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을 벗은 예배자②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기억하며 이렇게 초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종종 우리는 이 구절을 복음 전도에 사용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은 이미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더 대단한 친밀함 속으로 자기 백성들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먹는다"는 단어는 그리스어 명사 "데이프논(deipnon)"에서 유래했는데, 하루에 먹는 주요 식사를 의미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함께 모여 앉아 서로 양질의 시간을 보내는 저격 식사였습니다. 그 문화에서 이런 식사를 하는 이유는 교제이지 단지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서둘러 해치우는 행사가 아니라, 당신이 얼마 동안 앉아 함께 식사하면서 상대방을 알아 가는 그런 행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로 너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가게 해라. 나는 너에게 가서 너와 함께 먹고 너와 가까워지기를 원한다. 나는 내가 먹을 때 나를 섬기고 식탁에서 그저 시중이나 들라고 너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아 함께 앉아서 먹자고, 우리를 위해 함께 먹자고 너를 부르고 있다!"
그분은 요한계시록 1장에서 불타는 눈과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처럼 빛나는 얼굴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 바로 그 예수님이십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둘이서 동등하게 식사를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식탁 아래서 부스러기를 주워 모아야 할 정도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그 식탁의 아름다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초대는 확실히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신비입니다. 이 땅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어디까지 은하계의 별들은 가득 차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을 때 황홀해하기보다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 자신과 친해지도록 나를 초대하셨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시려고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이 신비에 훨씬 더 사로잡혀 있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것과는 달리, 친밀함과 경외는 나란히 손을 잡고 갑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시편 25:14)라고 말합니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 우정을 만나면, 이 신비가 정말로 최고조에 달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나처럼 누군가에게 그분의 영원한 팔에 안기라고 손짓하는 일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2부 계속..!)
'†찬양 사역† > 하나님이기뻐하시는찬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곧 오소서 임마누엘 by CCM 조이플밴드TV (0) | 2022.12.14 |
---|---|
수건을 벗은 예배자③ (0) | 2022.10.22 |
수건을 벗은 예배자① (0) | 2022.10.15 |
예측할 수 없는 예배자⑤ (0) | 2022.10.15 |
예측할 수 없는 예배자④ (0) | 2022.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