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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①

예림의집 2022. 6. 25. 20:35

십계명①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애굽기 20장 1-11절).

 

우리는 19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독수리 날개처럼 품어주신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신실하게 지키고 살면 그분의 소유가 되고 또한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규례의 요약본을 주시면서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향한 그분의 은혜를 다시 한번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애굽이 그들에게는 종살이와 속박의 땅이었기에 하나님이 그들의 필요를 보시고 긍휼의 손길을 내밀어 그들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제사장의 나라로, 그리고 그분의 대언자가 되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방법을 세상에 알리기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갖추어야 할 삶의 기준을 십계명이라는 요약본으로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는데 사실 이 십계명의 내용만으로도 1년 동안 설교를 할 수도 있지만, 십계명 강해를 둘로 나누어 오늘과 다음 주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 자세입니다.

 

제1 계명, 다른 신을 두지 말라

3절에서 보듯이 첫 번째 계명은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들에게 완전한 집중을 요구하셨습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일에 온몸과 마음을 바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신은 거부하고 하나님 한 분만을 구해야 했습니다. 이 명령이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다시 한번 앞 장 19장 4절에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독수리 날개 같이 품어주셨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인간을 간절히 열망하셨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마치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처럼 하나님은 아내인 이스라엘을 다른 신들과 공유하기 않았습니다. 이 계명을 통해 우리는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강렬한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한 분께만 마음을 정해야 했습니다. 세상적인 일이나 다른 관심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됐습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라고 하실 때 "앞"이라는 말은 우선순위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즉 갖고이나 일이나 친구들 모두가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님이 가장 "앞에"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 삶에서 우선권을 가지셔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것도 또는 우리가 하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져서는 안 됩니다.

 

제2 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두 번째 계명은 어떤 형태의 우상도 그 앞에 절하거나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첫 번째 계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눈에 보이는 우상들을 만들어 냈던 그 당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경고하신 명령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음성으로 응답해 주시지 않는 하나님과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인간이 만든 다른 우상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질 수 없고, 살마의 마음으로 그려질 수도 없습니다. 그분은 표현을 뛰어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의 자그마한 반영일 뿐입니다. 어떤 형상이나 우상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의 깊이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신을 숭배하는 자가 우상을 만들 때 그들은 그 우상이 상징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우상의 형상 자체에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그래서 나무 조각이나 돌조각이 우상이 되어 결국 그것이 상징하는 대상을 대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대체할 대상을 만들지 말고 그분께 직접 경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바람이십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 직접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은사와 찬양을 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무나 돌로 우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죄를 범할 수 있는데 한 예로 오늘날 교회 건물이나 교회 제도가 하나님을 대체하는 우상이 되어 우리의 관심과 초점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경우입니다. 저도 한때는 저의 사역이 하나님을 뛰어넘게 만드는 죄를 범한 적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교리도 우상이 되다 보면 성도들의 관심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실 교리 자체도 중요하지만 잘못하면 교리가 하나님을 대체하는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떤 의식이나 사역이나 제도 같은 것으로 변질되어간다고 판단되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를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선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진다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계명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5-6절,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가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뛰어넘어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의 죄가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는 사대까지만 지속되지만, 그분의 은혜는 천대까지 지속된다는 이 말씀에서 우리가 숫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단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우선시할 때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시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에 채워주시는 은혜는 그보다 몇천 배 더 크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또한 나의 온전한 관심 때문에 질투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큰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내게 그런 기쁨을 주시는지는 나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분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3 계명,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7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에서 이름을 말할 때는 단지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이름이 상징하는 바를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고 그분의 인격을 경시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거짓 증언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것인데 이와 관련된 레위기 말씀을 살펴봅시다. 레위기 19장 12절,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구약시대 사람들은 어떤 일을 확인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곤 했는데 그중에는 이 약속을 지킨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로 지키지 않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 경우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왜곡하면서 약속을 깨버리는 일에 하나님을 결부시키게 되는데 그것은 진리와 위엄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성품을 손상시키는 죄악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면서 그분의 이름을 모욕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이 맹세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때로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많은 행위들과 연관되어 있는데 그 같은 행위는 하나님과 그분의 성품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들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게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이름을 대표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신자임을 아는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게 되는데 그때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함께 살펴봅시다. 로마서 2장 21-24절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평소에 주장하던 믿음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모독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자로서의 우리의 삶이 이웃에게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들을 벌하실 것인데 출애굽기는 이 사실을 강조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7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제4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하나님의 네 번째 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 계명은 앞의 세 계명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한 마디로 안식일에는 백성들이 일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엿새 동안에 다 마치고, 일곱째 날에는 쉬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하나님 자신이 정하신 일임을 상기시켰습니다. 11절,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 하나님은 안식일에 복을 주셔서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쉬셨을까요? 능력의 하나님께서 피곤함 때문에 쉬셨다는 것은 확실히 맞지 않는 말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말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시편 121편 3-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시기 위해 일곱째 날에 쉬신 것입니다. 엿새 동안에는 물리적 우주를 만드셨지만 일곱째 날에는 휴식이라는 원칙을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서만 창조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따라 우리에게는 휴식과 회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곱째 날은 휴식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위해 거룩한 날로 구별해 놓으셨기 때문에 이 휴식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날을 거룩한 날로 지켜야 했는데 그들은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날을 거룩하게 지켰던 것입니다. 일을 멈춘다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일에 사로잡힌 채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일이 주는 압박으로 인해 가족과 신앙까지도 등한시되어 버리고 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일이 모든 것을 소진해 버리도록 방치하기 쉬운데,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일이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일의 또 다른 악영향은 우리에게 거짓된 안정감을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 자신이 공급자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좋은 직업을 갖고 있으면 그 직업 자체가 높은 자존감을 가져다줍니다. 더욱이나 일을 통해 가족들의 모든 필요까지 채워지게 되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에 의해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된 안정감입니다. 이러한 유혹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칠일 가운데 하루는 일의 주기에서 벗어나 육체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뿐 아니라 인생에서 무엇이 참으로 중요한지를 점검해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8-11절에서 안식일을 "네 하나님 여호와의 날"이라고 한 것에 주목해 봅시다. 다시 말해서 이날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초점을 맞추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이 제정하셨기 때문에 이날에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휴식하면서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신 하나님과 영적인 교감을 해야 합니다. 아내와 제가 서로의 친밀감을 유지하기 위하여 편안한 복장과 마음으로 함께 산책을 하듯이, 하나님도 같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과 함께 하고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간을 비워두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계명을 사람보다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특별한 시간으로 더 귀 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이날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다시 연결되는 특별한 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명은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복시키기 위해 정해진 것입니다. 이것은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안식일이 그분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고 복주시기 위해 정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일의 중압감으로부터 오는 육체적, 정신적 휴식이 우리에게 필요함은 물론 하나님의 뜻을 되돌아보고 영적으로 새워지기 위해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안식일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유익을 주시기 위해 정해진 날이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상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우리의 공급자로 여겨진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일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지, 우리가 안식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지켜갈 수 있을지 연구하고,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에서 다른 것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만들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에 따라 정기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시간 동안 우리를 영적으로 더 강건하게 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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