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60번째 이야기
가치 있는 죽음 평생을 고결한 성품을 유지하며 교육에 몸 바친 스승이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승의 마지막을 예상한 제자들이 크게 슬퍼하자 스승은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절대 슬퍼하지 말아라. 가치 있는 죽음은 삶에 의미와 사랑을 부여한다는 것을 너희들은 모르느냐?" 그러자 한 제자가 울먹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선생님께서 언제나 살아계셔서 저희와 함께하길 원합니다." 제자의 말에 스승은 제자들을 토닥이며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것은 죽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꽃들을 보아라, 플라스틱 꽃은 죽지도 않지만 열매도 맺지 못한다." 죽음은 세상과의 단절,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기에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꽃이 져야 열매 맺고 열매가 썩어져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게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죽음도 삶의 일부입니다. 그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더 값진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
엄마의 마음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지난해 겨울, 돌아가신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상자에 가득한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엄마는 하루의 일과를 노트에 적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엄마의 취미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라서, 노트며 볼펜을 자주 사다 드렸습니다. 그 노트가 모두 일기장이 되어 상자 안에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집으로 다 가져왔지만, 일기를 열어볼 엄두는 도무지 나지 않았습니다. 내용을 보면, 제 가슴이 얼마나 아플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때 읽기로 하고, 일기장을 모두 상자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른 뒤 얼마 전, 용기 내어 다시 상자를 열었습니다. 서른 권쯤 되는 일기장 중 한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일기엔 하루하루를 보내는 엄마의 생각과 감정이 빼곡히 담겨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제가 백화점에서 옷을 사주고 전기세를 내주었을 때, 딸한테서 받는 것이 부담스럽고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먼저 떠나보낸 막내아들을 향한 그리움이 적힌 구절에서는 금방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우리 아들, 고맙게도 엄마 꿈에 나타나 주는구나! 꿈에서 만나 같이 놀러 가고, 노래도 불러주고.." 한때 저는, 저에게 냉정하고 쌀쌀맞은 엄마에 대한 원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식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차갑게 대하셨다는 것을, 일기장을 보니 알 것 같았습니다. "겉으로는 꼿꼿해 보이는 엄마였지만, 속은 시퍼렇게 멍들고 타들어가고 있었구나! 진작 엄마의 마음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베란다에 앉아 눈물 콧물 흘려가며 엄마의 일기를 읽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 가 봅니다. 저의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져야 할 것 같아서 일기장을 다시 덮어두었습니다.(김정희) 그렇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아, 그때 어찌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곤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성향이 지혜보다는 미련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늦게라도 깨닫게 된다면 다행이지 않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 깨달음이, 남아있는 세월을 좀 더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후회하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울을 왕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사무엘상 15:35).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로마서 11:29). |
우리가 만들어 낸 우상들.. 우상숭배의 네 번째 특징은 모든 행복의 근원을 하나님이 아닌 창조물로 대치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의 아내나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이 세상에 사는 평범한 족속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인간이란 다른 사람들을 영원히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도 무능력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사과를 아무리 쥐어짜도, 오렌지 주스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인간은 신이 될 수 없고, 필요를 채워 주는 근원도 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당시의 우상 숭배자들은 나무와 바위 등을 이용하여 우상을 깎고 새겨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피조물을 취하여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경배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설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편 115:4-8). 우리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을 우상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전에 제가 예로 들은 자신의 침대와 차고 속에 만들어 놓았던 질서의 우상을 기억하십니까? 로맨스와 판타지 역시 머릿속 상상으로 구며 내어 "인간의 손으로 만든" 도 다른 작품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음악가 영상 작품을 인생을 꾸려 나갈 수 있는 힘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젊은 주부는 자신이 가족과의 따뜻한 관계를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음을 주께서 깨닫게 하셨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 그 자체가 우상은 아니었지만 사람들과 의 관계가 어느 특정한 느낌과 모습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곧 우상인 것입니다. 다른 어떤 이들은 사업과 주식, 유가 증권, 퇴직 연금 혹은 정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채우심을 대신 공급받고자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음식과 음료수, 마약 등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신 작품으로 등장하여, 인간의 선천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들은 모두 피조물에 불과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우리가 피조물을 잘 활용해야 하겠지만, 그 피조물을 의지하게 되면 우상숭배가 됩니다! |
영광스러운 의의 직분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고린도후서 3장 1-11절). 오늘 함께 읽은 본문 중 6절, "새 언약"은 옛 언약인 시내산 언약과 대비되는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언약입니다(마태복음 26:28). 하나님은 그 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추천서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곧 바울의 편지요,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에 쓴 그리스도의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이 아닌 영으로써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으나, 의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넘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됩시다. 그리스도의 편지(1-6절). 주후 1세기 지중해 영안에는 추천서(소개장)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은 자신을 인정해 달라고 스스로 추천서를 가져왔으나,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그런 추천서를 제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변화해 가는 소린도 성도들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추천서이자 편지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간 머물면서 고린도 성도들을 양육했습니다(사도행전 18:11). 바울의 영적 양육과 사랑의 수고로 인해 그들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새겨졌습니다. 교회는 한 영혼을 품고 말씀과 기도로, 사랑과 섬김의 수고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의 마음에 성령으로 정성껏 그리스도를 새겨 세상으로 파송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그의 손과 발이 닿는 곳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에 새긴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옛 언약과 달리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하는 언약입니다(예렘이야 31:33).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모두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 된 성도는 성령의 능력님으로 행하며 사람들을 죽음으로부터 살립니다. 의의 직분(7-11절). 주님의 보혈 능력을 경험한 사람은 그분의 사랑과 성품을 삶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성도는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하는 일꾼입니다.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을 영적인 직분, 의의 직분이라 합니다. 한편 율법 조문을 받은 모세의 직분을 정죄의 직분이라 합니다. 정죄의 직분에도 영광이 있기에 과거에 모세가 십계명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나서 백성이 한동안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영의 직분은 그 영광이 더욱 빛납니다. 없어질 옛 언약의 영광도 크지만, 영원한 새 언약의 영광은 더욱 찬란합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게 할 뿐이지만, 복음은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합니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복음 전도 사역을 의의 직분이라 합니다. 우리는 복음 전도가 사람 살리는 일임을 알고 그것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의의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추천서이자 편지는 누구인가요? 우리 삶의 행적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입증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 봅시다. 또한 정죄의 직분과 의의 직분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되새기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 전하는 일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기쁘게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새 언약 일꾼이 감당할 영광스러운 의의 직분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 영광스러운 새 언약의 일꾼으로 불러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요. 우리의 삶이 먼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하나님 사랑이 깊이 새겨지고 읽히게 하시옵소서. 우리 인생에 성령님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우리로 인해 생명의 복음으로 쓰인 기쁨의 편지들이 이어지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의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과 지혜와 힘을 주시옵소서. 죽도록 충성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참된 사역이 펼쳐지는 곳 아프리카에 여러 번 갔는데, 한 번은 수도에서 차로 8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지붕과 벽은 있어도 창문이나 문이 있는 집이 드문,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다음 날인 주일에 선교사님과 함께 교회에 갔습니다. 안은 깜깜하고 틈새로 들어오는 빛만 있는 그 공간에서, 단순하지만 눈물과 기쁨이 있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책이나 주보도, 영상이나 음향 시설도 없었습니다. 하나 있던 북을 치면서 찬양했습니다. 나에게 설교를 해 달라고 해서 열심히 설교했습니다. 통역과 함께 하는 설교는 항상 쉽지 않은데, 설교가 끝나니 성도들이 다 함께 찬양을 하고, 계속해서 말씀을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또 설교를 하자 찬양을 하고, 또 말씀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날 나는 설교를 네 번 했습니다. 매일 옥수수떡으로 한 끼만 먹고사는 사람들이 주일에는 그 한 끼를 주님께 드리고 온종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감격과 기쁨을, 나는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의 성도들에게서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자녀들을 키우며 누구에게는 원하는 것을 해 주고 누구에게는 못 해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이 받은 아이는 더 달라고 하고 못 받은 아이는 감사하다고 하면, 부모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 마음은 어떠실까요?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는 것 같은 살마들이 감사하고 기뻐하며 찬양하는 그곳에 참된 사역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는 이들로 인해 지금도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고 있습니다!(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민홍기 목사) |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십시오 마귀는 항상 우리를 높이 띄워 올려 줍니다. 그는 우리가 대단한 존재인 것으로 알게 합니다. 그는 "너는 하나님같이 될 수 있다"라고 유혹합니다(창세기 3:5). 예수님께 천하의 영광을 보여주어 유혹한 것처럼(마태복음 4:8) 마구는 비전과 이상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 모든 꿈을 이룰 수 있다"라는 그의 말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7)라고 한계를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분명히 더 매력적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인류는 속았고, 고통의 길이 열렸으며, 지금도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과 이상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우리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꿈꾸는 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은 매혹적으로 들리지만, 그 결과는 파멸일 뿐입니다. 우리는 위대해지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는 것보다 그 한계선을 분명히 그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많은 것들을 우리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배가 몹시 고플 때는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무엇이든지 아주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먹어 보면 먹을 수 있는 분량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이것저것 꿈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 이루도록 계획된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진정으로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도 다 일종의 허황된 꿈, 허황된 생각의 감옥에서 우리를 방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십시오. 주님께서 하락하신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로마서 12:3). 가장 위대한 삶은 사람들 보기에 위대하고 눈에 띄는 삶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자기의 삶을 한정 짓고 그분의 인도를 따르며 그분께 순종함으로써 만족하는 삶입니다. 어릴수록 크고 위대한 것을 좋아하지만, 주님의 손에 다루어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 모든 주권을 감사함으로 살아갑니다. |
소중한 아들 대신 나를 살리신 하나님 이 시대는 매우 자기중심적인 시대입니다. 내가 중요하고, 철저하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 말은 틀린 말입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세상은 아들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자시느이 능력과 지혜를 사용하거나 천사들을 보내거나 하시지 않으시고 자신의 외아들을 내어 주십니다. 자기 목숨을 내어 주는 것도 쉽지 않지만, 아들의 목숨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완전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런 결정을 하실 수 있을까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결정을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축복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을 우리 삶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죄인이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에게 자녀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중심에 바로 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외아들을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의 핏값으로 산 우리가 하나님의 중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노예로 바꾸신 것이 아니라,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시는 내 아빠입니다. 우리가 구할 때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바라는 것을 알면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놀라운 특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직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면 기도가 쉬워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면 기도가 재밌어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면 기도가 즐거워집니다. 그분의 사랑을 알면 기도하는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
몇 천 배 더 감사..! 프리스턴 대학의 총장이었던 위더스픈 박사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제대로 감사할 수 있을까요? 오늘 제가 마차를 타고 오다가 말은 도망가고 마차는 바위에 부딪혀 깨졌는데도 이것 좀 보세요. 저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거든요!" 그 말을 들은 위더스픈 박사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마차를 타고 수백 번 그 바위길을 왕래했지만 한 번도 말이 도망치거나 마차가 깨어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당신보다 몇 천 배는 더 감사해야겠군요..!" 이렇게 감사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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