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99번째 이야기
늑대와 학 어느 날 배고픈 늑대가 허겁지겁 생선을 먹다가 그만 목에 가시가 걸리고 말았습니다. 늑대는 따끔거리는 가시를 뽑아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목의 가시를 뽑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긴 주둥이를 가진 학 한 마리가 지나가자 늑대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보게 친구, 자네의 긴 주둥이로 내 목의 가시를 좀 뽑아줄 수 있겠나? 사례는 충분히 하겠네." 학은 늑대의 입에 머리를 들이밀어야 할 생각을 하니 겁이 났지만 고통스러워하는 늑대의 모습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학은 늑대의 입에 긴 주둥이를 집어넣고 목구멍에 걸린 가시를 어렵게 뽑아냈습니다. 그리고 학은 늑대에게 말했습니다. "약속한 사례비를 좀 주시지요." 그러자 늑대는 벌컥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입에 머리를 들이밀고도 살아있으면 감사해야지!" 받은 은혜를 망각하는 적반하장은 정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에는 모두가 외면하게 만듭니다. 받은 만큼 베푼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받은 은혜를 그 이상으로 갚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빛나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TV에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의 모습이 감정을 자극하는 배경음악과 함께 등장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안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방송하는 목적대로, 저 사람을 돕고 싶다면서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그런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위로도 받고, 자신의 삶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나으니까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면서.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이런 걸로 위로받고 감사한다는 게 매우 부끄러운 일인데, 심지어 속으로만 생각했어야 할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이런 반응을 심심찮게 접했습니다. 저의 책을 읽었거나 강연을 듣고 "지선 씨는 저런 상황에서도 견디고 살았는데, 나도 힘내서 살아야지!" 하고 용기를 냈다는 반응을 접할 때면, 나름 반갑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지선처럼 다치지도 않았고, 그런 고통을 겪지 않고 있으니, ‘참, 감사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전혀 달갑지가 않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다 알만한 어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경우 조금은 갑갑하고 안타깝습니다. 물론, 너무나 절박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그 누군가를 보고 위로받을 때도 있습니다. "힘내라!"라는 말보다, 나와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또 존재한다는 사실에 힘을 얻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 힘이라도 필요하신 분이라면, 기꺼이 저(이지선)를 사용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하는 것은, 비교해서 얻게 되는 행복은 너무나 쉽게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과 비교해서 얻은 감사와 행복은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비교해서 얻은 행복은, 일시적인 진통제처럼 잠깐 위안이 될지 모르나,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힘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세상에는 나보다 더 건강한 사람, 더 예쁜 사람, 더 많이 가진 사람, 더 똑똑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늘 다른 사람과 내 상황을 비교함으로써 남의 불행을 보고 얻은 행복은, 언제든지 자신보다 더 잘난 사람을 보게 됨으로써 너무나 쉽게 불평과 불행의 조건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이지선 한동대 교수)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발생했습니다. 그것도 형제끼리 서로 비교함으로써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형 가인은, 아우 아벨이 자기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벨을 질투하다가 급기야는 동생을 죽이고 말았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혹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질 경우, 그와 나눔의 사랑을 함께 할지언정, 비교우위로 인한 행복감을 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가인의 말로를 기억하십시오! |
그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두 번째로 강조되는 내용은 그의 자녀들 안에 역사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인간에게는 본성적으로 모든 일을 자기 스스로 해내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우상, 사람일 수도 있고, 그의 사상으로 빚어진 거짓 신일수도 있는 그 욕심으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필요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고 영광을 취하시는 것을 보고자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면, 반드시 그러한 사랑의 원천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 원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당신 안에 있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을 아버지께 간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라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한복음 14:13-14).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로, 우리 안에 계신 예수 안에서 그 영광을 취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고, 두 번째로는, 우리가 그와 동일한 갈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내일 계속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대조되는 이삭과 에서의 삶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창세기 26장 23-35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과거 이삭을 미워했던 자들까지도 그에게 와서 화친을 청할 정도로 복을 받은 이삭과 그와 아내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는 에서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신 브엘세바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계신 것을 보았다면 이삭에게 평화의 계약을 맺자고 합니다. 서로 맹세한 그날, 이삭은 우물을 얻고 "세바"라 합니다. 에서의 아내들인 헷 족속의 딸들은 이삭 내외의 근심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 이삭의 삶(23-31절). 하나님의 복은 그분이 함께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이삭은 그랄 땅에서 브엘세바로 이동합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이 언약을 맺었던 장소입니다(창세기 21:17-31). 그곳에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 약속을 주시자 이삭은 그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삭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신 이유는 그와 그의 후손, 더 나아가 오늘날 성도들이 그 약속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24절, 이삭과 "함께 있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28절,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라는 이방인 아비멜렉의 고백으로 확증됩니다. 과거 이삭을 미워하던 아비멜렉이 동료들을 데리고 찾아와 평화의 언약을 맺을 정도로 이삭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은 명확했습니다. 성도의 삶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이 분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28절,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를 세상 앞에서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삭은 우물을 계속 빼앗겼지만, 하나님으로 인해 오히려 지경이 넓혀지는 일을 경험합니다. 이로 인해 결국 아비멜렉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심을 인정합니다. 이삭의 근심(32-35절). 하나님의 백성은 힘을 가진 아비멜렉과 같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걸음을 내딛습니다. 또한 아비멜렉과 같이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고 품어 주는 힘든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의 성품을 만방에 드러내게 됩니다. 이삭은 우물을 파고 빼앗기기를 반복했지만, 아비멜렉과 평화의 언약을 맺고 평온을 회복합니다. 그날 이삭의 종들은 또 우물을 팠고, 이삭은 또 한 번 자기 소유의 우물을 얻었습니다. 그곳 환경에서 우물은 하나님 축복의 상징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셨지만 이삭에게 또 다른 마음의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것은 장남 에서가 두 여인을 아내로 취했는데, 모두 헷 족속 여인이었습니다. 에서가 가나안 땅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한 일은 창세기 24장 4절의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라고 한 아브라함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 에서가 아브라함의 가르침에서 멀어진 모습은 그가 하나님의 기업으로부터 멀어짐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함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주를 믿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믿음의 본을 보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선명하게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 안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의 예배가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 근심이 아니라 기쁨을 드리는 자녀가 되게 하시옵소서. 에서처럼 하나님의 기업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항상 경책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그리스도인이 이기는 방법 믿지 않는 집안에서 한 사람이 처음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 대개는 많은 핍박과 천대를 당합니다. 유교적 가치를 숭상하는 집안에서 만약 첫째 아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부모가 아들에게 "장남이 되어서 제사를 지내려 하지 않는다."라며 갖은 원망을 합니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며 관계를 끊으려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런 집안에 예수님을 믿는 며느리가 들어가려 하면 "예수쟁이는 집안을 말아먹는다."라며 반대를 합니다. 결혼 후에도 "며느리가 집안일을 하지 않고 교회만 가려한다."라며 구박합니다. 그런데 술고래에 골초이던 아들이 술과 담배를 끊고 성실한 사람이 되고, 며느리가 시댁 험담 한 번 하지 않고 늘 웃는 낯으로 시부모를 대한다고 해 보십시오. 그러면 완악하던 가족의 마음이 달라지니다. "사람이 저렇게 부모와 형제들에게 한결같은 것을 보면, 그가 믿는 하나님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믿는 사람의 삶과 신앙을 인정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한 마음을 그들도 갖고 싶어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은, 믿는 사람에게 주님이 주신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재미가 여기에 있습니다.(이길 때까지 싸우라/ 김상복 목사) |
구원의 확신에 이르는 길 일단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의 문을 열어 드리고 들어오시도록 청했다면, 그분이 정말로 들어오셨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분을 영접했는데, 그분은 우리를 받아주셨을까요? 어떤 이들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저 최선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 교만과 억지 주장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확신을 약속하고 있으며, 이 확신은 결코 겸손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든지 확신의 문을 여십시오! 그러면 평온하면서도 기쁨에 넘치는 자신감이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디모데후서 1:12)라고 했습니다. 특히 요한 서신은 "우리가 아는 것"에 관한 확신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를 들면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한일서 5:19). 실제로 요한은 요한일서를 쓴 목적이 독자들에게 그들의 확신을 세워 줄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13). 이 말씀은 영생을 천국의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이상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은 예수님이 개막하신 새 시대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요한복음 17:3). 그런 의미에서 영생은 이미 시작되었고, 천국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한 확신이 바람직한 이유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 하나님이 우리가 지금 영생을 소유하고 누릴 것을 바라신다면, 우리가 그것을 이미 얻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그분이 바라시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그것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경은 종종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양심이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죄 사함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결코 평안할 수 없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조언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 길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그 길을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영생은 얻는 것뿐만 아니라 영생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타고난 권리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확신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카메라를 세우는 삼각대처럼 이 확신은 세 개의 다리를 의지하고 서 있는데, 세 가지 모두 확신을 갖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 다리에 대해서는 내일부터 계속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소망을 주는 기도② 저의 작은 부르짖음을 저 큰 파도 소리보다 더 크게 들어주시는 하나님, 지금은 거친 풍랑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마침내 저를 안전한 항구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주님, 저의 작은 기도에도 신실하게 응답하여주시고, 제가 구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채워주시옵소서. 주님, 저는 끊임없이 세상 속에서 흔들립니다. 두려움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이 이 시간 이곳에 임재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임재 앞에 모든 묶임이 풀어질 줄 믿습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 모든 어둠의 영이 떠나갈 줄 믿습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 모든 저주가 끊어질 줄 믿습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 우리를 막어선 모든 원수가 쫓겨 갈 줄 믿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힘이 되시고, 주님만이 우리의 능력이 되시고, 주님만이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하나님, 이 시간 저에게 주님의 영광스러운 빛을 비춰주시옵소서. 저의 영혼이 풍성하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넘쳐흐르는 시간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 저는 약하지만, 주님은 강하십니다. 저는 깨어졌지만, 주님은 온전하십니다. 주님의 손으로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고난을 이기는 믿음을 주시고, 눈물이 멈추게 하여주시고, 주님의 평강이 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 이제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겠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이름을 선포할 때 모든 무너진 삶의 자리가 회복될 줄 믿습니다. 왕 되신 주님을 선포할 때 감사가 회복되고, 기쁨이 회복되고, 기도가 회복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분이신지 경험하는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하나님은 상황에 제한받는 분이 아니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사람도 내 삶을 결정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도 습관이고, 행복도 습관입니다! 감사도 습관이고 행복도 습관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벤트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가족다운 가족을 만드는 방법은 바로 좋은 습관입니다. 늘 소리만 지르던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이벤트를 해 봈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가족들은 그 이벤트에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주는 상사가 좋습니다. 평소 난폭하게 굴던 상사가 어느 날 갑자기 술을 마시며 직원들에게 자네들을 좋아한다고 말해봐야 소용없는 것입니다. 사랑도 습관이고, 행복도 습관입니다. 매일의 습관처럼, 밥상에 숟가락도 놓아주고,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타 주면서 따뜻한 감사의 말 한마디 건네는 데서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이야기>도 이러한 소소한 감사와 행복을 전하는 방송이 되기 위해 날마다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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