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79번째 이야기
적장에 대한 존경심 1592년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패배를 경험한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다른 일본 장수와는 다르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남겼습니다.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며칠 몇 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 하는 장수로서 직무를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갔다." 또한, 회고록에는 적장이었지만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심도 세세하게 적어놨습니다. "전몰장병의 시신을 수습해 작은 배에 각각 실어 고향으로 보내고 백성과 병사가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섬 개간을 허락해 달라며 직접 백방으로 백성의 살길을 찾으려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보며 적장이지만 존경할만한 장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이순신을 보고 직접 겪은 그는 한산도 대첩에서 패배한 뒤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매일 서재 은밀한 상자 속에서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 한 점을 꺼내놓고 비밀스러운 제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예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승리의 역사보다 패배의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합니다. 와키자카는 비록 왜군의 장수였지만, 자신의 과오와 상대의 뛰어남을 인정하고 회고록을 남겼습니다. |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 상대의 안부는 궁금해하면서 자신의 안부는 묻지 않습니다. 상대의 감정이나 욕구는 중요하게 여기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상대의 고통은 돌보지만, 자신의 고통은 오히려 후벼 파버립니다. 이렇듯, 상대에게는 예의 바르지만, 자신에게는 무례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들에게 친절은 늘 밖으로 향할 뿐입니다. 왜 자신에게 불친절한지 물어보면, 이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잘하는 것도, 마음에 드는 점도 없는데, 어떻게 친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이유는, 그 사람이 꼭 마음에 들어서도 아니고, 어떤 일을 잘해서도 아니며, 더 나아가 그를 존경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이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친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자신이 마음에 들거나 무언가를 잘해서도, 자신을 존경해서도 아닙니다.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이 세상에 던져져서, 어떻게든지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예의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이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지만 자신에게 불친절한 사람을 신경증이라고 진단합니다. 아동기에 겪은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자신을 탓하는 방어기제’가 지나치게 발달한 것입니다. 이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자기 탓을 하도록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무례하게 대해도 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라도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정하고 지켜보도록 합시다. 몸이 아프면 잘 챙겨주기, 힘든 일이 생기면 자신을 비난하지 않기, “안녕!”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인사하기는,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문요한) 그렇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도 그동안 저 자신에게 참 무례했’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과제는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죄가 이기심에서 발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기심과 자기애는 구분해야 할 겁니다. 이기심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결국은 피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적극 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애는 자신에 대하여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
원치 안는 손님 여러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사랑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게 될 때, 아마 우상 숭배의 영이 보내는 "초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초청이란 신명기 5장에 나와 있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우상 숭배를 보시고 이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를 우상 숭배의 힘에 내어 주어, 우리가 회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의 영혼 속에 초대하고 싶어 하는 종류의 손님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분노를 폭발하며 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저질렀던 죄를 후회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그것을 지적하며 강요할 때, 여러분이 가진 사랑의 능력은 제한되며, 여러분은 우상 숭배의 초청을 받게 됩니다. 당신을 불행하게 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대신, 여러분의 삶 속에 어떤 식으로 우상 숭배가 들어오게 되었는지 직시합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어떠한 행동과 생각을 통해 여러분 안에 우상 숭배의 발판을 세워 두게 되었을까요? 에서는 회개할 기회도 얻을 수 없었지만, 여러분의 상황은 그보다 훨씬 낫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에서가 처했던 속수무책의 상황가 같은 한경에 빠져들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지금의 어려운 관계를 필사적으로 풀어가고자 합니까? 여러분이 우상 숭배의 죄를 회개할 기회를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것의 공급자로 의지할 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홍수와 같이 흘러 넘치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모든 내용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신명기 5장 10-11절과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하나님도 약속하고 계신 비록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상 숭배의 죄를 고백해야 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셨으므로 이미 죄의 모든 권세를 무력화시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 모습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될 수 없다는 사실(로마서 6:6)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큰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를 모든 죄와 불법에서 깨끗케 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고 우상 숭배의 죄악을 심판하시지만, "나를 사랑학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치 아니하리라"(신명기 5:10-11)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하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또한 왜 어떤 이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취할까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위해 그가 주시는 용서와 은혜를 거부하는 것일까요? 우상 숭배는 죄악이며, 여러 세대를 거슬러 그 파괴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우상 숭배의 죄악을 끊어 주시길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
부르심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창세기 12장 1-9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드디어 하나님께서 일류를 죄의 저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인간의 모습으로 탄생하실 한 민족을 이루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주님께서 보여 주실 땅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으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 땅으로 떠나고,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러 여호와께 제단을 쌓습니다. 아브람을 부르심(1-3절).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새로운 여정을 갈 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가라"라는 말은 움직임을 전제합니다. 약속의 말씀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모험입니다. 그러나 모험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에 이르기 위한 여정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모험을 떠난 순종의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복을 약속하십니다. 아브람은 창세기 11장 31절, 아버지 데라를 따라 하란까지 왔습니다. 하나니은 아브라함에게 1절,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다시 명령하시는데, 이는 안전히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2-3절, 복과 창대함을 약속하시고, 땅의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조 기사에서 사람가 모든 생물에게 이미 복을 주신 하나님이(창세기 1:22, 28) 아브람을 부르시고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고 선언하신 것은 매우 특별합니다. 이는 한 개인이 아닌 구속사적 선택이요,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땅과 자손을 약속하심(4-9절). 아브라함은 4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하란을 떠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특별했지만, 아브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성도의 순종을 통해 특별한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든 그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람은 5절,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7절,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네 자손"은 양자가 아닌 아브람의 씨에서 태어날 자를 가리킵니다. 아브람에게는 아직 자손이 없는데, 하나님은 자손을 언급하십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아브람이라는 믿음의 조상에게, 그리고 미래에 있을 그의 자손에게 동시에 향합니다. 또한 "네 자손"은 애굽에서의 종살이 후에 출애굽 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라는 5절의 표현은 미래 출애굽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또한 구원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을 예표 합니다. 성도의 시선은 이 땅에 고정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취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요? "인류를 죄의 저주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을 선택하신 하나님 아버지, 앞길이 안 보여도, 우리를 복이 되게 하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으로 응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가라 하실 때 안전지대로 여겼던 곳과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이들을 뒤로하고 떠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약속의 말씀을 삶의 길잡이로 굳게 붙들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많은 시간 동안 역사를 이끌어 오신 것에 감사를 드리고, 우리의 삶을 드려 주님께 순종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바른 목적을 따르는 걸음 하버드대학교에는 낙제를 하면 1년 동안 정학을 시키는 제도가 있습니다. 낙제를 해서 정학을 받게 되면 그 기간에는 학교 근처에 살아도 안 되고 집에 돌아가도 안 됩니다. 제3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살면서 근신해야 합니다. 이는 어느 장소에 속할지를 학생 스스로 잘 결정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일종의 유예 기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에도 하버드대의 아시아계 학생 열 명이 낙제를 했는데, 그중 아홉 명이 한국계였다고 합니다. 대학 당국은 그 학생들과 심층 상담을 진행했는데, 그들의 문제는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후 장기적인 목적이 없이 지냈다는 것입니다. 목적이 있어야 경쟁에서 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데, 일단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꿈을 이루자 목적의식 없이 지내다가 낙오한 것입니다. 무조건 1등을 강요하는 경쟁 위주 교육의 피해자였던 셈입니다. 또한 몸은 하버드에 들어갔어도 여전히 정신적으로는 한국식 교육에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목표를 설정한 뒤에는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쳐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면 믿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상황만 바라보고 있으면 누구나 두려움에 빠져 주저앉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동사입니다. 말씀을 듣고 믿고 행동으로 옮기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폭풍 속으로/ 김창근 목사) |
무거운 짐의 배달부는 누구입니까?① 주님을 신실하게 믿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고 많은 아이들을 부양하여야 했습니다. 그녀는 몸이 약했고, 마음도 약했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주 울었고, 아이들은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수심에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너무나 지쳤고 견딜 수 없이 슬펐습니다. 그녀는 엎드려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주님, 저의 짐이 너무 무겁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주님, 제발 저의 무거운 짐을 가져가 주시옵소서!" 그녀는 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잠이 깬 아이들은 부엌에서 엄마가 콧노래를 부르며 음식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놀란 아이들은 모두 엄마에게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엄마의 모습을 처음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꿈에서 예수님을 만났어요?" 그녀는 빙긋이 웃었습니다. "그래, 얘들아. 너희들 말이 맞다. 엄마는 꿈에서 예수님을 만났어." 그녀는 즐거운 표정으로 꿈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꿈속에서 어떤 넓은 광야 같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습니다. 그 광야의 길은 바로 이 세상의 인생길이며, 그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사람들을 살펴보니 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무거운 짐들을 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 위에, 어떤 사람은 등에, 어떤 사람은 양팔에 짐 꾸러미를 끼고 피곤하고 지친 발걸음으로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문득 그녀가 자신을 돌아보니, 그녀 자신도 많은 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머리와 등과 팔과 모든 곳에 짐을 하니씩 진 채 길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비록 꿈 속이었지만 얼마나 힘들었는지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어떤 검은 그림자들이 재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니며 길 여기저기에 예쁘게 포장된 짐꾸러미를 던져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호기심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그 짐꾸러미를 보니 너무 예쁘고 탐스러워서 도저히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도 다시 짐이 늘어나게 되었고, 그녀의 고통은 더 무거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길을 가고 있는데, 그녀는 뒤에서 무엇인가 어떤 소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다!" 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계속..!) |
꿈꾸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꿈과 비전의 삶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꿈과 비전을 갖고 사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제게 주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이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그 꿈과 비전이 언제나 제 인생을 움직일 수 있게 하시고, 그 꿈과 비전으로 인해 언제나 어디서나 희망이 넘쳐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꿈과 비전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상고함으로 주님의 뜻에 합한 꿈을 가지고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요셉이 감당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살았기에 늘 일어나는 삶을 산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열악할지라도 주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붙들고 늘 일어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뜻하신 때에, 주님이 뜻하신 그릇으로 빚으셔서 우리의 인생을 복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먼저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하시고, 그 뜻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결단하게 하시고, 따라 행할 힘도 주시옵소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인생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목표도 발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육신적인 것에만 치우쳐 허덕이는 삶이 되지 않게 하고, 주님이 제게 주시는 영적인 목표를 발견하여 그 목표를 향해 달음질할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우리뿐만 아니라 주님을 믿는 모든 이에게도 영적인 목표와 비전을 주셔서 그 꿈으로 인하여 복된 인생을 누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주님을 의지합니다. 우리를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무장시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식탁 앞에서 드리는 감사기도 존 칼빈의 식탁 기도입니다. "오, 주님! 모든 좋은 것들의 근원과 무한한 원천이 주님 안에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충만하게 부어 주소서. 주님께서 선물로 주신 음식을 대함에 있어서 감사하게 하시고, 주신 음식을 먹을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낭비하지 않고 검소하게 하시며, 순결한 양심으로 먹게 하소서. 또한 기도하오니 진실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시고 입술이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선포하게 하소서 육신의 양식으로 즐거워할 때 주님의 말씀의 양식을 마음으로부터 열망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영혼의 양식으로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생명의 소망 가운데 풍성한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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