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62번째 이야기
내 생각을 내려놓았을 때..! 내려놓음을 통해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적극적인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려놓음을 통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을 꽉 움켜쥐고 내려놓지 않았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다른 쪽이 보였고 순종할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내려놓음의 삶은 평생 동안의 숙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음이 없이는 진정한 관계가 지속될 수 없고,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도 이루지지 못하는 것임을 명심합시다! ![]() |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보약 어느 중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주제로 글짓기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선생님은 글을 쓰고 있는 학생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살펴보다가 한 학생의 글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그는 몸이 많이 불편해서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에게 다가간 선생님은 그의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학생이 선생님의 예상을 뛰어넘는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그 학생이 "다시 태어난다면 몸이 불편하지 않은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라는 글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다시 태어난다면 내 어머니의 어머니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내가 받은 고마움을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어서 무조건 보답하면서 살고 싶다. 이 세상에서 내가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보답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기에, 제발 다음 생에서는 내 어머니의 어머니로 태어나서 그 무한한 사랑을 갚고 싶다.”라고 쓴 것입니다. 저의 연구실에는 감사의 가치를 알려주는 소중한 장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통곡의 벽"이 있다면, 제 연구실에는 "감사의 벽"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해준 감사의 편지와 쪽지들로 가득한 벽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하게 된 "감사의 벽"이지만, 건망증이 심하여 무슨 일이든 자주 잊어버리는 저에게 꼭 잊지 말아야 할 감사의 추억들을 보관해 주는 곳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저는 그 "감사의 벽" 앞에 서서 소중한 이들이 전해준 아름다운 감사의 내용들을 읽어보곤 합니다. 따스한 감사의 선물들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지고, 마음에 온기가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머리 아프고 힘든 현실들은 작아지고, 곧 해결할 수 있고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납니다. 감사 효과! 감사는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보약입니다.(김나미) 그렇습니다. 위의 글을 읽고, 저도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예림가족 이야기" 글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글들을 나만 볼 수 있는 가림 메뉴를 마련했습니다. 교회 사역을 하면서, 또 방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또는 나의 나태함 때문에 내상을 입었을 경우, 또는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질 때, 그 댓글들을 읽고 용기와 힘을 얻고자 해서입니다. 아무튼, "감사가 없는 삶"은 메마른 사막과도 같을 겁니다. 감사가 있어야 기쁨이 있고, 기쁨이 있어야 평안함이 있으며, 평안함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가 곧 기쁨입니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51-원죄 흔히들 "사람은 근본적으로 선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인간의 사악함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일 근본적으로 선하다면 왜 이렇게 죄가 만연한 것일까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사회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환경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를 추구하는 사회라 해도 여전히 죄책을 다루는 규정을 갖습니다. 즉 열매가 보편적으로 부패했기에 우리는 문제의 근원이 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다고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악하고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성경이 이 점을 노골적으로 가르치지는 않지만 죄의 보편성이라는 적나라한 사실을 통해 얼마든지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락은 단순히 이성적인 추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계시의 요점입니다. 타락은 소위 "원죄"라는 것과 관련됩니다. 원죄는 정확히 말하면 본래 아담과 하와가 최초로 지은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죄는 첫 번째 죄의 결과(인류의 타락), 즉 우리가 태어날 때의 타락한 상태를 말합니다. 최초의 타락은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최초의 타락을 파괴적이었습니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는 개혁주의 사상가들 사이에서조차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그 사건을 성경이 설명하는 것만큼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간계와 유혹 때문에 하나님께서 금하신 실과를 먹음으로 범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자기의 지혜로우시고 거룩하신 뜻을 따라 허락사였는데, 이는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이와 같은 타락의 결과는 아담과 하와를 넘어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죄인입니다!" 우리는 "각 사람이 언제 죄인이 되었는가?"라고 질문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 있는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아담과의 연계성 때문에 하나님 보이기에 악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타락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이 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본래 가졌던 의로움과 하나님과의 고통에서 떨어졌고 그리하여 죄로 죽으며 모든 기능과 영혼과 육신이 더러워졌다!" 그들은 모든 인간의 뿌리가 되므로 이 죄를 범한 죄과는 그들로부터 보통 생육 법으로 나는 모든 후대 자손들에게까지 돌려져 그들에게도 죄로 인한 같은 죽음과 부패한 성품이 전달되었습니다. 이 원(原) 부패성 때문에 우리는 병들었고 불구가 되었고 모든 선한 것을 대적하고 모든 악한 것을 전적으로 따라가는데 이 원 부패성에서 실제로 짓는 모든 죄가 나옵니다. 우리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아닙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그런 까닭에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편 5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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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알 수 없는 창조 세계의 거대함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 악한 자들을 그 땅에서 떨쳐 버린 일이 있었느냐 땅이 변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이 되었고 그들은 옷 같이 나타나되 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너는 그의 지경으로 그를 데려갈 수 있느냐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 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욥기 38장 1-21절). 함께 읽은 본문은 욥과 네 친구들의 길고 지루한 문답 후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작하시는 대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욥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폭풍우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지한 말을 하는 욥에게 질문에 대답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그가 어디 있었는지, 바다의 한계를 정한 자가 누구인지, 사망의 문을 보았는지, 땅의 너비를 측량할 수 있는지 등 이 모든 것에 대해 답하라고 하십니다. 당연히 이런 것들은 욥이 답할 수 없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문(1-3절). 하나님은 인간의 탄식과 질문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1절 "폭풍우 가운데서"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씀하심은 자기 백성을 구하러 나서는 용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신의 현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 발언은 2절,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생각"은 히브리말로 "에차" 즉, "계획"을 뜻합니다. 창조 세게는 하나님의 계획가 의도에 따라 주도면밀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질문에서 하나님은 "무지한 말" 즉 지식 없는 말로 그분의 계획을 어둡게 하는 사람의 "능력"을 문제 삼으십니다. 3절, 창조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자신을 바르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욥은 그토록 바라던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방식을 아닙니다. 욥은 하나님을 피고로 법정에 세우려 했지만, 자신이 피고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욥의 죄목은 "무지와 무능"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욥은 결코 "대장부"가 아닙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은혜를 구하는 것뿐입니다. 자신의 무지함을 깨달은 성도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은혜를 구합니다. 고통 가운데 괴로워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셨나요? 창조 세계의 정교함과 거대함(4-31절).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무지가 대립됩니다. 욥은 이제 하나님 앞에서 질문하는 자가 아니라 질문당하는 자로 섭니다. 하나님은 세계 창조와 관련된 다양한 질문을 쏟아 놓으십니다. 이 단락에서는 4-11절, "땅의 기초 놓기와 바다의 경계 정하기", 12-15절, "아침과 아침노을", 16-21절, "창조 세계의 거대함"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룹니다. 하나님의 발언은 3장에서 욥이 탄식하며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4절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라는 질문과 21절,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라는 반어법적 진술은 욥에게 창조 세계의 관한 지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를 알게 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수사적인 질문들로 욥의 무능과 무지를 깨우치시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위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진행 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 창조와 관련한 하나님의 질문은 욥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을지, 하나님 말씀 앞에 설 때마다 우리 지식과 능력의 학계를 묵상합시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주 만물의 생성과 운행에 관한 기초도 온전히 모르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무지한 말로 항변한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말씀과 만물 속에서 주님의 위대하심을 깊이 묵상하고 깨닫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함께하시옵소서. 우리는 작은 지혜와 능력을 자랑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성령의 충만하신 뜨거운 열정으로 채워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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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원점으로 돌아가라 영성의 목표는 하나님과의 동일시요 동화입니다. 이는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고 싶은 갈망입니다. 창세기의 뱀처럼 거짓되게 이 갈망을 채우려 하면 절망에 이르게 되지만, 영과 진리로 겸손히 하나님을 따르면 영혼의 소망을 이루게 됩니다. 사탄은 오늘날에도 신의 경지에 이르는 인간의 진보를 꿈꾸게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없는 것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잇던 것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인간이 되신 것은, 여전히 죄 많고 유한한 우리도 온전히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망이요 지향점입니까! 성화의 문제와 씨름하다가 구원의 확신까지 흔들린다면, 창조의 원점으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성화의 초고봉에 이르려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오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창조를 우리의 원수 대적 마귀가 변질시켰지만, 우리가 돌이켜 말씀에 순종하며 자녀 됨을 회복합니다. 이후로 땅에서는 성화를, 천국에 이르러서는 영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거룩함의 원형이신 하나님과 거룩함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비참한 존재가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난은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래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알 때, 비참한 현실을 넘어 영광스러운 이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서 결코 눈을 떼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애쓰고 노력하는 것입니다.(이상준 목사) ![]() |
실제적 고려 사항: 가정교회의 운영⑥ 열 번째는 "일대일 제자훈련 연결망"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가 신학교 시절에 지금도 멘토로 생각할 정도로의 영향을 끼친 4명의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저의 책장에는 아직도 그분들의 저서나 그분들이 가르치셨던 교안이 제일 위에 꽂혀 있습니다. 또한 다음 카페 예림의집의 <신학 공부> 게시판, <학습도움이> 코너에는 그분들 중에 한 분이 2009년 3월 10일 개강 수련회에서 특강하셨던 "신학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신학서적 독서, 과제물, 시험 답안 작성에 관하여"를 공지로 올려놓고 가끔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가장 영향을 받았던 것은 바로 "열정"입니다. 저는 그분들의 열정과 신학생들에게 쏟은 수고 덕분에 내 삶은 깊은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함께 공부했던 42기 동기들 또한 비슷한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영혼을 자신의 날개 아래 품는 수고는 참으로 성경적인 모습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회심한 바울을 격려하는 바나바를 볼 수 있고, 바울이 디모데가 지도자로 굳게 서도록 영향을 끼치고, 그 후에 또다시 디모데가 다음 세대 지도자들을 훈련하는 과정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더 일찍이 구약성경에서도 우리는 엘리야가 엘리사의 영적 아버지가 되는 것과, 두 친구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에게 멘토가 되어 배우곤 했으며, 모세가 여호수아를 자신을 이을 지도자로 세우는 것을 목격합니다. 성경의 지도자 훈련과 제자도는 대개는 실습과 형장 수업, 도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저의 관점과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일대일" 제자훈련 및 "사슬처럼 연결된" 제자훈련은 가정교회 운동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영적 멘토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 갓 태어난 그리스도인, 성장하는 그리스도인, 개인적 위기를 통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 또한 현재와 미래의 그리스도인 지도자, 이들 모두에게 제자 훈련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정을 우리보다 앞서 걸어간 모든 이들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는 많은 선생들이 있지만,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또한 그들이 상징하는 것을 지켜보며 필요를 채워주는 영적인 부모는 부족합니다. 영적 멘토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모든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데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시길 원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무엇인가를 전해주려 합니다!(계속..) ![]() |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저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앞서간 성도들과 함께 하늘의 기업을 누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은혜로 저희에게 주어진 이 구원과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하나님의 자녀 됨과 천국의 영원한 기업을 인하여 다시 한번 감사하오며 찬송합니다. 끊임없이 연약한 저희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저희 모두가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방송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큰 영광을 돌리며 기쁨으로 믿음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 저희의 부족한 믿음을 아시오니, 항상 풍성한 은혜로 저희의 믿음을 채워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늘 믿음의 고백을 드리며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시고,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세상 속에서는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믿음으로 이겨나갈 수 있게 하시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리의 영어로 저희를 감화하시고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희를 굳게 세워 나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의 짐을 친히 감당하신 주님! 믿음의 역사를 세상 앞에 보여줄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고, 많은 이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는데 쓰임 받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 방송을 듣는 저희들 가운데 생업의 문제로, 질병으로, 가족의 문제로, 부모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일로 마음 아파하며 괴로워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 저희의 모든 일들, 모든 문제들을 주님께서 권고해 주심으로 아름답고, 형통하고, 유익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저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언제든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임마누엘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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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진리에 대해 무지(無知) 하거나 불경스러운 언행을 일삼거나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한다면, 그는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본 사람들 중 대다수는 죄의 깨달음이 회개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위로합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이 곧 회개라면, 아벨을 죽인 가인도 회개한 사람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탕한 삶을 청산하고 악한 친구들을 멀리하고 욕망을 극복하고 근신하면 회개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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