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00번째 이야기
햇볕이 될래요! 어느 이른 봄날,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왔습니다. 공원 놀이터에 어린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여 앉은 아이들이 자기의 꿈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내 어린 시절의 한 자락을 보는 것 같이 왠지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한참을 말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야, 너는 뭐가 될래?" "빨리 말해, 궁금하단 말이야." 그러자 뭔가 결심한 듯 벌떡 일어서더니 햇볕이 잘 드는 벽으로 뛰어 들어가 기대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난 햇볕이야, 너희들 모두 이리로 와봐." 어리둥절해하던 아이들은 모두 달려가 그 아이 옆에 서서 외쳤습니다. "와, 따뜻하다." 어른들도 어릴 적에는 각자 다른 꿈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인생을 살아왔음에도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면 어느 순간 꿈이 닮아 있습니다. 왜일까요? 시간이 순수함을 빛바래서 그런 걸까요? 오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에게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는지.. ![]() |
삼일절(3.1절) 이야기 오늘은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렸던 날을 기념하는 삼일절입니다. 당시 제국주의를 외치며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우리 땅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조선인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고, 말도 안 되는 수탈을 저지르는 만행을 일삼아왔었습니다. 새파란 청춘의 청년들은 총을 메고 일본군에 강제 동원되어야만 했고, 세상을 다 알지도 못하는 어린 소녀들은 일본군의 무자비한 성적 수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채 다 피우지도 못한 꿈은 그렇게 가차 없이 짓밟혔습니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지옥 같던 그날, 우리 민족은 나날이 피폐해지는 잔혹한 삶의 그림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의식이 트여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 어두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일본의 위압적인 감시에도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나라 안에서 활동이 어려워졌을 때는 만주와 연해주가 새로운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의 한인 사회에서는 안창호 열사 등이 중심이 된 "대한인 국민회"가 조직되었는데요. 이들은 우리 민족의 의식을 고취시키며 이렇게 차근차근 독립 전쟁을 준비해나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는 "대동단결 선언"을 통해 국민 주권에 입각한 임시정부 수립과 이를 위한 민족 대회 소집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이듬해 제1차 세계대전의 종식은 우리 민족으로서는 독립운동에 매우 유리한 조건임이 분명했습니다. 식민지 주민의 독립할 권리를 국제적으로 천명한 "민족자결주의"선언에 우리나라 애국지사들은 크게 고무되었고, 본격적으로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 대표들과 학생 단체 대표들 총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만들고 3.1 운동을 위한 체계적인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마침내 1919년 3월 1일 정오, 역사적인 독립 선언서가 낭독되었습니다. 독립선언서 낭독 이후로 거리에 모인 우리 민족은 “만세, 만세, 대한 독립 만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장악했고, 이 만세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무려 2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이 행렬에 참가한 인원만 해도 20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결국 1919년 3월 1일 대대적인 반일본 민족적 저항을 통해, 일제의 폭력적인 통치를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동안 인정되지 않았던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부분적으로나마 인정되기에 이른 것은 물론, 1920년대 다양한 대중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3월 1일 삼일절, 7월 17일 제헌절, 8월 15일 광복절, 10월 3일 개천절은 우리나라 4대 국경일입니다. 국경일이란 국가적인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법으로 만들어진 날로 온 국민이 함께 기념을 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이런 뜻깊은 날 중 하나인 삼일절입니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86-성령의 열매 성령의 열매는 성화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안타깝게도 가장 무시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외적인 것에 몰두함입니다. 학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교실 안에서 웅성거리고 투덜거리면서도 정말로 시험을 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시험은 기술과 성취도와 지식을 측정하는 공정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몇 등급이 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외적 기준으로 성취한 것들을 가늠해 봄으로써 자신의 진보를 측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악담을 하고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는 등의 기준이 종종 영성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상용됩니다. 진정한 기준(성령의 열매)은 때로 무시되고 최소화됩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걸려든 덫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다소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진정한 기준으로부터 뒷걸음질합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들보다 인간의 성품에 요구하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즉 경건한 인내를 갖는 것보다 악담하는 입을 다무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둘째는, 은사에 몰두함입니다. 우리를 거룩함으로 이끄시고 우리 안에 열매를 맺게 하시는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영적 은사를 주십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을 때도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령의 열매보다 은사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고린도에 보낸 바울의 서신에서 이점을 충분히,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의로운 불신자들입니다. 성령의 열매에 있는 덕목들이 비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더욱 많이 나타날 때, 우리는 성령의 열매로 성화의 진보를 측정하는데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보다도 더 훌륭한 온화함과 인내를 보여주는 비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성령님과 관계없이 "성령의 열매"를 가질 수 있다면 어떻게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의 영적 성장을 측정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생기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등의 덕목들과 비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는 덕목들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비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행복을 찾는(이기적인) 동기에서 이러한 것들을 행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열매를 나타낼 때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의 의미는 그의 삶이 성령에 의하여 통제된다는 말입니다. 비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이러한 영적 덕목을 인간 능력의 한계만큼만 보여줄 따름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열매를 이야기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라디아서 5:22-23). 이러한 덕목은 그리스도의 삶을 특징짓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다면 성령의 열매를 드러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성향을 다시 만드는 일이 포함됩니다. 성령에 의한, 평생의 성화의 과정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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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 18장 1-8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은 기도할 때의 자세와 방법을 비유를 들어 가르쳐 주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주님께 기도할 때에 항상 마음속에 염두에 두어야 할 귀한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에게 한 과부가 원한을 풀어 달라고 계속 간청하니, 재판장이 마지못해 들어줍니다. 불의한 재판장과 달리 하나님은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 주실 것입니다. 8절, 기도에는 믿음이 절대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끈질긴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1-5절). 성도는 공의로우신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며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부와 재판장" 비유에서 과부는 약자를, 재판장는 권력자를 상징합니다. 성경은 재판장을 의로우신 하나님에 비유하곤 하는데, 여기서는 6절, 불의 한 자로 묘사합니다. 불의한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합니다. 그는 단지 과부의 집요한 호소를 번거롭게 여겨 그녀의 원한을 풀어 줄 뿐입니다. 재판장을 향한 과부의 끈질긴 태도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지를 정학하게 가르쳐 줍니다. 불의한 재판장과는 달리 하나님은 비교할 수없이 자비롭고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응답이 더뎌도 성도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내를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공의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믿음의 기도는 응답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절대 순종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끈기 있게 떼쓰는 기도가 아니라 참된 믿음의 기도입니다. 과부의 간청을 들어준 이유를 되새겨 봅시다. 오늘날 우리가 인내와 끈기로 공의의 하나님 앞에 간구할 일은 무엇이 있는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택하신 자들과 의로우신 하나님(6-8절). 예수님은 재판장과 하나님을 대조하십니다. 불의한 재판장의 응답과 선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비교하는 것은 "작은 것이 참이라면 큰 것은 얼마나 참이겠는가"라는 논증입니다. 불의한 재판장은 과부의 간청을 오래도록 외면했지만, 하나님은 밤낮 부르짖는 택함 받은 자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8절,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이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사람을 볼 수 있겠느냐?"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수사학적 질문이 당시의 제자들보다 우리의 마음을 더 깊숙이 찌르는 것은 우리 시대의 성도들이 헌신보다는 누림을, 거룩함보다는 화려함을, 십자가 고난보다는 영광을 구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에게 참된 믿음을 발견하실 수 있을까요? 소모품이 수치를 당하고 진품이 영광을 누릴 날이 속히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재림 날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품고 믿음으로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날 낙심되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금 믿음의 기도를 계속할 일을 무엇인지 묵상합니다!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당부하신 주님, 기도에 게으르고 쉽게 낙심하며 조급해했던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바람과 아픔을 들으시고 완벽한 시간에 선하게 응답하실 것임을 확신하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인내의 부르짖음을 멈추지 않게 하시옵소서. 기도만이 살 길이고, 기도만이 생명이며, 기도만이 우리의 힘이 됨을 굳게 믿게 하시옵소서. 끈질기게 간청하던 과부처럼, 끝까지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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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기도의 유익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필요를 알고 채워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적극적인 기도 활동을 권하셨습니다.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이 결코 요행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의 결과라는 것을 느끼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고대했던 선물을 통해 우리는 선물 주신 분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응답을 귀히 여기며 유익하고 보람 있게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더 굳건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기도와 응답의 연쇄 작용으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기도와 응답은 진학, 결혼, 취업과 같은 인생 중대사만 이루어지는 단발성 사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해서 응답받고, 또 새로운 기도를 해서 새로운 응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거룩하고 복된 연쇄 작용이 습관이 될 때, 우리는 순순히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끈질긴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점차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한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셨다는 것, 내가 하나님을 향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향하셨다는 깨달음의 은총을 얻게 됩니다. 터널을 뚫는 것을 보셨습니까? 양쪽에서 뚫고 나가다 만나면서 관통이 됩니다. 끈질기게 기도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기도가 깊어져 하나님 뜻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산상 수훈, 삶으로 읽다/ 한기채 목사) ![]() |
가정교회에 대한 질문과 대답① 첫째, 가정교회가 아닌 전통적인 교회는 잘못된 것인가? 답: 하나님은 늘 그러셨듯이, 지금도 사람들을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는 데 전통적인 교회들을 사용하시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전통적인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돌을 던질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통에 의해 굳어진 이른바 "대성당(큰 교회 건물)" 교회 형태를 고수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대성당 교회"란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성스러운 건물에서 소수의 전문 성직자들의 지휘 아래 성스러운 예식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저도 그런 체제하에서 오랜 시간 부교역자로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개인 신자나 교회 전체가 전략적이고 성경적으로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막는 3가지 신화가 있습니다. 첫째 신화는 "성스러운(거룩한)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학교에 공부한 직업적 목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와 반대로,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그들의 은사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에 교회의 비전을 둡니다(베드로전서 2:4-10, 고린도전서 12:7-12, 27-30). 분명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 성경에서 벗어나지는 않은 일입니다(사도행전 13:1-3; 디모데전서 1:5-9). 하지만 이 리더십이 피라미드 형태로 계급화된 결과로 교회에서 신자들의 참여와 은사의 발휘가 제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오늘날의 단독 리더십 구조는 1세기에 가정교회의 네트워크를 관리했던 무급 장로들의 동등한 권한 행사와는 대조됩니다(사도행전 20:17-21; 디도서 1:5). 물론 성경 진리의 수호와 바른 가르침을 위해서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 동의합니다. 저 또한 총신대 양지 캠퍼스에서 열심히 신학공부를 하던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그때의 공부가 지금의 목회 생활에 큰 도움이 됨을 고백합니다. 둘째 신화는 "성스러운 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배"라는 단어를 들으면 소수의 주도적인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예식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그것이 유익할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구성원은 그저 구경꾼에 불과한 청중으로 만들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모임은 보여주기 식의 행사에 그칠 유려가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성경적인 가정교회는 열려 있고 상호적이며 참여 지향적인 모임을 가질 수 있고(고린도전서 14:26; 에베소서 5:19; 골로새서 3:16; 히브리서 10:25), 모든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고 관계성을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셋째 신화는 "성스러운 건물"에 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대로인 교회가 되려면 많은 수가 모일 수 있는 전용 건물이나 대규모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건물의 유용성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사도행전의 증언과 교회 역사는 건물이 교회 개척 운동과 복음화 또는 제자훈련에 필수 요소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며, 때로는 장애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교회 건물은 또한 "성전 사고방식"을 낳아 교회를 상자 안에 가두고 신자들이 그들의 이웃을 복음 증거의 대상으로 보지 못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내일 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
나라와 민족을 지켜 주소서!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의 생명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복을 누리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오며 찬양을 드립니다. 저희로 하여금 주께서 저희 가운데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 기쁨으로 드리는 산 제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하나님을 향한 저희들의 눈이 열리고, 입이 열리고, 또 마음의 문이 열리게 하셔서 저희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저희 입술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저희 마음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게 하시옵소서. 주를 찬양함이 우리의 모든 삶의 기쁨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민족에게 평화와 자유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나라의 역사 속에서 고난과 어둠의 고비마다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때로는 주님의 채찍이 아프기도 했지만, 때로는 주님의 질책이 무섭기도 했지만, 모두가 주님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변함없는 그 사랑이 지금도 저희를 지키시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나라의 역사와 개인의 삶이 모두 주님께 달렸기에 오늘도 머리 조아려 주님의 긍휼을 바랍니다.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언제나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옵소서. 주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각종 절기를 지키게 하신 것은 압제와 고통, 헐벗음과 굶주림 가운데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대대로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와 같이 저희들도 삼일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고 민족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게 하시옵소서. 대한민국의 주권을 보장받게 해 주시고, 지금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까지 기꺼이 희생한 선조들의 애국정신과 헌신을 잊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애국심을 심어 주시옵소서. 지금 이 민족이 누리는 자유와 평등과 평화 속에는 선조들의 고귀한 희생이 혈관이 되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며 사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이 나라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평화적인 통일을 위하여 서로 노력하게 하시고, 이 나라에 어서 속히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오기를 기도합니다. 이 나라가 통일이 되지 않는 한 전쟁의 불안은 계속될 것이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와 안식은 있을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의 평화를 위하여,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이 땅의 코로나19의 위협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불안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하여 모두가 힘을 합치게 하시고, 슬기롭게 극복하게 하시옵소서. 더 이상 이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방역당국과 정부와 의료진과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극복을 위해 단결하게 하시옵소서. 오늘 함께 나눈 말씀과 함께 드린 찬양과 기도를 통해 주님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시고, 영적 무장하게 하여 주시사, 하나님의 좋은 구사로 세워 주시옵소서. 하나님만을 이지하며 굳게 믿고 나아갑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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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순종..! 100%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 없이는, 우리가 인생의 백지 수표에 서명해서 그것을 주님께 넘겨드리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듯을 듣고 분별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는 이유는 그분으로부터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듣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 계획표를 백지인 채로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것을 주저합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작성한 계획표를 보시고 결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는 편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 생각해 봅시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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