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501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3. 2. 11:59

예림의집 2501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호박벌의 비행

호박벌은 몸길이가 평균 2.5cm밖에 안 되는 작은 체구를 가졌습니다. 그런 호박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1초에 250번 날갯짓을 해서, 하루 평균 200km 이상 되는 먼 거리를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곤충입니다. 체구와 비교하면 천문학적 거리를 날아다니는 셈입니다. 사실, 호박벌은 날 수 없는 신체구조로 되어 있는데 몸통은 크고 뚱뚱한 데 비해, 날개는 작고 가벼워서 날기는커녕 떠 있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호박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비행을 합니다. 어떻게 그 작고 뚱뚱한 몸으로 기적 같은 비행을 하는 걸까요?
그리고 그 엄청난 거리를 날아다닐 수 있는 걸까요? 호박벌은 자신이 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오로지 꿀을 모으겠다는 일념이 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목표는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거친 파도와 역경을 극복할 힘이 됩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너무 큰 목표를 정해 놓고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에 고개를 숙입니다. 목표를 정하되 계획을 차근차근히 준비해 가세요.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아무 문제가 없는 집이 과연 있을까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인 부모와 현실의 부모 사이의 간격이 심해지면 "부모를 바꾸고 싶다!"라는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심리를 "가족 로맨스"라고 했습니다. 은희 씨는 가족 로맨스로 인하여 힘들어하다가 상담실을 찾은 경우입니다. “제 친구네는 가정형 편도 좋고 부모님 두 분이 화목하세요. 우리 부모님은 ‘밥은 같이 드시는데, 각방 쓰신 지 8년’이 넘었어요. 친구네 집과 우리 집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집이 과연 있을까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랍니다. 
은희 씨 부모님은 비록 각방을 쓰지만 식사는 함께 하고 있지 않나요? 그것만으로도 화목한 가정이라 할 수 있어요.” “저는 선생님의 말씀이 와닿지 않아요.” “원래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법이랍니다. 은희 씨는 지금 느끼지 못할 겁니다. 현재 은희 씨는 친구네 집이 갖고 싶으니까, 은희 씨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은희 씨네 집을 갖고 싶어 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은희 씨에게 주문한 것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가족에 대한 환상(판타지)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족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은 진짜 불행해서가 아니라 화목한 가정에 대한 환상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위 10%의 삶을 평균이라 여기고, 거기에 미달된 자신의 삶을 혐오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을 후회와 원망으로 낭비하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매일같이 폭력이 난무하고,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 하루도 빠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 아니라면, 서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사는 집도 행복한 가’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가 지킬 것은 지켜주고, 너무 간섭하지 말고,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지는 가정 말입니다.(유은정 박사)  

그렇습니다. 우리 속담에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본능을 극복하지 못하면 불행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을 발견하거나, 아니면 찾아내야 합니다. 남의 것을 아무리 부러워하고 탐을 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 각 사람에게 적절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달란트를 잘 활용할 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허락하십니다. 우리에게 하찮게 여겨지는 작은 것들이 하나님께는 가장 적절하고 적당한 것입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87-사랑


사람들은 대체로 사랑이라는 말을 수동적인 의미로 사용합니다. 즉 우리가 사랑에 "빠진다"라고 표현하는 주된 이유는 사랑을 특별한 느낌이나 감정과 결부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랑은 훨씬 더 능동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우리가 해야만 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고 배우자를 사랑하고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히브리어 "아헤브"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필레오"와 "아가페"라는 헬라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필레오는 친구들 간의 우정을 말하며 여기서 형제애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필라델피아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반면에 에로스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적이고 에로틱한 사랑을 말하며 우리가 로맨스와 결부시키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세 번째 유형의 사랑, 즉 아가페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기 유익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 사랑의 특성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아가페는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랑하지 않고 투기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용서하는 데 빠릅니다. 또한 선과 진리를 구하며, 보호해 주며, 소망하며, 언제나 참아줍니다. 이 사랑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사랑은 감정 이상이며 활동적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에 대해서는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심 없는 사랑을 이 땅에 반영해야 하는 거울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하나님 백성의 품성, 겸손함과 순수함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8장 9-17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는 하나님 백성이 갖추어야 할 품성인 겸손함과 순수함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11절, "토색"은 돈이나 물건을 억지로 빼앗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며 기도한 바리새인과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기도한 세리의 비유를 드십니다. 둘 중에 하나님께 이롭다 하심을 받을 자는 자신을 낮추고 기도한 세리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어린아이 같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뜻합니다.


세리의 겸손함(9-14절).
의의 기준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백성의 존경을 받던 사람으로, 스스로 경건하다고 자부했습니다. 반면 세리는 동포의 고혈을 착취해 로마에 바치는 민족 반역자로 낙인찍혀 멸시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성전에 올라가 기도할 때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서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지만,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한 체 가슴을 치며 하나님의 자비아 긍휼을 구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 사심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13절,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은 자신의 몇 가지 허물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자신이 죄 덩어리라는 깨달음에서 나오는 존재론적 시인이어야 합니다. 이 고백 속에는 죄에 대한 혐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자아에 대한 절망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 고백의 진위에 다라 용서와 심판을 결정하실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다시 묵상합시다.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떠할까요?


어린아이의 순수함(15-17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멸시하는 태도와 종교적 교만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매사에 겸손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자신의 부족함, 연약함을 바라보고 진정한 자기 절망, 전적인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초자연적인 복을 누리는 필수 요소입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순수함과 의존성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를 데려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풍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귀하게 여기시며,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를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또 어린아이가 생존을 위해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함과 절대 의존 신앙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세리의 겸손함과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날 하나님 앞에 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떨리는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헛된 교만을 찢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는 애통함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과 삶을 어루만지시는 사랑의 손길을 기뻐하며 의심 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시옵소서. 어리석고 교만한 바리새인의 모습을 경계하게 하시옵시고, 언제나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겸손함과 순수함으로 살아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돌이켜 깊은 곳으로..!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겉을 꾸미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형식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영혼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영성을 외면한 어떤 신학도, 교회도, 신학자도 21세기에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작하지 않은 내면은 황폐해지고 잡초가 돋아납니다. 영성은 외적 활동보다 내면의 작업에 집중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외면하면 궁핍해집니다. 영성은 상품처럼 단번에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깊이 성숙시켜 나가지 않아 찾아오는 영적 고갈은 탁한 물을 들이켜 표면적 신앙으로 표류하게 합니다. 깊이 없는 영성은 붕괴의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의 신앙은 전투적이고 과업 지향적이었습니다. 따뜻하고 안식을 누리는 삶의 관조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열정은 넘쳤지만 안으로 여물어 감에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이미 신자들의 깊이 없는 요란함과 가벼움에 실망한 지 오래입니다. 영적 세계의 풍요와 깊이에 천착하지 못한 것을 가슴 아프게 회개해야 합니다. 영성의 강은 너무도 깊은데 신자는 얕은 곳에서만 안주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눈물로 회개하며 삶을 돌이켜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기독교 영성의 강은 깊기 때문입니다.(광야, 창조의 사간/ 이규현 목사)

 

가정교회를 말하다

가정교회에 대한 질문과 대답②

어제에 이어서, 교회 건물은 또한 "성전 사고방식"을 낳아 교회를 상자 안에 가도고 신자들이 그들의 이웃을 복음 증거의 대상으로 보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현재 교회의 관행들을 재고해 봄으로써 건물 신축이나 임대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정이나 자원을 실질적으로 없애 나가는 노력을 진행해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전 세계적으로 교회의 구조 개혁을 단행하고 계십니다. 셀교회 내지 가정교회가 곳곳에서 자라고 있고, 이러한 형태의 교회들이 이제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으로 이루는 교회적인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가정교회 운동은 성스러운 교회의 3가지 신화를 없애고 사도적인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 셀교회보다 효과적입니다. 다라서 전통적인 교회도 좋은 것이지만 셀교회는 더 좋으며, 가정교회 운동은 가장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제 주장의 목표는 우리 시대의 교회가 신약성경의 실행과 전략적 효율성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재고하고,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인 죽어가는 여혼은 살리는 것입니다. 자 아제 두 번째 질문으로 가보겠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셀모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가정교회와 같은 것이 아닌가요?"라는 질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지역 교회들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소그룹 형태의 셀모임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칭찬하고 장려할 일입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교회는 이런 것을 교회의 부수적인 선택사항으로 간주하는 편이며, 가장 중요한 모임은 역시 일명 대예배라고 부르는 주일 오전 예배입니다. 이런 형태의 구조를 "소그룹을 가진 교회"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인 셀교회는 가정 셀모임과 주일 예배를 동일시 하지만, 여전히 셀을 모교회를 위한 부수적인 모임으로 봅니다. 또한 셀모임은 모교회에서 충분히 독립적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합법적으로 독립된 교회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독자적으로 성찬과 세례를 행할 수 없으며 중요 결정을 단독으로 내릴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목회자나 당회의 권한에 속한 영역입니다. 셀모임이 진정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해도 여전히 독립적인 교회로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셀교회는 '소그룹으로 된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신약성경 형태의 가정교회는 그 자체로 온전한 교회이며 모 교회에 속하지 않습니다. 대신 함께 계획하고 기도하며 동역하는 가정교회 네트워크의 일부분이 됩니다.

기도의 횃불

고난 받으신 주님을 기억하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아버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보셔서 저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삼으심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 저희의 생각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주님의 보좌 앞을 향하게 하시고, 저희 감정이 깊고 깊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경배하게 하시옵소서. 진실한 기도와 영혼의 찬양을 드릴 수 있게 하시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게 하시옵소서. 이 시간의 방송을 통하여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는 예배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 미련하고 완악한 저희들을 꾸짖어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저버린 양심을 성령님의 불로 태워주시옵소서. 이 시간, 정결함을 받아 주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에 형식보다 진실이 묻어나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생각한다 하면서도 환경에 정신을 빼앗기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며 땅을 보는 것으로 낙을 삼았던 저희들입니다. 용서로 보듬어 주시고 긍휼로 덮어주시옵소서. 주님! 고난받으신 주님을 생각하며 기도와 묵상 속에 보내기를 원합니다.
기도와 묵상 속에 고난받으신 주님의 모습이 저희 심령에 더욱더 깊숙이 파고들게 하시고, 주님의 피 묻은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저희의 죄를 철저히 돌아보며 심령을 깨뜨릴 수 있는 은혜가 있게 하시옵소서. 날마다 고난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 많이 기억함으로 그 주님의 흔적이 저희들에게도 남을 수 있게 하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모습이 저희의 삶 가운데서 보이게 하시옵소서. 더 많은 낮아짐을 경험할 수 있게 하시고, 더 많은 순종을 경험할 수 있게 하시고, 더 많은 헌신을 경험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뼛속 깊숙이 자리 잡은 모든 아픔들을 성령의 불로 녹여 주셔서 주님을 의뢰하는 인생이 얼마나 복된 인생인지 깨닫게 하시옵소서. 코로나19를 비롯하여 세상의 어려움과 고난이 몰아닥치는 삶이지만 주님 안에서 참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우리를 구원의 삶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오늘 나눈 말씀과 찬양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의 뜻을 찾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승리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몸을 깨뜨려 섬길 때마다 기쁨의 은혜를 맛보게 하시옵소서.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의 노래

복음 쪽지~㉾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


왜 우리의 삶에 진정한 기도가 없어 보일까요? 그리스도께서 중보기도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쏟으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기도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까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를 어려움 속에서 건지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실패하는 사람은 평생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의무 수행, 봉사, 영적 성장에 모두 실패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도우시는 방법이 바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성공합시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