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24번째 이야기
충실한 삶에 우선순위 한 청년이 새해를 맞아 인생을 충실히 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삶의 계획을 작성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첫 번째, '건강한 삶'을 위해 꾸준히 운동하고, 두 번째, '사랑받는 삶'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며, 세 번째, '풍족한 삶'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고, 네 번째, '명예로운 삶'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자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청년은 누구보다 '충실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무언가 부족한 듯한 느낌에 항상 걱정과 불안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스승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충실한 삶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잘 실행하고 있는데 여전히 뭔가 부족합니다. 저에게 빠진 것이 무엇인가요?" 스승은 제자가 쓴 계획을 보고 말했습니다. "훌륭하고 일리가 있는 계획이네. 그런데 자네는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린 것 같네. 그것이 없을 때 이런 것 들은 오히려 큰 고통이 될 걸세." 그리고 스승은 붓으로 한 줄을 남겼는데 그것은 '마음의 평안'이었습니다.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더 멀리 날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바쁘게 살고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 없이 다른 무언가로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운다고 해도 공허함만 있을 뿐입니다. '마음의 평안'을 통해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 |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강 회장은 어느 사장님 소개로 알게 된 분인데, 예전에 기업을 운영한 경력이 있다지만, 현재는 직함만 회장이지 특별히 일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깍듯하고 성품이 좋은 분이라, 처음 몇 번 만났을 땐 저도 그분에 대한 인상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만남이 계속될수록 피로감이 쌓여갔습니다. 강 회장은 자신의 주위 사람들이 겪는 온갖 법률적인 문제를 저와 상담했습니다. 처음에는 호의로 받아들였지만, 차츰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강 회장과의 만남을 달가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더 이상 상담해드리기 곤란합니다. 이제 그만 연락하시죠!”라는 최후통첩을 하기로 맘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기회가 온 겁니다. 그동안 충분히 도움을 드렸다고 생각했기에 오늘 과감히 이별통보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비장한 마음을 먹고 회의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강 회장 옆에는 최 회장이라는 분도 있었습니다. 강 회장이 최 회장 회사의 고문변호사로 저를 추천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저는 얼떨결에 최 회장이 경영하는 4개 회사의 고문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강 회장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4개 회사의 다양한 소송과 자문사건을 처리했습니다. 최 회장의 회사는 단연 제가 맡고 있는 그 어느 자문기업보다 수익성이 좋은 기업이 되었고, 인연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그토록 저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갖고 계신 강 회장에게, 그날 제가 회의에 들어가면서 냅다 "이제 그만 연락하세요!"라는 말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그 뒤에 식사자리에서 강 회장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예전에 저의 도움을 한 번 안 받아본 친구가 없답니다. 제가 워낙 잘 퍼주는 성격입니다. 하지만, 제 사정이 어려워지니, 다들 멀리하더군요. 세상인심 참.. 그렇다고 제 넓은 오지랖이 어딜 가나요? 주위에 힘든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지 돌봐주려는 이 오지랖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당장 돈이 없으니, 어딜 가도 대접을 받지 못합디다. 제가 아는 변호사들도 많아요. 하지만 상담료가 없으니, 만나주질 않더군요. 전화해도 피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조 변호사님은 처음부터 한결같이 돈과 상관없이 저에게 상담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잊지 못합니다. 어떻게든지 결초보은(結草報恩)하고 싶었습니다. 조 변호사님은 앞으로도 복 받으실 겁니다.” 그의 칭찬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품었던 마음을 아시게 되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가 띵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예, 예.”하기만 했습니다. 씨를 뿌리면 거두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열매를, 나쁜 씨를 뿌리면 나쁜 열매를 거둡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두게 되고, 적게 뿌리면 적게 거두는 것입니다.(조우성 변호사) ![]() |
고통의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② 그도 넋이 나간 표정으로 거리를 거닐며 지독한 고통에 빠진 이 거대한 무리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그 아이를 보았습니다! 순간, 줌렌즈가 작동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이 흐릿해지다 이내 사라졌습니다. 곁에 아무도 없이 홀로 앉아 있는 두 살 남짓의 여자 아이, 그는 아이가 괜찮은지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아이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아이는 그에게 팔을 뻗으며 안아 달라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그는 몸을 숙여 아이를 안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뭘 해야 할지.. 이전에 제가 이야기했던 쏟아져 널브러진 서랍장을 치우고 의식 없는 두 살배기 지인의 딸아이를 들어 올릴 때와 똑같은 무기력감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왔다고 합니다. 그 순간, 그는 우리 지의 푹신한 소파에서 뉴스를 통해 불특정 다수를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채널을 돌려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피해를 입은 수만 명에 관해서 읽는 것과 피해 이은 한 사람을 실제로 품에 안은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의 부모를 찾아 헤맸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봤지만 아무도 아이의 부모가 어디 있는지 몰랐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 길가에 마련된 임시 텐트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아이를 그들에게 데려갔지만 그들은 자기 문제를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 마침내 이 아이를 알고 돌볼 마음도 있는 아홉 살 남짓 돼 보이는 한 소녀를 찾았다고 합니다. 아이를 그곳에 두고 몸을 돌렸습니다. 그것이 잘한 일인지 그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는 그 작은 여자 아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이름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에게 중요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아이에 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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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을 위한 유다의 희생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창세기 4장 14-34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막내 아우 베냐민과 함께 애굽 성으로 돌아온 형제들의 변론과 베냐민을 대신해 자기를 희생하고자 하는 유다의 긴 항변이 이어집니다. 그는 과거의 일들을 낱낱이 아뢰고 베냐민을 잃으면 아버지의 재해라고 애굽 총리 요셉에게 자비를 호소합니다. 총리 요셉의 추궁에 유다가 자신들 모두 노예가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베냐민만 남기고 떠나라 합니다. 이에 유다가 나서서 막내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죽을 것이라고 호소합니다. 또 아버지에게 자신이 담보가 되겠다고 했다며, 베냐민 대신 자신을 종 삼으라고 간청합니다. 요셉 앞에서 발언하는 유다(14-17절). 참된 성숙은 이기심을 깨고 남을 위해 나를 버리는 실천으로 완성됩니다. 진실한 우애와 사랑은 고난당하는 지체를 방관하지 않습니다. 형제들은 다시 요셉에게 나아와 엎드립니다. 14절,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란 표현은 유다가 형제들을 대표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유다는 창세기 37장 26-27에서 요셉을 판 장본인이었지만, 이제 |우리"를 강조하며 베냐민만 두지 않고 자신들도 함께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형제들이 함께 공동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과거 아버지 야곱의 편애가 요셉을 미워하는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베냐민을 구하려는 근거가 됩니다. 연약한 아버지의 편애를 덮을 만큼 이복형제 간의 우애가 커진 것입니다. 유다와 형제들이 베냐민과 함께 종이 되겠다고 한 이유는 막냇동생 베냐민을 위하고, 아버지가 당한 충격과 고통을 생각해서입니다. 참된 회개는 삶의 변화를 동반합니다. 유다는 요셉을 팔아넘길 때와 다르게 베냐민을 위해서 자신을 내놓습니다. 과거에 대한 유다의 반성은 단지 후회가 아닙니다. "돌아섬"이고 "달라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공동 책임으로 여기고 감당해야 할 지체들의 어려움은 무엇이 있는지 깊이 묵상합시다. 희생을 자처하는 유다(18-34절). 유다는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베냐민이 종이 되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유다는 요셉 앞에서 막내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자세하게 전합니다. 애굽 총리의 명령으로 베냐민을 데려왔으나, 그이 생명과 아버지의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베냐민을 데려가지 못하면 아버지에게 큰 해가 되리라고 호소합니다. 요셉을 팔 때는 아버지가 받을 상처를 가볍게 여겼으나 이제는 아버지를 걱정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형제를 시기하고 증오했으나 이제는 사랑하고 아낍니다. 진정한 회개와 변화된 삶을 보입니다. 삶의 성화는 진실한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유다의 설명을 듣는 과정에서 요셉은 자기가 사라졌을 때 아버지 야곱이 비통에 잠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유다는 마지막으로 베냐민 대신에 자신이 종으로 남겠다고 간청합니다. 형제들을 대표해 자신이 희생하겠다는 유다의 말은 그가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늙은 아버지에 대한 공경심과 베냐민을 아끼는 형제애에 대한 발언은 요셉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과 말은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오늘날 누군가를 대신해 우리는 어떤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지 깊이 묵상합시다. "유다의 호소를 통하여 그가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었음을 보여주신 하나님 아버지, 영원히 죄의 종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우리를 시리려 예수님을 보내 주신 사랑에 감격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그 사랑을 우리의 삶에 선명히 새겨 가게 하시옵소서.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볼 때 먼저 손을 내밀고 적극적으로 수고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게 하시고, 끊임없이 주님만을 앙모하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바라리이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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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에 늦은 때는 없습니다 가끔은 내가 가족과 이웃에게 무심했던 것이나 상처 준 일 때문에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일과 누군가를 돌보고 존중하는 일에 너무 늦은 때는 없습니다. 그 부르심을 깨달았다면, 오늘이라고 배우자와 자녀, 교우들과 친구들에게 나 같은 사람을 오랫동안 참아 줘서 고맙다고 또 미안하다고 말해 보십시오. 그 고백으로 인해 오랫동안 응어리진 것이 풀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받들기 위해 성령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는 하나님께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큰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을수록 사랑의 빚은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커집니다. 가족과 이웃을 더 사랑하고 그들에게 더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은혜는 이렇듯 우리 내면 깊은 곳에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창조합니다. 마치 내가 은혜 베푸는 것처럼 사랑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란은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상대방을 더 많이 사랑받아야 할 매우 존귀한 존재로 생각할 때, 그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정결합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빚은, 사랑하며 살라고 우리를 부릅니다.(나이 듦의 영성/조장호 목사) ![]() |
하나님의 존재-예수님의 인성 하나님이 무한하시다면, 그분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밖에 계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해의 범위 밖에 계신다면, 우리는 그분이 친히 자신을 계시해 주기로 결심하지 않는 이상 그분을 알 수 없습니다. 만약 그분이 자신을 알려 주려고 하신다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다시 말해서 분명히 다름 아닌 인성을 통해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이 바로 이 일을 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우주와 우리에게 주신 성품만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친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전히 신성을 소유하시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유일무이하신 신인(God-man)께서 이 땅에 사셨으며, 사람들이 그분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증거는 여기서 논하기보다 다음 장으로 넘겨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최고의 증거이자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역사에 존재하셨던 예수님이라는 한마디만 해 두는 것으로도 충분하리라 여겨집니다. 혹시 당신이 하나님에 관해 여전히 회의적이라면, 성경의 복음서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바로 마태복음 7장 7절의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열린 마음 겸손하고 편견이 없는 마음을 가지고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하셨던 그분의 역사적인 기록들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바로 이와 ㄱㅌ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해 주신다고 마태복음 11장 25절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약속하셨습니다! ![]()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도① 하나님, 제 삶에는 만족이 없었습니다. 잘살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성공하고 싶었지만 늘 실패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용기 한번 제대로 내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의 말과 시선에 이끌려 살아왔기에 제 삶은 제 삶이 아니었습니다. 늘 지나간 일들을 붙들고 후회하거나 오지 않는 내일 일로 불안해하며 살았습니다. 일시적이고 찰나와 같은 기쁨을 추구하며 살아왔습니다. 깊은 상실감과 상처로 사람들을 멀리하며 살아왔습니다. 가슴 아픈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도 잃어버린 채 살아왔습니다. 그저 더 많이 가지면 행복하리라,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자유로우리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늘 공허함과 외로움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이런 저 자신이 싫었고 저를 이렇게 지으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 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제 삶이 도둑맞은 것처럼 느껴지고, 살아있으나 죽은 것처럼 느껴지고, 지금 제 삶은 마치 실패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 제가 목마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거이라" (요한복음 10:10). 주님, 주님은 제게 생명을 주기 원하시고, 풍성한 삶을 주기 원하시고, 영원한 삶을 주기 원하시는 분이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님, 저는 주님 앞에 설 면목이 없습니다. 저는 주님 앞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그동안 제가 얼마나 마음으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행동으로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았는지 주님 아시잖아요.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제힘만으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히 착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제가 제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왔습니다. 하나님, 철저하게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아온 저는 죄인입니다.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런 죄임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사랑하셔서 벌하지 않으시고, 저를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 길이고 변하지 않는 구원의 진리이며 영원하고 유일한 생명이심을 믿습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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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출발은?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겨울은 눈이 있어 좋고,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것 같아서 좋고, 여름은 초목이 우거져서 좋고, 가을은 열매가 있어 좋다!" 반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겨울은 추워서 싫고, 봄은 황사 때문에 싫고, 여름은 더워서 싫고, 가을은 고독해서 싫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 되면 여름을 생각하고, 여름에는 겨울을 생각하니까 행복할 틈이 없습니다. 작은 집에 살아도 잠잘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작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누구는 저렇게 멋지게 사는데 "나는 왜 이래!" 하고 비교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아침에 "잘 잤다!" 하고 눈을 뜨는 사람은 행복의 출발선에서 시작하고, "죽겠네!" 하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불행의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출발은 어떻습니까?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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