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93번째 이야기
알곡이 됩시다..! 콩을 심을 때 모든 콩에서 싹이 트는 것은 아닙니다. 흠 없고 온전한 콩이어야 이듬해 싹이 나고 열매를 맺습니다. 옛날 어른들로부터 전해오는 벌레 먹지 않고 좋은 콩을 고르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콩을 한 움큼 쟁반 위에 올려놓고 한쪽으로 기울이면 온전한 콩은 한 방향으로 굴러 한곳에 모이지만 썩거나 모가 난 콩은 제자리에서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걸러낸 온전한 콩만 땅에 뿌려지기도, 반찬으로 밥상에 올라오게도 됩니다. 모든 곡식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있습니다. 수확할 때 남은 결실이 알곡 일지 쭉정이 일지, 스스로 심은 씨앗을 점검합시다! |
매일 김치를 먹는다던데.. 유학시절, 제가 살던 4층짜리 학생 아파트에는 8가구가 모여 살았습니다. 1층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유학생 가족, 2층에는 일본 유학생 가족, 3층에는 칠레에서 온 목사님 가족, 그리고 우리 가족은 4층에 살았습니다. 우리 집 맞은편에는 중국, 독일, 미얀마, 나이지리아, 캐나다 등에서 온 미혼 여학생들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특히 우리 앞집 여학생들은 언제나 밝고 쾌활했습니다. 아침 등굣길에 현관문을 열고 마주치면, 마치 오랜만에 만나 가족을 대하듯, 그녀들은 활기찬 목소리로 저와 우리 아이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습니다. 약 4년 동안 날마다 외국인들과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각 나라 사람들의 다양한 문화와 습관을 가까이서 피부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4층에 살고 있었지만, 중국 여학생이 귀가할 때는 1층에서부터 그녀의 목소리가 계단을 타고 우리 집까지 들렸습니다. 2층에 사는 일본인 친구의 목소리는 언제나 몸을 기울여 들어야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캠퍼스를 산책하다가 인도에서 유학 온 목사님 댁을 지날 때면 언제나 카레 냄새가 풍겨 나왔습니다. 어느 날, 저는 “목사님, 매일 카레를 먹으면 지겹지 않으세요?”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당신들은 매일 김치를 먹는다던데, 지겹지 않으신가요?”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먼저 질문을 던졌던 제가 머쓱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어서 사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저와 우리 가족은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낯선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어지간히 채울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피부를 가진 사람들의 문화를 알아가는 기대와 흥미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박재만)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는 추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점점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니,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막을 길이 없는 겁니다. 제일 염려스러운 것은 이슬람 사람들이 다수가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장차 우리의 미래인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외국인 차별은 없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어떠한 차별도 없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외극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전달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기독교의 핵심 진리 79-성례전 "성례전(sacrament)"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약속을 외적 형태로 보여주시는 수단으로 정의되며 물, 떡, 포도주 등의 눈에 보이는 요소들과 그러한 상징들과 관련하여 계획하신 하나님의 뚜렷한 행위,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주신 구속, 은혜 등의 요소로 구성됩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특별한 의미에서 성례전을 일곱 가지로 둡니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성례전을 세례와 성찬 두 가지로 제한했습니다. 성례전의 특징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되었고,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셨으며, 셋째, 하나님의 행위가 현현된 상징성입니다. 성례전은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제한됩니다. 첫째, 그 의식이 그리스도에 의해 제도화되었는가? 둘째, 의식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 셋째, 영구히 지속되도록 고안된 의식인가? 넷째, 그 의식이 신자에게 영향을 끼치며, 교훈하며, 인치심을 위하여 고안되었는가?입니다. 성례전은 하나님의 약속을 전하는 참된 은혜의 수단입니다. 성례전의 능력은 성례전의 요소가 아닌 하나님께 있습니다. 즉 성례전은 하나님의 표징입니다. 또한 성례전의 능력은 그것을 행하는 신자들의 성품이나 신앙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의존합니다. 성례전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한 형태입니다. 성례전은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이 의도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므로 성례전의 거행은 말씀 전파와 병행됩니다. 성례전을 통하여 구원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성례전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성례전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기독교 교육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성례전은 모두에게 공식적인 외적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공허한 형식주의나 의식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공허한 의식으로 타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성례전이 거부되어서도 안 됩니다. 성례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식이므로 기쁨으로 엄숙하게 참여해야 합니다. 성례전은 신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약속의 보이는 표징입니다. 또한 성례전은 공허한 의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신 것입니다. 또한 성례전은 말씀 선포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방식에 대해서는 교회 공동체의 상황과 여건을 고려해서 다양하게 거행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하나의 방법만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회개하지 않으면, 열매 맺지 않으면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누가복음 13:1-9절). 함께 읽은 본문 중 4절 "실로암"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예루살렘 성벽 남동쪽에 있는 연못입니다. 또한 "망대"는 성읍이나 과수원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높이 세운 곳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으면 빌라도에게 해를 받은 갈릴리 사람들이나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여 죽은 사람들처럼 망할 것이라고 예수님은 경고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3년간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명하자, 포도원 지기는 1년 더 두도록 주인에게 간청합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1-5절). 누군가가 당하는 재난은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두어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을 말했습니다. 이는 어떤 갈릴리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사드리고 있을 때 빌라도가 그들을 학살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은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도리어 그들이 당한 일을 통해 경고를 받고 회개하라고 교훈하십니다. 우리도 당하는 고난과 고통은 회개의 경고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18명을 언급하시면서 동일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3절과 5절의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경고가 천둥소리처럼 가슴을 울려야 합니다. 스스로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기며 적당히 죄를 고백하는 것은 치명적인 영적 교만이지 결코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도덕적 탁월하심 앞에 자신의 비천함과 비열함, 그리고 죄로 인한 가련함을 뼈아프게 느끼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간절히 구하며 통렬히 회개합니다. 구원 얻는 믿음은 겸손한 회개를 요구합니다. 우리도 겸손히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열매 맺지 않으면(6-9절).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수 없기에, 성급히 결론을 내리며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 재난을 당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회개는 죄를 깨닫고 죄 때문에 슬퍼하며 마음과 행실로 그 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또한 회개는 변화된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우를 들려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3년 동안 열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에 그는 포도원 지기에게 그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3년은 열매 맺기에 넉넉한 기간입니다. 따라서 이 나무는 쓸모가 없습니다. 포도원 지기는 조금 더 참아 달라며, 내년에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때 찍어 버리라고 합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함을 교훈합니다. 그 열매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 받게 없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결국 뿌리째 뽑히는 운명일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보여드릴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어떤 것일지 묵상합니다. "우리에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은 회개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요, 열매 맺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예기치 않게 벌어진 일 앞에서 상황과 남을 탓하며 우리 자신을 성찰할 줄 모르는 완악한 마음을 고쳐 주시옵소서. 그저 입으로만 죄를 고백하지 않고 변화된 삶의 모습을 보이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연약하고, 완악하고, 어리석을 뿐 아니라, 고집과 아집이 가득하오니 성령님의 그 뜨거운 열정의 불로 녹여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은혜로 용서받고, 은혜로 삽니다 많은 사람이 구원을 "죄의 형벌"을 면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이 우리를 "죄" 자체에서 구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합니다. 죄로 인해 벌을 받는 것보다 죄에 빠지는 것이 훨씬 더 두려운 일입니다. 벌은 우리의 몸과 정신에 고통을 주지만, 악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킵니다. 그래서 악은 보이는 족족 싸워서 물리쳐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선인으로서 "악당들"과 싸우는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 내면의 분노, 절망, 정욕, 탐욕, 교만, 자아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단순히 우리가 내린 잘못된 선택들의 결과에서 건짐 받거나 더 나은 상황으로 구조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핵심은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용서받는 것"을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용서보다 큰 개념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용서받을 뿐 아니라 은혜로 사는 법을 배워 같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짓기 전에도 은혜로운 하나님이셨습니다. 은혜로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은혜로 살아갈 때, 내게서 나오는 그 어떤 선도 자랑할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구원의 확신은 단순히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믿는 차원을 넘어서 그분을 그리고 그분께 속한 모든 것이 옳음을 믿고 그분의 은혜에 힘입어 그분 안에 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인생, 영생이 되다/존 오트버그) |
가정교회의 공중 예배① 이제 우리는 평등과 하나 됨의 공동체인 가정교회의 공중 예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 서신에서 공중 예배 중에 발생한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곳은 고린도전서 11-14장입니다. 비록 자료는 단편적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초기 교회의 공중 예배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성찬의 오용 문제를 다루면서, "그러므로 너희가 한 자리에 함께 모여서"라고 시작합니다(고전 11:20). 14장 23절에서 바울은 방언과 예언에 대해 말하면서도 비슷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14장 23절에는 "온 교회"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한 자리에 함께 모여서"(고린도전서 14:23). 여기서 우리는 고린도전서 11-14장의 말씀이 "온 교회"의 모임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다른 곳에서 작은 가정교회의 모임에만 해당되는 특별한 활동들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작은 가정교회의 모임과 "온 교회"의 모임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온 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릴 때 어떤 활동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11장 20절 이하에서 바울은 주의 만찬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만찬은 가정집에서 모든 성도가 참여하는 애찬 중에 거행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0절은 주의 만찬을 거행하는 것을 "주의 만찬을 먹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만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보통 저녁에 먹는 정찬을 가리킵니다. 또한 "먹는 것"도 보통 식사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빵을 떼고 나누는 것도, 당시 유대인 가정에서 식사를 시작하는 일반적인 방법이고, 포도주를 나누는 것도 식사를 마치는 정상적인 순서였습니다. 모든 만찬 식사의 시작과 끝에는 감사와 간구, 그리고 축복의 기도가 덧붙여졌습니다. 그런데 이 식사가 언급되는 성경 어느 문맥에서도 의식을 집행하는 어떤 공식적인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식사의 경우처럼, 주의 만찬은 교회로 모이는 집의 남자 주인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주의 만찬을 거행하는 것은 주의 죽음을 가시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라는 말은 "이것은 너희를 대신하여 목숨을 버린 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라는 말은 "이것은 나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너희 사이에 세워진 새로운 관계다"라는 의미입니다. |
충성하는 일꾼이 되게 하시옵소서! 높은 곳에 영광 중에 계신 주님! 그 크신 존귀하심을 찬양합니다. 만물 위에 높이 계시며 말씀과 질서를 통해 온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저희의 무가치한 인생을 바꾸셔서 천사도 흠모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죄악으로 멍든 심령, 죄의 무감각해져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저희의 심령을 바꾸셔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삼아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희의 심령은 여전히 메말라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회개함으로 우리를 내려놓게 하시옵소서. 저희에게 넘치던 새해의 각오와 다짐도 차츰 희미해져 감을 느낍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늘 원점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연약해진 저희들을 주님의 강하신 팔로 붙잡아주셔서 새 일을 행하며 살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로 하여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치는 생활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이 넘쳐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시고, 땅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감으로 진정한 소망이 주님께 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자답게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사랑이 넘치는 위대한 사랑의 정신과 힘을 나타낼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 조금이라도 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물질로, 몸으로, 시간으로 헌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길밖에 없음을 잊지 말게 하셔서 주님의 말씀이라면 철저히 순종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이웃을 돌아보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갈수록 사회가 강퍅해지고 험악해져 감으로 상처를 입고 고통을 안고 사는 이웃들이 증가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저희들이 가까이 다가가고 따뜻한 벗이 되어주므로 치유해 나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온라인으로 함께하며 기도하고 찬양하지만 서로의 형편과 처지를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 서로를 의탁하며 기도하고, 격려하며, 위로할 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더욱 크신 사랑으로 헤아려 주시옵소서. 어렵고 힘들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위로받고 새 힘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어둠과 빛..! 어둠과 빛, 오염된 것과 완전한 것, 비열한 것과 영광스러운 것, 죄와 영생이 어울리겠습니까? 거듭나지 못한 죄인은 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피곤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곳에서 부르는 찬송가들이 생소하고 낯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시지만, 죄는 미워하십니다. 그리스도에게서 생명 얻기를 소망하는 자들은 그분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이 죄를 옹호하는 분으로 오해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왕이시라면 사람들은 마땅히 그분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며 복종해야 합니다. 왕이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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