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역사신학

유대인의 반란과 종말

예림의집 2021. 11. 15. 21:34

유대인의 반란과 종말

 

A.D. 50년경 로마제국에 대한 유대인의 분노는 식을 줄 몰랐습니다.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모여 유월절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성전보다 높은 곳에 있던 한 로마 병사가 유대인 쪽으로 엉덩이를 내밀며 조롱하고 괴성을 질렀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는 거룩한 성회를 모욕하는 일이었습니다. 급기야 성전에 모여 있던 유대 군중은 큰 폭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나 곧바로 로마 병사들의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3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A.D. 64년에 플로루스가 유대를 다스리기 시작했고, 그가 통치한 동안에 유대인 지도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습니다. 특히 그는 유대교를 모욕했고 성전의 기물들을 훔쳤습니다. 그는 심지어 병사들을 시장으로 보내어 학살과 약탈을 저지르게 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유대인의 분노에 불이 붙어 A.D. 66년에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유대 반란군은 예루살렘과 갈릴리에 있는 로마의 요새를 점령했습니다. 지중해 일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 세력들도 반란의 조짐을 보였습니다. 네로 황제는 급히 진압에 나섰습니다. 베스파시안 장군에게 6만 명의 병사를 주어 진압케 했습니다. 갈릴리의 유대 반란군은 그의 칼에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유대 반란군은 잘 훈련된 로마 병사 앞에서 너무 약했습니다. 도망친 유대 반란군을 추격하려고 준비 중이던 베스파시안 장군은 놀라운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네로 황제가 자살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왕이 될 기회로 여겨 급히 로마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황제가 되었지만 유대 반란군과의 전투가 아직 남아 있음을 기억했습니다.

A.D. 70년 봄에 그는 아들 티투스에게 예루살렘 공격을 명령했습니다. 그 해 8월 5일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4년에 걸친 전투로 유대 반란군 요새는 괴멸되었습니다. 유대인은 모두 노예로 잡혀가고, 성전은 벽 하나님을 남겨두고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 남은 벽은 오늘날 "통곡의 벽"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 후 계속된 보복전을 통해서 남아 있던 희망마저도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최후까지 버티던 마사다 요새도 막강한 로마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새가 함락될 때 반란군들은 항복 대신 자살을 선택했고, 이로써 유대인 봉기는 완전히 끝났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유대교와 기독교는 완벽하게 단절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