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28번째 이야기
나는 작은 협력자일 뿐입니다 세계 최초의 흑인 오페라 가수이자 미국의 위대한 여자 성악가로 기록되고 있는 마리안 앤더슨. 그녀는 1925년 28세의 나이에 '뉴욕 필하모닉' 주최 신인 콩쿠르에서 많은 경쟁자를 뒤로하고 1등으로 합격하였습니다. 1935년에는 흑인 최초로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섰고 이 공연을 본 거장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한 세기에 한번 나올만한 소리를 가졌다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39년 워싱턴 링컨 기념관 광장에서 진행한 무료 야외 연주회에서는 7만 5천여 명의 청중이 몰릴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런 그녀는 평소에 "나"라는 말보다 "우리"라는 말을 즐겨 썼는데 그녀의 말을 관심 있게 듣던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노래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노래 한 곡 부를 때도 작곡가, 피아노 제조업자, 반주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속의 나는 작은 협력자일 뿐입니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크고 작음을 떠나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는 공동체 문화가 회복되는 따뜻한 사회도 함께 힘쓰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
피어나는 일은 고통이 따릅니다. 그날은 목련 나뭇가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아직 피지 않은 목련이 가지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꽃병을 찾아 목련 가지를 꽂은 다음, 해가 잘 드는 창가에 두었습니다. 피지 않았을 때는 목련 인지도 모르고 그냥 꽃나무 가지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점차 하얀 모습을 드러내며 수줍게 봉오리를 맺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들여다볼 때였습니다. 봉오리를 싸고 있던 껍질이 조금씩 조금씩 꼬물대더니 투둑 탁자에 떨어졌습니다. 마치 허물을 벗는 것처럼. “아!”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목련은 봉오리를 감싼 껍질을 벗어던지고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꽃의 비밀! 목련도 제 몸을 보호하던 껍질을 깨고 피어난다! 새만 알을 깨고 나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나비만 허물을 벗고 나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꽃도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엄청난 아픔을 겪고 있었습니다. 새도 알을 깨고 나와 훨훨 날아가고, 나비도 허물을 벗고 날개를 퍼덕입니다. 꽃 역시 껍질을 벗고 나와서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피어나는 일은 그처럼 고통이 따릅니다. 그래서 눈부신 것입니다. 사람이라고 다를까요?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데미안>의 한 구절처럼, 자신을 감싸고 있는 껍질에서 벗어나야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알에서 나와 분리의 고통을 느낀 시절을 꼽으라면 대학생 때가 떠오릅니다.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서울로 왔습니다. 방학이 되어 집으로 내려가면 저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안전했고 평화로웠습니다. 유년기의 익숙한 발자국이 새겨져 있고, 사랑받은 순간들이 화석처럼 스민 집은 더없이 아늑한 골짜기였습니다. 그러나 방학이 끝나 서울로 올라올 때마다, 저는 분리의 순간과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새가 알에서 빠져나오는 아픔을 겪어가면서 점점 깨달았습니다.(송정림) 그렇습니다. 저에게 "지나온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보라"라고 한다면, 도저히 그럴 만한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민 지은이의 말처럼, 안온한 세상을 깨고 나와야 작은 날개라도 퍼덕여 볼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이고 인생의 의무라는 것을. 성장이 아닌 성숙으로 가는 길에는 알을 깨야 하는 고통이 무수히 놓여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 알을 깨지 않으면, 알 속에서 안온함만 추구하면,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젠 그동안 배운 대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해 가는 것이 저의 삶의 목적일 듯싶습니다. |
관계에 작용하는 우상 숭배② 통상적으로 "우상 숭배"라는 단어를 들으며, 선사 시대 사람이 큰 돌 덩어리에 조각을 새기는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그저 구약 시대에만 존재했던 죄 정도로만 여길뿐 현대인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말로 현대인은 이 지를 초월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일까요? 나는 갈라디아서 5장 14절을 묵상하면서, 율법 전체를 완성시키는 한 단어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이에 나는 즉시 십계명의 각 조항이 어떻게 사랑과 연결되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십계명의 첫 번째 조항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랑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우상 숭배의 영이 가진 특징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랑은 관계에 있어서 우상 숭배가 제거되고, 인간이 모든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인정할 때에만 성립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우리 자시느이 행복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근원으로 여기게 되는 순간, 그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기초는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믿고 있는 바가, 당신의 인생에서 스치고 지나는 사람들과 상황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상황을 바라보는 당신의 관점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라고 생각하되, 선하다는 말이 나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해 주는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과 비극적인 사건은 무조건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런 일들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반백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잇어서도 힘겨운 싸움을 해 왔습니다. 하나님을 인간 중심적인 관점으로 생각하다 보니 그것이 인생에 대한 나의 사고의 틀을 형성시켰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간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을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고, 하나님도 인간과 같은 생각과 방법으로 일하시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똑같은 가치 체계를 가지고 계신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하심이란 나를 언제나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도 좋은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개념에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만일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다면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란 말입니까? 악한 사람들의 사악한 죄악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어떠한 분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깊이 있게 다루게 되겠지만, 당장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믿음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하신 구원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 19장 23-30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중 29절 "해면"은 바다의 돌이나 해초에 붙어사는 해면동물로, 흡수성이 강해 물기를 적시는 데 사용했습니다. 또한 "우슬초"는 벽이나 담 위에 자라는 박하과의 식물입니다. 정결 의식 때 물이나 피를 뿌리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지고, 속옷을 제비 뽑아 가집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 "내가 목마르다!"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예수님의 입에 대니 예수님이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고 영혼이 떠나가십니다. 예언의 성취(23-27절). 구원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사탄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을 군인들이 취하는 것은 시편 22편 18절 예언의 성취입니다. 이미 약 천년 전 다윗을 통해 하나님은 십자가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언하셨습니다. 당시 속옷은 통으로 무릎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옷으로, 소매가 짧거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속옷이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인 교회의 일치와 온전함을 상징합니다. 26절,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여자"로 호칭한 것은 여자의 후손을 통해 구원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과 관련됩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이시고, 마리아는 예언된 바로 그 여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에게 어머니 마리아의 봉양을 부탁하심으로써 아들의 본분까지 잊지 않으십니다. 제자에게 어머니의 봉양을 부탁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공생애적 사명뿐만 아니라 참 인간으로서의 도리도 모범적으로 준행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살아 계신 부모님 또는 어르신들을 어떻게 섬기는지 돌아봅시다. 구원의 완성(28-30절).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시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십니다. 이러한 목마름까지도 시편 22편 15절 예언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마지막까지 말씀에 순종하십니다.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예수님은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완벽히 성취하셨다는 뜻입니다. 십자가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완성입니다. 30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에서 "영혼"은 "영"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역에 언제나 주도권을 가지시고 행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하신 능동적 죽음입니다. "떠나가시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라라디도미"는 능동형으로, 예수님께서 "스스로 넘겨주셨다"라는 뜻입니다. 스스로 선택하신 죽음이기에, 예수님은 모든 것을 이루신 후에 영광스러운 승리의 의미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목적과 소명을 이루는 삶에는 영광과 상급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완수해야 할 사명은 무엇이 있는지 깊이 묵상하시길 축복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향한 구원을 완성하신 주님,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옷을 두고 제비 뽑던 군인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고통의 십자가 위에서도 오직 하나님 말씀을 성취하시고 끝까지 인간의 도리까지 잊지 않으셨던 주님을 굳게 믿게 하시옵소서. 생명을 다해 구원을 이루신 그 놀랍고도 완전한 사랑에 감사를 드리며 우리 도한 그 구원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고 더 나아가 세상에 담대하고 명확하게 널리 전파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십자가가 증거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은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내게 별 관심이 없으신 듯합니다. 내가 이렇게 부끄럽고 창피한 상황에 놓였는데도, 나를 돌아보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항변합니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증거,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믿을 수 있는 궁극적인 증거 곧 "십자가"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분은 최악의 명예 훼손을 당하셨습니다. 극심한 조롱과 수치를 경험하셨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께서 마치 벌레와 같은 취급을 받으셨습니다. 찰스 스펄전의 주석에 따르면, "사람에게 밝힐 때면 몸을 뒤틀 뿐, 어떤 저항의 능력도 없이 다만 고통할 뿐인 존재"로 십자가 위에 계셨습니다. 사람에게만 버림받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분, 아버지 하나님께도 버림받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뒤집어쓰시고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진노를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멸시를 받으심으로, 우리는 성동의 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영광을 받은 우리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셨는지가 우리의 가장 큰 감사와 찬양의 제목입니다.(예수님의 기도 학교/ 이정규 목사) |
상처를 받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십시오② 넷째, 과연 그 친구는 위선자일까요? 속으로 약간의 불만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정면으로 드러내야만 하며 표현해야만 바른 행동일까요? 아미도 그 친구는 그에게 약간의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여전히 친구로 생각하며 그 관계가 손상되는 것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이 형제 자신도 아마 어떤 살마에 대해서 속으로 약간 싫은 감정이 있어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내색하지 않은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일견 불쾌해 보이는 경험이나 사건에 있어서도 불쾌한 감정이나 나쁜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충분히 그 상황을 이해하며 우리의 마음을 넓혀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많은 경우에 직선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 방어적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쉽게 마음을 닫습니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주었던 많은 친절한 행위들을 잊어버리고, 우리의 마음을 더욱 좁게 만들어, 스스로 만든 고독과 상처의 감옥에 갇혀 버리게 됩니다. 이 형제는 잠시 동안 자기의 마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그의 영혼을 순간적으로 질식시켰으며,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아마 이 형제가 조금 더 고통을 겪고 조금 더 영혼이 성장한 다음에는 좀 더 지혜롭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반응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조금씩 그 묶인 것을 풀어놓을 때, 우리의 영혼은 풍요롭고 아름답게 성장되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옥을 형성하고 있는 근본 원리는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입니다. 천국은 하나님 중심, 다른 사람 중심의 사고방식에 의해서 형성됩니다. 항상 자기만을 위하며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지옥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 자기중심의 정도가 깊어질수록 그 사람의 마음의 고통도 심해집니다. 다음 주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게 하소서! 천국에 보화를 쌓아두라고 가르치시는 주님, 우리의 자난 날에는 예수님은 관심도 없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집중하는 삶이었습니다. 오직 우리 자신만을 사랑했으며, 우리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믿고 지냈었습니다. 우리 자신이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하시며,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암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는 확신을 갖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생명으로 옮겨진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어떤 부자가 자신에게 재물만 많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우리였습니다. 부자가 들어야 했던 그 말씀,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에 주목하게 하시옵소서. 그의 생명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의 넉넉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에게 그의 영혼을 그날 밤에 데려가실 것이라 하셨음을 우리 가슴으로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만일,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세상을 떠나지 않을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 우리의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질 것인가에 쏟았던 시간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행복을 소유의 넉넉함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행복은 세상의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의 부요를 찾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 대한 참된 지식과 믿음과 감사와 사랑과 순종에서 부요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시간으로 복을 느끼게 하시옵소서. 재물은 하나님께의 부요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줄로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의 복을 주셨으니, 이 복을 귀하게 여기고,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게 하시옵소서.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다해도 비교될 수 없는 영생을 주셨으니 간직하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돈으로 가질 수 없고, 저의 목숨으로도 가질 수 없는 영생을 간직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목숨이 끝나는 시간에, 하나님이 없이 모은 물질적 부요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지내는 시간에, 하나님께 부요하기를 소망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일에 욕심을 갖게 하시옵소서.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수고하는 삶을 기쁘게 받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항상 영향을 받는다..! 기도는 예민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의 인격과 행위에 항상 영향을 받습니다. 흠이 많은 마음에서 흠 없는 기도가 나올 수 없고, 삐뚤어진 행위에서 곧은 기도가 태어날 수 없으며, 더러운 사람이 깨끗한 간구를 올릴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구체적 사명을 이루라는 명령을 받고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요, 하늘나라의 대사들입니다. 기도의 사람들 역시 천사처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일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하고, 우리의 영성을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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