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57번째 이야기
내려놓음의 길..! 환경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소유하면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곳에 가 있느냐"가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발버둥 치려 했던 순간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참 행복되시는 하나님 앞에 자유하기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려놓음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길 문턱에서도 하나님의 뜻만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만을 따르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내려놓읍시다! ![]() |
인정 욕구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또는 불편한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아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쉽게 타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30대에 접어들어 "좋은 게 나쁜 거였다"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희생과 양보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직장 생활에서도 궂은일을 도맡아서 하는 일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발적으로 하고 나서 에너지가 소진되어 마무리가 미약하거나, "왜 나만 야근해야 돼? 진짜 나 혼자 해야 하는 거야?" 하는 감정이 들어 회사를 그만두는 일까지 발생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좋은 게 나쁜 것으로 끝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해서 나쁘게 끝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타인에 대한 원망입니다. "왜 나만 해야 되죠? 말이라도 도와준다 하면 안 되나요?"라고 생각하면, 어떤 일도 좋게 마무리할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나서서 해놓고 왜 남을 원망합니까? 정말 다른 사람 때문에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입니까? 혹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두 번째는, "착한 사람은 손해만 본다."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왜 남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애초부터 그런 역할을 자처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이들은 대개 인정 욕구가 강렬합니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무소유>를 쓴 법정 스님도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인정 욕구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인정 욕구는 그만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정 욕구가 강해지면 자신을 옭아매는 병이 됩니다. 이제 이러한 것들을 내려놓고,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유은정 박사) 그렇습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본능 중에서 "인정 욕구"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독성이 강한 욕구입니다. 조금은 무능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라도, 꾸준히 칭찬하거나 인정해 줄 경우, 그가 갖고 있는 실력 이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상대방을 인정해 주어야, 상대방도 나를 인정하면서 존중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열심히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습관을 길러야 사회생활이 좀 더 좋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정 욕구가가 너무 강해 삶의 기준이 되어버리는 병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46-인간의 육체와 영혼 하루에 세 번, 나는 추위가 몰려오기 전가지 걷고 또 걸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건강건진을 받은 후 기존에 있던 고혈압과 함께 당료와 비만에 빨간불이 켜져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대폭적인 감량을 목표로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식단 조절과 함께 하루에 12,000보를 걸으니 처음에는 몸무게가 쑥쑥 줄어드는 것 같았으나 지금은 약간의 정체기가 온 듯합니다. 그런데 몸무게가 5kg 정도 줄자 저의 몸은 빨간 신호등에서 노란 신호등으로 바뀌었습니다. 성경은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디모데전서 4: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해야 사명도 감당할 수 있기에 계속해서 몸무게를 줄여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저는 저의 육체, 몸무게나 체격에 신경 쓰면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마태복음 10:28)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인간은 "물질인 육체와 비물질인 영혼으로 구성된 피조물"입니다. 영혼은 때로 정신이라 불립니다. 육체와 영혼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그 둘은 모두 소중한 인간의 구성 요소 중 서로 다른 부분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살펴보십시오! 고대 헬라 철학의 이원론에서는 육체와 영혼이 함께할 때 끊임없는 긴장 상태가 계속되므로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또 이원론은 육체에 본질적인 악, 혹은 불완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순수한 영혼에 비해 악하다고 말합니다. 즉 헬라인들에게 구원이란 마침내 영혼이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는, 육체로부터의 전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육체는 선하게 창조되었으므로 신체에는 본질적인 악이 없습니다. 다만 육체도 영혼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타락으로 인해 고통받습니다. 둘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또한 기독교는 "육체로부터의" 구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영혼과 육체 모두"의 구원을 가르칩니다. 성경은 육체와 영혼이 대립되는 이원론도, 육체와 영혼 사이에 다른 무엇이 있다는 삼분설도 거부합니다. 먼저 영혼에 대한 성경적인 고찰은 첫째, 영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본질적으로 영원하지 않다. 둘째, 영혼은 물질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물리적인 힘으로 파괴될 수 없지만 하나님에 의해서는 파괴될 수 있다. 셋째, 영혼은 하나님이 유지하시는 능력 없이는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 하며 존재하느니라"(사도행전 17:28). 우리의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신자와 불신자 모두 계속 삽니다. 다만 신자의 영혼은 즉시 하나님 곁으로 가서 그들의 육체의 부활과 영화가 이루어질 구원의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반면, 회개하지 않은 자의 영혼은 즉시 하나님의 빛이 전혀 없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영혼을 죽음으로부터 보존하시기에 인간은 무덤을 넘어 의식적인 개인 존재의 연속성을 갖습니다. 또 인간은 전체적으로 타락했으므로 영혼, 육체 모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은혜의 대상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전인적 구원을 얻습니다! ![]() |
![]() |
하나님의 정의, 창조주의 절대 주권 "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상을 그에게 맡겼느냐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만일 네가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 그는 왕에게라도 무용지물이라 하시며 지도자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 그들은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사라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거함을 당하느니라"(욥기 34장 1-20절). 함께 읽은 본문은 세상의 절대 주권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함께 정의와 선을 가려내자고 합니다. "나는 허물이 없지만 화살로 상처를 입었다."라는 욥의 말에, 엘리후가 욥을 악인과 한패로 봅니다. 그는 의롭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시며, 왕이나 고관이라고 지위나 외모로 대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욥을 악인과 같이 대하는 그의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의 일반론은 결과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앞선 세 친구와도 같은 잘못에 빠진 것입니다. 누구 말이 옳은지 검증하자(1-9절). 당위성에만 매이면 다양한 현실을 바르게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두 번째 발언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변호합니다. 3-4절, 먼저 그는 12장 11절에서 욥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욥의 사례를 검증하자고 요청합니다. 청각과 미각으로 어떤 것을 분별하듯 옳고 그름을 검증해 보자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5-6절, 욥 자신이 의로움에도 하나님이 그의 의를 부인하셨고, 자신은 허물이 없으나 하나님의 화살로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는 9장 15절과 27장 2절의 욥의 말입니다. 이에 엘리후는 7-9절을 통해 반박하며 욥이 악인과 한패가 되었다고 몰아붙입니다. 사람은 재판관과 왕의 자리에 앉고 싶어 합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판단하기 원합니다. 또 실제로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한 피조물이요, 죄로 인해 철저하게 깨어진 무능력한 존재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 채 우리끼리 도모하는 모든 행위는 철저한 실패로 귀결될 뿐입니다. 하나님을 배제하는 행위가 곧 죄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그 사람을 평가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정의로 다스리신다(10-20절). 성도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엘리후의 이러한 주장은 현재 결과만으로 추론한 것에 불과합니다. 각 사람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 없다"라는 당위성에만 매여서는 안 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정의에 관해 두 가지 논거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11절,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다른 하나는 13-15절,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영혼을 거두어가시면 우리는 죽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임을 말합니다. 또한 17-19절, 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권력자라 할지라도 차별 없이 의로운 판결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는 것은 그들 모두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창조주 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가지고 세상을 완전한 정의로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성령으로 내주하시면서 통치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창조주의 절대 주권으로 만물을 정의롭게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때론 우리의 인생에 닥친 고난이 너무 크고 무거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도, 어떤 고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모든 것을 언제나 의롭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지 않고, 고난의 폭풍 속에서도 기뻐하며 순종하는 우리와 가정,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소명을 주셨사오니, 주신 소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무장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 |
말씀을 되뇌며 견뎌내고 있습니다! 며칠 후, 남편을 살려달라던 부인 선교사 역시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미국에서 선교훈련을 받던 그의 큰아들이 "코로나에 효력이 있다"라는 말라리아 약을 들고 아마존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도 코로나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이게 무슨 일이냐?"라며 놀라고 있을 때, "남편을 살려 달라"라던 이신숙 선교사의 소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2021년 11월), 코로나로 돌아가신 선교사가 60여 명(초교파)이고, 이미 코로나를 겪은 선교사와 자녀들은 수백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코로나19의 선교 현실입니다.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 국내로 들어온 선교사들은 나가지 못하여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선교지에 있는 선교사들은 입국하면 다시는 못 나갈까 봐,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아이들이 결혼해도 암 진단을 받아도 들어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선교지에 나갑니다. 우리나라에 오신 초기 선교사들도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으로, 그리고 지금은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는 맹장염 등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치료받을 수 있는데도, "선교지에서 죽는 게 맞다"라고요. 죽어야 은혜가 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의료시설과 방역, 기후와 환경, 식사방법과 생활방식 등, 모든 것이 열악한 선교지에서, 나 하나로 끝나지 않는 전염병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지난겨울, 제가 살고 있는 러시아의 작은 마을에서도, "코로나로 인하여 성도 가족과 친구 남편, 그리고 러시아 사역자와 아는 분들이 연달아 7~8명이 돌아가셨다"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게 될 때에도 "선교사 다운 것이 과연 무엇인지?" 표현조차 못 하고, 하루하루를 숨죽인 채 말씀을 되뇌며 견뎌내고 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러시아 선교사 주미영 목사) 그렇습니다. 70년대 초, 교회에서 가장 많이 부르던 찬송 중에는 "부름받아 나선 이 몸"이 있습니다. 2절의 첫째와 둘째 소절은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사 내용을 잘 살펴보면, 쉽게 부를 수 없는 찬송입니다. 그런데도 그냥 무조건 그 찬송을 많이 불렀던 것 같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로마서 14:7-8). ![]() |
실제적 고려 사항: 가정교회의 운영① 오늘부터는 가정교회의 운영 방안으로 그 첫 번째 "본보기(원형) 세우기"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처음 세워진 가정교회는 가정교회 네트워크가 시작될 때 다른 교회들이 따르는 하나의 본보기(원형)가 됩니다. 가정교회가 분립되기 전에 첫 교회 안에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는 좋은 선례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따라서 최초 그룹을 확실하게 건강하고 균형 잡힌 모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실수를 피하고 막다른 길로 내려가는 것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 개척 운동의 핵심 요소를 새로 시작하는 교회에 도입하는 것입니다. 균형 잡힌 모임에 필요한 5가지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예배와 기도 ②전도와 선교 ③교육과 제자훈련 ④실천 사역 ⑤교제"입니다. 이것들이 실제적으로 의미하는 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교회의 형식(예배와 기도)입니다. 가정교회 모임은 엄숙하게 마련된 전통적인 예배 의식을 단순히 거실로 옮겨온 것이 아닙니다. 이때는 모든 사람이 모임 안의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영적 은사들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가정교회 모임을 이룰 때 성도 각자가 맡을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기도, 묵상, 경배와 찬양, 식사, 성경공부, 성찬, 세례, 예언 등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완전히 즉흥적으로도 참여할 수 있고 또는 일정한 계획 아래 자연스럽게 정착시킬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을 사용하든지 핵심은 모든 사람이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풍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전통적인 교회의 주일예배와 다른 점입니다. 전통적인 예배는 수동적인 청중을 위해 몇 가지 순서를 정해놓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모임의 귀빈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모임을 이끄는 분이 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교회 지도자들은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이나 관심 주제를 던져줌으로써 참여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소극적인 성향의 사람들도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성령님께서 다음에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모임을 주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체계가 잘 잡혀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융통성도 갖춘 모임을 기대합니다. 즉 모임의 핵심 요소들이 일관되게 제공되어 건강하고 균형 잡혔으며 초점이 분명한 체계를 원하면서도, 모든 구성원이 기회가 될 대마다 골고루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교 역할을 위해 성도들을 위한 준비된 중간적 형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즉 "환영(어색함을 깨는 시간), 예배(찬양과 기도), 말씀(선포와 토론, 성경공부), 사역(기도, 후원, 치유 사역), 그리고 증언(복음전도, 선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 후에 더 작은 그룹으로 집안 곳곳에 흩어져서 집중적인 기도와 토론 및 상호 격려 등을 행한 후 마칩니다. 이 다섯 가지 사역이 고정된 형식으로 인식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완전히 열린 형식을 혼합하여 유연성 있게 활용합니다. 목표는 완전히 열린 형식으로 유연성 있는 모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 |
믿음의 옷을 단장할 수 있게 하소서! 저희들에게 거룩한 즐거움을 허락하시고 은혜와 평강을 받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에게 주의 은총을 더하여 주셔서 주님의 탄생을 준비하며 기쁨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육신하신 주님의 탄생하심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며, 저희들도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살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소망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영광의 하나님 아버지! 온 세상의 평화가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고, 세계의 통치자들이 그리스도의 섭리 아래 일하고 있음을 저희는 확실히 믿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코로나19로 고생하고 있는 온 나라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오늘 방송을 통해서 함께하는 우리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간절한 간구에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 겨울의 문턱에서 주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이 어떤 신앙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하는지를 돌아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자연은 주님의 섭리에 따라 계절에 맞는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이제 식어져 있던 열심을 다시 추슬러서 믿음의 옷으로 단장하기 위하여 분발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계절을 탓하며 사명의 자리를 고의적으로 피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생활에 우선권을 두고 교회생활을 등한히 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저희 자신도 모르게 신앙이 식어진 상태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나이다. 주님, 이제 다시 열심을 내어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아무런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여 주님께 드릴 것이 없는 모습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지 말게 하시고, 믿음의 결실을 풍성히 맺어 한 관주리 가득 담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모습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의 신앙생활 전 영역에서 풍성함이 드러날 수 있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 |
가장 중요한 것! 우리가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지식을 아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로운 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소중히 여기는 심령입니다. 겸손하고 정결하고 신뢰하는 심령을 찾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통해 그분의 능력과 은혜와 생명을 드러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는 거듭남,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속, 성령의 조명을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참으로 헛수로 안타깝습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2459번째 이야기 (0) | 2021.12.16 |
---|---|
예림의집 2458번째 이야기 (0) | 2021.12.15 |
예림의집 2456번째 이야기사색의 바다 (0) | 2021.12.13 |
예림의집 2455번째 이야기 (0) | 2021.12.10 |
예림의집 2454번째 이야기 (0) | 2021.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