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517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3. 28. 11:31

예림의집 2517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긍정적인 생각을 훈련하라

어릴 때부터 명석한 두뇌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불의의 사고가 찾아왔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나간 사냥에서 그만 양쪽 눈을 다 잃는 총기사고를 겪게 됐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아들이 두 눈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아버지는 비탄과 절망에 빠졌고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본 그는 우울하고 힘들었지만 애써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비록 양쪽 눈은 잃었지만, 머리는 남아있어서 괜찮아요." 그 후로 그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절망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늘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했고 일부러 기쁜 듯 활기차게 행동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기쁜 척이었던 내면에 진짜로 기쁨이 가득 차올랐고 잊고 있던 꿈에 대한 열정도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훗날 영국에서 경제학자이자 국회의원이 되었고 체신부 장관까지 지냈습니다. 경제와 정치에 큰 공헌을 한 그의 이름은 헨리 포세트입니다. 긍정적인 태도는 인생을 행복으로 이끄는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삶에는 아름다운 일들만 가득하지 않은 것처럼 위기의 순간에도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 행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 네가 돌아와 차고(車庫)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네가 운전하며 달리던 가로수 길이 거기 있을까? 네가 없어도 바다로 내려가던 하얀 언덕길이 거기 있을까? 바람처럼 스쳐간 흑인 소년의 자전거 바큇살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을까?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아침마다 작은 갯벌에 오던 바닷새들이 거기 있을까?(이어령) 시집을 받고 나서, 딸아이와 함께 이 작품을 읽었습니다. “무슨 시 같아?”라고 물어봤더니, 열다섯 살 아이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헤어졌다는 것 같아.” 
아이는 대답과 시집을 남기고 일어섰고, 저는 아이가 남긴 말(언어)들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헤어졌다"라는 말은 정확하게 맞는 표현이며, 동시에 조금은 틀린 표현입니다. 이 시에서는 헤어졌지만, 이제 다시 만나러 가면서 쓴 시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쓴 이어령 시인은 크고 단단한 태산 같았습니다. 강연장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몰려와도, 눈빛은 형형했고 연설은 끊임이 없었습니다. 대단하고 강한 분, 지성(知性)의 장(場)이 "사상의 전쟁터"라면, 그는 단연 대장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의 영역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단단한 지성의 뒤편에는 여린 내면이 있습니다. 헤겔, 칸트가 두렵지 않은 이어령은 사라지고, 아프고 무너지고 후회하는 인간이 고개를 듭니다. 이런 시는 진정성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이어령 시인은 2022년 봄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딸은 딱 10년 전 봄에 먼저 떠났습니다. 그리움은 10년 동안 고여 있다가, 시인의 마지막 시집, 가장 마지막 시가 되었습니다. 딸이 살던 헌팅턴비치에 가도, 아버지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직접 자식을 찾아서 가셨습니다.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가 시집의 서문입니다.(나민애)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도 때론 천국의 실재(實在)가 의심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말했듯이 단단한 태산처럼 크신 분이 믿는 하늘나라인데, 제가 뭐라고 그 나라를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니, 두 말할 것 없겠지요. 하지만,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이라서 의심도 하게 되지만, 어쨌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신 어른께서, 그러나 감히 우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신 분께서 하신 말씀이니, 더욱 확실히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미래에 대한 소망이 굳건히 가지고 살아갑시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102-지옥①

우리는 "전쟁은 지옥이다.", 혹은 "완전히 지옥이었어!"라는 표현을 듣곤 합니다. 물론 이러한 표현들은 문자 그대로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혹독하고 무성운 것을 지옥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 중 지옥에 견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고통 중에 가장 지독한 것을 상상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상상은 지옥의 무시무시한 실제에 미치지 못합니다. 지옥이라는 말을 흔해빠진 저주의 말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 개념을 가볍게 취급하거나 심심풀이로
보려는 인간의 어설픈 시도입니다. 성경에는 지옥의 개념보다 더 소름 끼치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너무 인기가 없기 때문에 거의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부터 그것을 배제시키고 있습니다. 지옥에 관한 가르침은 대부분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충성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이 교리입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벗어나거나 약화시키려고 애쓰고 있으면 그중에 하나로 지옥을 별것 아닌 곳으로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옥을 바깥 어두운 곳, 불못, 울며 이를 가는 곳, 하나님의 복으로부터 영원히 단절된 곳, 감옥, 구더기도 타거나 죽지 않는 고통의 장소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형벌에 대한 이러한 회화적인 이미지들은 우리로 하여금 "과연 이러한 것들을 무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상징에 불과한가?"라고 질문하게 만듭니다. 저도 가끔 이것들이 상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위안이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상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옥의 죄인은 불못이라는 이미지로 표현된 지옥의 실재를 거처로 삼는 것보다
문자 그대로 불못에 사는 게 더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정말 상징이라면 우리는 지옥의 실재가 상징보다 더 심하다고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징은 그 상징이 담아낼 수 있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높거나 정도가 더 심한 것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지옥을 묘사하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상징들을 사용하신 것이 그것들을 단순하게 상징으로 보려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지 않습니다. "지옥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을 표현하는 상징이다."라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부활, 그 말씀의 성취..!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누가복음 24장 1-12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성경의 절정이고, 우리의 인생의 최대 중요 사건인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기록입니다. 저자 누가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그분 말씀의 성취라고 강력히 역설하고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안 보입니다.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그분이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여인들이 전한 말을 제자들이 믿지 않으나, 베드로는 무덤에 가서 빈 무덤을 확인하고 그 일을 놀랍게 여깁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의 생각으로 감당하지 못할 큰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1-7절).
예수님은 예언하신 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아침, 누구도 주님의 부활하심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 여인들은 슬픔에 잠겨 시신에 바를 향품을 준비하고, 제자들은 각기 제 갈길로 떠나 버렸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좋은 가르침을 남기고 돌아가신 성인(聖人)이 아닙니다. 살아계셔서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부활의 주 하나님입니다. 제일 먼저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의 빈 무덤이 그분의 부활을 확증합니다.
그날(주일) 새벽에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갑니다. 부활을 예상하지 못한 채, 그들은 단지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려 합니다. 도착하니 무덤은 비어 있고, 두 천사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려 줍니다. 갈릴리에 사역하실 때 예수님이 그분의 수난과 부활을 여러 차례 말씀해 주셨는데(9:22, 18:33), 천사들은 그 말씀을 기억해 보라고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그분이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기에 우리는 이제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증인(8-12절).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살려 주는 영"(고린도전서 15:45)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부활 신앙을 지닌 그리스도인은 죽음의 문제를 부활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죽음은 가장 강력한 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완벽하게 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충성으로 끝까지 에수님을 따른 여인들은 부활의 첫 증인이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고,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실을 제자(사도)들에게 알립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해 허탄한 말로 듣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더디 믿는 미련한 자들입니다(24:25). 그러나 베드로는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요한복음 20장 3-5절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달려간 것으로 나옵니다. 베드로는 빈 무덤과 시신을 쌌던 세마포를 목격하고 놀랍게 여기며 돌아갑니다. 후일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부활의 증인으로서 맹활약을 펼칩니다. 부활의 증인에게는 복음이 역동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는 "부활의 자녀"요(20:36), "부활의 증인"입니다(24:48). 상식과 이성으로 제한하지 않고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일 예수님의 부활을 구체적으로 마음에 그리며 묵상합시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 예수님의 시체를 보러 간 이들에게 예수님의 실체를 보이신 부활 사건이 얼마나 놀라운지요.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찾는 어리석음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찾게 하시옵소서.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경험하고 일평생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오직 주님의 부활에 힘입어 소망을 얻음을 고백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자유를 선포하는 전도


1972년 괌의 한 밀림에 괴물이 산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주민들이 음식이나 옷을 도둑맞는 일이 잦아지자 신고를 했고, 수색 중에 일본 패잔병인 "요코이"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일본이 패전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무려 28년 동안 동굴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가 숨어 지내던 동굴에는 "요코이 동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만약 존전 직후 누군가로부터 전쟁이 끝났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는 그 깊은 동굴에서 나와 고국인 일본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허망한 일입니까?
이와 비슷한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모르고 아직도 죄의 동굴에서 헤매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참 많습니다. 우리가 사명감을 갖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타까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요코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이요,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 소식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죗값을 치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놀라운 구원의 소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 보험과도 같은 이 복음을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공포에 떨고 있는 영적 요코이들이 스스로 나타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밀림 속 동굴을 찾아가 직접 이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합니다.(생활 전도/ 전도왕 이병욱 의사)

 

생각 다스리기

생각이 쌓이면 소원이 됩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상 18장 44-45절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서 하나님께 비를 달라고 기도했을 때, 처음에는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조그마한 구름이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을 캄캄하게 뒤덮고 큰 비를 내렸습니다. 이와 같이 생각은 처음에는 아주 작은 신념의 형태로 사람의 뇌에 수신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점점 커지며 마침내는 그의 심령 전체를 사로잡는 감정, 욕구, 열정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나 소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성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리는 로맨틱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화나 소설의 이야기고, 일반적으로 살마의 감정은 그렇게 순식간에 불타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대충 괜찮은 약간의 호감을 느끼는 정도입니다. 그 후에 여러 만남들, 대화들, 함께 공유했던 여러 가지의 경험이 쌓여 그 인상과 느낌은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오는 것입니다. 일단 그 상대방의 기운이 내 속에 자리 잡으면, 그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가 없이는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객관적인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상대방의 에너지가 내 안에 들어왔고, 나는 이미 중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에너지가 불량 에너지라는 것을 머리로 이해한다 해도, 일단 심령을 차지하게 되면 그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생각이 욕구가 되기 전에, 생각이 아직 머리에 있을 때에, 생각이 아직 가슴까지 내려오기 전에, 아직 객관적인 사고가 가능할 때 충분히 생각해야 합니다. 당신의 심령을 함부로 빼앗기지 마십시오. 당신은 자신의 주인입니다. 쉽게 노예 상태가 되는 것을 좋아하지 마십시오. 오직 바른 에너지, 바른 기운, 바른 감정, 바른 영만이 당신의 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바른 분별력을 달라고 주님께 항상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횃불

쉼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이제 우슬초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던 그날, 우리의 심령에는 말로 다 말할 수 없는 평안함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 평안함은 처음으로 누려보는 은혜였고, 우리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주님을 찬양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과거 죄 안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었던 삶이었음을 고백하며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죄의 짐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하고, 죄에서 벗어나 보려고 갖은 노력을 쏟아도 오히려 저의 삶을 더 무겁게 했던 시간들을 떨쳐내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죄 때문에 도무지 자유로울 수 없었던 불쌍한 인생에게 주님께서 선물이 되어 주셨음을 믿습니다. 죄의 짐에 눌려서 허우적거리던 인생을 불러주시고, 참 자유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찬양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주님만이 베풀어 주실 수 있는 은혜라 깨닫고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대신하여 죄를 해결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그 쉼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가 쉼을 얻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했었지만, 모든 것이 헛된 일이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쉼을 주신 주님의 품에서 지내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품에서 지내도록 멍에를 메고, 주님을 배우라 하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하시옵소서. 주님께 배우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는 온유하시고 겸손하시므로 스스로 낮아지셨고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품성을 주시옵소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며,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으로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의 노래

복음 쪽지~㉾

화평의 언약을 맺으실 때..


당신이 회개하고 하나님과 당신 사이의 불화가 끝나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피조물과 화평의 언약을 맺으실 때, 비로소 당신은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기 죄의 무게를 느끼는 죄인의 얼굴을 보십시오. 그의 표정과 하소연에는 두려움이 묻어나옵니다. 그의 평안은 고민으로 바뀌고, 삶은 윤기가 사라져 까칠하게 되고, 그의 눈에서는 잠이 떠납니다. 친구들이 당신을 떠나고, 세상 모든 즐거움이 당신과 작별의 악수를 나눌지라도 당신의 죄는 당신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모든 죄를 토설하고 그분의 긍휼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