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58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1. 12. 15. 14:00

예림의집 2458번째 이야기

 

사색의 바다

하나님께 내려놓을 때..


내려놓음은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내려놓느냐 내려놓지 못하느냐의 문제임을 알기에, 아무리 작은 삶이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인생이지만 하나님께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사용하심을 알게 됩니다. 내려놓음으로 다시 내 삶을 놀랍도록 채우실 하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헌신을 다짐합니다. 내려놓음 그 자체의 보상이 우리에게 언제나 든든한 평안함과 기쁨이 될 것입니다. 사탕 통 속에 손을 넣고 한 움큼 쥔 뒤 손을 빼려고 안간힘 쓰던 나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께 순종하여 우리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기를 소망합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이런 것은 스스로 해결하시지요!

어느 날, 크게 각성하게 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학기 초였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데, 목발을 짚고 이동해야 하는 저를 대신해 가방을 들어다 줄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학생에게 부탁했습니다. “가방 좀 들어주실래요?” 그동안 대부분의 학생들은 저의 상태를 보고 친절하게 들어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달랐습니다. “이런 것은 스스로 해결하시지요!” 그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왠지 부끄러움이 계속해서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얼음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동안 "장애를 핑계 삼아 저도 모르게 사람들의 희생을 당연시한 것은 아닐까?"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저처럼 남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이미 권력화가 된 것입니다. 매일 저의 가방을 들어다 주거나 자리를 양보해 주고 길을 비켜주었던 그 친절들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저를 위하여 희생하시는 어머니와 누나들, 그리고 형들의 수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정(同情)은 싫다고 했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동정에 기대고 동정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바로 저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일상 속의 친절을 당연시했습니다.
그날,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등에 짊어지는 큰 가방을 사서 메었습니다. 고통이 가중되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곳을 향하여 10m쯤 점프해서 올라선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지레 포기했던 일들도 막상 해보니, 의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던 것입니다. 따뜻한 사랑이 사람을 일으켜준다면, 차가운 질책은 그 당사자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때 저의 부탁을 거절하고 따끔하게 충고를 하던 그 학생에게 감사합니다.(김인강 박사)

그렇습니다. 어쩌면 몸이 불편한 김인강 교수님의 가방 들어주기를 거절한 그 학생의 행동은 바람직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일로 인해서 김인강교수님이 상처를 받지 않고 오히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도움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그가 이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게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도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린도전서 13:4).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시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47-인간의 육과 영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완전히 영적인 것으로 육체적 존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육신은 중요치 않으므로 영혼만 건전하다면 몸은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육체와 영이 똑같이 중요하며 적당히 영양을 공급하고 돌보아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심하게 왜곡한 것입니다. 두 번째 주장의 문제점은 육적인 그리스도인과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을 지나치게 구별할 때 나타납니다. 그런데 육적인 그리스도인과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을 누가 어떻게 구별합니까?
그들은 육적인 비 그리스도인, 육적인 그리스도인,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눕니다. 만일 우리가 육적인 그리스도인을 성령님이 그 안에 거하시지 않으며 완전히 육적인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여긴다면, 엄밀히 말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즉 "완전히 육적인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이 내주하십니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께 의지하고 순복하는 정도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를 나타내지만 성령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 속에 거하신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육(사르크스, sarx)"이라 표현한 단어는 "몸(소마, soma)"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곤 합니다. 그러나 "영(프뉴마, pneuma)"이라는 말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면서 쓰일 때의 "육"은 신체 이상의 뭔가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육은 타락한 인간의 부패한 본성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대, 우리의 본성(육)의 힘은 어느 정도 정복당하지만 완전히 말살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평생의 성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이 성령과 은혜로 자라 가려면 매일 옛 본성과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보증으로 주어지고 우리를 인치신 성령은 결국 이 전쟁에서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매우 치열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와 유혹에 맞서 싸웁니다. 회심을 통해 육신의 전적인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지지만 완전해지지는 않습니다. 옛사람(육신)과 성령님 사이의 이 싸움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우리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죽음 후에 우리는 영화로워집니다. 육은 완전히 죽고 새사람은 완전히 정결해집니다. 훗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면 우리의 영은 새로운 육체를 입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하나님의 정의, 심판자의 전지하심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뒤집어엎어 흩으시는도다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눈 앞에서 치심은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깨달아 알지 못함이라 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하게 하며 빈궁한 사람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주께서 침묵하신다고 누가 그를 정죄하며 그가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를 뵈올 수 있으랴 그는 민족에게나 인류에게나 동일하시니 이는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하였는가 하나님께서 그대가 거절한다고 하여 그대의 뜻대로 속전을 치르시겠느냐 그러면 그대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그대는 아는 대로 말하라 슬기로운 자와 내 말을 듣는 지혜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게 말하기를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욥기 34장 21-37절).


함께 읽은 본문은 심판자의 전지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설명하는 엘리후의 주장입니다. 33절 "속전"은 노예나 죄인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치르는 대가를 뜻하고, 37절 "손뼉을 치며"는 조롱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엘리후는 사람을 주목하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악자가 숨을 곳은 없다고 합니다. 욥에게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밤사이에 뒤집어 흩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임합니다. 엘리후는 욥의 대답이 악인의 대답과 같다며 그가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한다고 저주를 퍼붓습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21-30절).
하나님은 사람의 길과 걸음을 주목하시고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엘리후는 21절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변호하면서, 그분의 전지하심을 강조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인들이 숨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위해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심판하십니다. 그분은 가난하고 빈궁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29절, 때로 그분은 침묵하시며 얼굴을 감추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며, 단지 인간이 하나님을 인지하지 못할 뿐입니다.
29절에서 엘리후는 자신이 믿고 깨달은 바를 단호하게 전합니다. 하나님을 옹호하는 그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진리로 포장된 그의 말 너머에는 상대방을 향한 비난과 정죄의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사랑 없는 정답은 상대방에게 상처만을 남깁니다.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에게 보이신 것은 비난이 아니었습니다. 용서와 긍휼이었습니다. 아낌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존재와 모든 사역은 아무것도 아닙니다(고린도전서 13:2). 모든 삶의 걸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할지 묵상합시다.


결단 촉구와 욥에 대한 저주(31-37절).
하나님에 대한 엘리후의 묘사는 모두 맞습니다. 문제는 그 말이 애매하게 고난 당하는 욥의 상황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31-32절, 회개의 모범을 소개합니다. 욥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하며,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욥은 이 모든 것을 거부했습니다. 엘리후는 34-35절, "슬기로운 자"와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지식 없음과 지혜 없음을 지적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평가를 기초로 그는 36절, 욥을 악인으로 규정합니다. 반역을 더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했기에 욥이 계속 시험을 받아야 한다고 저주합니다. 하나님이 1장 8절에서 의롭다고 인정하신 욥을 엘리후는 악인으로 규정하고 맙니다. 이는 하나의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 결론에 도달하게 만드는지를 보여 줍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분노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진실로 가치 있는 여정은 적대감에서 긍휼로 향하는 깨달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판단하는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어떠할지 묵상합시다!


"전지전능 하사 언제나 우리를 정의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해할 수 없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의 시간에도 사람의 모든 걸음을 낱낱이 아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힘을 얻습니다! 몸과 마음을 낮춰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시고 하나님 뜻 안에 우리의 삶을 내려놓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보다 앞서 말하거나 행하지 않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교만과 아집을 도말하여 주시고, 오직 겸손함으로 무장하며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역경 지수와 연단 지수


인생을 진단하는 데에는 역경 지수와 연단 지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역경 지수는 인생을 풀어 가는 이가 얼마나 수고하고 고생했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 사람은 많은 사람이 방해하고 힘들게 했지만, 자신의 결단력과 의지력으로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냈음을 자랑합니다. 역경 지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겪은 역경이 훈장이 되어 자기를 빛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단 지수는 다릅니다. 연단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연단 지수는 역경이 얼마나 크고 무거웠는지에 중점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역경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사람의 일로 끝날 것에 관심을 갖고 개입하셔서 마음을 다루시고 인격을 다듬으신 하나님의 훈련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모든 일의 공로와 훈장이 다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연단 지수는 하나님의 다스림 지수입니다. 인생을 연단 지수로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컸는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했는지, 그래서 지금 자신이 얼마나 변화된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고난과 역경을 통해 연단된 그리스도인들은 굳건한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자신의 성품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가 모든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연단 지수는 닥친 모든 역경에 대해 자신의 믿음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시련"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고통 중에 반드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연단을 받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동역하는 이에게 그분의 고귀한 성품을 나누어 주십니다. 만약 자신의 연단 지수를 알고 싶다면, 1년 전 혹은 3년 전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해 보시면 됩니다. 여러분은, 우리는 얼마나 변화되어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갑니까?(도은미 목사)

 

가정교회를 말하다

실제적 고려 사항: 가정교회의 운영②


오늘은 가정교회 모임에 대해 깊이 나누어보겠습니다. 가정교회가 추구하는 모임은 바로 "열린 모임"입니다. 완전히 열린 예배 형식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지난 한 주 동안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을 나누고 실제 모임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개인의 영적 은사들이 사용되도록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2:7-12절 그리고 14장에 언급된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모임입니다. 이 모임에서 모든 사람의 영적 은사와 재능이 마음껏 자유롭게 발휘되게 됩니다.
이런 열린 모임을 위해서는 먼저 어떻게 교회가 함께 모이는가를 새롭게 배우고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랜 관행을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기도나 성경공부를 하려고 계획을 세워 모이지 않고, 또는 우리가 이미 교회에 대해 알고 있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단순히 식사를 위해 함께하는 정도로 모이는 것은 하나의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오직 서로 나누고 참여할 준비만 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식사 시간 동안 함께 모이는 가운데, 사람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교회 공동체는 어떠해야 하는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가정교회의 운영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첫째, "모임 빈도"입니다. 가정교회는 서로의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에서 세 번 정도 만나는 것이 적당합니다. 이것보다 더 자주 만나지 않는다면 결속력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것보다 더 자주 만난다면 사람들이 지치게 되며, 특히 정기적으로 모임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둘째, "모임 날짜"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편한 시간을 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지만, 인도자는 특정한 전략적 이유를 위해 주일 아침에 모임을 갖는 것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현재 또는 미래의 참석자들은 자신이 가정교회에 온전히 참석할 것인지. 전통적인 교회 활동에 더해진 보충 모임 정도로 생각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단순히 기독교 안에서 새로운 유행을 찾고자 할 뿐 가정교회에 전적으로 헌신할 계획이 없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의미도 있습니다. 셋째, "모임 시간"입니다. 모든 사람이 적당한 정도로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모임은 보통 한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사이가 적당합니다. 또한 분명한 모임 종료 시간이 있어야 하며, 따라서 모임을 떠나야 하는 사람은 어떤 죄책감 없이 편안하게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원하는 사람은 모임에 자유롭게 남을 수도 있지만, 장소를 제공한 가정을 위해서 함께 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넷째, "모임 장소"입니다. 모임을 위한 가정을 결정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임의 계속성을 위해 같은 집에서 모이기로 결정합니다. 그 집주인이 가진 관대한 성향이나 집의 크기와 편안함이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돌아가며 모임을 열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가정교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고취하고 한 가정에 큰 부담을 주는 것을 피하고자 합니다. 형편에 맞게 하십시오!

기도의 횃불

공동체의 행복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귀한 선물인 예림의집TV를 통해 기도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말씀을 나누게 하시는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껏 우리를 인도하시고, 기쁨 주시고, 복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의 수고나 기도보다 더욱 아름답고 훌륭하게 자라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돌보아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이제 저희 모두는 우리의 모든 삶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의탁 드리며 주님만을 붙잡습니다.
저희들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평생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합하여 ㅇ수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가운데 저희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 저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오니, 저희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아시옵소서. 우리의 삶의 기초는 견고한 믿음이 되게 하시고,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세워지게 하시며, 저희 모두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덮어 주시옵소서. 저희 가운데 날마다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서로를 향한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게 하시며, 같은 소망을 두고 인내하는 공동체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저희를 지켜 주시지 않으면 어떤 것으로도 지킬 수 없고, 저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영원한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기오니,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저희 모두를 반석 위에 세워 주시옵소서. 영적인 리더십으로 공동체를 잘 이끌어 가게 하시며, 지혜와 명철로 우리의 삶을 주님 뜻대로 살아낼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을 제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탄의 노래

복음 쪽지~㉾

사랑의 놀라운 속성..!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일을 언제나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놀라운 속성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분을 섬길 때 지겨워하거나 짜증 내지 않습니다. 주권자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기이함을 피조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불경건한 삶을 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크고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지역과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위한 지역으로 구분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