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534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4. 26. 11:29

예림의집 2534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의 제자 중 한 명이 내면의 성숙에 진력하지 않고 허영에 가득 차 외모를 꾸미는 것에만 신경 쓰자 하루는 그 제자를 불러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반성하기는커녕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스승님, 저에게는 그만한 물질이 있어 쓰는데 무슨 잘못입니까?" 그러자 제논은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요리하는 사람이 남들보다 소금이 많다고 만들던 음식에 평소 열 배가 넘는 양의 소금을 넣었다네. 자네는 그 음식을 먹겠나?" 과시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사람의 본성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적절한 것을 찾아 행하려는 중용의 덕은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품격은 과시가 아닌 중용과 겸손함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장모님은 모든 약을 끊으셨습니다.

며칠 지나서, 장모님의 단점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건강염려증입니다. 갑작스레 상경하다 보니 원래 드시던 약을 챙겨 오지 못했는데, 나중에 택배로 도착한 꾸러미를 보니 소쿠리 한 가득이었습니다. 언뜻 열댓 종은 되어 보였습니다. 점입가경, 장모님의 약품 리스트는 갈수록 늘었습니다. 케이블 TV에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 왜 그리 많은지, 어느 날 보면 광고에 나오던 그 약이 장모님 곁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관절 건강에 좋다는 약, 피부 노화 개선에 특효라는 약, 혈압과 신경계통을 시원히 뚫어준다는 약, 산양유성분이 들었다는 분말..
처가에 갈 때마다, 거실 바구니에 웬 약이 저리 많나 했더니, 그 정체를 알게 됐습니다. 예전에도 운동을 하시라 권했건만 “맨날 힘쓰는 게 일인디?” 하는 것이 시골 어르신들 말씀이었습니다. 육체노동으로 운동은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늙으면 약의 힘으로 사는 거여.” 끼니때마다, 알약을 한 움큼 삼키셨습니다. 가끔 병원에 가는 것을 빼고, 장모님은 바깥출입을 일절 안 하셨습니다. 재활치료를 위해서는 자꾸 움직여야 하는데도, 뉴스에 나오는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를 보시며 오직 거실 소파만 고집하셨습니다.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라,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연못과 정원, 운동시설이 있는데도 집 밖은 위험하다고 하셨습니다. 집에서도 꼭 마스크를 쓰셨습니다. 방역수칙 준수 1등 표창장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지럼증이 있다고 하여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몽땅 해주었습니다. “어머님, 지금 드시는 약이 너무 많아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습니다. 비타민, 칼슘 빼고 다 끊으세요. 그리고 운동도 하시고요.”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장모님의 또 다른 특징이 있으니, 의사 선생님 말씀은 어김없이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날 이후, 장모님은 모든 약을 끊으셨습니다.(봉달호)

그렇습니다. 저도 여섯 개의 건강식품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먹으면 간에 무리가 간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제부터 있는 것을 다 먹은 후에는 비타민, 눈 영양제, 오메가 3만 남기고 정리하려고 합니다. 저에게는 가장 시급한 것이 뱃살을 빼는 것입니다. 뱃살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했고, 저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아내의 가장 큰 근심거리이기 때문에 저에게 제 일 과제는 물론 사역이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뱃살을 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건강을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으신가요? 아무쪼록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단장 칼럼

불신앙을 인식하기②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부부가 자식들에 대한 우상 숭배의 죄를 고백하던 날이 얼마나 은혜로웠는지 모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행하는 징계와 꾸짖음이 부모를 즐겁게 하도록 만들기 위한 조각 기술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징계는 자녀들을 부모가 원하는 대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징계를 통해 자녀들을 훈계해야 하는 이유는 자녀들을 순종하도록 굴복시키거나 고집스러운 의지를 꺾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녀의 마음을 변화시키리라는 사실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집스러운 아이를 허락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를 살피시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굳이 우리 방식대로 하려고 우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만심과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자녀들을 억압하지 않을 때,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가로막혔던 벽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경직된 관계 대신 온화한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귀한 선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겉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말입니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를 용서하는 데 있어 시간을 끌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상 숭배의 죄를 고백하고 자녀들을 하나님이 보내 주신 완벽한 선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그 자녀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말라기 4장 5-6절의 말씀에서 약속하셨듯이, 하나님은 부모의 마음이 자녀들을 향해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서, 또한 자녀들의
마음도 부모에게로 돌아오도록 하십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라기 4장 5-6절 말씀을 읽어드렸습니다. 불신앙의 잔재가 우리의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고 발견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 신앙으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시급한 우리의 과제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이웃 사랑으로 증명하라!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말라기 2장 10-16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언약 백성으로서 성실하게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을 증명하라는 하나님의 권면입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 지음 받은 형제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형제에게 거짓을 행했고 이방 신의 딸과 결혼했으며, 아내에게도 거짓을 행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은 그들의 봉헌물을 받지 않으시고 그들을 끊어 버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이웃 사랑은 모든 성경의 주제인 십계명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불성실한 백성(10-12절).
언약에 성실하신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 또한 언약에 성실하길 원하십니다. 10절의 "거짓을 행하다"라는 표현은 "불성실하다"라는 뜻으로 언약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형제끼리 사랑하며 돕는 대신, 서로 거짓을 행하며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러한 형제간의 배신과 불성실은 곧 하나님에 대한 배신과 불성실로 연결됩니다. 불신앙은 우리의 삶 곳곳에 소소한 모습으로 깊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이방 신을 섬기고 이방 민족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야곱의 장막에서 끊어 버리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웃 사랑이 없는 하나님 사랑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언약에 대한 성실함은 이웃 사랑을 통해 증명됩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때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교회에서의 예배오 삶의 예배가 동일해야 합니다. 오늘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보아야 할 이웃은 누구인지 살펴봅시다.


아내에게 불성실한 남편(13-16절).
15절, 이스라엘의 경건한 영적 유산을 이어 나가길 원하시는 하나님은 이방인과의 결혼을 엄하게 꾸짖으십니다. 구약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모르는 이방 여인과 가정을 이루면, 자녀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쉐마 교육"(신명기 6:4-9)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종교의 악한 풍습이 가정에 유입되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순수성이 훼손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혼인 전의 순결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혼인의 대상입니다. 이웃 중에 가장 가깝고도 소중한 이웃은 바로 배우자입니다.
하나님은 학대받는 아내들의 눈물과 울음과 탄식을 들으시고 이것 때문에 남편들의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증인 되시는 언약입니다. 아내를 학대하고 불성실하게 대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는 불성실한 행동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남편을 미워하신다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미워하다"는 하나님께서 에서를 택하지 않으셨다는 의미로 쓰신 단어입니다. 배우자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우자를 향해 고쳐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증명하라고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명하신 주님의 말씀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주님이 허락하신 이웃을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대하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모든 부부가 결혼 관계의 증인이신 하나님이 지켜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배우자를 존중하며 가정을 소중히 지켜가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천국을 이루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영권을 잃어버린 시대


요즘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왜 그리스도인을 하찮게 봅니까?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는 한 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신자의 허약함을 알아 버렸습니다. 세상은 묻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당신들이 우리와 다를 게 무엇인가?" 이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우리 신앙은 힘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성도가 아니라 세상에 떠밀려 살아가는 존재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신자에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나에게도 있다면, 그것은 신자로서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가령 돈이라면 세상 사람 중에 더 큰 부자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우리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권력 또한 세상 사람들이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힘 앞에서 어떻게 하면 기죽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세상이 알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인만이 가지는 권세, 바로 "영권"이 있어야 합니다.
영권이란 무엇입니까? 영권은 영적 권세, 하늘의 권세,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된 권세로 영적 강자가 되는 실력을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 영권을 구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에 걸맞은 힘을 가질 때에 품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영권을 가진 그리스도인만이 세상 속에 주님의 위엄을 나타냅니다.(영권 회복/ 이규현 목사)

 

생각 다스리기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십시오!②


절대적인 선인과 악인은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믿음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좋았습니다. 무지하게 좋았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에 대해서는 "그는 착했습니다. 아주 착했습니다. 무지무지 착했습니다. 그는 다윗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그는 똘똘했습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압니다. 과외 공부 한 번 안 했는데도 그는 항상 100점만 맞았습니다. 그는 솔로몬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단정 짓습니다. 반면 사울이나 가룟 유다에 대해 쓰라면, "그들은 나쁜 놈들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못된 짓을 골라서 했습니다. 부모 속을 썩였습니다. 등록금을 떼먹고 유흥비로 다 탕진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모든 사람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못되었습니다. 어떨 때는 우리 자신이 보아도 너무 인정머리가 없고 교활하며, 어떤 때는 자신이 감동할 정도로 착합니다. TV에서 비춰 주는 감동적인 사건의 이야기를 보면서 울고, 끝나면 바로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냅니다. 선과 악은 우리 속에 공존합니다. 이렇게 천국과 지옥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공존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싸움은 외부에 있는 적이 아니라 우리의 속에 있는 어두움, 악의 요소, 잘못된 생각입니다. 바깥에 있는 악들, 타인의 악은 우리의 운명과 상관이 없지만, 우리 속의 처리되지 않은 악은 우리의 현실과 운명, 또 영원한 운명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깥의 적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잘못되고 상대방이 옳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짓이며 상대방이 진실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칭찬하는 쪽이 잘못된 쪽이며 우리를 비난하는 쪽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남 탓만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흑백의 논리에서 벗어나십시오. 절대적 선의 논리에서 벗어나십시오.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며, 진정한 싸움은 우리의 내부에 있음을 발견하고, 이 내부의 싸움에서 조금씩 승리해 나갈 때 우리는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고, 객관적일 수 있으며, 좀 더 진중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고(생각)의 틀일 넓히시기 바랍니다. 내 자신에 대해서나 남에 대해서 조금은 너그러워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넓은 마음의 공간에 자리 잡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의 횃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과거의 우리의 모습은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구원과 영생의 길은 그 문이 좁고 그 길이 협착하나, 멸망의 길은 그 문이 크고 그 길이 넓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주변에도 함께 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전도해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을 그렇다 치고, 참으로 많은 이들이 엉뚱한 주장을 하고,
이상한 논리에 심취되어 있는 것은 어찌할까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과 그 길이 넓은 것은 구원의 진리 외의 모든 사상들과 논리들이 여기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이방 종교와 철학들, 그리고 기독교의 이름을 방자한 모든 이단 종파들, 로마 가톨릭에서 여호와 증인, 몰몬교, 안식교, 통일교, 천부교까지 등 각종 사이비 종파에 매료당하여 복음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를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만이 구원의 문이요, 구원의 길이심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영생의 문은 좁고, 그 길도 협착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주님만이 구원의 문이요 그 길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시옵소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생명의 문이 되시고, 주님을 믿음에 영생에 이르는 길이라는 믿음을 확실히 하도록 성령님께서 강권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에게 만에 한 번이라도 예수님 외에도 구원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막아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님만을 믿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유일성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신 주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과
그가 택한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셨음을 믿고, 예수님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을 따르는 것은 좁은 문을 들어서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좁은 길을 걷는 것임을 새롭게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문은 우리의 신앙고백이요, 길은 신앙인의 삶이란 깨닫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고 이 길을 걸음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삶을 우리의 행실로 바꾸게 하시옵소서. 자신을 부인하는 데서 우리에게 생명의 삶이 시작되는 줄로 믿습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의 노래

복음 쪽지~㉾

복의 통로..!


우리는 이방인이지만 복의 통로로 사용되기 위해 이 땅에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복은 근원이 되어 이 땅에서 복을 끼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한국에 있든 미국에 있든 늘 불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면 우리는 전쟁 가운데서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복 많은 곳으로 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의 통로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 없는 땅으로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복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복의 통로가 됩시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