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95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2. 21. 10:14

예림의집 2495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내 생각과 같은 사람

세상을 살다 보면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경험합니다. 그런데 내 생각과 항상 같은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저마다 생김새가 각자 다르듯 살아가는 모습도 다르며 살아가는 사고방식과 비전도 다릅니다. 서로 맞추어 가며 살아가는 것이 세상사는 현명한 삶이지만 내 생각만 고집하고 타인의 잘못된 점만 찾아서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먼저 남을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게 좋습니다. 분명 자신도 남들의 입에 오를 수 있는 행동과 말로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부부 싸움의 진정한 승자는?

영락교회 고 한경직 목사님은 "부부 싸움을 하지 않았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젊었을 땐 모르겠으나, 60이 넘어서는 안 한 걸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어느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서면서, 목사님은 항상 사모님의 눈치와 안색을 먼저 살펴본답니다. 그래서 좀 이상하다 싶으면 “그저 내래 잘못했지요..”라면서 인사를 대신합니다. 사모님이 “내가 뭐라 했소?”라고 말하면 “그러니까, 내래 잘못했다는 거지요..”라면서 또 사과합니다. 그러면, 사모님은 말없이 지나간다는 겁니다. 부부 싸움의 양상도 다양합니다.
아주 대단한 가정에서 일하는 한 파출부 아주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소망교회 곽 목사님에게서 전해 들었답니다. 부부가 모두 박사로서, 남편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고, 부인은 대학교수입니다. 둘이 싸움을 하게 되면 무조건 대화를 중단합니다.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필요한 사람이 거실 꽃병 밑에 쪽지를 놓고 나갑니다. 그것을 본 남편이나 아내는 대답을 써서 그 자리에 놓아둡니다. 어떤 때는 일주일이 넘도록 말을 안 하는 때도 있습니다. 언성을 높여 싸우지 않으니까, 남들이 보면 다정한 부부로 착각하고 부러워합니다.
그러다가도 어떤 가정의 초대를 받으면 같은 차를 타고 초대한 가정 문 앞까지 갑니다. 물론, 아무 말도 없이.. 그러나 차에서 내린 다음부터는,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웃으면서 집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다정하게 접대에 응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그렇게 다정한 부부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파티가 끝나고 차에 오르면, 또다시 남 보듯이 말이 없습니다. 그렇게 싸우기를 계속한다는 겁니다. 파출부가 하는 말이 “두 분이 다 우리와는 다른 박사들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우리는 못 따르겠더라.”라고 했습니다. 배울 점은 아니라고 봅디다.(김형석 교수)

그렇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싸우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기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왕 싸워야 할 문제가 있다면 지혜롭게 싸워야 하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싸운 후에는 이전보다 더 가까워지도록 해야겠지요. 그 방법은,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부부가 함께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본받을만한 성경의 부모를 들자면 세례 요한의 부모들입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누가복음 1장 6절입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80-세례

세례는 선택된 자들이 은혜의 언약 안에 있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며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표징이 됩니다. 먼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용서해 주셨다는 표징입니다. 또한 성령에 의해 거듭났다는 것,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 성령이 내주하신다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었다는 표징입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셨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행해집니다. 또한 세례 받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즉 세례는 공허한 하나의 의식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하나의 성례입니다. 세례의 외적 표징은 그것이 의미하는 실체들을 자동으로, 혹은 마법적으로 전달해 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세례가 중생, 즉 거듭남을 나타내지만 세례 자체가 중생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성례가 가리키는 실체는 세례의 표징이 주어지기 전, 혹은 이후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언약의 표징인 할례는 믿음의 표징이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믿음이 할례의 표징보다 선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에게는 스스로 믿음을 소유하기 전에 할례의 표징이 주어졌습니다.
이처럼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성인의 경우 회심하여 신앙을 고백한 다음 세례를 받도록 되어 있고, 아이들은 스스로 신앙을 고백하기 전에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는 물로 씻는 것을 의미함으로 침수, 담금, 뿌리기로 시행될 수 있으며, 세례의 유효성은 세례를 행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성품에 달려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삶을 향한 하나님의 미쁘심에 있습니다. 세례는 한 사람에게 여러 번 주어지지 않습니다. 세례를 여러 번 받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진실함과 성실함에 의심의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사탄의 매임을 풀며 확산되는 하나님 나라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누가복음 13장 10-21절).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안식일에 열여덟 해 동안 귀신 들려 병들어 있던 한 여자를 고치신 일로 인한 논쟁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두 가지 비유 즉,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를 말씀하시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18년간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를 보시고 고쳐 주십니다. 안식일에 치료하시는 것을 회당장이 비난하자, 주님은 안식일의 참의미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밭에 심어 나무로 자라난 겨자씨와 같고, 가루에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도 같습니다.

율법적 안식일 준수를 경계하라(10-17절).
안식일은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그곳에 18년간 귀신 들려 꼬부라져 펴지 못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질병이 항상 귀신 들림은 아니지만, 그녀의 경우는 귀신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이 치유를 선언하고 안수하시자, 즉시 그 여인의 몸이 펴집니다. 오랜 세월 사탄에게 고통당하던 여인이 해방된 것입니다. 그러나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 고친 것을 두고 분노합니다. 그는 신적 이적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고 안식일 준수를 어긴 것만 지적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15절,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꾸짖으시며 율법주의적 안식일 준수에 일침을 가하십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죄와 사탄의 세력에 매인 영혼에게 참 자유를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16절, 열여덟 해 동안 귀신 들린 여인은 유대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씨(갈라디아서 3:16)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로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언약 속에서 그리스도의 것으로 예정하신 백성은 누구나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종교적 형식에 매여 있는 부분은 없나요?

복음의 능력을 기대하라(18-21절).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 약속대로 하늘의 유업을 얻습니다(갈라디아서 3:29). 복음이 우리에게 온 것은 우리를 통해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져서 확장되어 가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겨자씨는 대단히 작은 씨앗이지만, 나중에는 크게 자라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듭니다. 누룩 또한 매우 작지만 온 덩어리를 크게 부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둘은 처음에는 극히 작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자라고 확산된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는 복음의 영향력이 지금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엄청나게 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이 거부당할 때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대한 성장을 꿈꿔야 합니다. 지금 미약해 보여도 복음은 점점 널리 전파되어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도 모두 그러한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땀 흘려 열심히 뿌리고 있는 복음의 씨앗은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복음의 능력에 대하여 설명하며 격려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믿음은 아직 작지만,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보다도 커져 가기를 간구합니다. 지금의 미비한 것 같은 결과에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굳건히 하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시옵소서. 언제나 일상 속에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하여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며 복음을 전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


<그 청년 바보의사>의 주인공 안수현은 3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성공한 의사도, 유명한 의사도 아니었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4,000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이 책은 그를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의 글과 그의 유고를 모아 펴냈습니다. 그는 24시간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습니다. 그는 의사로서 육신의 병만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았고, 영혼의 질병까지 치료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신앙 서적과 설교 CD를 선물했습니다. 어린 환자가 있으면 한밤중에라도 찾아가 기도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월급을 털어 치료비를 내주었고, 피가 모자라면 헌혈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유행성 출혈열로 예수님처럼 향년 3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으면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이 쉬웠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기쁘고 자연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심기면, 우리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이 땅에서 자연스럽게 살게 됩니다. 주님과 하나 되어 천하보다 귀한 살마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지금 여기서도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날마다 천국을 향해/ 전희근 목사)

 

가정교회를 말하다

가정교회의 공중 예배②

지난주 목요일에 이어서, "몸과 피"는 분명히 예수님의 죽음을 묘사하는 것이고 "언약"이라는 용어는 그 죽음의 결과로 오늘 놀라운 혜택, 곧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새로운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나타냅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은, 그런 새로운 관계를 상기시켜줄 뿐만 아니라 그 관계를 실제적으로 심화시킵니다. 마치 가족이나 작은 그룹이 공동 식사에 참여함으로 그들 상호 간의 유대 관계를 보여주며 더욱 굳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26절에서 예배 활동에 대한 중요한 진술을 합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여기에서 언급된 찬송시, 가르치는 말씀, 계시, 방언, 통역 등은 그 당시 공중 예배의 기본적인 요소들이었습니다. "찬송시"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는 유대인의 시편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지은 시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빌립보서 2장 6-11절과 골로새서 1장 15-20에 나타나 있습니다.
"가르치는 말씀"은 구약 성경과 예수님의 이야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말씀인데, 그것은 고린도전서 12장 8-10절의 은사 목록에 포함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과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계시"는 성령의 감동으로 주어진 말씀으로 "예언"도 포함합니다. 14장 30절에서 "계시가 있거든"이 예언 분변의 문맥에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예언"의 목적은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4:30). "방언"은 성령에 감동된 언어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와 찬송입니다. "통역"은 12장 10에서 언급된 방언 통역입니다.
방언은 통역이 된다면 교회에 큰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고린도전서 14장 15-1절에는 다른 예배 요소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기도, 찬양, 감사" 그리고 공동체의 반응인 "아멘"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6장 22절의 "마라나타"는 "우리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뜻으로 초기 교회 공동체의 종말론적인 기도로써, 당연히 예배 활동에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예배활동의 목표는 고린도전서 14장 26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 나타난 은사의 목적과 부합합니다.
유대인의 모임은 토라 중심이었습니다. 곧, 성경 낭독, 강론, 신앙 고백 그리고 기도가 회당 예배의 중요한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헬라인의 종교 모임은 행진, 춤, 극적인 의식 그리고 신성한 식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자기 은사를 가지고 서로 세워주기 위하여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예배 행위였습니다. 외부인들의 눈에는, 초기 가정교회 모임은 종교 같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전, 신상, 제사장, 제사 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볼 때 어떤 사소한 장소보다는 성도의 모임이 바로 성전이었고, 성도 모두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횃불

자족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언제나 한결같은 사랑과 은혜로 저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 한 주간도 저희를 주님의 날개 아래 보호하여 주셨다가 생명이 있는 예배의 자리로 이끌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전에서의 한 날이 세상에서의 천 날보다 나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고, 마음과 정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오직 예배만이 저희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요, 가장 행복하게 사는 길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임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예배함으로 기쁨의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저희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주님! 오늘도 저희의 형편과 처지를 되돌아보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고달프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들을 너무나 많이 겪고 있습니다. 인생들의 죄 짐을 홀로 지시고 피 흘려 돌아가신 주님을 생각하면, 지금 겪고 있는 상처와 아픔들이 엄살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부끄럽기 한량없지만, 어머니 품속에 있는 갓난아이처럼 약하고 연약한 저희들인지라 주님을 의지하옵니다. 낫게 하시고 치료하시고 우리 주님께서 상처 난 부분들을 싸매어 주시고, 보듬어 주시옵소서!
뼛속 깊숙이 자리 잡은 아픔들을 성령의 불로 녹여주셔서 주님을 의뢰하고 의지하는 인생이 얼마나 복된가를 다시 한번 깨달으며 감사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소망이 되시는 주님! 이 사회가 점점 더 불안함이 창궐하고 악함이 판을 치는 세상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온갖 불의함과 악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소유욕을 끝없이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경각을 금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무엇인지 행복해야 할 가족 공동체를 피로 물들이는 일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어떤 형편에 처하든 주님의 섭리에 감사하며 자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슨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2-13)라는 고백으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항상 본향을 바라보며 항상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게 하시옵소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더욱 가슴 깊이 새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받아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의 노래

복음 쪽지~㉾

하나님으로 채움 받은 사람!


우리가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이 나를 주관할 때 우리 삶의 영역 가운데 하나님의 순결한 영이 부어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채움 받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시고 그분의 영역을 세상 가운데 확장시키십니다. 영적 세계에서 비움은 채우기 위한 전제조건이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내려놓는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신령한 것으로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내 욕구와 계획과 자아를 하나님께 의탁할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을 내 안에 부어 주심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