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98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2. 25. 12:16

예림의집 2498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어미 원숭이의 사랑

어느 숲 속에 어미 원숭이가 새끼 두 마리를 키우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태어난 새끼 두 마리 중 유독 한 마리를 더욱 사랑하여 늘 안고 다녔습니다. 어미의 관심을 받지 못한 다른 새끼 원숭이는 혼자서 외롭게 나무를 오르내리며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 숲에 사는 다른 원숭이들이 습격해왔고 어미 원숭이는 평소 사랑하는 새끼가 다칠세라 더욱 꼭 껴안고 피해 다녔습니다. 한참 후 이웃 원숭이 무리가 물러갔습니다. 어미도 한숨 돌리며 품에 안고 있던 새끼를 본 어미는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꼭 껴안고 도망 다닌 탓에 새끼가 숨이 막혀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혼자서 이 나무 저 나무를 피해 다닌 다른 새끼 원숭이는 살아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솝우화 "어미 원숭이의 사랑"은 어미의 과보호나 편애는 오히려 자식에게 해롭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꽃병에 꺾어둔 꽃보다 들판에 피어나는 꽃의 생명력이 더 강한 것처럼 오로지 곁에 두고 지켜주려 하는 것은 부모의 욕심일 수 있습니다. 자녀뿐만 아니라 소중한 대상일수록 관계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며 시련이 좋은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인생의 짐은 너무 무거웠습니다.

“선생님!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킬 땐, 아빠가 좀 나서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이가 저에게 싸가지 없이 굴 때도, 남편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요. 어떨 때엔 제가 아이들을 혼냈는데, 남편이 저 몰래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치킨이나 피자를 사 먹이고 올 때도 있어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고 하던데, 그럴 땐 남편이 정말 미워 죽겠어요.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제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커갈수록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서 다루기가 버거운데,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요?
제발 도와주세요. 왜 제 인생은 산 넘어 산일까요?" 결혼 15년 차, 40대 중반의 김 아무개 씨의 하소연입니다. 중학생이 된 딸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딸이 엄마에게 대들기 시작한 데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하여 등교 수업 대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는데, 유심히 지켜보니 수업은 고사하고 늘 게임만 하고 있어서 싸가지 코칭을 요청해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코칭을 시작하고 보니, 아이들 문제보다 남편과의 관계 회복이 더 시급해서 부부 상담으로 전환했습니다.
또, 막상 부부 상담을 시작하니, 김 씨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편에게만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개인상담으로 전환해서, 그녀와 상담하게 되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녀가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하소연하는 말마따나, 그녀가 짊어진 인생의 짐은 너무 무거웠습니다.(출처; 가정과 건강, 이병준/상담학 박사)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자녀는 부부가 합심해서 낳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그 낳은 자식도 합심해서 양육해야겠지요.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사실은, 자녀가 없기 때문에 부모들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녀 양육에 대해 분명히 교훈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을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또 잔소리를 늘어놓아, 반항심을 일으키거나 분노를 품게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주님의 사랑이 담긴 훈계와 조언과 충고로 키우십시오." 에베소서 6장 4절의 현대어 번역입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84-안식일

하나님은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다른 날과 구분하시며 하나님께 바치는 거룩한 날로 정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시내산에서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구약에서는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매우 큰 죄였습니다. 안식일(Sabbath)이라는 말은 "일곱 번째"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몇몇 사람들이 토요일만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약성경에 나온 예수님의 부활의 날인 주의 날이 일요일(안식 후 첫날)이기에,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칠일 중 하루"라는 안식일의 원칙이 손상되지 않은 채 사도들에 의해 지켜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안식일 준수에 관한 문제는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식일에 상거래나 노동을 하지 말고 쉬라는 명령에 동의합니다. 또한 안식일은 공동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에 특별히 집중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하늘나라에서의 우리의 안식을 소망하며 기뻐하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오락과 봉사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은 안식일의 오락을 권하지도, 금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오락이 안식일을 세상적으로 범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반면 휴식과 원기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보다 조금 정도가 덜한 논쟁은 봉사에 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안식일에 특별한 사역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범을 그리스도인이 안식일에 적극적을 봉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암시적인 명령으로 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의 모범이 그러한 점을 증명하기는 하지만 허락과 요구는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봉사를 안식일에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안식일인 주일 하루만큼은 하나님께 더욱 집중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안식일의 의미를 살펴보자면 첫째,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마태복음 12:3-8). 둘째, 안식일 준수는 철저하게 하니님 중심이어야 합니다(요한복음 5:9-18). 셋째,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마가복음 2:27). 주의 날인 안식일은 생명을 살리며 매인 자를 구해주는 날입니다(누가복음 13:16). 그러므로 구제와 전도의 날인 것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청지기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누가복음 16장 1-18절).

함께 읽은 본문 중 6절, "말"은 "방"(열왕기상 7:26)과 같은 양으로 약 22리터이고, 7절, "석"은 "고르"(열왕기상 4:22)와 같은 양으로 약 220리터입니다. 16절의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 전체를 일컫는 대명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 청지기가 직분을 빼앗기자 사람들의 빚을 감면해 준 지혜로운 행동으로 칭찬받은 비유를 드십니다. 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해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에 바리새인이 비웃자, 예수님은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여기고 높임을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경고하십니다.

지혜로운 청지기(11-13절).
예수님은 청지기 비유로 재물 사용에 대해 교훈하십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자 주인이 그를 해고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앞날을 고민하던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빚 일부를 감면해 줍니다. 당시에는 지주가 소작농에게 과도한 이자를 부과하는 것이 간행이었기에, 아마도 청지기가 주인의 원금에 손실을 주지 않으면서 자신이 챙길 몫(이자)을 감면해 주고, 이로써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날을 준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빛의 아들들은 청지기로 대표되는 "이 세대의 아들들"이 행하는 기민함과 담대함, 그릭 재물 사용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성도는 불의한 재물 앞에 진실해야 하며, 재물보다 하나님을 택해야 합니다. 13절,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시고 주인이십니다. 헬라어로 "섬기다(둘류오)"는 "종(둘로스)"라는 단어의 동사형으로 "종이 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으나(로마서 6:17).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의에 대해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분이 바뀌고 주인이 바뀌었다는 점에 감사합시다!

율법과 하나님 나라(14-18절).
성도는 이제 하나님의 종으로(베드로전서 2:16), 순종의 종으로(로마서 6:16), 그리고 의의 종으로(로마서 6:18) 하나님만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 하기 위해서는 돈과 재물에 "아니요!"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겉모습이 아닌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 앞에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그들은 돈을 좋아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습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들의 악함을 꿰뚫어 보십니다. 그들의 삶은 회칠한 무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율법과 선지자(구약)", "하나님 나라 복음(신약)" 사이의 분수령으로 두시면서 사람이 진정으로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돈이나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임을 강조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율법의 폐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이 항구적 연합으로 남편과 아내를 묶는 것처럼, 하늘가 땅이 존재하는 한 율법도 복음과 함께 소중히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물을 가지고 지혜로운 청지기 역할을 잘 감당하고, 돈이나 명예를 하나님 나라보다 더 중히 여기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지혜로운 비유로 청지기의 본분을 가르쳐 주신 주님! 재물의 올바른 사용 방법을 성경에서 배워 일상에 적절히 적용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아 알게 하는 통로로 재물을 흘려보내길 소망합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흡족하게 해 드리는 충서스러운 청지기가 되게 하시옵소서. 모든 일에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게 하시고, 겸손하고 진중한 마음자세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복음적 비즈니스


던 플로우(Don Flow)는 자동차 영업의 관행을 깨고 복음의 스토리 라인을 따른 좋은 모델입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영업에서 추구하는 바는 최대한 고가에 차를 팔아넘기는 것입니다. 세일즈맨들 역시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할 것처럼 보이는 잠재 고객을 물색하고, 회사에 유리한 방식으로 소비자를 잘 구슬리는 방식으로 수입을 올립니다. 하지만 던은 달랐습니다. 그는 비전을 품었습니다. 그는 고객이 가장 품질 좋은 차량을 갖게 하는 데 초점을 두고 판매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회 관계망과 상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풍부한 백인 남성들에 비해, 역성과 소수 민족들이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던 플로우는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조건으로 차를 팔기로 결심했습니다. 회사 측의 저항도 있었지만, 덕은 업게 전체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주도적 행동을 했습니다.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잘못을 범하지 않거나 눈치를 보며 빈둥거리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실에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일과 일터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곰곰이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적인 세계관에 담긴 가치와 의미를 일을 통해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일에 관계된 모든 사람과 회사 구성원의 삶 전반에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그것이 일터에서의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팀 켈러의 일과 영성/ 팀 켈러)

 

가정교회를 말하다

결론: 가정교회가 답이다!


가정교회는 신약 성경 시대에 출현하여, 바울의 모든 교회의 예배와 삶을 지배했고, 150년까지 기독교 신앙을 로마 제국 전역에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세기 중엽 이후 가정교회는 조금씩 변화를 경험했지만, 4세기 초까지 가장 보편적인 교회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 이후에 바실리카들이 세워지면서 가정교회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바실리카라는 교회 건물의 등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교회에 대한 이해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심각한 질적 변화와 왜곡을 가져왔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는 성도의 모임이 아니라 건물로 이해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했는데(고린도전서 3:16; 고린도후서 6:16), 나중에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복수(複數) 리더십과 리더십의 평등은 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성직자 계급 제도에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일종의 구약적인 제사장 제도가 다시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셋째, 은사 중심의 사역이 사라지고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시작되었습니다. 성소(강대상)와 회중석의 구분은 그런 변화를 반영합니다.
넷째, 예배는 모든 성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축제에서 성직자가 중심이 된 의식으로 전환되고 평신도는 수동적인 관람객으로 전락했습니다. 다섯째, 바울의 가정교회에서 통합되었던 예배와 삶이 분리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많은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에서 형식적인 종교인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여섯째, 주의 만찬이 애찬에서 분리되어, 공동 식사가 아니라 제단 의식이 되었습니다. 일곱째, 공동체 안에서 은사를 통한 나눔은 없어지고, 이제 주교에게 나아오는 것과 그의 음성을 듣는 것과 성례식에 참여하는 것만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심각하게 뒤틀리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가족 공동체의 특성을 상실하고 개인주의가 교회 안에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변화들과 함께, 성경에 나타난 원래 교회의 모습인 가정교회는 이제 불법 모임으로 선언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360년과 370년 사이 어떤 시점에서 열린 라오디게아 회의는 가정집에서 주의 만찬을 행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주교나 장로는 가정집에서 주의 만찬을 행해서는 안 된다"(canon 58). 얼마나 성경에서 멀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점에서 성경 이후에 생겨난 교회 전통이 성경을 정죄한 것입니다. 물론, 신약 성경 이후 교회의 발전은 모두 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변화 속에서도 교회의 본질을 유지되고 보존되어야 합니다. 사실, 바울은 교회 건물과 제도화된 성직자 계급이 없었어도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무엇이 결핍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진 회피할 수 없는 도전은, 새로운 교회 전통 속에서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본질을 어떻게 회복하느냐는 것입니다. 가정교회의 회복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기도의 횃불

쉼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이제 우슬초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던 그날, 우리의 심령에는 말로 다 말할 수 없는 평안함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 평안함은 처음으로 누려보는 은혜였고, 우리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주님을 찬양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과거 죄 안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었던 삶이었음을 고백하며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죄의 짐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하고, 죄에서 벗어나 보려고 갖은 노력을 쏟아도 오히려 저의 삶을 더 무겁게 했던 시간들을 떨쳐내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죄 때문에 도무지 자유로울 수 없었던 불쌍한 인생에게 주님께서 선물이 되어 주셨음을 믿습니다. 죄의 짐에 눌려서 허우적거리던 인생을 불러주시고, 참 자유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찬양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주님만이 베풀어 주실 수 있는 은혜라 깨닫고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대신하여 죄를 해결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그 쉼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가 쉼을 얻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했었지만, 모든 것이 헛된 일이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쉼을 주신 주님의 품에서 지내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품에서 지내도록 멍에를 메고, 주님을 배우라 하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하시옵소서. 주님께 배우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는 온유하시고 겸손하시므로 스스로 낮아지셨고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품성을 주시옵소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며,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으로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의 노래

복음 쪽지~㉾

기도가 먼저이다..!


다른 모든 일보다 기도가 먼저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나쁩니다. 주께 구하지 않고 어떻게 개인과 교회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것입니까? 기도를 첫째로 여기십시오! 계속 그렇게 하십시오. 기도에게 두 번째 자리를 배정하면 승리는 사라지고 패배만 남습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다" 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말에는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말라", "온 힘을 쏟아 끝까지 기도하라"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먼저 기도 골방에서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