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18번째 이야기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미루지 않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백악관 옆에는 학교가 있었습니다. 링컨은 가끔 백악관 창가에서 학교 운동장을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즐겨봤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링컨이 창밖을 내다보니, 한 소년이 몇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울고 있고, 아이들은 그 소년을 가난뱅이라고 놀려대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가 그만 목숨을 잃었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홀로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깨끗한 복장과 구두를 반질반질하게 닦고 등교하라고 했지만, 소년의 구두는 너무 낡아서 광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링컨은 이 소년에게 선물해주기로 했습니다. 이튿날 소년의 집에는 커다란 선물 보따리가 배달됐습니다. 그 속에는 가족들에게 필요한 식료품들이 가득 담겨 있었고, 소년이 입을 새 옷과 새 구두가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소년은 광채 나는 구두와 멋진 새 옷을 입고 등교했고, 친구들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망설이지 마세요. 사랑은 지금 이 순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됩니다. ![]() |
우아하고 품위가 있는 인생 우아하고 품위 있게 살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돈이 해결해주리라 기대했습니다. 때마침 연봉 높은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고, 저는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 1년간 혼자 9천만 원을 썼습니다. 10년 전, 27세 때 일입니다. 당시엔 이만큼 돈을 쓰면 우아하고 품위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나였습니다. "공부 잘해서 좋은 회사 취직하고, 돈 잘 벌어 넉넉히 쓰면 완성된 삶이다"라는 믿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리서 우아하고 품위 있는 삶에 대한 믿음을 수정했습니다. "돈을 모아서 성공적으로 투자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새로운 믿음에 따라 목표를 세웠습니다. "32살에 2억 목표", 저는 끝내 달성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더 높은 목표를 세웠습니다. 역시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대로 나였습니다. 도대체, "그 우아하고 품위가 있는 인생, 그리고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싶었습니다. 그것들은 돈이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월급을 더 많이 받으면, 시원시원하게 소비하면, 투자에 순풍을 타면, 그러면 더 멋진 사람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는 늘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소비의 결과로 겪게 되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듯했습니다. 투자를 위하여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면서 의식이 더욱 확장되기도 했습니다. 돈에 대한 목표를 달성한 후에 뒤돌아보면, 여러 경험 속에서 꽤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일에 몰입하고, 야근하고, 투자 공부를 하고, 주식투자의 희로애락을 경험했던 그 모든 순간이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삶을, 돈과 연결 지으려고 부단히 애썼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떤 조건을 갖추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태도로 임하는가?"였던 것입니다. 우아하고 품위가 있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돈이 모아지기 전에 지금 바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돈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세웠습니다. 다만,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라는 집념에 사로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간순간 내딛는 발걸음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야 한다."라는 겁니다. 그렇게 물 흐르듯이 가다 보면 목표가 이루어져 있으리라는 새로운 믿음이 생겼습니다.(한주주) 그렇습니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삶,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망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일정한 액수의 돈을 모음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돈)에 대한 집념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우아하고 품위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여전히 돈입니다. 저의 생각은 돈에 대한 집념(집착, 욕심)을 아예 버려야 우아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돈이 아닌 사명에 목적과 삶의 즐거움을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돈은 어디까지나 일에 따르는 부수적인 결과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102-지옥② 불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옥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지옥에서 하나님은 그 거룩하신 진노의 충만함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은 그 어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주받은 자들에게 자신의 공의로운 형벌을 시행하시기 위해 지옥에도 계십니다. 그들은 온전히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옥을 분석하다 보면, 그곳이 잔인함이나 예사롭지 않은 형벌의 장소인 것처럼 보이곤 합니다. 그러나 지옥에는 잔인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잔인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잔인함은 범죄보다 더 엄하고 혹독한 처벌을 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잔인함은 공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당한 형벌을 가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은 분명히 정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시 말해 결백한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서 고통받지 않습니다. 지옥이 갖는 가장 무서운 면은 영원성입니다. 살마들은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그것이 결국에는 끝날 것을 기대하며 참아내지만 지옥은 그러한 희망이 없습니다. 성경은 지옥의 형벌이 영원하다고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이라는 말에 똑같이 "영원"이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형벌에는 고통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히 소멸하는 것이라면 고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육체를 가지고 영원히 지옥에 살게 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요한계시록 6장 15-16절을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악한 무리들은 저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신들이 무(無)가 되어, 존재하는 것을 영원히 멈추기를 간절히 바라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지옥은 영원히 불타는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 앞에서 영원합니다. 지옥의 고통스러운 고역은 피할 수 없고 쉬어 갈 수도 없습니다. 이점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에 감사하고 그분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지옥의 고통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그 어떤 비참함보다도 가혹합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관해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지옥에는 진노와 심판의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며, 그곳은 잔인함이 없는 완벽한 공의의 장소입니다. 지옥은 영원합니다. 거기서는 회개할 수도, 소멸될 수도 없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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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을 만나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누가복음 24장 13-35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시는 장면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시몬에게 보이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살아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이 가려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슬퍼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에 관해 기록된 모든 성경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두 제자와 함께 머물며 그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는 그제야 그들의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봅니다. 예루살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만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13-27절). 믿는 마음이 없으면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신 지 3일째 되는 날 곧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에, 두 사람이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들은 열두 제자에 속하지 않았어도 주님을 신실하게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고 마음가 생각이 여전히 예수님의 죽음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25절,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라고 하시며 그리스도의 곤란과 영광이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27절의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이란 모세 오경(토라)과 예언서(느비임)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모든 성경(구약 성경)"에 기록된 그분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성경 해석은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렌즈를 통해 읽고 묵상해, 모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신구약 전체의 핵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바로 우리를 위하여 죽이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알아봄(28-35절). 부활의 주님은 오늘도 슬픔과 낙심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으로" 믿음과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주니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믿음과 확신을 심어 주신 일은 무엇이 있는지 묵상합시다. 영적 눈이 밝아져야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두 사람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시며, 유월절 식사 때와 같이 떡을 축사하신 후에 떼어 주시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라져서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 기억이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확증합니다. 눈이 밝아지고 심령이 변화된 그들은 곧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날은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일요일)입니다. 그날 제자들이 모여 예수님의 부활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이야기는 말씀과 성찬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말씀과 성찬은 의심을 믿음으로 바꾸고,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며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가ㅔ 합니다. 우리의 삶의 급격한 변화는 주님의 부활과 말씀을 기초로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성찬에 참여하면서 얻는 유익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우리에게도 말씀을 풀어주시며, 부활의 소망을 주시는 주님,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할 때마다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 영혼의 눈을 밝히사 부활의 주님을 알아보고 거침없이 증언하게 하시옵소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부활의 주님과 동행함이 우리 평생에 힘과 능력, 기쁨과 소망의 이유가 되게 하시옵소서. 사순절을 지내면서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과 재림이 모두 우리를 위해서임을 깨닫습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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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문제 이상의 것 어떤 분이 사업에 크게 실패한 후 저희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성도는 예배에 나올 때마다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에는 대책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정을 들어 보니, 당장의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반대했습니다.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말씀을 붙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습니다. 그는 깊이 생각하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말씀을 붙든다고 해서 당장 먹을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생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현명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신 날, 다른 제자들을 뒤로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들이 먹고살 길을 찾아갔던 이유는,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이제 더는 그분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도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들과 동행하시고 그들에게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 실망해서 그분을 떠나려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마귀의 술책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말씀만으로는 이 세상을 살 수 없다고 속삭입니다. 눈을 들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예수님께, 그분 말씀에 생명과 능력과 모든 복음이 있음을 믿으십시오.(십자가의 승리/ 김서택 목사) ![]() |
부정적인 감정을 허용하지 마십시오! 어떤 아주머니가 슈퍼에 갔습니다. 우유 한 개만 필요했기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 계산대로 왔습니다. 계산대에는 많은 아주머니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바구니 안에 계산할 물건을 가득 쌓아 두고 있습니다. 그녀는 겨우 우유 하나만 계산하면 되니까 다른 분들이 살짝 양보할 수도 있을 텐데 아무도 양보를 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만일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운 사람이라면 앞의 사람에게 애교스럽게 살짝 물으면서 "죄송하지만 제가 먼저 해도 될까요?" 하고 양해를 구한 후 먼저 계산하고 나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몹시 내성적이어서 그렇게 처신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속이 상하지만 그녀는 꾹 참고 기다립니다. 간신히 그녀의 차례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다른 아주머니가 기어들어 바구니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녀는 기가 막히는데 카운터를 맡은 아가씨는 아무 말 없이 계산할 뿐입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몹시 기분이 상합니다. 그녀는 집으로 들어옵니다. 집이 몹시 어질러져 있습니다. 그녀는 딸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집안 꼴이 도대체 이게 뭐니! 좀 깨끗하게 하고 놀 수 없어?" 아이는 짜증을 냅니다. "엄마는 왜 오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나 지금 방금 들어왔단 말이야." 세상에는 불쾌한 일이 자주 생깁니다. 그러나 이 아주머니처럼, 그렇게 불쾌한 감정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요? 세상은 불친절한 사람, 무례한 사람, 경우가 없는 살마들이 아주 많이 있지만, 그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할 이유는 없습니다. 독약을 먹는 것이 몸에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왜 나쁜 감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다른 사람이 양보하지 않거나 새치기를 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그로 인하여 불쾌한 마음을 담는 것입니다. 그저 이렇게 생각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아, 저분이 몹시 바쁜 모양이구나!" 또는 "오, 하나님께서 내게 인내 훈련을 시키시는구나!" 또는 "나도 이와 같이 남을 배려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지도 몰라."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악하고 불쾌한 감정과 에너지가 내 안에 들어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공연히 남의 잘못 때문에 나의 생각과 영혼을 망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내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는 것! 이것이 자신의 영혼과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일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속에 침투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 |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며 사랑하게 하시고, 속죄의 은혜를 받은 공로를 의지하여 주님의 이름을 사모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의 강렬하신 임재로 하나님을 그리워하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에게 호감을 갖게 하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자 예배를 사모하게 하시옵소서. 모든 성도가 코로나19를 속히 극복하고 교회에 모여 예배하기를 소망합니다. 과거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할 때, 한 몸이라는 감정을 갖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죄악의 자리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던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찬양으로 영광을 드리는 날이 속히 오도록 간구합니다.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듯이,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도 자녀 삼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과 함께 주님께 예배하게 하옵소서. 비록 몸은 모이지 못하지만 서로 사랑하면서 천국 백성의 한 지체로 지내게 하시옵소서. 교회 공동체가 예수님의 보혈을 찬송하면서 서로가 한 지체로서의 사랑을 나누며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우리들은 육체적으로는 남남이지만 주님의 보혈로 의의 형제를 이루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대하듯 섬기게 하옵소서.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는 다양한 이들이 모여 주님의 몸을 이룸을 믿게 하시고, 어떠한 형편의 지체이든지 주님의 사랑을 통하여 주님의 은혜 안에서 한 몸이 되기를 다짐하게 하옵소서. 이 땅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가 교회 안에서 형제가 되게 하신 은혜를 묵상하게 하옵소서. 신앙적으로 교회 공동체에서 부족한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서로 공급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성경 읽고, 함께 예배하는 기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사탄이 우리의 교회 공동체에 침투하지 못하게 단단히 막아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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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타이밍..!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신뢰는 삶의 어려운 고비를 넘을 때마다 하나님께 더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먼저 앞서지 않고 기다리며 정직하고 순전함 가운데 서 있을 때 하나님의 정확한 타이밍에 예비된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왠지 부수적이고 간접적인 것처럼 느껴지거나 하나님보다 현실과 상황을 더 믿고 있을 때, 우리는 늘 마음 한편에 불안을 달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에 순응합시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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