 그 소리가 승리의 소리도 패배의 소리도 아닌 노랫소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장막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송아지 우상과 그 앞에서 춤추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모세는 19절, 자신이 가져온 돌판들을 산기슭에 던져 버렸고, 그 돌판들은 깨져 버렸습니다. 그는 송아지 우상을 가져다가 불에 녹인 다음 가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21절, 그 금가루를 물에 녹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그 후에 조치들은 다음 주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식간에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장면을 되새겨 봅시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유혹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합시다. 본문에서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울부짖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해 주셨는지 돌아보고, 공동체와 가정을 위해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기도해야 할지 다짐하는 예림교회 성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으로 기꺼이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신실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간절한 소원가 바라에 기꺼이 관심을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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