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05번째 이야기
왼손잡이는 고쳐야 하나? 13년 남짓 유치원 교사를 한 강미희 교수는 오래전부터 왼손잡이는 고쳐야 할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왼손잡이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을 들을 때마다 그녀도 오른손잡이로 교정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좌절감을 겪고 힘겨워하는 것을 보면서 왼손잡이를 꼭 고쳐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그녀는 왼손과 오른손 사용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연구 결과 왼손잡이는 유전적인 요소와 좌우뇌의 발달로 인한 것으로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연구 끝에 그녀는 더 이상 왼손잡이의 교정에 몰두하지 않았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고쳐야 할 것은 왼손잡이가 아니라 사람들 편견입니다." 고정관념이란 당연한 것처럼 알려져 머릿속에 굳어진 생각입니다. 산은 뾰족한 세모, 하늘은 연한 파란색 등 우리에게는 어느새 틀에 박힌 고정관념이 각자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늘을 보면 파란 하늘 곳곳에 분홍색, 회색 등 다양한 색이 섞여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으로 굳어진 좁디좁은 생각에만 의지하지 않고 좀 더 넓은 생각으로 넓은 세상을 바라보세요. |
하루를 쉼으로써.. 도대체, 유대인들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첫째는, 유태인들의 교육방식입니다. 둘째는 유태인들의 인간관입니다. 셋째는, 그들의 쉬는 방식입니다. 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자신들의 안식일인 토요일 24시간을 철저히 지킵니다. 회당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외출도 삼가고 집에서 쉬면서 자기 성찰과 고요함 속에 머무릅니다. 심지어, 하루 종일 전깃불과 전화, 컴퓨터와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利器)를 일체 사용치 않고, 자연생활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에는 마음껏 야외에 나가 스포츠나 놀이문화 등을 즐깁니다. 진정한 심신의 휴식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그때 만난 유태인 사업가는, “우리의 노동철학은 ‘열심히 일하라’라고 하기보다는, ‘우선 잘 쉬고 신나게 논 뒤에 일하라’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행복과 창의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한국 묵화는 주말에도 직장에 나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경향이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쉬는 방식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과 달리, 우리는 지금까지도 계속 쉴 새 없이 일하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OECD 국가 중 자살률·우울증 1위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호된 시련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유태인들의 쉼(휴식)은, 문명의 이기조차 금하고 철저히 하루를 쉼으로써, 일상을 내려놓고 돌아보고 충전하고 지혜(창의력)를 얻는 겁니다. 이렇게 일체 판단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쉼이야말로, 21세기 한국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요? 쉼은 권면이나 부탁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거룩하게 구별하여 쉬어야 하는 날’입니다. 아무튼, ‘안식일 제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니, 쉬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함영준) 그렇습니다. 창세기 2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히 여기셨다. 하나님께서 손수 창조하시는 일을 다 마치셔서 일손을 놓으시고 이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날에 일을 하면 죽여야 한다”(출애굽기 31:14)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날을 절대화하거나 신성시해서는 안 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마태복음 12:12)라고 하시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마가복음 2:27)라고 하셨습니다. |
사랑 때문에 순종함②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과 우리 자신을 통해 전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그 사명을 완수할 수도 없고 완전해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해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1970년대 복음 전도 운동을 통해 유명해진 문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의 인생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우상숭배자들이라면 누구나 이 문구가 말하는 사랑을 원할 것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셨으며, 막연히 하나님에 대한 좋은 느낌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음으로 으쓱한 기분을 느끼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죄를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시킨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을 너무 사랑하시므로, 당신은 지금 그 사랑으로 돌아와야 하며 하나님께 당신 자신을 드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랑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오직 나만을 위해 하나님의 목적과 사랑을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 무언가를 얻어 내며 자신만을 위한 "멋진" 인생과 따뜻한 손길을 느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복음에도, 멋진 진리의 내용이 몇 군데 들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해지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사람이 그 사명을 완수하고, 아들가 성도들을 통하여 불신자들의 영에게 흘러가지 않으면,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도저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따뜻한 관심을 받는다는 느낌 외에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
야곱의 새 이름, 이스라엘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창세기 32장 21-32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시작된 유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8절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는 뜻으로, 야곱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야곱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민족을 말합니다. 야곱은 먼저 아내들과 자녀들을 얍복강을 건너게 합니다. 모두 앞서 보낸 후 홀로 얍복 나루에 남았을 때 어떤 사람이 야곱가 씨름합니다.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복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칩니다. 또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고 그를 축복합니다. 야곱은 그곳을 "브니엘"이라고 이름 지어 부릅니다. 씨름하는 야곱(21-25절). 야곱의 인생은 얍복강 사건을 전후로 본질적인 변화가 시작됩니다. 형 에서에게 예물을 보낸 후, 야곱은 무리 가운데 야영을 합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야곱은 갑자기 일어나 모든 가족과 식졸을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합니다. 모두를 앞서 보낸 후 야곱이 홀로 남았을 때, 24절,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다가옵니다. 야곱이 그 사람가 밤새도록 씨름했다는 것은 당면한 문제를 두고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그 씨름은 야곱에게 남아 있던 영적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씨름의 결말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자 뼈가 어긋나고, 야곱은 절룩거리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로 상징되는 그의 마지막 아집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야곱의 저는 다리는 절망의 표식이 아니라 새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은혜의 표식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인생 출발선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로써 야곱은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자기 힘으로 하려던 시도를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됩니다. 야곱의 새 이름(26-32절). 우리가 귀중히 여기던 것이 모두 깨어지고 무너질 때 비로소 가장 귀하신 주님만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을 바꾸어 주십니다. 야곱의 이름에는 "발 뒤꿈치를 잡다, 훼방하다, 비방하다, 속이다" 등의 부정적 의미가 있습니다(창세기 27:36).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부여하시고 그를 축복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다스리실 것이다."라는 뜻도 있어, 하나님이 야곱뿐만 아니라 장차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것임을 함축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대면한 장소를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의 "브니엘"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않습니다. 야곱과 얍복강 사건을 기억하고, 결코 자만하면 안 됨을 새기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을 천사라고도 해석하고 하나님이라고도 해석합니다. 여하튼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께 씨름가 같은 기도를 통해서 야곱 자신이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내 힘으로 상항을 바꾸려 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인생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큼 하나님과 깊이 만난 때는 언제인지 깊이 묵상합시다.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고, 그의 삶을 변화시키시며,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약속의 말씀을 받고서도 우리의 힘으로 살아 내려고 했던 모든 시도를 회개합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비교할 수 없기에, 야곱처럼 끈질기게 간구하게 하시옵소서. 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 하나님만이 다스리는 인생으로 변화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인생에 간섭해 주시고, 세세하게 인도하시며, 감당할 힘과 은사를 부어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영적 갈급함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성령님의 원하시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갈급한 심령을 주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시기에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기도는 고작 이런 식입니다. "하나님, 수능이 며칠 안 남았는데 우리 아들이 공부를 안 합니다. 꿈에 답안지라도 보여 주십시오. 안 그러시면, 앞으로 교회 안 나갈 겁니다!" "주님, 이번에 사업을 하는데 회사를 강북에 차릴까요, 강남에 차릴까요? 품목은 의류로 할까요, 식품으로 할까요?" 기도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이 누구시고, 그분의 능력이 어떠하며, 우리에게 목적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에게 이런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아버지,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이 죄인이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모자랄 것이 없는 자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하고 무력한 자에 불과합니다. 혹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외면한 채, 먹고사는 문제만 들고나가 "천국 증권 거래소"를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도답게 바꾸십니다. 궁핍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 안에 있는 부요함과 영광과 능력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기도입니다.(박영선의 기도/박영선 목사) |
중요한 두 가지 성례 우리가 복음의 중요한 두 가지 성례라고 말하는 이유는, 성례가 복음의 약속을 극적으로 보여 주며 또한 그 약속을 붙잡을 수 있도록 우리의 신앙을 고무시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의식에서 외적이고 가시적인 징표는 물이니다. 물은 "거룩한 씻음" 즉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내적인 죄의 정화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고, 성령의 약속과 더불어 복음서에 제시된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우리도 동참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로마서 6:3-4). 실제로 일부 교회들이 침수(寖水)에 의한 세례를 선호하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침례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과 장례를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금 그분과 함께 새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는 것을 간단히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례 요한에 의한 예수님의 수세를 묘사한 ㅊ창기 그림들을 보면, 두 분이 요단강에서 허리까지 잠기는 깊이의 물속에 서서 요한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물을 붓는 모습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러한 침수와 관수(冠水)가 조화된 세례 의식을 회복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이는 양자가 ①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부활한 것, ②우리가 죄로부터 씻음 받는 것, ③위에서 부어 주시는 성령님에 의해 세례 받는다는 것을 모두 가시적으로 상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은 복음의 이 모든 약속을 상징하며 따라서 우리 스스로 그 약속을 주장할 수 있도록 신앙을 고무시켜 줍니다. 유아 세례의 경우에도 물은 동일한 축복을 보여 주는 가시적인 징표이자 보증입니다. 성인에 대한 세례가 그렇듯이, 유아 세례도 자녀들에게 자동적으로 축복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시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죄사함과 성령의 은사를 약속하는 것일 뿐이며, 실제로 그들이 공예배 시 증인들 앞에서 자신의 회개와 신앙을 선포함으로써 그것을 표현한 이후에야 비로소 주어집니다. 따라서 유아 세례는 자녀들이 훗날 개인적으로 회개하고 믿을 것이라는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의 세례의 효력은 바로 여기에 좌우됩니다. 회개하고 믿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유아 세례 시 약속되었던 구원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의 두 번째 성례인 주의 만찬에서는 외적이고 가시적인 징표가 떡과 포도주입니다. 이 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느낄 수 있는 상징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몸을 주시고 또 자신의 피 흘리시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하여 떡을 떼시고 포도주를 부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죽으셨을 때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우리와 개인적으로 공유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떼어 낸 떡을 먹고 부어 놓은 포도주를 마십니다! |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도 새날을 허락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고 놀라운 분이신지 기억하며 살게 하시고, 온종일 위대하신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삶을 살며, 제가 그 하나님의 얼마나 큰 사랑을 받는 자녀인지 가슴 깊이 느끼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제게 가득하게 하시고,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일이 끌려오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 좋은 일이 가득한 하루가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온갖 축복들이 오늘 임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은혜가 저를 좇고, 제가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항상 저를 따를 것을 믿습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을 믿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오늘 하는 일마다 좋은 일이 가득하게 하시고, 오늘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만남이 되게 하시고, 순간순간 기도할 때마다 주님이 귀 기울여 들으시고 응답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두려운 순간마다 용기와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낙심될 때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귀에 들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믿음의 눈을 들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하늘의 음성을 들려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 같은 일들을 경험하는 후라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크신 사랑에 흠뻑 젖어 사는 오늘 이 하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하시고,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을 더 닮아가고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성장하고 자라 가는 하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 주신 평안이 제 마음에 가득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주신 사랑이 제게서 넘쳐흐릅니다. 오늘도 제 입술에 감사와 기쁨의 찬송이 멈추지 않고 가득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하룻길을 인도하실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전천후 감사..! 예전에는 비가 충분히 내리면 농사가 잘 되고 그렇지 않으면 농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치근에는 기술의 발달로 1년 내내 원하는 과일과 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후에 전혀 제한을 받지 않고 일기에도 제한을 받지 않고 1년 내내 짓는 농사를 전천후 농사라고 말하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환경이나 시련이나 역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항상 감사하는 것을 전천후 감사라고 말합니다. 비 오는 날은 모든 것을 깨끗이 씻어주니 감사하고, 바람이 부는 날은 나무와 식물들이 뿌리가 깊어지니 감사하고, 태양이 내리쬐는 날은 곡식들이 잘 익으니 감사하고,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모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4계절을 주신 것은 다양한 인생 속에서 많은 것을 즐기고 풍성한 삶을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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