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531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4. 21. 15:16

예림의집 2531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당신만은 못해요

"좋은 곳에 살아도 좋은 것을 먹어도 당신의 맘 불편하면 행복이 아닌 거죠 웃고 있는 모습이 행복한 것 같아도 마음속에 걱정은 참 많을 거예요 사람도 나무처럼 물을 줘야 하는데 가끔씩 난 당신께 슬픔만을 줬어요 너를 사랑한다고 수없이 말을 해도 내가 내 맘 아닐 땐 화낼 때도 많았죠 세상 사는 게 바빠 마음에 틈이 생겨 처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지만 이 세상의 무엇을 나에게 다 준대도 가만히 생각하니 당신만은 못해요 사랑해, 난 널 사랑해..!" 찬양 사역자이기도 한 테너 박종호 님의 "당신만은 못해요"의 가사입니다.
모름지기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먼 미래를 향해 여정을 떠나는 배와 같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등대가 되어주고, 돛도 되어주며 그렇게 의지하며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것입니다. 곁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고 싶기 때문에.. 당신이 선택한 그 사람을 오늘 다시 한번 돌아봐 주세요.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지쳐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소를 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 여러분께 미소와 위로를 드리기 위해 예림의집TV는 어느 가을날, 미소가 지어지는 숲 속 음악회와 같은 방송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우리나라 말과 글이 있다는 사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우리말을 하면서 영어 등의 외국어를 섞어 쓰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전문직업인이나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과 단 10분만 대화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차별로 영어를 섞어 쓴다는 것을 곧 느끼게 될 겁니다. 이런 현상이 제발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예외적인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때는 듣고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잘난 척하는 것 같아 우습기도 하고, 어느 때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잘 들어보면, 쓰임이 틀리는 경우도 수두룩합니다. 
어제 만난 대기업의 사보(社報) 기자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비야 씨, 책을 읽어보니 아주 나이브(naive) 한 것 같아 참 좋았어요.” 그에게 다른 뜻이 없었다면, 저에게 욕을 한 셈입니다. "나이브"라는 말은 "순수, 순진하다"라는 긍정적인 뜻보다는 "경험이 짧아서 잘 속아 넘어갈 정도로 뭘 모른다."라는 부정적인 뜻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고백건대, 저도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그것도 아주 중증이었습니다. 입만 열면, 조사(助詞)만 빼고 거의 모든 단어를 외국어로 말했습니다. 여러 이유로 외국에서 살았고, 또 몇 가지 외국어를 할 줄 알다 보니,
이런 것이 오히려 당연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하도 그렇게 쓰다 보니, 어느 때는 정말 우리말보다 외국어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때도 있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이처럼 거슬리는 습관을 지적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구제불능이라고 여겨져 그랬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여행하면서 차츰 우리말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 나라 말과 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흔치 않은 일이며 자랑스러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80억 가까이 인구가 쓰는 말의 종류는 약 3,000~4,000개이고, 문자까지 있는 경우는
겨우 300개 남짓이라고 합니다. 현지인들 또는 여행자들에게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말과 글이 있다’고 말할 때마다, 그 말을 듣고 놀라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얼마나 우쭐했는지 모릅니다.(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

그렇습니다. 저도 적극 동의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중에는 "케어(car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냥 보살핀다든지 돌보미 또는 간호한다고 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케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케어는 분명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인 줄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저처럼 영어가 짧은 사람은 좀 잘난 척하려고 어쩌다 영어 한두 마디 써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되도록 우리말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 4절에 나오는 "방언"은 외국어일까요? 외래어일까요? 참으로 우스운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단장 칼럼

기본적인 믿음③


나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힘겹게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대부분의 경우가, 그들이 쌓아가고 있는 우상 숭배의 탑 때문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할지 모르나, 실상은 다른 누군가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필요를 채워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나 상황들을 통해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들이 선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이 보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고 시도하게 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거나,
또는 자신이 원하는 방법과 시기에 맞춰 필요한 것을 얻으려고 달려들 것입니다. 이런 관계를 통해 남는 것이라곤 결국 좌절감과 쓴 뿌리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볼 때, 우상 숭배와 사랑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이며 상호 배타적인 관계입니다. 시편 33편 13-15절에서 우리는 아주 충격적이면서도 머리를 숙이게 하는 말씀을 찾아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우리는 마치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모든 여건과 행복에 궁극적인 영향을 끼치는 양 그들을 비판하고 불평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은혜의 손길을 거두어 가시면 우리 안에 있는 사악함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고, 우리와 관계하는 사람들은 이에 혐오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비판했던 그 사람보다도 더 참혹해질 수 있습니다. 시편 33편의 성경구절은, 우리가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만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그분의 목적에
걸맞은 일이라면 언제라도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취하는 어떠한 태도와 행동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고 그분이 직접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고 놀라운 목적에 맞춰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영광 돌리기 위해 진행됩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죄와 실패로 애통해하는 지도자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 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에스라 9장 1-15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통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의 지속되는 죄와 무너지는 영성으로 인하여 애통해하며 하나님께 자복하고 회개하는 영적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의 딸과 결혼했다고 알립니다. 에스라는 자신의 옷을 찢고 머리털을 뜯으며, 무릎을 꿇고 회개 기도를 드립니다. 죄로 인한 포로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조금 회복시켜 성전을 세우게 하셨는데, 자신들이 다시 계명을 저버렸다고 한탄합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지도자의 참모습입니다.


이방인과의 통혼(1-4절).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백성이 이방인과 통혼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특히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된 자들인데, 이방인과 결혼해 거룩함을 저버렸습니다. 더구나 방백과 고관, 즉 지도자들은 이방인과의 결혼에 앞장섰습니다. 그들은 이방인과의 결혼을 통해 다른 민족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경제적 이익가 안전을 얻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태도는 8장 21-23절에서 이방 왕 앞에서 신앙을 지킨 지도자 에스라와 대조됩니다.
이방인과의 결혼은 결국 종교적 혼합주의를 가져와 하나님을 배신하는 죄로 이어집니다. 이에 에스라는 자신의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경건의 시작이 "악으로부터의 분리"라면, 경건의 완성은 "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제사장과 귀족들의 가계도에서 이방인과의 결혼이 다수 발견된 것은 이스라엘이 "분리와 연합"에 실패했음을 증명합니다. 새로운 성전의 건축만큼 중요한 것은 새로운 영성의 회복입니다. 새 성전은 진리로 새워진 사람들이 경배할 때만 성전의 본래 기능이 온전히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것이 무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의 회개 기도(5:15절).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본 규범과 원리, 곧 진리의 말씀이 부재한 데서 발원합니다. 이것이 무시될 대 주님은 다시 채찍을 드실 것입니다. 에스라는 백성의 죄를 6절, 우리 죄악으로 고백하며 기도합니다. 방백도 제사장도 백성도 부끄러운 줄 모르지만, 에스라는 하나님께 낯이 뜨겁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말할 염치도 없다고 합니다. 이전에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가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라는 하나님의 지엄하신 명령을 어긴 데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명령을 어기고 약속의 땅을 더럽혔기에 결국 그 당에서 쫓겨나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간신히 작은 공동체로 살아남았는데, 다시 선조들과 똑같은 죄를 짓고 있으니 이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에스라는 백성의 죄를 품고 하나님 앞에 울며 탄식하는 영적 지도자입니다. 이방 여인과의 결혼은 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생각해 봅시다. 에스라는 왜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도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신앙생활에서 세상적인 쉬운 길을 택한다면, 그 결과는 어떠할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염치가 없어서 감히 구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영적 순결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백성이 저지른 죄 앞에서 선조의 뼈아픈 역사를 떠올리며 통회하는 에스라의 심정을 우리 또한 품기를 원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 내리는 결정이 미래에 평가받을 역사가 됨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시옵소서. 지난날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도록 오늘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죄인양 품고 하나님께 통회하는 에스라의 모습처럼 우리 또한 나라와 민족과 교회 공동체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선택


<그리스도인 청년들에게>의 저자 로저 P. 다니엘은 하나님이 결혼 제도를 허락하셨지만 아무 하고나 결혼할 자유를 주신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결혼에서 대부분의 구역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출입 금지 구역이고, 하나님이 친히 큼지막한 표지판을 세우셔서 "불신 결혼의 길로 가지 말라"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땅에서 결혼만큼 강력한 결속과 매임은 없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린도후서 6:14)라고 이야기하는데, 멍에를 함께 메는 것은 강제로 같이 일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섣부르게 결혼을 하면 그 사람과 강제로 멍에를 지는 것이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럼에도 믿음과 상관없이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얼마든지 결혼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의 하나님을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야! 매가 행복하길 원하시고 내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신다고. 불신 결혼을 하고 살아도 하나님은 나를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다니까!"라면서 자기 선택을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선택하는 불신 결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승인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선택을 한다면, 하나님이 떠나시는 심판이 있습니다. 내 정욕을 채우는 데 하나님 은혜를 이용하는 것은 심각한 죄입니다.(그럼에도 살아냅시다/ 김양재 목사)

 

생각 다스리기

비난의 감옥에서 벗어나십시오!


사람들은 남들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아주 쉽게, 너무나 당연히 그들을 비난합니다. 정치가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쉽게 흥분하고 비난합니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스타가 잘못된 일을 했을 때에도 쉽게 욕을 합니다. 지도자나 종교인들의 탈선이 드러나면 매우 분개하며 입술에 침을 튀깁니다. 과연 그것은 온당한 일일까요? 과연 우리는 그러한 권리가 있을까요? 우리가 그들의 입장에 있다면 과연 우리는 올바르게 행동할까요? 우리에게는 과연 위선적인, 이중적인 요소가 없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비난과 울분이 과연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남들의 잘못에 대하여 분노와 비난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속에도 동일한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우리 속의 동일한 악을 연단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본능은 쓰레기를 보았을 때 그것을 열심히 파헤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능은 쓰레기를 보았을 때 그것을 아파하며 스스로 덮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남들의 타락에 대하여 은근히 기뻐하는 것은 자신의 속에도 같은 악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빛을 통하여 점점 우리 속의 악을 견제할수록 우리는 비난을 멈추게 됩니다. 우리가 비난하고 처리해야 할 것은 오직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악뿐이요, 다른 살마에 대해서는 보호하고 섬기며 아파하고 중보해야 할 것만을 느끼게 됩니다. 모두가 당연히 여기는 이 비판, 비난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될 때, 우리는 좀 더 성장과 자유의 길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우리 힘을 다해서 이 비난의 감옥에서 벗어납시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가 이 감옥을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기도하며 힘써봅시다!

기도의 횃불

상을 잃지 않도록..!

우리에게 상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회개하게 하시고, 죄 사함을 받게 하시니 저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교회 공동체에 속하게 하시고, 주님의 교회를 누리게 하셨으니 교회를 이루는 모든 이들을 존귀하게 대하게 하시옵소서. 교회 안에서 제가 주의해야 될 것은 섬김이라고 깨닫습니다. "너희를 따르지 않는 자라 하여 무시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계시는 동안에 어떤 사람도 무시하시지 않으셨다면
그 삶을 저의 것으로 갖게 하시옵소서. 사랑으로 이웃을 만나게 하시옵소서. 우리도 주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이웃을 대하게 하시옵소서. 사람에 대한 생각, 그것은 사랑과 존경이기를 원합니다. 그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주님께 지체가 되어 교회를 이루어가게 하시옵소서. 혹시라도 아이라 해서 소홀히 대한다거나 노인이라 하여 진실함이 없는 인사로 머리를 숙이지 않게 하시옵소서. 누구를 대하게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저를 대해 주시는 것처럼 그들을 대하게 하시옵소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 상을 잃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에 주목하게 하시옵소서.
교회 안에 성도의 교제를 사랑과 존귀함으로 대하여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보도록 하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그들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존귀하듯이 그들을 존귀한 자로 대접하게 하시옵소서. 이제, 우리에게는 교회 공동체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사람에게 대할 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손을 내밀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태도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행실이 되게 하시옵소서. 혹시라도 우리의 실수로 작은 자들 중에 하나라도 실족하지 않도록
함에 민감하게 하시옵소서. 오늘을 지내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 못지않게 우리 때문에 혹시라도 지체 중 한 사람이 실족하게 되는 경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유의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생각은 멀리하고, 성령님께 민감하여 지내게 하시옵소서. 성령님께 우리를 내어 드립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려는 생각이 앞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게 하시며, 이웃에 대하여 심판자가 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자칫하면 무시하기 쉬운 아이들에 대해서도 그들을 존중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행동하게 하시옵소서. 성령님께 이끌리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실천하는 삶을 원합니다. 자신을 성령님께 맡겨서 지낼 때, 거룩하게 되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도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의 노래

복음 쪽지~㉾

하늘나라의 대사들..


기도하는 사람들은 구체적 사명을 이루라는 명령을 받고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요, 하나님 나라의 대사들입니다. 기도의 사람들 역시 천사처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일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 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웃이나 형제에 대한 원한의 감정 없이 완고함이나 무례함이나 무정함 없이 육신적 본능에 불붙은 악한 욕망이나 감정 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분의 방법대로 반드시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