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86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2. 7. 14:25

예림의집 2486번째 이야기

사색의 바다

희생 제물로 바치는 기도


자신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바치는 기도가 믿음으로 드리는 최고의 기도입니다. 하늘의 은혜를 사모하는 식을 줄 모르는 열정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바칠 때 강력한 기도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기도가 없는 교회 공동체는 영혼이 없는 몸과 같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교회 공동체 안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십니다. 기도를 포기한 교회 공동체에서는 하나님이 계실 자리가 없습니다. 기도를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교회 공동체에서는 하나님도 낯선 객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바치는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 공동체가 됩시다!

 

예림가족 이야기

왜 고난을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종종 "우리가 왜 고난을 겪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저 자신도 아픔을 겪으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와 함께 고통에 참여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와 함께 앰뷸런스에 계셨고, 저와 함께 응급실에 누워계셨으며, 저와 함께 수술대에 오르셨고, 저와 함께 뼈가 어그러지는 고통의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제 곁에 서서 저보다 더 아파하시는 어머님을 뵐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아무 흠이 없는 낙원으로 만들기 위하여 전능의 막대기를 휘두르기보다는,
당신 스스로 연약해지고 겸손해지셨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고통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참예는 영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라는 현재(現在)에 모든 영원함을 끌어안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마음의 벽에 새겼습니다. 질병을 고침 받았으나, 저는 끊임없는 육신의 나약함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인하여 약한 데서 강해지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희망의 목마름 속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것이며, 우리 영혼 속의 하나님의 본질을 찾아 전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강한 침묵으로 다가오는 그분의 음성 듣는 법을 배웠고, 쓰라린 고통으로 다가오는 축복을 볼 줄 아는 그리스도인의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신앙에도 철이 들 때가 있습니다. 철든 자식이 부모와 싸우지 않듯이, 철이 들면 하나님과 다투지 않습니다. 철든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듯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철든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보여 달라고 보채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모든 일을 사랑으로 알고 전적으로 신뢰합니다.(김인강)

저는 신문 소설 잡지 등은, 한 번 읽으면 다시금 읽어본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읽어볼 흥미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읽고 다시 읽으면, 그저 새롭기만 합니다. 읽을수록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김 교수님이 말한 대로 철이 든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우리네 보통 사람의 경우, 읽으면 읽을수록 의문을 갖게 됩니다. 혹시 하나님과 성경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있다면, 하루속히 철이 들어서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72-중간 상태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누가복음 8:52).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에서는 죽은 것을 "잠자는 것"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신약이 "영혼가면설(soul sleep)"의 교리를 가르친다고 결론짓습니다. 영혼가면설이란 사람이 죽는 순간과 몸이 부활할 때까지의 영혼의 가사(假死) 상태를 말합니다. 즉 우리 몸이 부활할 때 영혼이 깨어나서 하늘나라의 인격적인 연속성을 의식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영혼가면설은 정통 기독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생각이 굳게 뿌리박혀 있습니다. 전통적인 견해는 "중간 상태"라고 불립니다. 이 견해는 "죽을 때 신자의 영혼은 즉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며 몸의 마지막 부활을 기다리면서 지속적이고, 의식 있고, 인격적인 존재를 누리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에서 "몸이 다시 사는 것과"라는 부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 우리 몸이 부활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전통적인 견해는 신자의 영혼은 죽은 즉시 영화된다고 말합니다.
죽은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거룩 안에서 완전해지고 즉시 영광 가운데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최후의 부활을 기다리며 무덤 속에 남아 있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부활 때는 새로운 몸을 입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영혼의 잠"이라는 개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3일 동안 죽어 계셨고 승천하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 강도와 낙원에서 만나자는 의미로 말씀하실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그의 몸이 분명히 무덤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은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선포하신 대로 그의 영혼이 낙원에 갔다고 확신합니다. 여기서 낙원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 바로 천국입니다. 죽음 이후 신자의 상태는 비록 마지막 날의 부활만큼 완벽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 생에서 경험하는 것과는 다르고 더 좋습니다. 중간 상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인격적인 존재의 연속성을 체험합니다. 인간의 시간은 죽음으로 끝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운명은 죽을 때 결정됩니다. 죽은 후에는 다시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즉 죽음 이후 우리의 상태를 더 좋게 만드는 "연옥"과 같은 장소는 결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란 이생의 갈등과 혼란으로부터 복된 상태로 들어가는 즉각적인 해방입니다. 이처럼 죽음이 영혼에 안식을 가져오기에 성경은 이를 "잠"이라는 말로 완곡하게 표현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부활할 때까지 우리의 영혼이 잠을 잔다거나 무의식 상태로 있거나 가사 상태라는 말이 아닙니다. 육체가 없는 우리 영혼이 하늘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새찬송가] 218장 내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오늘의 Q.T.

율법의 완성, 말씀 사랑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장 25-42절).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어떤 율법 교사의 예수님을 시험하여 묻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예수님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어떤 율법 교사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는지 물으며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시며 강도당한 이를 도운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비유로 들려두십니다. 또한 주님은 할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 마르다에게, 말씀을 사모하여 예수님 앞에 앉자 듣기에 전념하는 마리아처럼 좋은 편을 택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우리도 사마리아인처럼, 마르다처럼 살아야겠습니다.


이웃을 사랑한 사마리아인(25-37).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어떤 율법 교사가 "영생"에 관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 율법교사에게 네가 어떻게 읽느냐 물으십니다. 네가 가르치는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27절,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28절, 율법에 기록된 계명대로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율법교사는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29절, "내 이웃이 누구이니이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30-35절, 강도 만난 사람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도와주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사마리아 사람은 도와주었다고 하시면서 36절,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율법 교사는 좋은 이웃이 누구인지를 찾으려 했으나, 예수님은 그에게 좋은 이웃이 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연약한 자에게 이웃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모습의 선한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말씀을 경청한 마리아(38-42절).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은 다른 어떤 사역보다 중요합니다. 마을에 오신 예수님을 마르다가 자기 집으로 영접합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서 마음이 분주합니다. 결국 마르다는 동생에게 명령하셔서 자신을 돕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다가 비본질적인 일로 너무 바쁘고 염려가 많다고 하십니다. 23-24절처럼, 예수님을 보고 그분 말씀을 사랑하여  경청하는 것보다 더한 복은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말씀을 듣는 시간을 빼앗길 정도로 봉사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예배와 사역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좋은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열심을 낸다면 미련한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열정을 쏟아부어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섬기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 안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말씀 안에 서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다른 일로 말씀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비록 주님을 시험하려고 한 질문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주님, 강도 만난 자와 같이 버려진 우리를 싸매시고 살리신 그 사랑에 감격합니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우리의 삶에 새겨, 헌신하고 섬기는 선한 이웃이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많은 일에 눌려 주님 주신 참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무엇보다 말씀 안에 거하는 은혜로 만족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삶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때에 나는 by 김은진 & 김경동(F.I.A WORSHIP)

 

그리스도인의 삶

누가 내 마음의 왕이신가?


오늘날 많은 목회자 성도가 돈 문제, 이성 문제 등 윤리적인 문제로 넘어지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특별히 그런 유의 사람이 따로 있어서 그렇게 잘못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누구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음에도 실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진정 내 마음의 왕이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마음의 왕이 아닌 사람은 마귀의 유혹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슨 수로 우리 마음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마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수도원에 들어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도 마귀는 우리를 시험합니다. 우리 마음이 바로 마귀가 시험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의 왕으로 모신 사람은 작은 이익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도,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의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런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순종과 충성의 열매는 우리가 노력해서 맺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과 충성의 열매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저절로 맺힙니다. 우리 안에 왕으로 계신 예수님이 우리를 지혜롭고 충서스러운 종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유기성 목사)

 

가정교회를 말하다

가정교회의 사회적 상황②


설 연휴 전까지 진행된 마지막 내용은 바울이 두 번째 가정교회 디도 유스도 집에서의 사역이었습니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에서 선교 보조금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에 매달리지 않고, 디도 유스도 집으로 옮겨 복음 증거 활동에만 전념했습니다. 그 집은 회당 옆에 위치해 바울에게는 특별히 중요했습니다. 1년 반 후에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함께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이동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에베소에서도 한 가정교회가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서 조직되어 모임을 가졌습니다(사도행전 18:18-19).
바울 다음에 아볼로가 고린도로 왔는데, 그도 틀림없이 바울이 사용했던 방법을 썼을 것입니다(사도행전 18:27-28). 곧 한 집에 집중하여 집에서 가정교회를 형성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 가정교회가 특별히 아볼로에게 충성했습니다. 고린도에는 다른 가정교회들도 존재했습니다. 가이오의 집(로마서 16:23)에서는 분명히 한 그룹이 모이고 있었고, 또한 회당장 그리스보의 집(고린도전서 1:14), 스데바나의 집(고린도전서 1:16), 그리고 에라스도의 집(로마서 16:23)에도 가정교회가 모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의 긴 인사 목록을 보면,
우리는 로마에 적어도 세 개의 가정교회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이는 가정교회이고(로마서 16:3, 5), 두 번째는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헤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의 교회이고(로마서 16:14), 세 번째는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성도의 교회입니다(로마서 16:15). 이름으로 판단하면, 첫 번째 가정교회는 대부분 유대인들로 구성된 교회였으나, 다른 두 가정교회는 주로 노예나 해방된 노예들로 구성된 이방인 교회였습니다.
한 도시에 여러 가정교회들이 존재했다면, 여러 교회들은 서로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었을까요? 고린도의 경우, 고린도전서 14장 23절에 "온 교회"가 함께 모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23절에도 고린도 교회를 언급하여 "온 교회"의 모임 장소가 가이오의 집이었다고 말합니다. 여기 "온 교회"란 고린도에 있는 모든 가정교회들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당시 도시에 사는 일반인 집에는 적어도 10-20명 정도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방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처음 교회는 이러한 방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내일 계속..)

기도의 횃불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하소서!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 하나님! 저희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그 크신 사랑을 생각할 때 한없이 감사하고 감격할 뿐이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없었더라면 저희가 어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있었겠사오리까? 오늘도 저희를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이 복된 방송으로 이끄셨기에 저희들이 이 은혜의 자리에 있게 됨을 믿습니다. 감격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경배하오니 저희가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십자가로 저희에 대한 사랑을 완성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졌던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못난 모습, 허물 많은 모습만 보일 것이 없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기꺼이 고난의 자리로 나아가신 주님!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날마다 희생의 자리로 나아가신 주님의 고통이 얼마나 힘드셨는지를 몸으로 느끼며 참회할 수 있게 하시고, 저희가 자랑할 것은 생명의 법 아래 살게 하신 주님의 피 묻은 십자가 박에 없음을 뼛속 깊숙이 깨닫고 확신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아직 주님의 십자가만 의지합니다!
또한 그 십자가만을 붙들고, 그 십자가만을 앞세우며, 그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십자가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대치하려는 어리석음이 없게 하시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기쁨과 소망을 삼을 수 있는 저희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주님의 피 묻은 희생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저희 자신을 깨뜨리기에 주저함이 없게 하시고,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잘 깨뜨리는 삶을 살아감으로 저희를 위해 모든 것을 깨뜨리신 주님을 닮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오직 주님의 구원에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복의 노래

감사 by 김소영(우물가찬양)

복음 쪽지~㉾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라!


당신의 죄들이 당신을 따라다닙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약간 기도하고 당신의 행위를 조금 고친다고 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풀린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악의와 시기는 마음속의 독입니다. 영적 게으름은 마음속의 괴혈병이고, 육신적 안락은 죽음에 이르는 혼수상태입니다. 이런 온갖 병에 시달리는 영혼이 어찌 위로를 맛볼 수 있단 말입니까? 의인의 소망은 열매를 맺으면서 끝나지만, 악인의 소망은 좌절 속에서 끝납니다. 경건한 사람은 죽을 때 "다 이루었다"말하지만, 악인은 망하게 되었구나 한탄합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