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59번째 이야기
관찰을 통한 발견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한 염색공장에서 모두가 바쁘게 정신없이 일하는 도중 한 여직원이 등유가 든 램프를 옮기다가 염색 테이블 위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습니다. 램프가 깨지고 램프 안의 등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연히 테이블에 올려둔 작업물들은 단숨에 엉망이 되었고 바쁜 와중에 작업이 중단된 공장 직원들은 투덜거리며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공장의 대표였던 "장 밥티스트 졸리"는 조금 달랐습니다. 화를 내기 전에 먼저 그 상황을 관찰한 것입니다. 작업대를 덮고 있는 테이블보는 계속되는 작업으로 여러 가지 염색약에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직원이 등유를 쏟아버린 부분만 얼룩이 지워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직원의 실수로 끝날 상황이었지만, 한 남자의 세심한 관찰과 생각을 통해서 세탁 산업의 한 축이 되어버린 "드라이클리닝"이 발명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는 분야에서든 성공에 이르는 방법 중에서 어설프게 여러 가지를 아는 것보다도 하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 때로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에 지독히 파고든다는 건 어쩌면 그 분야에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
당신이 좋아하는 청국장 끓일까요?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줄곧 배를 곯았습니다. 중학교 다닐 적에 일찍이 비뚤어졌고, 스무 살 무렵 한 여자와 동거하다가 딸을 얻었습니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아빠가 된 저는, 취직한다 하더라도 사흘 만에 잘리고, 만취해서 행패를 부리다가 경찰서에 가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분유 값도 없는 판에 벌금을 마련하느라고 고생해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폭언을 들으면서도, 아내는 제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서른 중반의 어느 날 새벽이었습니다. "나 같은 것 살아서 뭣하나!" 하면서 하염없이 걷다가 남의 집 대문 앞에 앉아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맞은편에서 한 할머니가 종이상자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지나가는데, 그만 세찬 바람이 불어 상자가 날아갔습니다. 저도 모르게 울음을 그치고 상자를 주워서 손수레에 실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저를 보면서 말씀했습니다. “울면 허기지지. 집에 가서 얼른 따신 밥 먹어!” 저는 그날 이후, 술과 담배를 단번에 끊었습니다. 얼마 뒤,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방송통신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아내와 딸은 저의 부단한 노력에 서서히 마음을 열었습니다. 1종 대형면허도 취득했으나, 밤낮으로 운전을 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먹고살기가 힘겨웠습니다. 저는 다시 공부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그간 모은 돈을 선뜻 내주어 개인 사무실도 열었습니다. 아직 초보인지라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저는 수수료를 많이 받지 않는 걸 원칙으로 세웠습니다. 집 없는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아내와 딸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저녁에 당신 좋아하는 청국장 끓일까요?" "아빠, 오늘 몇 시에 퇴근해요? 같이 드라마 보게요!" 저에게도 행복이 온 요즘은 허기지게 울지 않습니다. 그날, 그 할머니는 저에게 찾아온 천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이의재) 그렇습니다. 저는 언젠가 누군가의 다음과 같은 조언을 마음에 두고 살아갑니다. "평생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으면 별 탈이 없다."라는 말니다. 첫째는 어머니, 둘째는 아내, 셋째는 내비게이션 아가씨라고 했습니다. 글쓴이 이의재 님은 젊은 날에 자기 맘대로 다니다가 엉뚱한 길로 들어선 경우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끝까지 그 곁을 떠나지 않은 아내 덕분에 올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의재 님 스스로가 경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한 결과 지금처럼 행복하게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
이타적인 예수님의 사랑 베드로가 보여 준 자기 유익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는, 예수님의 생명적 자아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생면적 자아의 모습이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자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 안에 모두 녹아 사라졌기에, 이기심 없는 사랑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생명에서만 흘러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주 안에서 누리는 생활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보여 줍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에 나오는 예수님은 거의 완전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나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이 말씀 가운데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부분에만 자신을 결부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라는 부분이야말로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백미이고, 또한 우리의 이기심과 구별되는 예수님의 모습을 알게 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 현재에도 아주 놀라우신 분입니다! 그는 아버지께 무척이나 변호하지 않으셨고, 자기 방법대로 밀고 나가지도 않으셨으며, 언제나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심지어 생명이 다해 가는 그 순간까지 말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그분 자신을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는 우리를 위한 중보기도에 혼신의 힘을 쏟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세주이며,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토록 헌신적으로 자신을 드릴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아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자아는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채워지고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돌보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이기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행하셨고, 삶 가운데 다가오는 모든 일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사실도 믿으셨습니다. 골로새서 2장 10절,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타인을 향한 사랑은 만족함이 충만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법입니다. 우리 자신을 비우고,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행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아래 자신의 뜻을 모두 굴복시킬 때,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서신서를 읽는 교인들에게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라"라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행위 동사는 지속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행하라는 말이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우상을 만든다는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도우시길 바랍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신다는 진리를 예수 안에서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충만케 하신다는 것은 단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느낌 정도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이며, 그 안에서 행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바로 이 순간, 모든 상황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분명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안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과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이끄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기만족에 치우치는 우상 숭배의 영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
하나님 뜻에 응답하는 성도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린도후서 1장 12-22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중 18절의 "미쁘다"라는 단어는 진실하여 믿을만하다는 뜻으로 디모데전서 1장 15절과 히브리서 10장 23절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했습니다. 그들을 방문하는 계획은 육체의 지혜가 아닌, 미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우리는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 치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며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나 아멘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바울의 진솔한 변명(12-14절). 하나님의 은혜는 불순종과 거역을 절대 순종으로 변화시킵니다. 바울은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사역하고자 힘썼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성도들 중에는 바울을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고린도를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12절, 그러한 선택이 "육체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것이라며, 자신의 심정을 진실하게 전합니다. 그러면서 14절, "주 예수의 날"에 모든 것을 밝히 알게 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 예수의 날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바로 그때를 말합니다. 바울은 주님의 날에 고린도 성도들이 자신의 자랑이 되고, 자신이 고린도 성도들의 자랑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역자와 성도 간에 오해로 비난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를 이해로 바꾸고 서로 용납하면, 끝내는 서로에게 영광과 자랑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억지로 오해를 풀려고 하다가 거 큰 올무에 걸려들지 말고 사도 바울처럼 주님께서 모든 것을 풀어주실 그날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전념할 것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오리의 억울함은 하나님께서 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약속에 "예"가 되는 그리스도(15-22절). 바울이 계획을 변경한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른 일이었습니다. 바울의 본래 계획은 고린도와 마게도냐를 거쳐 다시 고린도로 갔다가 유대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경솔히 계획하지 않았으며, 고린도 방문을 연기한 것이 인간적 이유가 아니라고 진술합니다. 그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음을 17절,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없다"라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이 진실하듯, 자신의 말도 진실하다고 호소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20절,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약속은 예수님 안에서 이미 이루어졌고, 지금 이루어지고 있으며, 장차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류의 거시적인 구속 역사와 개인의 미시적인 구속 사역에서 언제나 "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약속을 굳건히 믿게 하시고자 22절, 우리 마음에 성령으로 도장을 찍으시고 성령님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매사에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성도의 구원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해졌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신뢰하고 아멘으로 응답할 하나님의 뜻을 묵상합시다. "우리에게 언제나 예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아멘으로 화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때로 오해가 쌓여 비난이 쏟아질 때에도 거룩함과 진실함을 잃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입고 말하는 대로 행함으로, 서로에게 자랑이 되는 성도가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에 부으신 성령님을 좇아 하나님 뜻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영광을 돌리게 하시옵소서.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가 집중해야 할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전념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회복을 위해 필요한 말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을 위한 성경 공부를 진행하며, 그들이 대부분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에 굶주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섭고 매정한 아버지만을 기억하는 그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여러 형제가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우리가 힘이 없고 경제적 여유가 없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참으로 귀한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용서"와 "인정"입니다. 성공회 신학자 로완 윌리엄스는 그의 책 <제자가 된다는 것>에서 이같이 말합니다. "용서하는 사람이든 용서받는 사람이든, 과거를 뚝 떼어 버리고 홀로 미래를 맞아들일 힘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양쪽 모두 수많은 어둠과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과거가 치유될 필요가 있으며, 그럴 때에야 함께하며 상대방의 도움에 힘입어 좀 더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랫동안 척지게 된 관계가 있습니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시비를 가리지 말고 그들에게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기뻐한다고 말해 주십시오. 당신이 여전히 나의 귀한 친구요 자체라고 말해 주십시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이 사랑을 받았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네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말하는 믿음의 순종을 통해, 주님을 화해와 평화를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나이 듦의 영성/ 조장호 목사) |
자신에게 너무 민감하지 마십시오② 영적으로 어린아이인 사람들은 더 자라야 하며, 그러기 전에는 남들을 섬기거나 도울 수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자기와 자기 자식, 자기 가족, 즉 자기에 관한 것으로 꽉 차 있기 때문에 남들을 돌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상담을 하거나 남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고통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은 말을 중단시키고 자기의 더 큰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한참이나 합니다. 누가 자식 자랑을 하면 "아니야, 우리 아이는 더 착해.." 하면서 다시 자기 얘기에 사로잡힙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들 중의 하나라면,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자라나야 합니다. 당신 자신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남에게 대하여 관심을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당신 자신을 버리십시오. 당신의 입장을 초월하십시오. 당신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며, 당신은 그렇게 열등한 존재도 아닙니다. 당신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렇게 나쁜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 자신을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렇게 위대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평범합니다. 위인들도, 악인들도, 그렇게 특출 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언론이나 사람들이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런 식으로 만들어 가는 것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평범한 요소를 가지고 있고, 한두 가지쯤은 남들보다 탁월한 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둔감해지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좀 더 객관적이 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으며, 쓸데없이 과도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의 방법으로, 자신을 3인칭으로 불러 보십시오. 당신이 화가 났을 때, "이 사람이 화가 났구나!"라고 말하십시오. "이 사람이 왜 화를 낼까?"라고 물으십시오. 당신에게 절망이 올 때에 "이 사람이 절망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십시오. 자신을 점차로 객관화시킬 수 있다면, 당신은 자신의 눈으로 가 아닌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게 되고, 좀 더 성장하게 되면 진리의 눈으로, 하나님의 심정으로 자신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인식, 집착은 성숙하지 못한 인식과 생각이 가져다주는 또 하나의 무서운 감옥입니다. 부디 그 감옥에서 탈출하십시오. 당신은 세상이, 우주가 좀 더 아름답고 넓은 곳인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자신에게 너무 민감하지 마십시오! |
기도의 대상이 중요하다 기도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참 제각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편안하게 이야기하듯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목이 쉬도록 통성으로 기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조용히 침묵으로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뜨겁게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는 스타일을 가지고 기도를 판단합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말하듯 기도하는 것을 기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냉랭하게 식은 죽 같은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힐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귀가 먹었냐, 왜 그렇게 시끄럽게 기도하냐. 그게 무슨 기도냐!"라고 비아냥거립니다. 또 어떤 분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중얼거리는 것이 무슨 기도냐면서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기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침묵으로 하는 기도는 다른 종교에서 하는 명상에 불과하다면서 기도로 인정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기도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 스타일은 그 사람이 받은 은상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조곤조곤한 기도도 들으시고, 통성으로 부르짖는 기도도 들으시고, 침묵 기도도 들이시고, 방언 기도도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스타일의 기도를 더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기도하는 나를 좋아하시는 것이니, 내게 맞는 방법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나의 스타일을 존중하고 배려해 주실 만큼 그릇이 큰 분이십니다. 정작 어떻게 기도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기도하느냐입니다. 많은 종교에서 다 기도를 합니다. 그들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가 다른 것은 기도 스타일이나 기도 방법이 아니라 기도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빙햄 헌터 교수는 <프레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결함이 있는 비행기를 조종술로 보충할 수는 없다. 믿음의 힘으로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비행할 수는 없다. 문제는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존재를 당신이 신뢰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당신이 믿는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이다." 기도는 방법이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행기 조종술이 뛰어나도 결함이 있는 비행기로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방법은 흉내 낼 수 있어도 기도의 능력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
잃고 나서야 깨닫는 소중함 어느 의사의 글을 읽고 깊이 공감이 되어 메모해 놓았던 내용입니다. "왜 살마들은 당연한 사실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을까?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이어서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고, 손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또,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도 이런 당연한 사실들에 감사하지 않는다..!" 인간은 평범한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특별한 것이 주어졌을 때에만 감사합니다. 평범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는 그것을 잃었을 때야 비로소 뒤늦게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윌 모두 평범한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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