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513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3. 21. 13:50

예림의집 2513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내 뺨을 때릴 수 있겠는가?

조선 말기의 왕족인 이하응은 조선왕조 제26대 고종의 아버지입니다. 이하응의 아들 명복이 12세에 임금에 오르게 되자 이하응은 대원군에 봉해지고 어린 고종을 대신해 섭정하였습니다. 그런 이하응이 젊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몰락한 왕족으로 기생집을 드나들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술집에서 추태를 부리다 금군 별장 이장렴이 말렸는데 화가 난 이하응이 소리쳤습니다. "그래도 내가 왕족이거늘 감히 일개 군관이 무례하구나!" 그러자 이장렴은 이하응의 뺨을 후려치면서 큰 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한 나라의 종친이면 체통을 지켜야지. 이렇게 추태를 부리고 외상술이나 마시며 왕실을 더럽혀서야 되겠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뺨을 때린 것이니 그리 아시오." 세월이 흘러 이하응이 흥선대원군이 되어 이장렴을 운현궁으로 불렀습니다. 이장렴은 부름을 받자 죽음을 각오하고 가족에게 유언까지 했습니다. 이장렴이 방에 들어서자 흥선대원군은 눈을 부릅뜨면서 물었습니다. "자네는 이 자리에서도 내 뺨을 때릴 수 있겠는가?" "대감께서 지금도 그때와 같은 못된 술버릇을 갖고 있다면 이 손을 억제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장렴의 말에 흥선대원군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조만간 그 술집에 다시 가려고 했는데 자네 때문에 안 되겠군. 하지만, 내가 오늘 좋은 인재를 얻은 것 같네." 흥선대원군은 이장렴을 극진히 대접하고 그가 돌아갈 때는 문밖까지 나와 배웅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위대장 나가시니 앞을 물리고, 중문으로 모시도록 하여라." 오직 나라를 생각하는 충신과 지혜로운 주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내면의 상태를 바라볼 수 있어야!

먹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압박하고 철저하게 절제하고 싶어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쉴 줄 모릅니다. 쉴 줄 모르는 사람들의 뇌는 많이 지쳐 있습니다. 뇌를 스마트폰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고성능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배터리가 나가버린 것과 같습니다. 지쳐있는 뇌에서는, 세로토닌이나 다른 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이 생기고, 감정과 충동조절의 어려움이 생깁니다. 이때, 심리적인 허기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뱃속에서는 ‘음식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칩니다. 식사한 직후에도 배가 자꾸 고플 경우에는 "내가 심심해서 먹게 되는구나!", "지금 짜증이 나 있구나!", "지금 내가 몹시 화가 났구나!" 등, 여러 가지 감정을 살펴볼 여유를 챙겨야 합니다. 단 것을 찾는 우리 몸은, 어찌 보면 "나 좀 쉬게 해 달라!"라는 외침과도 같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스위치를 끄는 일"입니다. 식욕조절 호르몬은 잠자는 것과 깊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밤에는 몸과 정신이 쉬게끔 반드시 일하는 스위치는 끄고, 수면 스위치를 켜야 합니다.  
매일 아침 산보를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하늘을 잠시 쳐다보면서 자연 속에 가만히 머물러보시기 바랍니다. 지친 뇌를 가진 사람은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통이 안 되고 창조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주변을 돌아보면서, 잊고 지냈던 지인들에게 선의를 베풀어보시기 바랍니다. 단 것을 먹는 행동은, 내면에 깔려있는 수많은 문제들 중에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아주 작은 현’에 불과합니다. 그 행동의 이면(裏面)에 깔려있는 내면의 상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유은정)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식욕을 조절할 수 있는 뇌의 구조가 그만 지쳐서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을 때에 허기를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몸이 지쳐 있으면 정신력이 강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몸은 건강한데 정신력이 약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요컨대, 지덕체(智德體)가 고루 건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지혜(智惠)는 성경말씀을 가까이할 때에 생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 방송의 또 다른 콘텐츠 <생각 다스리기>를 통해 우리의 깊은 내면을 면밀히 관찰하시길 바랍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99-하나님의 나라


세계 역사 속에는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정부가 있었습니다. 가장 흔한 형태로는 군사력으로 통치하는 독재, 헌법으로 통치하는 공화정, 다수결로 통치하는 민주정, 그리고 군주의 권한이 제한되는 입헌 군주제와 군주의 말이 곧 법이 되는 절대 군주제의 두 가지 군주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 군주제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제한하는 외부의 법이 없습니다. 피지배자들을 다스리기 위해 그들의 동의를 받아낼 필요가 없습니다. 국민 투표나 다수결에 제한받지도 않으십니다. 그의 말씀이 곧 법입니다. 그의 통치는 절대적으로 주권적입니다.
구약에서는 그 나라가 미래에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약은 세례 요한의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3:2)라는 선포로 시작됩니다. 그 역사적인 상황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마태복음 3:10), 그리고 "손에 키를 들고"(마태복음 3:12)라는 표현 등으로 묘사됩니다. 두 이미지는 모두 매우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설교의 강조점 역시 천국 복음 선포에 있습니다. 주님은 천국이 권능으로 임했으며 그의 백성 가운데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승천하실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은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의 현재 지위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의 주권에 무지하거나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보이는 증거를 주는 것이 교회의 임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여셨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소수의 충성된 종들과 함께 망명 생활을 하는 왕가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은 자신의 통치를 이 땅과 온 우주에 선포하시고 완성하실 것입니다.
신약은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이며 또한 미래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왔으며 또한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가지 관점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실현된 것으로 보거나 완전히 미래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신약의 메시지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보좌에 오르신 왕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무릎 꿇게 될, 영광 중에 임하실 그의 승리의 재림을 고대하며, 기도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베드로의 통곡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누가복음 22장 54-62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서 심문받으실 때에 멀찍이 따라가던 베드로가 예수님과 관계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사람들의 세 번의 지적에 모두 부인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시자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 들어가 뜰에 불을 피운 사람들 가운데 앉습니다. 사람들이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며 그 도당이라고 하자, 그는 에수님을 모른다며 세 번 부인합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보시자, 그는  하신 주님께서 이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나 박에 나가서 심히 통곡합니다.


베드로의 부인(54-60절).
우리는 위기 앞에서 쉽게 넘어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대제사장 집으로 끌고 갈 때 베드로는 54절, "멀찍이" 따라갑니다. 각기 도망갔던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베드로는 주님을 끝까지 따르려고 나름대로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 가운데 앉아 불을 쬐던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힘으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신 후 자신을 높은 자리에 앉혀 주리라 기대했던 야심 있고 자신 만만한 으뜸 제자로 자부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예수님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 같이 무력한 모습입니다. 당면한 위기와 고난 앞에서 그의 믿음과 가치관이 어떤지 선명히 드러납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유아 목적이 분명할 때 자신의 안위가 아닌 주님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셨는데, 제자인 우리가 어찌 다른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이유는 아직 그가 온전한 제자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주님에 대한 신의를 우리의 안위보다 우선시하는 믿음이 있는지 깊이 묵상합시다.


베드로의 통곡(61-62절).
주님은 실수하고 넘어진 자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하자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닭이 웁니다. 61절, 그때 주님은 "돌이켜" 베드로를 보십니다. 아무 말이 없으시지만, 그분 눈빛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용서하시며, 이전에 그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라는 권면까지 담은 사랑의 눈빛입니다. 베드로는 작은 위기에도 예수님을 쉽게 부인했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향한 에수님의 놀라운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전임 대제사장 안나스의 심리를 받으신 후 현직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려가셨는데, 그 도중에 베드로를 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빛에는 용서와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생각난 베드로는 박으로 나가 자시느이 실수와 죄로 인해 심히 통곡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앞선 22절에서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라는 회복의 말씀도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할 때 죄를 통회하게 되며 참된 회복이 시작됩니다 우리를 회개하게 하고 회복시킨 주님의 말씀은 무엇이 있는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하시고자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주님! 사순절 기간을 지나면서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실 재림을 묵상합니다.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던 주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합니다.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경솔한 장담과 교만을 회개합니다. 주님을 아는 즐거움이 어느 날 우리의 생명에 위험을 가져온다 하여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의 싸움을 마치는 그날까지 우리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사랑이 생각나는 은혜


유학생 청소년들을 위한 집회에 강사로 갔을 때, 한 청년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한 그는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고 합니다. 믿음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는데, 그는 그런 기도가 부담스러워 어머니에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자신의 장래를 위해 고생하며 사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 청년의 삶을 바꿨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수고를 알지 못했을 때는 철없는 아이 같았지만, 어머니의 피땀을 보고 나서는,
속 깊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집회나 강연을 하다 보면, 이 청년의 어린 시절 같은 모습을 가진 이들을 자주 봅니다. 그들은 자시느이 죄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이 와닿지 않기에 회개도 헌신도 하지 않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의 미래를 위해 궂은일을 해서 좋은 옷도 입히고 교육도 시켰는데, 어느 날 자식이 친구들 앞에서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입니다. 생명을 바쳐서 나를 키워 준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의 고난과 수고, 그분의 사랑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아파합니다. 그런 심정으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자 할 때, 예수님을 위해 죽기도 함 살기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전적 의존/ 김길 목사)

 

생각 다스리기

생각은 목숨까지 좌우합니다①


폐결핵으로 다 죽어 가던 한 청년이 어떤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서 많은 감동을 받고, 영적 충전을 얻고, 목사님의 기도까지 받은 후 그의 몸은 회복되었습ㄴ이다.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는데 그는 기적적으로 몸이 좋아졌던 것입니다. 숨도 쉬기 힘들고 걷는 것도 어려웠던 그는, 아주 가벼워진 몸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과 같이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3년이 지난 후 갑자기 병원에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는데, 결과는 몹시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폐가 없어요. 한쪽 폐는 아예 없어졌고, 다른 쪽도 거의 기능이 상실되어 있어요. 도대체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군요." 만약 이 청년이 침착하고 평안한 사람이며 자신의 마음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었다면 별로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글쎄요, 저도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군요. 하나님의 손이 저를 붙잡고 있었으니까 살아 있을 수 있었겠지요. 폐가 없다니 유감이네요. 하지만 여태까지 잘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괜찮겠지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랬다면 별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에 청년은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내가 폐가 없다니!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집으로 돌아간 그 청년은 며칠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들었던 극단적으로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러한 비슷한 사례를 겪은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대 의학에 대한, 의사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거의 절대적이기 때문에, 설사 의사가 오진을 했다고 해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죽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현대 의학이나 인류가 발전시키고 축적시킨 모든 지혜를 전부 다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완벽하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우리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어떤 과거의 통계나 이론을 완전하게 신뢰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부정적인 의견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더욱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의사나 의학에 대해서 불경죄를 범하는 것은 아닐 터이니까요. 그러면 우리의 건강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내일 계속..!)

기도의 횃불

성령을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으로 오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지옥불의 심판을 받아도 마땅했는데, 허물의 사함을 받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가려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갑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로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물이 되셔서 목마름이 없게 살아가도록 해 주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을 구주로 믿게 하신 분은 성령님이셨음을 고백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좋아하게 하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경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심에 대한 경험은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의 몸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린다는 말씀은 그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킨 것이라고 깨닫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해 주셨던 대로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모든 신자들 속에 계셔서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동안에, 우리가 경험하게 될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오늘이라는 한 날은 성령님의 임재, 내주 하심으로 가득 차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모셔 들인 이후, 우리의 메마름이 그쳤고,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풍성함을 누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 은혜의 감격을 고백하며 찬양합니다. 주님 오늘 긍휼을 베푸셔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주님의 명령을 따르게 하시옵소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쁨으로 받아 사명자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의 노래

복음 쪽지~㉾

일이 기도보다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람


기도의 골방에서 멀어지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조차 그런 잘못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경계해야 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욱 그래야 합니다. 일이 기도보다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 일이 먼저라고 해서 일 다음에 항상 기도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들은 기도를 아예 포기하게 됩니다. 기도가 없다면 인간은 책임질 일과 어려운 문제로 둘러싸인 이 세상에서 슬픔과 고통에 짓눌려 하나님 없이 비참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