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590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2. 14. 12:02

예림의집 2590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최선을 다해서 정정당당하게

페어플레이(Fair Play)는 스포츠맨십의 기본으로, 정정당당한 승부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또한, 모든 스포츠의 기본 가치이기도 합니다. 골 하나, 일분일초가 아쉬운 상황 시합에서 열심히 필드를 누비던 한 선수가 운동화 끈이 풀어졌습니다. 끈이 풀어진 채 뛸 수 없었기에 다급한 상황에도 어쩔 수 없이 그는 허리를 구부려 끈을 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팀뿐만 아니라 상대 팀의 선수들까지 그가 신발 끈을 다 메기까지 기다려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포츠맨십이자 페어플레이입니다. 페어플레이는 스포츠의 의무는 아니지만 매너와 같은 것입니다.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거나 반칙을 통해서 비겁하게 이기지 않는 것이 바로 스포츠 정신입니다. 쇼트트랙 황대헌 선수는 지난 7일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 직후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이 남긴 명언을 남겼습니다. "장애물을 만났다고 멈춰야 하는 건 아니다. 벽에 부딪힌다면 돌아서서 포기하지 마라. 어떻게 벽에 오를지, 벽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 돌아갈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라" 황대헌 선수는 9일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누구보다 힘들었을 마음의 장애물을 이겨내고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누군가를 미워하면..

톨스토이는 “누군가를 미워하면, 인생에 그 감정만큼 구멍이 난다!”라고 했습니다. 왜 ‘인생에 구멍이 난다’는 표현을 썼을까요? 사람이 한 번 미워지면, 그 미움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 결국 본인의 인생을 쥐고 흔들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웃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미움’이었는데, 나중에는 본인도 감당이 안 되는 수준으로 커집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서너 군데의 구멍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말(言語)로 상처 입은 경험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똑같은 말인데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느껴지는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주고받는 ‘언어로 인한 상처’는 한 사람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말을 던지는 사람이 반, 확대 해석해서 들은 사람이 반, 각자 반반씩 책임이 있습니다. “왜 과장님은 ‘침범해서는 안 될 것’과 ‘침범해도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래 뵈어도 저 7년 차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 미영 씨는 하나부터 열까지 통제하려는 과장님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실무에 자신감이 넘치는 미영 씨와, 관리 감독에 대한 욕구가 강한 상사가 만났으니, 문제가 생기면 그야말로 빅뱅 급입니다.
“과장님의 장점은 뭔가요?”라고 묻자, 그녀는 한참 망설이다가 대답했습니다. “책임감이 강해서 저희가 다른 부서장에게 깨지는 꼴은 못 봅니다.” ‘과장님은 통제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라는 방향으로만 생각하면,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짝 방향을 틀어서 ‘과장님의 장점’을 찾아보게 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해 주고 싶었습니다. “과장님의 단점이 미영 씨를 힘들게 하지만, 한편 그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네요. 지금의 과장님과는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을 상상해 보시겠어요. 그런 상사라면 어떻겠어요?”(유은정 박사)

그렇습니다. 키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좋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키가 커서 불편할 때가 있으며, 키가 작아서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부엌칼을 잘 갈아놓으면, 음식물을 썰 때에는 잘 들어서 좋지만, 잘못해서 손을 다칠 경우에는 크게 다칠 염려와 위험이 있습니다. 모든 게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요컨대, ‘뭐든지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는 고로, 그 무엇에 대한 ‘올바른 관점(觀點)’을 갖는 게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어제 주일예배 설교에서 모세는 바로의 반대와 동족의 우망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힘들면 기도합시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76-교회

교회란 "주님께 속한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신 바 된 자들입니다. 이 밖에도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백성, 선택받은 자들, 그리스도의 신부, 구속받은 자들의 무리, 성도의 공동체, 새 이스라엘 등으로 불립니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지칭하는 단어로 밖으로 불러내어진 자들이라는 뜻의 에클레시에스티컬(ecclesiastical)이 있습니다. 즉 교회는 하나님께서 죄 많은 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시사 죄에서 건져내어 은혜 가운데 주님과 함께 있게 하신 선택받은 자들의 무리이며 모임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로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 즉,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 받고, 제도적인 교회에 등록한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 공동체에는 예수님께서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란다고 하셨습니다. 때문에 교회는 "거룩"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안에 부정한 것이 섞여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입술로 찬양하는 사람이 반드시 마음으로도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아시므로 진정으로 선택받은 자들은 하나님 눈에는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를 보이는 교회로 만드는 것은 선택받은 자들의 임무입니다. 교회는 "하나이며, 거룩하며, 보편적이며, 사도적"입니다. 교파에 의해 갈라지기는 했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주님에 의해 한 믿음, 한 세례로 연합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시고 성령님이 그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합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을 그 구성원으로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보편적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사도의 가르침이 기초가 되고 그 가르침으로 다스린다는 의미에서 사도적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연합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공동 예배에 함께 참여하는 것과 교회의 양육과 징계에 복종하는 것, 교회의 사명에 증인으로서 적극 동참하는 것은 우리의 엄중한 책임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 예루살렘, 진리의 기둥과 터, 신령한 집" 등으로도 불립니다. 사람의 몸이 많은 부분의 협력과 의존으로 연합하여 기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각각은 몸 전체를 위해 공헌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고 자질을 부여받았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하자면, 예수님의 몸 된 교회는 "하나이며,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적"임을 명심합시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하늘 아버지의 공급하심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누가복음 12장 22-34절).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 되시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께 정작 필요한 것, 곧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백성이 구하는 것, 즉 몸을 위해 먹고 입는 것을 구하거나 염려하지 말라 하십니다.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면, 하나님이 이런 것들을 더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소유로 구제해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22-30절).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염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의 반영입니다. 염려라는 렌즈로 전망하는 미래는 온통 잿빛입니다.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느라 궁극적인 것은 볼 생각도 못 합니다. 내일을 걱정하느라 정작 오늘의 행복을 누리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염려에 대한 완벽한 치료 약은 믿음입니다.
염려라는 인생의 고질병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 안에서 점점 사라져 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로 드신 까마귀나 백합화는 우리가 가까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로,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쉽게 염려와 근심에 바지는 것을 아시기에 22, 29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신 말씀을 믿고 순종할 일은 무엇이 있는지 묵상합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31-34절).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로서 우리의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믿음은 세상 염려를 내려놓고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구해야 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의식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의식주 문제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후, 31절,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약속을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특히 재물과 재능 그리고 시간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소유를 팔아 사람들을 구제하라고 명하십니다. 이는 하늘에 쌓아 두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 재물입니다. 그곳에서는 도둑이 훔쳐 가는 일도, 좀먹는 일도 없습니다. 재물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모든 재물의 주인이 아닌 청지기입니다. 오늘날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기 위해 우리 소유 중 구별할 것은 무엇이 있을지 깊이 생각해 보는 축복의 시간이 됩시다!

"우리의 아버지 되셔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더 넉넉하고 편한 삶을 위해 오늘도 염려하고 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고, 가장 귀한 분이 누구신지 기억하며 하나님이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시옵소서. 움켜쥐고 있는 것을 풀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 우리와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시옵소서.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살아가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인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전념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보는 눈


우리에게는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런 시각이 없으면 사소한 일을 재난으로 해석합니다. 권리를 잃은 것을 지독한 박해로 해석하고, 반대를 미움으로 해석합니다. 왜 두 살 배기는 5분의 기다림을 영원처럼 느끼는 것일까? 애 부모는 자녀의 야구 시합을 보러 와서 심판의 오심에 세상이 끝난 것처럼 고함을 지르는 것일까? 모두 전체를 보는 시각이 부족해서입니다. 두 살 배기는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보모는 아들의 인생 전체에서 그 야구 경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작은 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체를 보는 눈을 얻으면 모든 것이 다라집니다. 사도 바울이 수많은 박해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를 보십시오. 그의 인생을 볼수록 놀랍습니다. 반복된 채찍질과 매질, 암살 시도, 투옥, 난파, 도망자의 삶을 던져야 했던 사내였습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참으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가올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 모든 시련을 잠시의 고난으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시련이 지나갈 때마다 더 강해졌습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만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공급해 주신 힘과 능력에 기대는 법, 그 힘과 능력으로 시련을 이겨 내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순교마저도 그에게 두려움을 심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과 시련은 우리에게 더 큰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 줍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사람과 사건, 환경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참된 용기를 줍니다. 고난의 학교에서, 우리는 우리가 두려워할 단 한 분인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됩니다. 전체를 보는 눈을 기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돋보기로 나의 삶을 바라봅시다!(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래리 오스본)

 

가정교회를 말하다

가정교회의 통합 능력①


초기 가정교회들은 주변 세계와 분명히 구분되는 삶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내부 일들을 사랑으로 조정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인종이나 직업이나 다른 사회적 구분 없이 모든 살마에게 전해졌습니다. 그 결과 여러 그룹과 계층의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 중요한 일은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을 통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각 교인의 삶의 모든 측면에서 획기적인 조정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주변 환경과의 분명한 단절과 계속되는 갈등을 동반하게 됩니다.
그러면, 새로운 개종자는 무슨 유익을 얻기에 그러한 손해와 고통을 감수했을까요? 가장 중요한 소득은 복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일련의 교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교회들에게 새로운 성전, 신상(神象), 또는 제의적인 드라마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전한 것은 사람을 내적으로 변화시키는 메시지였습니다(고린도후서 4:3-6). 이 메시지는 "복음"이라고 불립니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모든 인류에게 유익이 되도록 해석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의 표현입니다(로마서 5:8-9).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새롭고 친밀한 관계를 창조합니다. 복음은 죄인을 의인으로 그리고 심판 아래 있는 사람을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로 변화시킴으로써 그 능력을 입증합니다. 청중으로부터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영생에 대한 소망을 준 말씀입니다. 바울의 교회들은 빌립보서 3장 20-21절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이러한 확신은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빌립보서보다 늦게 기록된 베드로전서 1장 3, 4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또한 터툴리안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확신하는 믿음은 죽은 자들의 부활이다!"(내일 계속..)

기도의 횃불

참된 예배가 회복되게 하소서!


언제나 저희가 드리는 예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방송을 통해서도 예배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어디서 어떠한 환경 속에서 어떠한 모양으로든 예배하기를 기쁘시게 받아주실 것을 믿으며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드리는 이 예배가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 갈수록 예배가 점점 더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하여 예배 때마다 썰렁한 빈자리가, 예배가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성도들의 신앙 상태를 보여주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우리의 예배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며, 은혜로 풍성했던 그 감격의 자리를 이제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짐을 고백합니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리기를 힘썼던 아벨의 믿음보다, 때우기식으로 제사를 드렸던 가인의 악함이, 이 시대의 신앙인들의 예배 태도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강한 영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무엇보다도 올해는 저희 모두가 무너져가고 있는 예배를 회복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잘 사는 길은 예배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여 있음을 깨닫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예배에 뜨거운 불을 지필 수 있는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모두가 예배를 사모할 수 있게 하시고 예배에 집중할 수 있는 신앙생활이 되게 하셔서 어떤 예배든지 주님이 임재하심을 경험하는 참된 예배를 세워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삶이 바쁠수록 더욱더 예배를 찾을 수 있게 하시고, 힘들수록 더욱더 예배를 사모하게 하셔서 항상 예배에 대한 승리를 보여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올 한 해는 저희 모두가 참된 예배를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기뻐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의 노래

복음 쪽지~㉾

그 누구도..!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께서 택하여 자신에게 주신 사람들, 즉 소명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신 사람들 외에는 단 한 명도 구원하지 않으셨고, 앞으로도 구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방법으로는 그 누구도 구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사람이 의사를 귀히 여기지 않듯이 거룩하게 되지 못한 죄인은 그리스도를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분의 구원의 은혜 하찮게 여기고, 그분의 성스러운 치유와 회복을 얕보고 그분의 희생의 보혈을 짓밟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구원은 그리스도인에게만 있습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