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사랑의 삶②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줄 것이며 그 남종의 이나 여종의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지니라"(출애굽기 21장 22-27절).
폭력에 관한 법-종에 대한 폭력
이 당시에는 실제로 노예제도가 존재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종이 주인이 소유였다 하더라도 주인에게 종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느 주인에게도 사용하다가 버리는 하찮은 존재로 종을 취급할만한 권리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주인에게 종의 목숨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남종이나 여종을 때려 죽게 했다면 주인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종이 죽지 않았다면 종은 주인의 소유이기 때문에 주인은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주인에게 종을 징계할 권리는 있었지만, 너무나 가혹한 징계 때문에 종이 회복하기까지 오랫동안 누워있게 되면 그것은 재산의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주인이 자기 소유에 해를 끼치는 것 자체가 형벌의 원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노예제도가 존재했었고 하나님이 종에 대한 법을 만드셨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이 그 같은 관행을 허용하셨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노예를 매매하는 행위를 간음과 부모를 죽이는 죄, 거짓말하는 죄와 나란히 열거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9-10절입니다.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 하는 자와 남색 하는 자와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자신의 삶을 생각해 봅시다. 사실 우리는 삶 속에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많이 저지르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와 자비로 우리를 대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저의 삶에는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얼마 동안에는 제가 해결할 수 있는 것만 주시면서 제가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도록 날마다 제 안에서 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종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들이 이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 많은 일들을 그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폭력에 관한 법-임산부에 대한 폭력
22-25절에서는 임산부와 그 자녀에 관해 특별히 언급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서 두 사람이 싸우다가 그들 중 한 사람이 임산부를 쳐서 상대가 낙태를 하게 되었을 경우 임산부에게 심각한 상처가 없으면 그 여인을 대란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요구하는 액수대로 갚되 반드시 재판관의 판결을 받아야 했습니다. 비록 그 여인을 우연히 때린 그 남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벌금을 물어야 하겠지만 그 벌금이 부당하거나 과하게 매겨지지 않도록 재판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임산부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면 그 남자는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임산부가 받은 똑같은 고통을 그대로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엄마와 아이를 모두 보호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임신한 여인에 대한 각별한 보호는 그 여인뿐만 아니라 태중에 있는 아이를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해를 가하거나 유산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심각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태아도 하나님의 법으로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낙태 행위에 대해 강한 경고가 되고 있습니다.
가축에게 입은 피해
하나님의 법은 사람이 동물에 의해 입은 상해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고 있는데 소가 남자나 여자를 들이받아 죽게 했을 경우가 그 예입니다. 이 경우 28절, 소는 돌로 쳐서 죽이고 그 고기는 아무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소의 주인에게 책임은 없지만, 주인은 소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가 위험해서 다른 사람이 주인에게 경고를 했는데도 주인이 소를 우리에 가둬놓지 않았다면 그 책임을 주인에게로 돌아갑니다. 이 경우 주인은 소의 뿔을 통제하지 않은 죄로 죽음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을 재판관에게 데려온 사람들은 그의 목숨 대신에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32절에서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쳐서 죽게 했다면 소의 주인은 조으이 주인에게 은 삼십 세겔을 주고 소는 돌로 쳐서 죽여야 했습니다. 이때 소가 종을 죽였다면 소의 주인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종이 자유인과 같은 권리를 가질 수는 없었지만, 종 또한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였습니다. 여기서 소가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은 소로 인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일 뿐만 아니라 종의 목숨을 존중해 주기 위한 제도이기도 합니다.
가축이 받은 피해
백성들의 사유재산은 하나님의 법에 의해 보호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가축이 죽거나 다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면 그 사람은 가축의 주인이 본 손해를 갚아주어야 했습니다. 33절에 나와 있듯이 어떤 사람이 구덩이를 파놓았는데 그 구덩이에 소나 나귀가 빠져 죽은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그 구덩이를 판 사람은 죽은 가축에 대한 보상을 해 주되 그 구덩이에 빠져 죽은 짐승은 그의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가축이 다른 사람의 가축에 의해 다치거나 죽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면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가축의 주인은 자신의 가축을 팔아 죽임을 당한 가축의 주인과 똑같이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가축이 사납다는 것을 알고도 주인이 우리에 가도지 않아서 다른 가축을 죽게 했다면 주인은 죽은 가축에 대한 보상으로 다른 가축을 사서 갚아주는 대신 죽은 가축은 그의 소유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주님이 주신 생명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종으로부터 임산부와 태아와 가축의 주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을 존중받아야 했고 다른 사람의 생명에 피해를 주었다면 피해를 제공한 사람은 반드시 보상해 주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존중은 건강한 사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을 잃어버린 사회는 순식간에 붕괴되고 맙니다. 이 같은 율법이 사람들 사이에 화목을 조성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 법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기 원한다면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장을 본문을 통해 그분의 자녀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가치 있게 여길 때 세상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태아의 생명에 부여해 주신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생명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형제나 자매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 말이나 행동으로 형제나 자매를 존중하지 못했던 잘못을 회개합니다. 형제나 자매의 필요와 상처에 더 민감하게 대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특히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더욱 기도하며 노력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것처럼 그들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은혜와 힘을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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