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556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7. 5. 13:16

예림의집 2556번째 이야기

따듯한 하루

나무 심는 노인

한 남자가 길을 걷다가, 길모퉁이에서 정성껏 나무를 심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이 모습을 본 나그네가 잠시 도와주며 이 나무가 언제쯤 열매를 맺을까 물었고 노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한 30년 후에 열매를 맺겠지요." "어르신 언제 그 열매를 드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노인은 잠시 일손을 놓고, 나그네에게 대답했습니다. "내 나이가 벌써 80을 넘겼으니 아마도 어렵겠지요.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 마당엔 과일나무가 많아서 나는 그 열매를 따 먹으며 자랐지요. 그 나무들은 할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심으신 나무의 열매도 많이 따 먹었죠. 나는 지금 내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자신의 눈앞만 살피는 어리석은 마음보다는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행복한 선물을 남겨보세요.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마음과 지혜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인생의 첫째 목표는 正己입니다.

만물 중에서 인간이 가장 존귀한 이유는 도덕과 인륜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에게 도덕과 인륜이 없다면, 인간은 한낱 무력한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근본은 도덕과 인륜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일생동안 노력해야 할 근본 사업이 무엇일까요? 수신(修身)입니다. 자신이 자기 인격을 갈고닦아 자기완성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죽는 날까지 힘써야 할 평생 사업이 무엇일까요? 정기(正己)입니다. 자신이 자기를 바로 일으켜서 자아확립을 하는 것입니다. 수신과 정기, 이것이 우리의 평생 사업(life work)입니다.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위로는 임금님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오직 자기 인격을 갈고닦는 것을 인생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이 글 중에는 수신 위본(修身爲本)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자기 수련을 인생의 훈련목표로 삼아야 하며, 자기를 갈고닦아 자아 완성하는 것을 인간의 근본 사업으로 삼는다."라는 것입니다. <근사록(近思錄)>이라는 책에서는 “자기 자신부터 바르게 함이 우선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로, 우리 인생의 첫째 목표는 정기(正己)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를 바르게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대인(大人), 곧 큰사람이라고 불러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여기서 대인(大人)은 최고의 인간입니다. "자기를 바로잡기만 하면, 그의 지성이 상하에 두루 미쳐서(도달해서) 모든 사람이 다 바로 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정기(正己)란 "내가 나를 바로 일으켜 세우는 자기 확립"이요, 자아완성(自我完城)입니다. 모든 국민이 저마다 수신과 정기를 인생의 기본사업, 제일 과제로 삼고, 수덕(修德)에 힘써야 합니다. 자기를 갈고닦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리해야 할 것입니다.(인생의 열매들, 안병욱 교수) 

참 종교(宗敎)는 "도덕과 윤리"라는 기초 위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는 종교는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종교라는 말의 글자 의미는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고로, 종교가 최고의 가르침이 되기 위해서는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요컨대, 신앙인으로서 대인(大人)이 되기 위해서는 윤리와 도덕에도 반드시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기독교인일 경우엔 참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도덕과 윤리의 스승이십니다!

 

단장 칼럼

우상을 필요로 하는 자아


우상 숭배의 세 번째 특징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과 이득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미 유아기 때부터 원하는 것을 자신의 방법과 때에 맞춰 얻고자 합니다. 결코 우상 숭배는 하나님의 방법과 때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한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 가운데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난 이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지쳐 있었습니다. 그들은 시내산에 진을 치고, 모세가 어서 돌아와 명령을 내려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 길고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아론을 불러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출애굽기 32:1) 그들이 원했던 하나님은 그들이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여 주고, 그들이 전혀 복종할 필요가 없는 신이었습니다. 자아는 항상 모든 상황과 관계에 대해 욕망과 기대감과 견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아는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일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왜 하필 나인가? 내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자문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해 주는가?
이기심의 우상 숭배는 오늘날의 결혼 관계 안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영철과 순예 부부는 이기심 때문에 결혼 생활이 불행으로 치닫는 아슬아슬한 상황에 있는 수많은 부부들의 한 예입니다. 그들은 상대의 비위를 거스리는 명수지만, 정작 문제는 자신들의 이기심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상담을 받아야 한다면, 상담가는 그가 말하는 그녀의 심각한 문제점을 들은 다음, 다시 그녀가 말하는 빌의 문제점을 듣고 서로 상대편에게 말해 주는 식으로 풀어갔을 것입니다. 그들 각자의 논리는 상대방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자는 왜 우상을 만드는 것일까요? 우리로 하여금 조각하고, 조종하며, 파서 새기거나 통제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아입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들은 많습니다. 직업, 질서, 의미심장함, 평안, 안락, 행복, 안일함, 그 외 수많은 것들을 얻고자 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비참하고 우울하며 분노와 좌절을 느끼는 바로 그 중심부에는, 자기애에 대한 깨어진 환상, 환멸, 실망감들만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고 하신 것은, 우리 안에 우상을
만들려는 욕구가 쉽게 생길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아는 우상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주제에 대해서 수차례 언급하고 야고보서 3장 14-16절에 나오는 세상적인 지혜에 대한 설명을 통해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내일은 이 자아에 대해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환난 때 주님을 의지하는 성도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두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시편 31편 1-8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중 5절의 "속량"은 몸값을 지불하고 죄인이나 노예를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주님께 피하니 자신을 부끄럽게 마시고 공의로 건져 주시길 간구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 자신을 인도해 주시길 바라며, 원수가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시길 간구합니다. 속량 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영을 부탁하며, 자신의 고난을 돌아보신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뻐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환난을 당할 때, 곤고한 일이 있을 때, 위협을 당할 때, 실패했을 때, 주님을 단단히 의지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공의의 주님께 간구함(1-4절).
하나님은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죄는 우리에게 수치를 안겨주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를 영화롭게 합니다. 사탄의 계략은 우리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영원한 수치를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의 수치를 영광으로 역전시키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부끄러움을 참으심으로(히브리서 1:2), 우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되었기에(베드로전서 2:6) 우리는 공의의 하나님께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아이가 엄마 품에서 마음을 쏟아 내듯, 다윗은 하나님께 피하며 자신을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건져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이 실행되면 자신이 구원받을 것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귀 기울여 자신을 속히 건지시고, 자신에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어 주시길 간구합니다. 그는 불의를 놔두시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지 않기에 원수들이 은밀하게 쳐 놓은 그물에서 자신을 빼 달라고 요청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모든 운명을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신뢰함(5-8절).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손에 부탁하며, 진리의 하나님이 자신을 속량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러셨듯 자신의 생명까지 하나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삽니다. 다윗은 허탄한 거짓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생명 없는 우상은 우리의 고난과 환난을 알지 못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도우십니다. 무능한 우상과 비교되는 능력의 하나님을 묵상하는 순간
시편 기자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생깁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고난을 보고 계시고 환난 중에 있는 그의 영혼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시간에 그분의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를 원수의 수중에 넘기지 않으시고 넓고 안전한 곳에 세우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묵상합시다. 또한 오늘날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기쁨을 회복하기를 다짐하며 기도하는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공의의 하나님, 고난의 무게에 압도되어 하나님을 외면했음을 회개합니다.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완전한 피난처이신 하나님 품에 깊이 안기게 하시옵소서. 설령 고난이 더디 지나가더라도 주님의 의와 이름에 합당하게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게 하시옵소서. 이 세상의 나그네 길을 헤쳐 나아갈 때에 어떠한 어려움과 시험과 고통이 닥치더라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성도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은 산성이요, 방패십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외로움을 넘어서는 영혼의 힘


외로움의 고통은 생각보다 큽니다. 무시당하고 외면당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처참해집니다. "나는 잊히는 것인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불안은 증폭되고 내면세계는 성난 파도처럼 쉴 새 없이 요동칩니다. 또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쉽사리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홀로 있는 동안에 받아야 할 훈련은 "내려놓음"입니다. 집착하게 하는 것을 내려놓고, 정신을 빼앗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해 주님과 독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곳에서도 도피하지 않고 머물러 있을 용기를 내야 합니다. 자신의 옳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도 싸워야 합니다. 세월의 잔혹함에도 산화되지 않을 만한 영혼의 힘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영혼은 단단해집니다. 시간의 압력을 이겨 낸 영혼은 비로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혹독한 광야를 거치며 여물어진 영혼이라야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는 더는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삶 안으로 맞아들입니다.
나무에 물이 오르면 가지에 몽우리가 생기고 꽃이 피어나듯, 공허한 내면이 영적으로 채워지면 삶은 풍성해집니다. 그냥 실낱같이 이어진 관계가 아니라 창조적 관계가 열려야 합니다. 즐거움을 얻고자 매달리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일상이 행복해지는 단계를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이전에 내치던 관계도 끌어안을 수 있는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광야, 창조의 시간/ 이규현 목사)

 

생각 다스리기

게임에서 지는 것을 즐기십시오②


제가 한때 바둑을 좋아하여 바둑에 몰입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거의 둘 시간이 없지만, 젊었을 때에는 가끔 기원에 가곤 했습니다. 저는 아마추어로서는 정상급이었기 때문에 별로 상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여러 점 놓은 접바둑을 둡니다. 저의 관심은 승리보다는 인간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급소에 돌을 갖다 놓고 상대의 표정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함정과 곤경 속에서 그를 풀어 주고 다시금 그의 환희에 찬 표정을 응시하며 즐깁니다. 저는 인생도 이렇게 바둑을 두는 것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즉, 상대방의 승리와 기쁨을 함께 즐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물건을 사거나 어쩌다가 사용하던 물건을 팔 때가 있으면 상대방에게 유리하도록 배려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자꾸 그러니까 경험 많은 장사꾼이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오히려 더 내게 좋게 해주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전투 대상이 아니고 우리의 형제이며 그들의 이익이 나의 이익이라는 생각이, 긴장을 풀어 주고 서로 간에 더 즐겁고 유익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를 악물고 경쟁한다고 해서 꼭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기는 것도 쉽지 않지만 지는 것보다 오히려 결과가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기든 지든 그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시합의 과정에도, 시합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피곤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경쟁의 대상이 아닌, 적이 아닌 내 친구로 생각한다면, 그 과정도 결과도 아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기를 배우고, 그들과 경쟁하고 그들을 다 이겨 낼 수 있도록 강요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친구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고 행복한데도 말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주십시오. 할 수만 있다면 지고, 상대를 섬기는 쪽을 택하십시오.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승리일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우리는 평화로운 마음속에서 살며, 소박하지만 항상 행복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희생의 삶, 나눔의 삶입니다!

기도의 횃불

주님을 부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기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부르짖는 것입니다. "응애, 응애"하고 부르짖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자세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부드럽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알아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갓난아기는 말할 줄도 들을 줄도 모르고, 그저 부르짖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이 아기가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부르짖어 구해야 합니다. 부르짖어 구하는 것이 소통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평생 부르짖기만 하진 않습니다. 부르짖다가 점점 언어를 배워나갑니다.
듣는 법도 배우고, 말하는 법도 배우고, 설명하는 법도 배우고, 이해하는 법도 배우고, 순종하는 법도 배웁니다. 그러나 언제나 시작은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하십시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주여!" 하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것의 의미를 아시고, 부르짖음에 응답해주십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 "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르짖음에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홍해 앞에 선 모세는 하나님께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어찌합니까. 주님 살려주세요!"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간절하게 주님께 부르짖었고, 앞을 보지 못하는 거지 바디매오는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손가락질해도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달라고 부르짖어 간구하셨습니다. 아이가 "응애" 하듯 "주여!"라고 부르짖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부르짖어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사랑의 노래

날마다 감사~㉾

감사촌, 불평촌


오래전에 두 마을이 이웃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한 마을은 감사촌이고 다른 마을은 불평촌이었습니다. 불평촌 사람들은 봄부터 겨울까지 무슨 일이든 불평과 불만을 쉬지 않았습니다. 봄에는 황사 때문에 먼지가 많다고 불평했고, 여름에는 너무 덥고 모기가 많다고 불평했고, 가을에는 나무 잎사귀가 많이 떨어진다고 불평했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고 너무 춥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감사촌에 사는 사람들은 정반대로 모든 일에 감사했습니다. 고생을 해도 감사하고 시련을 만나도 감사했습니다. 봄에는 꽃향기에 감사했고, 여름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 감사했고,
가을에는 탐스런 열매에 감사했고, 겨울에는 나뭇가지에 하얗게 쌓인 눈꽃을 보며 감사했습니다. 불평이 습관인 것처럼 감사도 습관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항상 불평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의 눈에는 장미꽃의 가시만 보입니다. 반대로 감사촌에서의 삶은 평생 감사입니다. 이런 사람은 감사가 인격 그 자체입니다. 그는 감사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는 것마다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