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96번째 이야기
최고의 추천장 어느 회사에서 인재를 채용한다는 공고가 올라오자 많은 청년들이 유명 인사의 추천장을 받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추천장도 없이 면접을 보러 왔던 청년이 채용되자 한 직원이 인사 담당자에게 물었습니다. "추천서를 받아 오지 않은 사람을 채용한 이유가 무엇인지요?" 그러자 인사 담당자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그 청년은 가장 빼어난 세 가지 추천장을 갖고 왔습니다." "첫째, 친절한 성품입니다. 다리가 불편한 다른 사람에게 먼저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으로 친절한 성품을 보였던 것입니다." "둘째, 사려 깊고 정갈한 성품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보고 주워 휴지통에 넣는 모습과 그때 눈에 들어왔던 그 청년의 단정한 옷과 정돈된 손톱을 봤습니다." "셋째, 배려심이 강한 성품입니다. 면접이 다 끝나고도 앞사람을 밀지 않고 물러섰다 천천히 나가는 모습에서 그의 배려 깊은 성품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청년의 몸에 밴 좋은 습관이 최고의 추천장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오래된 생각과 심성은 행동으로 나타나고 이는 곧 습관이 됩니다.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 등 '습관'은 결국 인성의 조각들인 셈입니다. |
저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 아닐까요? 그 고아원은 놀랍게도, 국가보조나 교회 보조 없이 거의 사비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간식 값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감당하느냐?”라고 했더니, "공무원인 남편이 월급을 받아오니, 괜찮다"라는 겁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괜찮긴 뭐가 괜찮겠습니까? 둘러보니, 변변한 살림살이도 없습니다. “아니, 교회에서 일을 맡겼으면 돈도 보태주고 빨래라도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녁을 먹으면서 한 마디 했더니, 펄쩍 뜁니다. “아니에요. 교회에서 하라는 일 아니에요. 누가 시키면 이거 하겠어요? 제가 좋으니까 하지요!” 알고 보니, 소라 씨 부부는 여기 가난한 영천으로 자원해서 온 것이고, 아이들 돌보는 것도 순전히 자기들 생각이랍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고생을 사서 해도 분수가 있는 법인데 말입니다. “제가 특별히 신앙심이 좋거나 봉사정신이 강한 것은 절대 아니에요. 이건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그전부터 저랑 남편은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자!’고 했거든요. 몸 조금 고생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런 우리 마음을 시부모님이 이해해 주셔서 정말 고맙죠. 아이들도 가끔씩 말썽을 피우지만, 그러지 않으면 어디 아이들인가요?” 땟거리도 간신히 마련하는 사람이 말끝마다 고맙답니다. 그런 소라 씨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저의 눈길이 쑥스러운지, 입을 가리고 웃습니다. 웃는 모습이 천진합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요? 자기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저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 아닐까요? 그리고 사랑을 묵묵히 실천할 때 느끼는 행복의 힘이 아닐까요? 소라 씨는 저에게 "왜 이렇게 돌아다니는 일을 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저도 소라 씨처럼 좋아서 한다."라고 하니까, "워메 징한 거”하면서 눈을 굴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한비야) 그렇습니다. 그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저는 그런 면에서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쩌면, 먹고살기 위하여 마지못해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위의 글에서 등장하는 소라 씨야 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한비야 씨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걸어서 국토종단"을 했다는데,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그 자신이 원해서 한 일이니, 그도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기독교의 핵심 진리 82-주의 만찬 마틴 루터는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을 부인했습니다. 화체설이란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러한 교리가 필요 없다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떡과 포도주로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에 더해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떡과 포도주의 요소 안에 있다는 주장을 고수했습니다. 이러한 루터교의 관점을 "공체설(consubstantiation)"이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떡과 포도주와 함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루터파 신학자들은 공체설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과 비슷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어서입니다. 츠빙글리와 다른 신학자들은 "이것은 내 몸이라"라는 말씀의 실제 의미는 "이것은 내 몸을 상징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 "나는 참 포도나무라" 등의 비유를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츠빙글리와 그 밖의 신학자들은 주의 만찬 때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도 주장합니다. 만찬은 오로지 기념의 의미일 뿐이며 그때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는, 성령님을 통한 평상시의 임재와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존 칼빈은 로마 가톨릭, 그리고 루터와 논쟁하면서 만찬 시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재를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만찬을 단지 기념적인 것으로만 축소시키는 재세례파와 논쟁할 때는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임재를 주장했습니다. 표면적으로 칼빈은 모순에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살펴보면 그가 "실제적인"이라는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이나 루터와 논쟁할 때는 "실제적인"이라는 말을 "육체적인"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재세례파와 논쟁할 때는 그 말을 "현실로 존재하는'의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이와 같이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적 의미는 아니라 할지라도 "실제로", 또는 "참으로" 성찬에 임재하신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신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 사이의 전달을 부정했기 때문에, 칼빈은 주후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정죄 받은 네스토리우스파 이단의 동조하면서 그리스도의 두 속성을 "분리시키고 나눈다"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자신은 그 두 속성을 분리시키는 것이 전혀 아니라 구별하는 것이라도 대답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인성은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인성은 신성과 완전한 연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성이 한 장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무소부재의 신성을 갖고 계시기에 제한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하늘나라에 있다 해도, 그것은 예수님의 무소부재라는 속성에 의해 영적으로 우리 가운데 존재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어느 곳에 있든 주님은 참으로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것입니다! |
포기하지 않는 주님의 사랑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누가복음 15장 1-10절).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는 두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바로 잃어버린 양 비유와 잃어버린 드라크마 비유입니다. 8절의 "드라크마"는 로마의 데나리온과 동일한 가치가 있는 헬라의 화폐입니다. 1드라크마는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나오는 것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수군거립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잃은 양을 찾는 목자와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에 관한 비유를 드시며, 죄인 한 명이 회개하는 것이 하늘에서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교훈해 주십니다. 잃어버린 양(1-7절). 예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습니다. 당시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죄인과 음식을 같이 먹는다며 수군거립니다. 당시에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상호 용납과 결속"의 표시였습니다. 죄인과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종교 지도자들 눈에는 하나님의 말씀(시편 1:1; 이사야 52:11)을 어기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 100마리 가진 사람이 그중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힘써 찾아다니고, 또 찾아낸 뒤 이웃을 불러, 함께 즐거워한다며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누가복음 5:32). 죄인이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중보 기도의 항아리에 간절함의 눈물이 찰 때 마침내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사람의 외모를 보고 배척하고 수군거려선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이 찾으시는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한 열정을 품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8-10절). 예수님은 비슷한 이유를 반복하셔서 한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어떤 여인이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을 것입니다. 한 드라크마는 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여인이 드라크마 하나를 찾기 위해 보인 행동은 잃어버린 것을 찾고자 하는 그녀의 간절함과 열심을 보여 줍니다. 드라크마 하나를 찾은 여인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고 기뻐하는 목자처럼 친구와 이웃을 불러 기쁨을 나눌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어떤 이는 성공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큰돈을 벌어 잘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열정적인 봉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의 회개입니다(시편 51:17). 그러므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복음으로 회심해야 할 이들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회개와 구원의 길로 인도할 한 사람은 누구인지 찾아봅시다!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의 열정으로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다가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죄인 한 명이 회개할 때 기뻐 춤추실 주님을 떠올리며 다시 일어서게 하시옵소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끝가지 찾아내는 목자의 열심과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아 들불을 밝히며 방을 쓰는 여인의 열정을 가슴에 품게 하시옵소서. 먼저 우리에게 한 영혼을 향한 간절한 사랑의 열정과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열린 눈을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이 찾는 사람 어느 신학자는 교회를 일컬어 "죄인들의 학교"라고 불렀습니다. 죄인들이 모여 하나님을 알고 배워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공동체가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애써 죄인처럼 살아서는 안 되지만, 의인으로 자처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어떤 죄인도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결코 의인이 아닙니다. 루터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인은 "이인인 동시에 죄인"입니다. 분명히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의롭다고 해 주신 것이지, 우리 자신이 결코 의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도 스스로 의인이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나 창녀와 같은 죄인을 찾으시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종교적인 사람"의 맹점입니다. 스스로 "신앙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의 실상입니다. 열심을 가지고 종교 활동을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죄에 빠져 헤매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의롭게 여기시는 이의 참다운 믿음입니다.(믿는다는 것/ 강영안 교수) |
가정교회의 변천과 종말② 이 새로운 가정교회 모임 장소 중의 하나가 1931년에 유프라테스 강 서안에 위치한 두라-유로 포스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두라-유로 포스의 전형적인 주택이었는데, 안뜰과 8개의 내실이 있고, 내실 중의 둘은 하나의 큰 모임 장소로 변형되었습니다. 이 변형된 방의 크기는 5.15 X 12.9 미터로, 65-75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큰 내실이 생겨난 연대는 벽에 남아 있는 낙서로 보아 232년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내실에는 세례용 물통이 있었고, 벽에는 선한 목자, 가라앉는 베드로 등 여러 가지 성화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개조된 가정집에서 모임을 가진 가정교회는 3세기 말까지 여전히 중심을 이룹니다. 261년 경 갈리에누스가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중단하고 예배 장소들을 교회 감독들에게 복구시켜 주라는 칙령을 내렸을 때, 그 예배 장소들은 거의 틀림없이 개조된 가정집들이었을 것입니다. 화이트는 그런 교회당이 어떤 지역에서는 5세기까지 잔존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3세기 중엽 이후에 또 다른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개조된 가정집과는 다른 별도의 교회당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249년에 황제가 된 데시우스는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250년부터 기독교를 혹독하게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음 해 251년 고트 족과의 전투에서 사망했습니다. 데시우스가 죽자 그의 친구 발레리안이 황제가 되어 전임자처럼 기독교를 탄압했습니다. 그도 곧 적군에게 포로로 잡혀갔고, 그의 아들 갈리에누스가 260년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그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확산되는 기독교의 영향력을 보면서 정책을 바꿔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중단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디오클레티안에 의해 핍박이 재개되기까지 평화를 누렸습니다. 이 평화의 시기에, 특별히 270년에서 303년까지, 개종자들의 수가 크게 증가했고, 그에 따라 여러 지역에 별도의 교회당이 건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3세기 말에 유세비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의 건물에 만족하지 않고 건축 기금을 사용하여 모든 도시에 큰 교회를 건설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소 과장된 것이 사실이지만, 콘스탄티누스 이전에 아마도 일종의 바실리카라고 할 수 있는 교회 건물들이 이미 존재한 것 같습니다.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그런 건물들 안에는 일반적으로 성직자의 자리와 평신도의 자리가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를 끊임없는 열정으로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뜨거운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미소 짓게 하는 일보다 저를 우울하게 하는 일들이 넘친다 할지라도, 주님이 나의 좋은 친구 되심을 믿고 늘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지극히 평범한 것 외에 새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는 하루를 산다 할지라도, 주님의 뜻을 담아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음에 만족해하며, 언제나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열정을 닮아가게 하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땀을 흘린 만큼 만족한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하루를 산다 할지라도,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늘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착실하게 세운 계획들이 이루어지지 않는 하루가 된다 할지라도, 주님의 섭리하심을 바라보며 늘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그토록 바라던 것이 끝내 아픔과 실망으로 다가온다 할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늘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인간들의 반역! 하늘이여, 들어라! 땅이여, 귀를 기울여라! 감각 없는 미물들도 판단하라! 하나님께서 먹이고 기르신 인간들이 그분께 반역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를.. 우리는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중생(重生)의 필요성을 말로는 부정하지 않지만, 지금 당장 거듭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교묘한 위선은 가장 위험하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없고,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오를 수 없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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