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90번째 이야기
긍정의 점을 찍어보세요! 사람의 인생마저 괴롭히는 "고질병"에 점 하나 찍으면 "고칠 병"이 됩니다. 연약하고 작은 마음(心)에 굳건하고 당당한 신념의 막대기 하나만 꽂으면 무엇이든 반드시(必)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시도해 보지도 않고 불가능(Impossible)하다고 여기는 일이라도 점 하나를 찍으면, 나는 할 수 있습니다(I’m possible). 당신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검게 짓누르는 "빚"에 점 하나를 찍어보면 당신의 앞날을 하얗게 밝혀주는 "빛"이 됩니다. "꿈은 어느 곳에도 없다" 생각되는 인생이라도(Dream is nowhere) 띄어쓰기만으로 "꿈은 바로 여기에 있다(Dream is now here)" 말할 수 있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부정적인 것에 찍는 긍정의 점은 다른 곳이 아닌 당신의 마음에 있습니다. 결국 절망을 희망으로 바뀌는 그 하나의 획은 바로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불가능한 것도 한순간에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성령님을 모시고, 그분의 이끄심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진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저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이들과 비교하면서 감사할 이유를 찾지 않았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더 불행해지지도 않았습니다.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저 제가 지금 누리는 오늘에서 감사할 일을 찾았습니다. 그리 함으로써 다른 사람 눈에 보이는 상황보다는 훨씬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잃은 것보다 저에게 지금 남겨진 것에 대하여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남보다 못 가진 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길 때에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감사와 행복은, 남과 비교해서 얻는 상대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좀처럼 변하지 않고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곳에서 얻어야 한다는 것을, 저는 배웠습니다. 언젠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님은 한 강연에서 “행복은 강도(剛度)가 아니라, 빈도(頻度) 여야 한다. 행복한 시간이 길어야 하며, 더 행복하려면 자주 감탄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큰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행복을 얼마나 느끼며 사느냐, 그 행복감을 얼마나 길게 누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에 공감했습니다. 행복은 자주 누릴 수 있는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크게 성공하고 엄청난 성취를 거뒀지만, 그러나 그 행복의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적잖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손에 잡히지도 않는 큰 성취와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세워놓고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매일의 일상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건만, 그들은 그런 삶의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짜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얻는 행복이나 불행을 차단해야 합니다. 대단한 일을 성취하고 값비싼 것을 소유했을 때 느끼는 짧은 행복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그리고 길게 누리는 것에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이지선 한동대 교수) 이 교수님이 하는 말의 위상은 우리네 보통사람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겠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동안 겪은 아픔과 시련이 보통사람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 교수가 "진짜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얻는 행복이나 불행을 차단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저는 100% 동의합니다. 그리고 대단한 것을 얻음으로써 누리는 행복보다는, 일상에서 누리고 있는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누리고 있는 행복을 감탄과 감격의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행복합시다! |
회개는 죄를 깨닫고 뉘우치는 것③ D.L. 무디는 회개와 믿음을 이루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깨달음가 뉘우침, 죄의 고백, 회심, 그리스도를 고백함"이 그것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그리스도를 선택하도록 하려는 우리의 성급함과 욕심 때문에, 깨달음과 뉘우침과 회심의 부분을 빠드리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대다수의 복음주의 집회들은 죄를 고백하는 것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와 믿음이 기초작업을 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결정하는 단순한 동작만을 따라 하게 함으로써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누를 넘지 않기 바랍니다. 그가 자신의 죄에 대한 고통과 자책감을 느끼기도 전에, 미리부터 구원의 광선을 비춰 버린다면, 자기 지의 실체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는 단순히 개종의 행동을 취했기 때문에, 삶의 변하가 일어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예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결핍을 철저히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개종 후의 단계는 이전 상항보다 더욱 심각합니다. 저의 지인 목사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를 행하는 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하나님과 그의 분노를 대면하고, 자신의 죄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면, 상처 입은 그의 자존심은 진정한 회심과 치유를 받게 됩니다. 그의 영혼이 자기 죄악의 실체를 보게 되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실질적 필요와 맞닿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준비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구원의 믿음을 심어 주셨다고 해서 우리가 다시는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금 범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생 전반에 걸쳐 행하는 무지한 죄는 아닙니다. 이미 우상 숭배의 영의 특징을 깨닫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란 인생의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사실을 이해학 된 이상, 우상 숭배의 죄를 지속으로 회개할 수 있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해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회개의 본질과 그 내용을 잘 알아야 합니다.(계속..!) |
아브라함의 실수와 아비멜렉의 대응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 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창세기 20장 1-18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중 1절 "네게브"는 남쪽(남방) 또는 건조한 땅을 뜻하며, 가나안 남쪽에 길게 뻗은 사막 지역을 가리킵니다. 오늘 보문이 사건을 통해 선택된 아브라함의 실수와 선택되지 않은 아비멜렉의 올바른 대응을 통해 비교하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말하자,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갑니다. 그날 밤 꿈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나타나 경고하십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불러 책망하고 사라를 돌려보냅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하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해 출산하게 하십니다. 아비멜렉의 온전한 마음(1-8절).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면 과거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기 쉽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랄에 내려가서도 사라를 누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12장에서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와 비슷한 상항입니다. 사라를 아브라함의 누이로 아는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데려갑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사라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하시니, 그는 두려워하며 사라를 돌려보냅니다. 하나님께서는 6절, 아비멜렉의 온전한 마음을 인정해 주십니다. 무도 지켜보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경고는 구원의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이유는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취하려 한 아비멜렉에게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이에 8절, 아비멜렉은 두려움으로 "그날 아침 일찍" 움직입니다. 잘못을 깨달은 즉시 돌이킨 것입니다. 불의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어도 반응하지 않지만,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즉시 반응하고 돌이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온전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일은 무엇이 있을지 우리의 상황과 한경을 살펴보고 깊이 묵상합시다. 아브라함의 선입견(9-18절). 하나님은 그분을 인정하고 순복 하는 모든 사람에게 무한한 용서를 값없이 베풀어 주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알지만 온전히 믿지 못한 아브라함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마음이 온전한 아비멜렉을 대조해서 보여 주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온전한 믿음"과 "온전한 마음"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9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속인 이유를 추궁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11절,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라고 생각했다며,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해명합니다. 6절의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온전한 마음을 인정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은 우회적으로 아브라함의 선입견이 잘못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온전한 마음의 소유자 아비멜렉은 나그네를 후대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많은 재물을 주고 땅을 내주면서, 마음껏 거주하라고 호의를 베풉니다. 그 호의에 회답하듯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아비멜렉 집안에 속한 여인들을 치료하셔서 닫혔던 태를 여시고 출산하게 하십니다. 오늘날 믿음이 부족해서 우리가 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선입견이 있다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사건을 보여주시며 참 신앙인의 모범을 생각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선입견을 앞세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시험에 빠뜨렸던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반복되는 실수에도 용서하시고 붙드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회개합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발자국만 짙어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렇게 실수를 했음을 보며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에 힘쓰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부르심과 택하심의 자격 많은 신앙인이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나열합니다. 부모님이 훌륭한 신앙인이셨다거나, 교회를 다니지 않던 때에도 성경을 읽었다거나, 기독교적 세계관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 속의 자격을 근거로 그를 부르지 않으십니다. 인간적인 배경은 이차적인 요소일 뿐입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믿어도 실수할 수 있고, 선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모를 수 있습니다. 내 구원의 근거가 내게 있지 않음을 알 때,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자신의 기준을 근거로 우월감을 느끼거나 상대를 정죄하지 않게 됩니다. 내 속에 있는 요소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나를 향한 사랑과 계획이 나를 거듭나게 만들었기에, 내 삶과 내가 가진 것이 모두 주님의 것임을 기탄없이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이 불러 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버려진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극심한 죄와 바탕에 빠졌던 사람일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도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합니다. 삶에 나쁜 일이 생기면 "하나님은 내가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나를 안 사랑하시나 봐!"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근거를 사람 안에서 찾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자격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전히 넘어지고 실수투성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일상에서 만난 교리/ 서창희 목사) |
기독교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본질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의 본질이 신조도, 행동 규범도, 의식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어떤 유형의 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인물이며, 그 인물과의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어디까지나 그다음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신념과 행동, 교인의 자격과 교호 출석, 개인적인 헌신과 공적인 헌신 등이 다음에 이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는 그림 없는 액자, 보석 없는 보석함, 숨이 끊어진 육체와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 점을 간단명료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즉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립보서 3:7-9). 우리가 바울의 이 위대하고도 인격적인 말씀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친구로 아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친구"라는 말이 무척 친숙하게 들릴 것입니다. 아마도 "친구"라는 말이 무척 친숙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이 단어를 사용하시면서 "너희를 친구라 하였으니"(요한복음 15: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의 모든 저자가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경우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벧전 1:8)라고 말합니다. 또 요한도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요일 5:2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빌립보서 3:8).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에 관한 지적인 지식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지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에 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탄생과 유년 시절, 생업, 말씀과 행적, 죽으심과 부활 등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다고, 다시 말해서 그분이 우리의 삶 속에서 지존자가 되신다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예전에 자신에게 유익을 주었던 모든 것을 한쪽에 열거했습니다. 자신의 가문, 유산, 성장 배경, 교육, 의와 종교적인 열심 등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단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만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꼼꼼하게 수지타산을 맞추어 본 후에,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주는 압도적인 이익"에 비해서 다른 모든 것은 손해였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기독교입니다! |
회개 기도② 하나님 아버지, 가정을 지키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아내를 위해 죽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남편에게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자녀의 마음에 억울함과 분노를 심었던 죄를 회개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주님, 다시 가정을 세우는 데 힘쓰겠습니다. 남편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아내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하겠습니다. 부모님을 존경하겠습니다. 존경받는 부모가 되겠습니다. 주여, 우리 가정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수많은 폭력이 난무합니다. 나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얼마나 사람을 무시하고,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했는지 모릅니다. 말과 글과 행동으로 천하보다 귀한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모릅니다. 주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이제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을 하며 살겠습니다. 죽이는 글이 아니라, 살리는 글을 쓰며 살겠습니다. 나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며 살겠습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결혼 전에 성관계를 맺은 죄를 회개합니다. 남편과 아내를 버리고 다른 살마과 성관계를 즐긴 죄를 회개합니다. 남편과 아내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즐긴 죄를 회개합니다. 다양한 성 정체성을 지지하고, 또 방관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성윤리를 파괴한 죄를 회개합니다. 다시 이 땅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성 문화를 회복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우리의 성생활이 생명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는 거룩한 성생활이 되게 하겠습니다. 주님, 지혜와 용기와 사랑을 주시옵소서. 남의 것을 훔치고도 훔쳤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던 우리의 완악함을 간절히 회개합니다. 주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배은망덕의 대가..!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소년이 길을 가다 구덩이에 빠지 여우를 구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우는 소년을 잡아먹으려고 했습니다. 소년은 깜짝 놀라며 따졌습니다. "너를 구해주었는데 왜 나를 잡아먹으려는 거냐?" 그러자 여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구덩이을 파놓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된 것이니 너를 잡아먹는다고 억울해하지 마!" 소년은 억울해서 "다른 동물들에게 물어보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여우의 말이 옳다고 하면 장장 잡아먹혀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때 마침 토기가 지나가다가 그들을 만났습니다. 이야기를 다들은 토끼는 "이야기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으니 처음부터 다시 한번 보여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우는 걸어가다가 다시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소년을 향해 밧줄을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년과 토기는 밧줄을 내려주지 않았습니다. 토끼가 여우에게 말했습니다. "너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녀석은 사냥꾼에게 잡히는 것이 마땅해!" 감사할 줄 모르면 이렇게 됩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2592번째 이야기 (0) | 2022.09.13 |
---|---|
예림의집 2591번째 이야기 (0) | 2022.09.08 |
예림의집 2589번째 이야기 (0) | 2022.09.06 |
예림의집 2588번째 이야기 (0) | 2022.09.05 |
예림의집 2587번째 이야기 (0) | 2022.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