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59번째 이야기
빼앗기는 것인 줄..! 지금까지는 내려놓음이 나의 것을 하나님께 빼앗기는 것인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내려놓음은 나의 것이라고 여기던 무언가를 버려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행복을 찾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님과의 동행이나 예수님과의 관계성 없이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바벨탑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도 백 퍼센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살아가면서 그 삶 속의 경험이나 실수를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씩 내려놓고 주님께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
저 역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남자 친구 차에서 ‘우리가 함께 맞는 일곱 번째 성탄절’을 자축했습니다. 그때, 신호 대기 중인 남자 친구 차가 스르륵 밀리더니, 앞차 범퍼에 닿았습니다. 남자 친구가 당황하며 차에서 내렸습니다. 우리 중고차와 달리, 앞차는 ‘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저도 잘 아는 비싼 차였습니다. 앞차 운전자는 아버지뻘 되는 중년 남성이었습니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보아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습니다. 남자 친구와 그는 범퍼를 보면서 대화했고, 저는 ‘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안전벨트를 풀었습니다. 그의 옆에라도 서 있을 생각이었습니다. 그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가 남자 친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고, 남자 친구는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보험 처리하자고 하셔?” “아니!” “그럼?” 남자 친구는 그가 한 말을 전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좋은 날인데, 기분을 망쳐서 쓰나? 나는 괜찮으니, 오늘은 그냥 가고 다음부터는 조심하도록 하게나!” 그 후, 사고를 여러 번 겪으면서, 우리 차는 성한 데가 없습니다. 폐차하기 전날, 저는 차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여기는 주차장에서 가만히 있는데 옆 차가 들이받아서 찌그러지고, 또 여긴 길가에 서 있는데 오토바이가 긁고 가고, 그런데 보험사도 안 부르고, 수리비 달라고 연락도 안 했지?” “이 차는 어차피 조금 더 긁히고 찌그러진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데, 그 사람들은 아니잖아. 돈도 돈이지만 얼마나 스트레스받는데.” “아무리 그래도….” “나도 누군가의 호의로 사고를 넘긴 적 있잖아. 내 호의를 받은 그들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을 나눠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다 보면, 돌고 돌아 내가 또 그 호의와 마주할 수도 있고.” 그날 중년의 운전자가 그에게 큰 울림을 주었나 봅니다. 그런 그와 살다 보니, 저 역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양수경) 그렇습니다. 이 글의 원래 제목은 "선한 영향력"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좋은 사회로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나 자신도 한몫해야 합니다. 좋은 사회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 공동체가 좋은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 자신부터 좋은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좋은 교회를 찾아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만, 그러나 내 맘에 쏙 드는 교회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우리가 지금 속해 있는 교회 공동체는 어떠한 교회인가 돌아봅시다! |
기독교의 핵심 진리 48-사탄 우리는 사탄의 형상을 핼러윈 파티에 등장하는 모습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핼러윈 파티에서의 사탄은 우스꽝스러운 빨간 옷을 입고 있습니다. 또 두 갈래로 갈라진 뿔과 세 갈래로 갈라진 꼬리를 달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경적인 기독교를 부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롱의 표적이 되곤 합니다.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아마도 사탄에 대한 우리의 문제는, 그것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이 않고 풍자적으로 꾸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만 생각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사탄은 "대적"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는 그가 마귀라는 것을 압니다. 그는 인류가 창조되기 전에 창조된 천사 중 하나였던 피조물이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인간, 그리고 하나님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둠의 임금, 거짓의 아비, 참소자, 미혹하는 뱀"으로 불립니다. 사탄의 참모습은 많은 사람의 생각처럼 뿔과 세 갈래의 꼬리를 가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아닙니다. 사실 그러한 모습은 중세 교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탄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교회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중세 교회는 사탄에게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이 그를 모욕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사탄의 가장 약한 부분이 교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의 교만을 공격하는 것이 그를 물리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사탄은 훨씬 더 세련된 모습입니다. 그는 놀랍게도 광명의 천사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탄에게 자신을 선한 모습으로 위장하는 교활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탄은 음흉하고 사람을 미혹하며 간악합니다. 그는 유창하게 말합니다. 그의 모습은 굉장히 멋집니다. 어둠의 임금이 빛의 외투를 입은 것입니다. 성경은 사탄이 삼킬 자를 찾는 우는 사자와 같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사자, 유다의 사자라고 일컬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속자이시며 사자를 막는 분이시며 삼키는 자를 삼키시는 분이십니다. 두 사자의 이미지 모두 힘을 말합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고(창 3:4-5), 서로 비방하게 하며(욥기 1:9-11), 질병과 고통을 가져다주고(욥 2:7; 누가복음 9:39), 시험하고(마태복음 4:1),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방해하고(마태복음 13:19, 38-39), 거짓말을 하며(요한복음 8:44), 악한 생각을 넣어 죄를 충동질 하고(요한복음 13:2),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고린도후서 4:4).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사탄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사탄은 정말 두려운 존재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워하는 것으로 반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보다 강할지 모르지만 그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강하십니다. 성경은 요한일서 4장 4절에서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라고 말합니다. 즉 사탄도 결국 피조물입니다. 그는 유한하고 제한된 천사가 타락한 존재입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그는 동시에 두 곳 이상에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결코 하나님과 동등하게 간주될 수 없습니다. 물론 사람보다는 능력이 있고, 지혜롭고, 치밀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는 타락한 천사라는 것이 그의 정체성입니다. 신이 아닙니다. 요즘 사탄을 섬기는 종교가 발흥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지상의 피조물보다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비교할 수 없는 비리한 존재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
높으신 창조주, 긍휼의 구원자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이냐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 내가 그대와 및 그대와 함께 있는 그대의 친구들에게 대답하리라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욥기 35장 1-16절). 함께 읽은 본문 중 10절의 "밤에 노래를 주시는"이란 표현은 암담하고 슬플 대도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노래할 이유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사람의 의로움이나 악행에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욥의 악행과 공의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는 욥이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헛된 것을 듣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벌을 주지 않으셔서, 욥이 헛되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엘리후가 욥과 함께 하나님을 탓하는 오만불손한 교만한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인간의 행동이 하나님께 미치는 영향(1-8절).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균형 잡힌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엘리후는 세 번째 발언에서도 욥의 말을 검증하려 합니다. 그가 문제 삼는 욥의 발언은 2절 "자신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라고 한 것입니다. 5절, 엘리후가 언급하는 "하늘"과 "높이 뜬 구름"은 하나님의 높으심과 차별성을 보여 주는 은유입니다. 엘리후는 인간의 범죄나 의로움 모두 하나님께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합니다. 8절, 인간의 죄악이나 의는 인간에게나 영향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반은 맞고 나머지는 틀린 주장입니다. 우리 인간의 그 무엇도 하나님께 영향을 미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주장은 인간 삶의 현주소를 깨닫게 하지만, 하나님의 초월성만 강조하기에 인간 삶을 무의미하다고 여기게 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초월해 계시지만, 동시에 이 세상 가운데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고, 기뻐하셨고, 지금도 운행하고 계십니다. 높으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를 어떻게 대해 주시는지 깊이 묵상합시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9-16절).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엘리후는 인간의 부르짖음을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9절, 단순히 고통 가운데 울부짖는 것과 10-11절, 창조주 하나님께 외치는 것입니다. 전자는 자연인의 부르짖음이고 후자는 신앙인의 부르짖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엘리후는 "헛된" 부르짖음에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교만한 악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1장 1절,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고난이나 형통의 이유를 죄나 선행의 결과로 단정 짓지만, 이는 섣부른 판단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형제자매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 밖에 있는 일입니다. 판단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욥의 탄식을 자연인의 부르짖음으로 보고, 악인의 교만을 보여 준다고 인식합니다. 또 욥이 헛된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하나님이 참아 주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진술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과한 것입니다. 오늘날 고통으로 부르짖는 이의 외침을 들을 때 어떤 마음을 들어야 할까요? "높으신 창조주이시며, 긍휼하신 구원자이신 주님, 우리의 의와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형제자매를 비난하는 어리석음을 빠지지 않길 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 힘입어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지체에 대한 정죄의 시선을 거두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함께 구하게 하시옵소서. 현제 자매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사오니,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우리가 가진 공동체적 책임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것을 나눌까, 다른 사람을 어떻게 세워 줄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또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에 감사하며 주님께 거저 받은 위로와 격려를 거저 나눕니다. 남을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소중하게 대합니다.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고 남을 용납하며, 한마디라도 상대를 세우는 말을 합니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면 자신도 정죄와 판단에 매입니다. 내가 남을 정죄하면 누군가는 도 나를 정죄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상대를 세우고 소중하게 대하면, 그 자신도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그 은혜를 나누며 다른 지체들도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은혜가 가장 필요한 지체를 기도 속에 품습니다. 그 마음이 중보 기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주님, 지금 그 지체에게 은혜를 주소서!" 그 마음으로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면 그 공동체에 영적 파워가 나타나고 영적 시너지가 나타납니다. 교회에는 공동체적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교회 공동체라고도 부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하나입니다. 나는 옆 사람에 대한 책임이 있고, 또한 뒷사람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공동체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갈망한다면서 공동체를 무시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를 무시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인지, 내 삶 속에 오늘도 은혜받은 자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 혼자 설 수 없고, 우리의 몸이 그렇듯이 교회 공동체는 항상 유지적이고 원활하게 서로를 세우고 도우며 성장해야 합니다!(홍민기 목사) |
실제적 고려 사항: 가정교회의 운영③ 다섯째는 "모임의 규모"입니다. 가정교회는 조직화된 모임과 달리 언제나 열려 있고 상호 참여적이며, 가족적인 분위기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모이는 가정의 수를 대략 6 가정에서 12 가정 사이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6 가정 이하의 그룹은 대게 점점 수가 줄어들거나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교제의 폭이 협소하고 기회가 점차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반면 12 가정 이상의 그룹은 친밀감을 키우거나 모든 사람이 골고루 참여할 기회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오늘날 급성장하는 교회 개척 운동은 대략 10명에서 30명 사이 규모의 가정교회와 셀모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여섯째, "모임 형태"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교회는 모든 사람이 한 번에 하나의 그룹으로 함께 참여하는 단일 셀 형태의 모임입니다. 이런 가정교회는 의도적으로 활발한 소그룹 활동을 통하여 친밀감을 활성화하도록 노력합니다. 반면 어떤 가정교회는 다중 셀 형태의 모임을 유지합니다. 이 모임은 첫 시간에 20-30명이 집안의 큰 방에서 함께 모인 다음 그 후에 좀 더 친밀하고 개인적인 교제를 위해 작은방에 몇 명으로 나누어 다시 모이는 형태입니다. 또 어떤 가정교회는 매주 여러 개의 셀모임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모든 셀이 한 가정에 모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곱째, "의사결정"입니다. 가정교회는 서로 친밀감을 유지하는 대부분의 모임이 그렇듯, 현재와 장래를 결정하는 많은 사안에 대해 단순 혹은 복잡한 토론과 나눔을 진행해야 합니다. 신앙, 복음 증거, 재정, 자녀, 고육, 관계, 진로 문제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의 절차를 거쳐 결정이 내려진 사안들은, 좋든 나쁘든, 일정한 관행처럼 굳어버리기 때문에 나중에 바꾸기가 힘들어집니다. 따라서 가정교회의 의사결정 절차는 매우 중요한 사안에 해당합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다수결에 의한 투표 방식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 모임에서 해당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방식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효율적이거나 편리할 순 있어도, 성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정교회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이 모인 자리에서 해당 사안을 놓고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주어진 여건을 고려하고 성경을 찾아보는 절차를 리더자가 의도적으로 시작하고 밟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신실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구한다면, 주님의 의식과 상호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의사결정의 합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
열심을 품게 하시옵소서!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인자와 긍휼로 신실한 백성을 보호하고 계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오늘도 그 은혜에 힘입어 함께 방송을 보며 주님을 생각할 수 있게 하시오니 우리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옵소서. 세상에 속한 교만을 모두 벗어버리고 오직 믿음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한순간도 주님 곁을 떠나서는 안 되지만 우리는 주님의 뜻보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아왔습니다. 주님을 외롭게 한 점을 회개하오니 받아주시옵소서! 우의 기도의 자리를 항상 따스함의 온도를 유지하게 하시고, 날마다 더욱 깨어 부르짖음으로 언제나 진한 땀 내음으로 주님께 향기로 드릴 수 있는 기도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주님이 분부하신 명령은 계절을 탈 이유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이웃을 생명의 양식으로 부요케 하는데 힘쓰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의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인하여 반드시 천국에 가야 할 영혼이 지옥 가는 일이 없게 하시고, 지옥 가서는 안 될 영혼이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시옵소서. 언제나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김으로 날마다 새 힘을 공급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 지금 이 시간, 주님의 도움의 손길이 절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극복하기 힘든 문제나 여러 가지 질병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는 교우를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주님께 소망을 두고 있는 심령마다 찾아가 주셔서 치유하시고 회복케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맛보게 하시고, 주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가 너무 어려워 가정마다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저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모든 어려움에서 건지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가정과 생업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만이 저희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고, 형통케 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함께 나오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음성이 저희 모두에게 들려지게 하시옵소서. 저희 모두가 영혼이 소생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영혼의 찬양을 받아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약력(略歷)에서 "사망"이라는 단어 뒤에 "이제 후로는.."이라는 말을 덧붙이십니다. 그분의 백성들에게는 행복한 내일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하나님의 거룩한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때에 주님께서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숭배의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내실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옛 선지자는 "나의 것을 희생하는 일이 아니라면, 나는 그런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겠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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