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역사신학

로마의 황제 숭배

예림의집 2022. 7. 25. 20:22

로마의 황제 숭배

 

로마 제국의 영토는 매우 넓었고 온갖 인종들과 언어들이 섞여 있는 아주 복잡한 사회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한데 묶어 놓고 통치할 수 있을까가 로마가 안고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황제 숭배였습니다. 그것은 제국 정책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각 지역에 황제를 모시는 신전이 건축되었으며, 제국 국민들은 황제 숭배가 국가에 충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고, 이것을 거부하는 행위는 국가 질서를 깨뜨리는 반역죄로 낙인찍혔습니다. 통치 기간 동안 주와 하나님이란 호칭을 받기 원한 도미티안 황제는 거거서 더 나아가 유대인들에게 지나친 요구를 합니다. "유대인들의 성전이 사라졌으니 십일조는 황제에게 바쳐라!" 유대인들이 크게 반발하자 도미티안은 유대교의 관행을 금지시켰습니다.

그의 횡포는 기독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박해는 이탈리아를 넘어 지중해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후임 황제인 트라얀 때에도 이어졌습니다. "황제가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을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오직 예수님만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인들의 눈에 비친 기독교인들은 편협하고 완고한 고집쟁이일 뿐이었습니다. "신전에 가서 향을 태우고, 신상 앞에서 황제가 주님이시다 하면 되잖아. 형식적으로만 그러면 되는 것을 왜 안 하나 몰라요 참!" "그리고 돌아가선 그리스도께 실컷 예배하면 되잖아. 참으로 꽉 막힌 것들이지..!" 그것이 바로 타협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결단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당국자들은 기독교인을 국가의 통치를 위협하는 세력들로 낙인찍었습니다.

당시 소아시아의 북쪽 비두니아의 총독 소 폴리니가 트라얀 황제에게 보고한 내용을 보면 그가 기독교인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일단 기독교인을 붙잡으면 신앙을 포기할 기회를 세 번 줍니다. 그리고는 저주하는 자는 풀어주고 거부하는 자는 그가 일반 백성이면 즉시 처형하고, 만일 로마 시민이라면 로마로 데려가서 제판을 받게 합니다." 트라얀 황제는 소 폴리니의 일 처리 방식을 좋아했습니다. 소 폴리니는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믿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윽고 여성 신자 2명을 잡아다가 심문을 했습니다. 그녀들을 고문 취조한 후 폴리니는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미신이라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눈에는 기독교가 미신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도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