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558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7. 7. 13:13

예림의집 2558번째 이야기

따듯한 하루

조용한 식당

경북 포항에는 말이 필요 없는 식당이 있습니다. "끼익~!" 하는 문소리가 들려도,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도 직원들은 묵묵부답입니다.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는 소리만 들릴 뿐 어느 곳보다 적막한 이곳은 바로 "수화 식당"입니다. 식당의 이름처럼 이곳엔 손으로 말하는 청각장애인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꼭 수화로 대화해야만 주문되는 건 아니지만, 수화로 주문할 때 500원 할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벽면엔 큰 모니터로 수화 영상을 틀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포항에서 가장 조용하다고 할 수 있는 이곳은 원래 나이트클럽이었다고 합니다.
동네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곳이 가장 조용해진 장소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소통이 어려워 청각장애인과 일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깬 이곳은 이제 손님도 일하는 직원도 모두가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장벽입니다. 장애인 분들이 노력을 해서 얻은 성취입니다. 노력하면 같아지는 것이 아니고 나아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는 모든 장애인, 비장애인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리고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배려와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더 극진히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좋은 친구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오래 함께 걸어도 불편하지 않은 친구"라고 했습니다. 함께 하는 자리에서,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으며 떠들어야 어색하지 않은 상대라면, 좋은 친구가 되기 어렵습니다. 침묵의 자리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관계, 거기서 경청할 수 있는 우정 어린 여유가 생겨납니다. 말하지 않은 내면의 이런저런 구석을 짚어가며 친절히 배려하고 다정히 위로하는 친구라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사람들이 친한 친구 사이라면 무례한 언행을 마구 행해도 좋을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반쪽만 맞습니다.
그처럼 허물없이 친밀한 우정의 여백은, 굳이 악용하기보다는 선용해야 현명합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경우, 친한 친구일수록 더 극진히 예의를 갖춰서 서로 다가서며 보듬어주는 것이 우정의 성숙을 위하여 필수적입니다. 그렇게 쌓여가는 우정의 작은 알갱이들이 더 큰 신뢰의 밑천이 되다 보면, 자신의 모든 것까지 적극 나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불가피한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목숨도 던지는 숭고한 사랑까지도 가능하게 만드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온라인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서 친구를 신청하고 친구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또 거기서 교류가 많아지고 깊어지다 보면, 서로 만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우정의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경우에는, 보이지 않는 암투와 질시, 비난과 편 짓기, 배제와 혐오 등의 파괴적 에너지를 가열시키면서, 서로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면서, 더러는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친구가 고프고 그 부재가 아쉽습니까? 지금 한 사람을 떠올려 전화를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옛 추억을 떠올리며 편지를 써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통하면, 그 즉시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비록 멀더라도 만나는 수고를 기꺼이 하시기 바랍니다.(차정식)

그렇습니다. 우리는 중학교 때에 공자의 인생삼락(人生三樂)을 배웠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멀리 있는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가 하나둘만 있어도 부자"라고 하는 차정식 님의 주장에 저도 동의합니다. 물론, 서로 만나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좋은 친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허물이 없는 좋은 친구일수록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차정식 님의 주장도 또한,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진정한 친구는 몇 명이나 있는지 돌아봅시다!

 

단장 칼럼

하나님의 유익과 대립되는 인간의 유익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 대신 다른 것들을 바라보게 하는 자기만족과 자기 방종, 자기중심, 자기 편의 등과 같은 자아의 모든 죄악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유익보다는 자기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천성적인 모습입니다. 베드로도 역시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 예수님께서는 그를 심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25절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봅시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베드로는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향하는 것을 반대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자기 유익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신 후 제자들을 향하여,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를 그의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상 숭배의 덫에 걸린 사람들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교인들이 언짢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복음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십자가의 적용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악한 행실과 함께 옛 자아를 버리는 것은, 인기 있는 설교 주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말씀하셨던 내용을 보면, 자기 유익과 사탄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이기적인 욕망과 동기를 찾아내어 모두 제거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육체의 일을 제어시켜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일단 이 부분이 드러나게 되면, 베드로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이기심에 일침을 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명령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이것은 우상 숭배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고난의 때에 의지할 모든 위로의 하나님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1장 1-11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중 1절의 "아가야"는 그리스 남부의 로마 행정 구역입니다. 주요 도시로는 고린도와 아덴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며, 자비와 위로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받은 위로로서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십니다. 바울은 자신들이 심한 고난을 당한 것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 함이라며, 기도로 돕기를 고린도 성도들에게 부탁합니다. 실제로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무엇보다 우리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사역하십니다.


위로하시는 하나님(1-7절). 
고린도는 아가야 지역의 수도였습니다. 바울은 편지 서두에서 고린도 교회뿐만 아니라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가 찬송하는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위로의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위로"라는 단어를 3절에서 7절에 걸쳐 열 번이나 언급합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힘에 겨운 환난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위로로 견딜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받은 위로로 환난 중에 있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치는 곳에 그리스도의 위로 또한 넘치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5절과 7절, "참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코이노니아"로, 이는 수동적이거나 정적인 맛봄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나눔과 교제를 의미합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당한 고난을 성령의 교통 안에서 적극적으로 나누는 성도는 하나님의 위로를 맛보고 누립니다. 적극적 나눔과 교제는 일반적이고 피상적 관계에서 벗어나 생명력 있는 관계, 깊은 위로를 경험하는 관계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건지시는 하나님(8-11절).
성도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고난을 통과해 십자가 그늘 아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성도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위로의 하나님이 지키시고, 고난을 능히 감당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고난을 이겨내는 비결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8절에서 말한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도행전 19장 23-41절에 나오는 에베소에서 일어난  폭동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우상 숭배를 비판한 일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듯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위기에 처한 바울을 건저 주셨고, 바울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해 위기를 통과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현재도, 앞으로도 하나님이 자신을 건지시리라 확신합니다. 고난의 때에 성도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힘껏 의지해야 합니다. 최악의 환난에서 소망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환난을 당하는 것도, 위로를 받는 것도 결국 다른 이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위로로써 위로할 지체는 누구입니까? 지금껏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건지실 것을 확신합시다!


"오늘날 고난의 때에 의지할 모든 위로의 하나님, 숨 쉬기조차 힘겨운 고난의 시간이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게 하시려는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자들에게 주시는 넘치는 위로가 공동체 안에 가득하게 하시옵소서. 어떤 환난 속에서도 함께하시며 우리를 더욱 견고히 세우실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경험했던 고난과 역경 그리고 주님께 받은 위로가 다른 이들을 이해하며 위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주님이 먼저 겪으신 고난

10여 년 전에 이민 교회 목회를 할 때 친구 목사를 잃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평소 간질을 앓았는데 갑자기 발작이 일어나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곁에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있어서 조치를 취했다면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사모님은 심장 판막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자녀는 지적 장애를 앓고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아닙니까? 하지만 그들은 절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남으로 도리어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죽고 싶은 만큼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이 우리가 겪는 고난을 직접 겪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이 체휼 하시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 리처드 백스터는 "예수님은 그분 스스로 지나신 곳보다 더 어두운 곳으로 나를 인도하시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다면,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면 십자가의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나도 내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단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 감사하고 기뻐할 이유를 곳곳에 배치해 놓으셨음을 감사하십시오.(하늘 문을 여는 기도/ 최성은 목사)

 

생각 다스리기

자신에게 너무 민감하지 마십시오①

어떤 사람들의 생각은 항상 자신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외부 환경에는 둔감하며 자신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남들이 항상 자신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남들이 웃으면 자기 때문에 웃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남들이 화가 나 있으면 자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남들이 "요즘 세상에는 못된 사람들이 참 많아"라고 말하면 대뜸 "나는 못되지 않았어"라든지 "내가 못된 게 뭐냐?" 하고 따집니다. 그들은 심리한 책을 읽으면 "이건 다 이야기야!"라고 생각합니다.
설교를 들으면 "저건 다 나한테 하는 얘기야,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조금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신을 소설 속의 비극적인 주인공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조그만 성취를 하면 자신을 전설적인 영웅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몸이 조금만 아프면 온 세상이 멸망할 듯이 호들갑을 떱니다. 남들의 고통에는 둔하지만 자신의 자식이 아프면 온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남들의 이야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비판을 들으면 상대방을 불구대천지 원수처럼, 약간의 칭찬을 들으면 상대방을 평생의 은인처럼 생각합니다.
그들은 남들이 자기에게 대하여 한 말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이렇게 칭찬했다"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말을 옮깁니다. 또는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나븐 말을 했다. 그럴 수 있느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기회만 있으면 이야기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악의는 없으나 영적으로 어린아이들입니다. 이들은 더 자라야 하며, 그러기 전에는 남들을 섬기거나 도울 수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자기와 자기 자식, 자기 가족, 즉 자기에 관한 것으로 꽉 차 있기 때문에 남들을 돌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남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기도의 횃불

하나님은 우리의 구함을 기다리신다

저는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찬양 사역자로 사역했습니다. 찬양 인도를 할 때 기타가 필요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제가 구한 것보다 훨씬 좋은 기타를 지인을 통해 선물로 주셨습니다. 또 한 번은 기타 회사의 대표님을 통해 예쁜 기타를 후원받게 하셨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제가 간이 선척적으로 약해서 자주 쓰러지고 피곤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적이 있었는데 주님께 간구했더니 주님께서는 더 이상 간 문제로 사역을 멈추거나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제가 만약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그 답을 알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와 부르짖음을 기복이라고 외면하지 않으시고 더 좋은 것으로 축복해주십니다. 물질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물질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사람이 필요하다면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하세요. 질병이나 마음의 깊은 상처로 고통 가운데 있다면 치료해 달라고 매달리십시오. 결혼하고 싶으면 배우자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출근할 직장이 필요하다면 일터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자녀를 갖고 싶다면 자녀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시험을 앞두고 있다면 합격시켜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영적인 성숙이 필요하다면 성숙한 신앙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갖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구하십시오. 기도는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핵심은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와달라고 소리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십니다. 기도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받게 해 주시고, 찾게 해 주시고, 열리게 해 주십니다.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사람 앞에 무릎 꿇는 것은 절망의 상징이지만,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은 희망의 상징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소망을 갖게 합니다. 기도는 모든 닫힌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저 거친 파도 소리보다 우리의 작은 부르짖음을 더 크게 들어주십니다. 이 기도의 응답을 맛보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노래

날마다 감사~㉾

감사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

아인슈타인과 함께 연구하여 자동카메라를 발견한 토마스 북키 박사는 아인슈타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는 조그마한 일에도 감사를 잘하는 분이었습니다. 나의 아버지 구스타브 북키와 아인슈타인은 친구 사이셨는데, 그는 우리 집에 방문할 때마다 저를 안아주며 무척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덟 살이 되던 해의 크리스마스 말, 그분께 요요를 하나 선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장난감이 그분께 무슨 쓸모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은 친절하게 감사의 담장을 써주었습니다.
'산타클로스도 찾아오기 싫어하는 꼬부랑 할멈과 늙은 영감에게 귀한 선물을 주니 그 고마움을 이루 말로 할 수 없다.'라는 재미있는 글과 함께 말이죠. 그 후로도 저는 감사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그분의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아인슈타인과 같은 소소한 일에 감사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