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82번째 이야기
유일한 탄원..! 거룩하지 못한 행동은 기도 응답을 받는 데 방해가 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가려면,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죄를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기도는 깨끗이 씻긴 마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깨끗한 손을 들어 기도할 때 응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을 끊임없이 소망할 때 비로소 우리의 기도가 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 흘리는 눈물은 귀한 것입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기 죄의 문제를 놓고 기도해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눈물은 회개하는 사람의 유일한 탄원입니다! ![]() |
완벽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 걸까요? 요즘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하나같이 "완벽주의"를 지향한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어느 경전에 "태초에 완벽이 있었노라"라는 문구가 있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완벽주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목표를 세워서 노력해나가는 건강한 완벽주의와, 완벽한 상태가 아니면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병리적인 완벽주의가 있습니다. 건강한 완벽주의는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많지만, 병리적인 완벽주의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채 걱정만 하다가 에너지를 모두 낭비해버리는 비효율적인 습관인 것입니다. 완벽주의에 집착하면 과도한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아직 준비가 완벽하지 않으니, 시작하면 안 돼!"라고 하며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시작 단계부터 완벽하게 준비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웠으니, 첫걸음을 떼기가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두려움은 마땅히 도전해야 할 과업 앞에서 머뭇거리게 만듭니다. 종종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n 포 세대"라는 단어는, ‘도전 앞에서 용기 내어 달려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신조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완벽주의자는 마음 깊숙이 "자신이 완벽한 모습일 때만 사랑받을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완벽주의와 사랑받고자 하는 욕심이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의 틈을 상대방이 발견했을 때,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완벽주의로 나타나는 셈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완벽주의는 틈에 대한 결벽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완벽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 걸까요?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속마음을 털어놔도 치부로 여겨지지 않을 대상을 대화 상대로 선호하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유은정) 그렇습니다. 시편 8편에는 "주께서는 그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시고, 그 머리에 영광과 존귀의 왕관을 씌우셨습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이란 이렇듯 보잘것없는 존재 이건만, 어찌하여 주님은 그토록 생각해 주시는지요?"라면서 감격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완벽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필요 없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저는 부족한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해야만 정상이 아닐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자신의 예수님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존재로 여기며 살아갑시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69-공로와 은혜 공로와 은혜의 문제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역사적 논쟁의 핵심입니다. 종교개혁의 주요 선언 중 하나는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로써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구원"을 뜻합니다. 명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 앞에 자신의 공로를 하나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의지할 뿐입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신학은 공로를 세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로 "적정 공로(condign merit)"가 있습니다. 이것은 상을 받을 만한 공로입니다. 또 "재량 공로(congruous merit)"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적정 공로보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상 주시기에 "적합한, 또는 조화되는" 공로이며 고해성사와 결부되어 선행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 유형의 공로는 "여분의 공로(supererogatory merit)입니다. 이것은 의무의 요구를 초월하고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얻을 수 있는 공로 이상의 것입니다. 이것은 공로의 보고에 저장되어 연옥에서 하늘나라로 가는 데 부족한 공로를 채울 때 쓰인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우리의 공로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밖에 없음을 믿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공로를 모두 부정하고 반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집니다. 은혜는 우리의 공로 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행동이며 섭리입니다. 은혜는 우리의 영혼 속에 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 가지만 우리 안에 있는 은혜의 분량에 따라 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거하셔서 우리를 향해, 또 우리에게 자비로운 도움을 주시는 성령의 은혜 안에서 자랍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는 수단은 말씀, 성례, 기도, 교제,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양육입니다. 참고로 종교개혁의 5대 강력은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령),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그리고 솔리 데오 글로리라(Soli deo Gloria, 오직 주께 영광)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얻게 됩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선물이며 자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욱더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 |
[새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
사랑의 위로자, 생명의 주권자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누가복음 7장 11-17).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생명을 살리신 세 가지 기적 중 하나인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시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합니다.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 한 과부의 독자의 장례 행렬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며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이에 죽은 과부의 독자가 살아납니다. 이를 본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소문은 사방에 퍼집니다. 예수님의 사랑(11-14절). 예수님은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와 많은 무리와 함께 나인성으로 향하십니다. 그곳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 죽은 자를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을 만나십니다. 죽은 사람은 한 어머니의 외아들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외아들까지 잃고 절망에 빠진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며 13절, "울지 말라"라고 위로하십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어원은 사람의 장기를 뜻합니다. 여기에는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나인성 과부는 경멸 받던 사마리아인이고 남편과 외아들을 잃은 가엾은 여인입니다. 예수님은 절망에 놓인 과부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를 주님의 백성으로 여겨 위로해 주셨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 앞에서 우리가 간구할 내용은 이것입니다. 바로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는 외침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관에 손을 대시고 죽은 청년을 향해 14절, "일어나라"라고 명하십니다. 주님의 사랑과 능력은 우리의 절망과 눈물을 소망과 기쁨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위로를 깊이 경험한 것은 언제였는지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능력(15-17절). 관에 손을 대는 것은 부정한 일이지만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부정한 것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요, 산 자와 죽은 자를 모두 다스리시는 "생명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정확히는 하나님 자신으로 신적 능력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분이 "일어나라" 명령하시자 죽었던 청년이 다시 살아납니다. 청년이 일어나 앉고 말고 하는 것은 그가 살아났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다시 어머니 품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이때 어머니의 기쁨은 어떠했을까요? 이 기적은 이후에 일어날 8장 49-56절, 야이로이 딸을 살리실 때처럼 골방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일어납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16절, "큰 선지자가 일어나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라고 놀라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에 죽음을 몰아내시고 생명을 회복하신 사건은 장차 그분이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실 것을 예표 합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크신 긍휼과 능력을 기대하며 간구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한없는 자비와 긍휼을 보여주신, 사랑의 주님! 외아들을 잃은 과부를 불쌍히 여기셔서, 죽은 자를 되살려주셨음을 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시체가 놓인 관에 손을 대심으로 주님이 모든 부정함을 정결케 하시는 분임을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생명의 구원자 되시는 주님께만 소망을 두게 하시옵소서. 그 생명의 예수님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전하게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내 삶을 깨뜨립니다 by 조미희![]() |
예수님이 계셔서 안심입니다 깐숙이라는 몽골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동대문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해 자기 나라로 돌아가 장사를 하려고 잠시 한국을 방문한 차에 그만 길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를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시켰습니다. 깐숙이를 치료하는 데는 거액의 병원비가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전에 방글라데시 어린이의 병원비를 우리가 대신 지불해 주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원무과 직원을 만난 것입니다. 사고를 당한 외국인을 지원하는 국가 기관에 연락해 깐숙이의 병원비를 지원받도록 그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깐숙이는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몽골로 돌아가 그곳에서 선교사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홀리네이션스 선교회 홈페이지에 계좌 번호도 적혀 있지 않은데 어떻게 그 많은 이주 노동자를 도울 돈이 충당되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의지해 계좌 번호를 올려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필요는 주님의 방식으로 채워집니다. 그것을 믿고 예수님께 갔을 때, 예수님이 그분의 능력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극심한 고통을 안고 찾아오는 수많은 이주 노동자 환자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당신을 돌보아 줄게요. 살아 계신 예수님을 믿고 안심하세요!"(김상숙 목사). ![]() |
바울과 가정교회③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러 가는 길인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직접 만나주신 것입니다(갈라디아서 1:16; 고린도전서 15:8). 이 만남이 바울에게 새로운 실존의 근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단순히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다메섹 도상의 사건은 어떤 의미에서 부활의 경험이었습니다(고린도전서 15:8-9). 바울은 다른 부활의 증인들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복음 전파의 소명을 받았던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5-11; 로마서 1:5). 소명을 받자마자 바울은 아라비아(나바티아 왕국)와 다메섹에서 독자적으로 선교를 시작했습니다(갈라디아서 1:16-17). 그러고는 북 수리아와 자기 고향 길리기아에서(갈라디아서 1:21) 선교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초기 사역은 특별한 열매를 거둔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바울이 안디옥에서 시역을 시작하면서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원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유대인의 회당에 소속되었으나, 회당으로부터 점차 분리하여 개인 집에서 교회로 모이면서 이방인들에게도 주 예수를 전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사역하면서, 적극적으로 이방인 선교에 동참했습니다. 1차 선교여행은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가까운 구브로 섬의 살라미와 바보에서, 그리고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와 더베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2차 선교여행은 바나나와 분리되어 바울과 그의 팀이 단독으로 수행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건너가 로마와 비잔티움을 연결하는 주요한 도시인 빌립보와 마게도냐의 수도인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선교했습니다. 그리고 아덴을 거쳐 고린도로 내려와, 국제적 무역 도시인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체류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3차 선교여행은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인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선교 사역을 통하여 바울은 초기 그리스도인 1세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후 바울은 자기가 개척한 이방인 교회들에게 거둔 구제금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하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적대적인 유대인들의 고소를 받아 체포됐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방문하기를 원했던 로마로 이송되었고, 거기서 60년대 초에 순교했습니다.(내일 계속..) ![]() |
뜨거운 믿음이 회복되게 하소서! 세상에 빛으로 오신 주님!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가련한 저희들이 그 이름을 영접하여 생명의 길을 찾았사오니 감사와 찬송을 주님께 드립니다. 저희의 심령을 날마다 새롭게 하셔서 벅찬 감격으로 주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하시고, 찬송 중에 임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 이 뜨겁고 감격스러운 예배의 자리도 점점 더 식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삶의 고백이 묻어 있는 새 노래로 주님께 올릴 찬송을 부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믿음의 무리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마음을 빼앗겨서 이 복된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에 있으면 토하여버리라는 계시록의 그 무서운 책망의 말씀이 오늘 저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주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요한일서 2:15,16)라고 하셨사오니,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예배하게 하시옵소서! 석어 없어질 세상의 재물에 마음을 두지 말게 하여 주시고, 영원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수 있는 믿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 유혹이 넘실거려도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올 한 해에 저희에게서 더욱 성숙된 신앙의 모습이 보여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나누고 찬양을 부르며 기도를 오려드리는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우리의 영성이 든든히 무장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나날이 성장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아주 먼 옛날 by 하이호이![]() |
그리스도인의 자유..! 회개한 사람은 자유롭고 단호한 의지로 그리스도의 길을 선택합니다. 고민 끝에 그리스도의 길에 억지로 동의하거나 갑작스럽고 성급하게 결단을 내리는 것도 아닙니다. 의지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자유롭게 선택합니다. 그러나 거룩하게 되지 못한 사람은 쇠사슬과 족쇄에 매인 것처럼 억지로 그리스도의 길을 가지만,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 길을 가며 그리스도의 율법을 자기의 자유로 여깁니다. 회개한 사람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에 날마다 신경 쓰면서 살아갑니다. 완전한 성결에 이를 때까지 결코 쉬지 않습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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