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55번째 이야기
나그네의 여행길 세계 곳곳을 다니는 어느 여행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마을에 현인이 있다는 소식에 곧장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현인의 집은 책 몇 권, 조그만 식탁, 의자 등이 전부였고 가구며 서재도 없이 너무 초라한 집이었습니다. 여행자는 초라한 집의 모습에 놀라 다른 가구며 집기가 어디 있는지 물었고 현인은 잠시 침묵한 뒤 여행자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대의 것은 어디 있습니까?" "제 것이요? 저는 여행자 아닙니까. 그저 지나가는 존재일 뿐인걸요." 그러자 현인은 조용히 웃으며 여행자에게 말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우리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소유하며 살곤 합니다. 오늘 하루 굶지 않고 먹을 수 있음에 바람과 비를 피해 쉴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예림의집TV 방송 또한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
방세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인터넷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하고 검색해봤습니다. 구구절절, 정말 그럴듯한 언어들이 예쁜 모양으로 화면 바탕에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중에서 "아, 그래! 이것이야!" 하며 고개를 끄덕일 만한 언어들을 찾아 <행복의 바구니>에 담아서 한번 펼쳐보기로 했습니다. 행복이란, 밤새 푹 자고 아침에 깨었을 때의 그 상쾌하고 맑은 기분. 행복이란, 놀이터에서 땀 흘리며 모래성을 막 완성한 어린이의 신나는 얼굴. 행복이란, 아기의 목욕을 막 끝내고 마른 수건으로 아기를 감싸며 내려다보는 엄마의 환한 눈빛. 이런 아름다운 모습들이 행복이라고, 예쁜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라는 말이 행복의 순서 상단에 있을 줄 알았는데, 저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동물은 배가 고프면 실컷 먹고서 그걸로 만족해하지만, 일부 어떤 사람들은 배가 부른 걸로 끝내지 않고 배 밖에 달려있는 주머니가 터지고 창고가 넘쳐야 직성이 풀립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지만, 어느 월세방을 많이 가지고 그 방세로 제물을 축적하던 있던 욕심 많은 부자가 죽기 전에 자식들을 모두 불러놓고 이런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이제 병들어 죽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유언을 하고자 한다. 자식들은 잘 들어라.” 자식들은 혹시 재산분배에 대한 말씀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 잔뜩 기대를 갖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지금이 방세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방세 올려라. 방세 올려!”라고 외치더니, 숨을 거두셨습니다.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지만, 한편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30㎝여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30㎝ 거리 속에, 세상만사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있다는 생각이 듭니다.(이강민) 그렇습니다. 사람은 욕심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너무 많으면 불행하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요컨대, 욕심을 적절히 잘 조절해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욕심을 적절히 조절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절대자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지혜는 물론,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까지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늘 되새김질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욕심이 말씀의 통제를 받음으로써 적절한 조절이 가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쟁이가 되지 맙시다! |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영향을 미침 우상 숭배의 영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기에 받지 못하면 비참함과 비통함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 우리 중 누군가는 이런 일을 경험했거나, 그런 일을 경험한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면, 계속해서 분노와 욕설로 하나님을 향해 조각을 새기려고 덤벼들게 됩니다. 결신 기도의 방법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다 할지라도, 구원받지 못했다는 식으로 결론 내리지 말기 바랍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이 영접 기도를 했든지, 결단의 시간에 손을 들었든지 그것 자체 때문에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이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하신 사건을 직접 가르쳐 주실 때에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역사하신 성령님의 손길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열매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초청하는 기도를 그저 따라만 했고, 성령님께서 이제서야 여러분의 진정한 동기를 드러내 주고 계시기 때문에 아직은 하나님과 살마들을 자연스럽게 사랑해 본 경험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왜 그토록 힘겹게 지내왔고,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해 환멸을 느껴 왔는지에 대한 이유인 것입니다. 문제는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당신 안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 때인지도 모릅니다. 우상 숭배의 영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며, 살마들을 자시느이 방법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 내기 위해 하나님을 조각으로 새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또한 예수님을 만나려고 시도하지만 변화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할 때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상 숭배의 영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동기를 정결하게 하고, 은혜로운 영적 훈련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즉,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금식하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며, 베풀고, 섬기는 일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훈련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움직여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도록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며 하나님과의 관례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있도록 은혜를 간구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서는 안 되며, 우리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조각해서도 안 됩니다. 단지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헌신이어야 합니다. |
영원히 목자 되신 주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편 1-6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시며 함께하시니, 그는 어떤 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원수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그는 평생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고백이 오늘날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시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목자가 되시고 안식처가 되시며 인도자가 되어 주시기에 우리는 날마다 시편 23편을 외우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부복함이 없으리로다(1-4절). 다윗은 참 목자이신 하나님을 따르니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고백합니다. "부족함이 없다"라는 것은 점점 윤택해지고 넉넉해지며 풍성해짐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얻는 만족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참된 목자를 따를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만족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할수록 그분이 선한 목자이심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만족은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를 때 임하는 은총입니다. 양은 목자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깁니다. 생존에 대한 고민은 양의 일이 아니라 목자가 감당할 일입니다. 양은 그저 목자를 잘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다윗은 목자이신 하나님 덕분에 과거에도 부족함이 없었고, 현재도 부족함이 없으며 미래에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부드러운 풀밭으로 인도하시고, 깨끗하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분 이름, 즉 주님의 명애를 위해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목자시라고 해서 우리의 삶에 사람의 음침한 골짜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참된 목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5-6절). 하나님의 품은 생수가 넘치도록 흘러나오는 샘이며 영원한 생명의 광선이 나오는 광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기자 다윗을 귀한 손님으로 영접해 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다윗이 옳았고 원수들의 비방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는 잔치였습니다. 하나님이 채우시는 삶은 넘치는 잔과도 같은 복된 삶입니다. 과거에는 원수들의 추격에 쫓기는 신세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그를 따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집에 잠깐 머무는 손님이 아니라, 영원히 거하며 예배하는 가족으로 삽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견디기 힘든 아픔을 겪고,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순간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시고 갖고을 환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목자 되신 하나님 안에서 어떤 은혜를 누렸는지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목자 되신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 되돌아봅시다. 하나님께서 원수들 앞에서 다윗에게 어떠한 은혜를 베푸셨는지 다시 살펴봅시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실 잔치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인내할 일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영원히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만나는 이 세상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지만, 주님께서 계시니 부족함도 두려움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질병으로, 재정난으로, 삶의 여러 문제로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 때 함께하시는 주님을 느끼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의 은혜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셔서 기쁨의 잔이 넘쳐나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의지하며 푯대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현재형 신앙 일본의 기독교 작가 미우라 아야코는 대표작 <빙점>을 비롯해 여러 자전적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그녀는 폐렴으로 13년을 고생하며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양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하는 체험도 했습니다. 그녀가 생명의 불씨를 태우며 집필한 여러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가 질문했습니다. "기독교에는 불교의 '나미아비타불'과 같은 염불이 없습니까?" 미우라 아야코는 말했습니다. "염불은 이생에 존재하지 않는 죽음 저 건너편의 행복을 바라보면서 읊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염불이 없습니다. 기독교에는 임마누엘 아멘만 있을 뿐입니다." 그녀는 죽어서만 가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기에 지금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릴 수 있는 사실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고백은 과거형이나 미래형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철저히 현재형이어야 합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그렇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시공을 초월한 동행의 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좋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원망과 불평을 해서는 말이 안 됩니다.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영원히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의지하면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십시오!(주님과 한 걸음씩/ 유재필 목사) |
게임에서 지는 것을 즐기십시오①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들에게 "기죽지 말라!"라고 가르칩니다. 어디 가서 맞고 오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꼭 이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과연 좋은 것일까요? 모두 다 서로 이기려고 하기 때문에 온 세상이 무척이나 살벌해졌습니다. 아무도 양보하거나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앙인들은 서로 "승리하세요" 하고 인사합니다. 물론 좋은 의미이겠지만,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싸움과 경쟁이 치열합니다. 정치인들이 서로 싸우고, 신앙인들도 서로 싸우며, 경제인들도, 학생들도, 어디서든지 서로 이를 악물고 싸웁니다. 심지어 TV 드라마에서는 사랑 뺏기 싸움 같은 것도 경쟁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랑도 이를 악물고 싸워야만 얻을 수 있는 듯이 말입니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낙오자가 되어 포장마차에서 쓰디쓴 표정으로 푸념을 하면서 술잔을 기울입니다. 자살하거나, 타락합니다. 일생을 패배 의식으로 삽니다. 권투 경기를 보면 서로 자기는 맞지 않고 상대방을 한 대라도 더 때리려고 애를 습니다. 내가 한 대 때렸으니 당신도 한 대 때리시오 하는 식은 없습니다. 축구 경기를 봐도 나는 한 골도 먹지 않고 오직 골을 넣어야 잘했다고 칭찬을 듣는 것입니다. 과연 모든 경쟁이 아름답고 좋은 것일까요? 필연적인 결과일까요? 챔피언이 되려면 모든 사람을 이겨야 합니다. 스타가 되려면 모든 살마들보다 뛰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이 살벌한 게임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으면 어떨까요? 그것은 게임에서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1등도 필요하지만, 2 등도 필요하고 꼴찌도 있어야 하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그 역할을 맡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잘 안 되어서 2등이나 1등을 하게 되면 그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성경의 이런 대표적인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1등을 마다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고 자기는 뒤에서 조용히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구약의 갈렙도 1등이 싫었습니다. 스포트라이트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도 조용히 옆에서 여호수아를 보필했습니다. 1등이나 앞에 서는 것,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 좀 유치한 일입니다. 자식들이 반장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는 사실 좀 유치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1등이나 반장이 되었다고 야단을 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그렇게 되도록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즐거워하거나 긍지를 갖는 것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의 상태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의 기질과 사명은 각자가 다르며, 엄밀한 의미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1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개성과 재주와 성향을 주셨으며, 그런 면에서 모든 사람은 귀한 1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임에서 승리에 집착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쁨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게임에서 일부러 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게임의 승패를 주님께 맡기고 자연스러움 속에서 노력하며 승패를 초월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기도는 솔직하게 하는 것이다 다윗의 기도에는 감사 기도도 있고 찬양의 기도도 있지만, 솔직한 기도도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칭함 받은 다윗이 이런 기도를 합니다. "여호와여 일아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시편 3:7). 더 리얼한 표현은 "하나님, 저 원수들의 뺨을 갈겨주시고, 아구창을 날려주세요." 이런 기도입니다. 다윗의 기도는 매우 주관적인 기도입니다. 옳은 기도라고 할 수 없어 보이고 경건해 보이지도 않는, 기도 같지 않은 기도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의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의 그런 솔직한 기도를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기도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기도가 안 되면 기도가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는 완벽한 기도가 아니라 솔직한 기도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냥 우십시오. 울어도 됩니다. 저도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어떤 분이 "눈물은 우리 영혼의 가장 진실한 언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눈물이 난다는 것은 마음이 지금 가장 솔직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남자는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유교적인 교육을 받아서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눈물이 나는데도 참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울어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아빠이신 하늘 아버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울어도 됩니다. 우리가 흘린 눈물을 하나님께서 다 받으십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편 56:8). 또한, 이런 고민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너무 내 욕심대로 구하는 것 아닐까? 욕심을 내려놓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면 내 뜻인가?" 물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하겠지만, 처음 기도를 시작할 때는 너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줘도 될만하면 주시고, 우리가 변해야 한다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부족한 기도도 다 알아들으시고, 부족한 우리를 성숙시켜 가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냥 기도하십시오. 만약 제가 "로또 1등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면 여러분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분"이라고 말한다면, 그 말에 동의하십니까? 세상에는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합니다. 기도는 그냥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장미의 인생 화단 구석에 장미가 한 송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불평이 많은지 눈만 뜨면 불평을 털어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장미는 밤이면 춥고 어두워서 못 있겠으니 거실로 옮겨 달라고 주인을 졸랐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화분에 옮겨서 거실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불평하며 여기는 나비가 찾아오지 않으니 창가로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창가로 옮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장미는 창가에는 고양이가 지나다녀서 싫다며 화병에 넣어 방 안으로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다시 장미를 화병으로 옮겨 방안에 두었습니다. 며칠 뒤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바깥 화단으로 옮겨 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뿌리가 잘린 장미는 시들어버렸고 주인은 장미를 뽑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삶도 불평만 하다가 허비할 수 있습니다. 불평이 아닌 사랑과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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