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61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1. 12. 20. 14:05

예림의집 2461번째 이야기

사색의 바다

내려놓음의 훈련..!


내려놓기도 훈련입니다. 작은 것부터 내려놓는 훈련을 하다 보면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느끼며 모든 삶을 온전히 주님 앞에 내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려놓음의 훈련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 시민으로 주님 앞에 가게 될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이 가지신 비전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비전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것을 붙드는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 하나님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하면서 나의 만족을 채우며 살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 됩시다!

 

예림가족 이야기

고단한 인생길에서 동행하는..

“나, 6개월 후에 퇴직해요!” 쉰다섯 살 남편의 갑작스러운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권고사직 통보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몇 달 전, 오래 살았던 빌라를 떠나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한 뒤였습니다. 대학생 아들의 학비와 시어머니 병원비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부터 시작된 갱년기는 몸과 마음을 모두 아프게 했습니다. 저는 늦깎이로 대학을 함께 다닌 언니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놨습니다. “언니, 저 이제 좋아하는 믹스커피도 줄여야겠어요.” 농담처럼 웃으며 이야기한 며칠 뒤, 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너희 집 앞인데, 잠깐 내려와 볼래?” 언니는 물건이 가득 든 봉지를 건넸습니다. “장 보다가 네 생각이 나서 샀어.” 집에 와서 열어보니, 믹스커피와 식료품이 종류별로 있었습니다. 지나가듯 한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저를 생각해 준 언니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다른 언니들도 산타처럼 선물 보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가을이 가기 전에 단풍 구경할까? 드라이브 가자!” “시댁에서 가져온 채소야. 나 혼자 다 못 먹어서.” “과일 선물을 많이 받았는데, 우린 식구가 적잖아.” 덧붙이는 말에서 혹시 내가 부담을 가질까 배려하는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언니들은 물건뿐만 아니라 귀한 마음을 저에게 내주었습니다. 우리는 4년간 공부하면서 함께 봉사도 다니고 여행도 갔습니다.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이 되는 동안, 서로 힘들거나 아플 땐 위로하고, 기쁜 일이 있으면 축하해 줬습니다. 고단한 인생길에서 동행하는 ‘산타 언니’들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추운 겨울날, 저의 차가운 손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어 따뜻하게 해주는 언니들과 오래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제가 받은 선물처럼, 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사는 것이 저의 소학행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까지..(김봉월)

그렇습니다. 어쩌면, 글쓴이가 먼저 언니들에게 잘했기 때문에, 언니들도 그처럼 막내에게 천사처럼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친한 지인의 아내에게도 여동생이 다섯이나 있습니다. 자매들끼리 의좋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습니다. 바닷가에 사는 처제는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농사짓는 처제는 농사지은 것들을, 그리고 다른 자매들도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서로 도와가며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 관계는 상대성이 있습니다. 내가 잘하면 상대도 나에게 잘하게 되어 있고, 서로가 의지하게 됩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50-죄

죄의 성경적 정의는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았을 때 "과녁을 빗나가는 것"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빗나간 목표는 조준판의 표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변함없는 진리이신 말씀의 규범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의 의(뜻)를 표현하며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궁극적인 기준이 됩니다. 즉 그 기준에 이르지 못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관점에서 "죄의 보편성"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완벽한 사람은 없다." 혹은 "잘못을 범하는 것은 인지상사"라는 말은 죄의 보편성을 인정한 말입니다. 즉 우리 모두는 구속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입니다. 죄는 "이성적인 피조물에게 규칙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있어서 부족하거나 위반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왔습니다. 이 정의에는 세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 죄는 "순종이 부족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하셨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둘째, 죄는 "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법을 위반하다는 것은 법이 정한 경계를 가로지르거나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를 "침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법에서 ".. 하지 말라"라고 선포하신 것을 하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셋째, 죄는 "이성적인 피조물에 의한 행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도덕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가령 그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일을 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가톨릭 신학은, 대죄란 영혼 속에 있는 은혜를 죽이는 것이므로 고해성사를 통해
새로운 칭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면 소죄(경죄)는 그보다 덜 심각한 것으로 구원하는 은혜를 파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면에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 신학의 소죄와 대죄의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존 칼빈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든 죄는 죽어 마땅하다는 점에서 대죄이지만, 어떤 죄도 그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 대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여러 가지 죄로부터 초래되는 죄책에 대해 경고합니다. 야고보는 율법의 한 부분을 범하는 것이 율법 전채를 범하는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죄에 따라 더해지는 죄책이 있습니다. 바울도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쌓지 말라고 권고합니다(로마서 2:1-11). 우리가 범하는 죄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우리의 죄책을 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책을 모두 합한 것보다 큽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보고 인간을 진지하게 보기 때문에 죄도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은 그의 거룩하심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범죄 하는 것 또한 그의 인간성을 모욕하는 것으로 결국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독한 것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전능자의 위엄만 부각하는 반쪽 신앙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그대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을 아느냐 땅이 고요할 때에 남풍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그대가 아느냐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그대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아둔하여 아뢰지 못하겠노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어디 있으랴 그런즉 바람이 불어 하늘이 말끔하게 되었을 때 그 밝은 빛을 아무도 볼 수 없느니라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욥기 37장 14-24절).


앞선 37장 1-13절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히 들으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날씨와 기후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며, 하나님은 징계를 위해, 긍휼을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하신다고 합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번개와 구름의 경이로움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전능자를 찾을 수 없고, 하나님의 권능은 크시며, 그분은 공의를 굽히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마땅하다고 욥에게 권면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깨달으라(14-20절).
인간은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극히 일부만 알뿐입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욥에게 14절,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15-18절에서 "아느냐"와 "할 수 있느냐"라는 수사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는 욥이 답변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진술은 곧 이어질 38-41절의 하나님의 발언, 곧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무능을 극명하게 강조하는 내용과 유사하기에 이를 예비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는 무능하고 무지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 어떠한 말로도 대항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인간이 섣불리 말하다가 삼킴을 당한다고 경고합니다. 18절에서 엘리후가 언급한 거울은 현대인이 사용하는 유리 거울이 아니라 청동 거울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하나님이 청동을 두드려 하늘을 만드셨고, 이렇게 만든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을 고정하셨으며, 청동 안 방들의 문을 열면 비와 바람과 눈이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욥을 향한 엘리후의 정죄는 잘못되었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하는 그의 지식은 높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들을 향한 정죄는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21-24절).
엘리후는 사람이 쉽게 가까이 갈 수 없는 하나님의 위엄하신 속성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긍휼의 하나님은 무지하고 무능한 인간을 찾아오시고, 만나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은 언제든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인가, 아니면 섣불리 가까이하기 어려운 분인지 묵상해 봅시다.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 앞에 인간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21절, 아무도 밝은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22절, 북쪽의 빛과 두려운 위엄은 빛의 현현과 함께 드러나는 하나님의 위엄을 말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위엄 앞에서 사람이 취할 태도는 "하나님 경외"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께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경외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38장 1절에서 욥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엘리후의 발언은 "하나님의 권능이 크고 정의로우신데,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합니다. 욥과 같이 고난 당하는 이에게 진정한 답변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엘리후가 하나님 경외를 강조하는 이후는 욥을 책망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으로 경외하는 것과 두려움으로 경외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전능자의 위엄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 높고 넓은 하늘에 구름을 겹겹이 쌓으시는 창조주의 손길이 얼마나 오묘하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구름이 물러나 햇빛이 찬란히 드러나게 하시듯, 주님이 우리 삶의 먹구름도 걷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느 순간에도 살아 계신 주님의 존재를 느끼며, 완전한 지식으로 일하시는 주님을 경외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며, 우리의 길에 주님의 빛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임마누엘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공평하고 큰 성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시간"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시대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공평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은 소명받은 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재능과 능력을 자주 비교하곤 합니다. 나 역시 청년 시절 다른 성도의 재능과 능력을 보면서 불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내게 물으셨습니다. "남국아, 저 형제의 재능과 능력이 그렇게 부럽니?" 이 질문에 나는 "그럼요, 주님!"
"저 사람도 저와 처지가 바뀌면 제 마음을 이해할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계속 불평하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준 시간을 되돌리지 않아. 남국아, 내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에게 능력을 다 줄 수 있단다. 너는 나를 위해서 어려운 시절 10년 동안 묵묵히 초등부 교사로 봉사하고 금요일마다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했지. 네가 나를 사랑하고 예배 시간마다 나를 만나러 온 것은, 내가 재능과 능력을 주었기 때문에 네가 한 것들이 아니란다. 네가 나와 함께한 모든 시간과 나를 위해 수고한 모든 일을 나는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어.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소중하고 귀하단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큰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재능과 능력은 그냥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은 더 많이 맡긴 살마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물으실 뿐입니다. 그 재능과 능력의 크기에 따라 우리의 상급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을 주셨기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상급은 달라집니다. 돈을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시간은 지나가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시간은 항상 순식간에 지나가며 영영 돌이킬 수 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준비 없이 바로 실전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허송하거나 함부로 낭비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시간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을 준비하는 시간"과 "준비한 것을 쓰임 받는 시간"입니다.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준비하고 얼마만큼 집중하는가에 따라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 받는지 결정이 됩니다. 하나님이 단 합 번만 내어 주신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으로 살아 내시기를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김남국 목사)


 

가정교회를 말하다

실제적 고려 사항: 가정교회의 운영⑤


아홉 번째는 공동체 생활입니다. 가정교회는 누군가의 가정에서 매주 열리는 모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매일의 삶과 사역에서 영적으로 변화된 관계성을 다져가는 것입니다. 상호 책임과 격려, 멘토링과 리더십 개발을 위해 비공식적이지만 계획된 수준의 "중간 단계의 모임"이 필수적입니다. 가정교회는 공식적으로는 일주일에 최대 3차례 정도 한정된 시간에 모이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공식화된 모임 말고도, 가정교회는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계속되는 공동체요 가정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매 순간 사용하시는 용광로이기도 합니다. 이것의 실제적인 의미는 다른 사람과 질적이고 양적인 시간을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상호 간의 삶을 잇댄 사역이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에 들어오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산책하며 식사하는 것, 같이 쇼핑을 하고 운동을 하는 것, 같이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공식적인 가르침보다 이런 비공식적인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고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열두 제자를 훈련시켰는지를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몇 명의 제자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보낸 시간과 비교했을 때 너무도 많은 시간이었고 이는 예수님의 의도적인 전략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사실상 전 세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보다 더 많습니다. 그분은 전체 사역 중에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제자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잤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외진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그들은 복잡한 도시를 함께 찾았습니다. 그들은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광야에서, 산에서 기도했습니다. 함께 회당과 성전에서 예배했습니다!

기도의 횃불

믿음의 경주를 잘하게 하소서!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믿음을 주셔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믿음을 가진 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저희들을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저희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경주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저희들 앞서 믿음으로 살아간 선진들이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서, 지금은 경주를 마치고 구름 떼 같이 둘러서서, 아직도 이 땅에서 신앙의 경주를 하고 있는 모든 신자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오랜 훗날 저희들도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노라고 환희와 감사에 찬 승전가를 부를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 옛날 광야의 이스라엘 못지않게 오늘날도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기이한 일을 수없이 베푸시며, 측량할 수 없는 큰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저희의 모습을 새롭게 하셔서 믿음의 자녀들이 방송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항상 저희의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주님께 믿음으로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마음 문을 활짝 열어놓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예비하신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는 마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모두가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일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호 공동체의 일꾼,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들이 되어 큰 것뿐만 아니라 작은 일에 충성하게 하시옵소서.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에 충성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인간의 판단을 받으려 하기보다 하나님의 판단을 잘 받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모두가 믿음의 경주를 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상 주실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임마누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탄의 노래

복음 쪽지~㉾

상처를 주는 친구의 말..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고,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어 필경 화살이 간을 꿰뚫는 것 같은 창녀의 말보다, 당장은 마음에 상처를 주는 친구의 말이 훨씬 낫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불의에서 떠나지 않고, 말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면서도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합니다. 신앙고백이라는 등(燈)으로 회개가 입증되는 것이라면 어리석은 처녀들이 쫓겨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구원이 문이 그토록 넓다면, 구원을 받겠다고 하면 누구나 구원을 받게 돌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상처에 쓰라림을 안고 회개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