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할 수 없는 예배자⑤
우리가 다음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그런 신선함으로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역동적인 경배의 시간보다 더 흥미 있는 일은 없습니다. 성령님은 가장 놀랍도록 깊이 있는 보좌의 방에 우리를 데려가실 것이고, 가끔은 우리가 전에 결코 가본 적이 없는 길로 그 보좌의 방에 우리를 데려갈 것입니다. 예배 인도자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혼란과 당혹감을 가질 것이고, 모든 사람이 곧 짜증을 낼 것이며, 계속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핵심은 예언자적인 것(새로운 땅을 침범하고자 하는 열망)과 목회적인 것(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사로잡으려는 열망) 사이에 어쨌든 바른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이것을 행할 통찰력과 지혜를 달라고 간구해야만 합니다. 성령님께서 바로 궁극적인 예배 인도자라는 현실감을 갖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경배 시간에 일어나는 의미 있는 모든 것들의 대리인입니다. 빌립보서 3장 3장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경배)한다"라고 말하며, 예수님은 성령님의 주요 역할이 예수님께 영강을 돌리는 것이라고 분명히 강조하십니다.
그러면 사람인 "예배 인도자"는 더욱 "인도하는 예배자"에 어울립니다. 즉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고자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서 전심으로 자기 자신을 경배에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곡들을 연결하고, 어떻게 잘 연주해서 훌륭한 경배를 드릴 것인가 하는 실지적이고 외부적인 측면을 너무 많이 듣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핵심은 결코 음악적 재능이나 편곡 기술로도 결코 그 공간을 메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항상 의지하게 되는 것이 경배와 예배의 본질인 것입니다.
경배는 음악 집회이기 이전에 영적 집회입니다. 단지 음악이라는 옷을 입은 것입니다. 아니, 음악이 아닌 다른 형식의 경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 아래 모든 경배가 무대로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합시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노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느끼며, 성령님이 인도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대담한 속삭임에 따를 준비가 된 예배자들, 즉 진정한 "예측할 수 없는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주님을 향한 첫사랑의 연애 감정을 계속해서 품고 살아가는 예배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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