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54번째 이야기
2퍼센트를 채우기 위해..! 나는 그저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볼 뿐입니다. 그저 겸허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내 마음에는 항상 2퍼센트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 2퍼센트를 채우기 위해 더 노력했습니다. 더 가지려 했습니다.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때로는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내려놓으니, 알 수 없는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왜 하나님께 너의 삶을 내려놓지 않고 있니?" 이것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내 마음 자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와 얼마나 다른 상태인지를, 얼마나 아픈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 |
죽음 앞에서는 연습도 오만이다 오늘은 어른이 먹어야 할 간식과 조심해야 할 간식을 소개합니다. 먼저, ‘먹어야 할 간식’에는 생과일, 삶은 콩, 계란, 무설탕 요구르트가 있고, ‘피해야 할 간식’에는 말린 과일, 군고구마, 떡, 양갱이 있습니다. 기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이어령 교수에게 “공포는 없으신지요?”라고 묻자, 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신은 없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최초로 ‘죽음학’을 했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정작 자기가 암에 걸리고는 감당을 못했어요. 그것을 본 한 기자가 ‘당신은 임종하는 사람을 지켜보며 그렇게 많은 희망을 주었는데, 왜 정작 당신의 죽음 앞에서 화를 내고 있습니까?’하고 물었어요. 이에, 로스가 이렇게 대답했다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다오. 말하자면,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었다오. 그러나 지금은 아니오.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고 있다오. 바깥에 있던 죽음(호랑이)이 내 살갗을 뚫고 들어온 거라오.’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그의 이러한 대답은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만이 죽음에 실체를 알게 됩니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을 때, 인간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라고 가르쳤던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 그도 여느 보통의 인간들처럼 부정과 분노로 출발해서 똑같은 절차를 거쳐서 갔다니, 인생의 위대한 스승 이어령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연습도 오만이라고, 이근후 정신의학자도 그러더군요. 살아서 하는 ‘임종 연습’조차 어릿광대 같은 놀음이라고요.” 그렇겠지요. 지금 죽음을 말하고 있는 저 또한 사실 죽음을 잘 모릅니다. 하물며 죽음 너머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김태완 기자) 그렇습니다. 공자는 “삶도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라고 했다죠? 위의 글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에 대하여 김태완 기자가 서평(書評)으로 쓴 글입니다. 올해 88세이신 이어령 교수는 암 투병 중이십니다. 이 교수는 암 치료를 따로 받지 않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잘난 체 할 수 없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죽음’이라는 종점(終點)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죽음 넘어의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43-성령님과 성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거룩한 성품을 반영하고 반사하라 하십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5-16). 하지만 우리는 부정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우리를 "성도"라고 부릅니다. 성도란 "구분된 자, 성별 된 자, 거룩한 자"란 뜻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시편 106:16; 베드로전서 2:5). 성경에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를 지칭하는 다양한 단어들이 나옵니다. 믿는 자(사도행전 5:14), 형제(마태복음 23:8), 약속의 자녀(로마서 9:8), 빛의 자녀(누가복음 16:8), 택하신 족속(베드로전서 2:9), 하나님의 후사(로마서 8:17), 거룩한 백성(이사야 62:12), 그리스도인(사도행전 11:26; 26:28) 등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특별히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를 성령, 즉 "거룩한 영"으로 불리는 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그분의 사역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성별하시고 성화시키십니다. 성화되는 것은 거룩하게, 즉 의롭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과정이며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중생에서 성령님의 단독 사역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화는 다릅니다. 우리의 성화는 협력하는 사역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함께 일하여 성화에 이르러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러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12-13). 협력해야 한다는 말은 우리도 일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일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일한다는 것은 공포감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라 노력과 경외심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며 우리의 성화를 이루십니다. 성령님은 신자 속에 내주하시며 보다 의로운 삶과 마음을 일으키십니다. 성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성품이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 |
![]() |
떠나는 자, 동행하시는 주님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디모데후서 4장 9-22절) 함께 읽은 본문은 바울의 디모데를 향한 마지막 당부로 개인적인 부탁과 축복입니다. 13절의 "가죽 종이"는 양피지에 쓴 두루마리로 당시에는 갈대의 종류의 파피루스 종이와, 양피지를 편지지로 사용하거나 성령을 필사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하면서, 마가를 데려오고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져오라고 부탁합니다. 그가 처음 변론할 대 모두가 그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방인에게 말씀을 전하도록 그의 곁에서 힘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구원해 천국에 들어가게 하실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디모데를 축복합니다. 함께한 사람과 버리고 떠난 사람(9-15절). 누군가의 삶에 끝까지 함께하는 것, 특히 그 사람이 힘들 때 옆에 있어 주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합니다. 바울과 함께 있던 자들이 그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데마에 대해 10절, "이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을 버렸다고 합니다. 데마는 골로새서 4장 14절에서 바울의 동역자로 소개되었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떠난 데마로 인해 심히 슬퍼합니다. 데마가 바울을 떠난 이유는 하나님 나라보다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울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데마는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바울을 통해 배웠던 하나님의 나라까지 함께 버린 것입니다. 선택에는 언제나 평가가 따릅니다. 영원한 것을 버리고 썩어 없어질 세상을 선택한 것은 최악의 실수요, 가장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도 바울에게 많은 해를 끼쳤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끝까지 바울 곁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려오라고 요청합니다. 마가는 사도행전 15:36-40절에서 1차 전도 여행 도중에 돌아갔으나, 후에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각 사람의 궁극적인 평가는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천국까지 함께하시는 주님(16-22절). 각 사람에 대한 궁극적인 평가는 주님이 하시지만, 성도는 동역자에게도 인정받는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형제자매가 어려움에 처할 때 우리는 끝까지 동역자인가요, 아니면 쉽게 떠나는 배반자인가요? 성도는 이 땅에서 순례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목적지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입니다. 주님은 그 길에 함께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마침내 천국에 이르게 하십니다. 16절, 바울은 그가 로마에서 처음 심문을 받았을 때 그와 함께 있던 자들이 모두 그를 버리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그의 곁에 계셨습니다.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위로와 힘을 얻고 심문을 당할 때조차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은 고난 중에 있는 바울을 지키셨고, 그를 악한 일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경건한 사람의 믿음의 여정에는 동행하시며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성도는 평탄할 때나 고통받을 때나 주님을 의지하고, 천국으로 이끄시는 크신 은혜를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것은 그리스도께 헌신된 한 사람의 용기와 끈질김입니다.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로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를 끝까지 도우시며 천국에까지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의지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도 여전히 우리의 곁에서 힘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오늘도 기쁨으로 걸어갑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위해 주어진 자리를 묵묵히 지키게 하시옵소서. 서로 힘과 위로가 되는 신실한 동역으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가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이 땅에서의 나그네 여정이 비록 외롭고 고되지만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임마누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 |
가만히 있으라..! "지금 여기에 우두커니 서 있지 말고 무엇인가 좀 하렴!" 이것이 이 시대에서 행동하라는 친밀한 요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생각의 방식을 영적인 삶에 강요할 때 본래부터 위험성이 있습니다. 너무 자주 우리가 그 믿음을 선언하든지 안 하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마구 행동합니다. 사실상, 우리는 교만한 자세로, "좋아요, 하나님. 나는 이것이 당신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위하여 일하고 또 일하겠습니다!"라고 외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본다면 참으로 교만스러운 모습입니다. 우리 마음의 뒤편에 전통적으로 전해 들어오던 충고가 있는데,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대부분이 이 충고가 성경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실제로 이 말은 100퍼센트 하나님의 말씀과 대치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스스로 도울 수 없음을 아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보내셔서 죽게 하신 바로 그 이유입니다. 우리는 죄의 상태를 개선하느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을 읽으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면, 그분 앞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는 중요한 부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의 존전에서 가만히 있을 때, 가장 가르침을 잘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자신을 놓는 것이 됩니다. 당신은 너무 바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노력을 내려놓고 가만히 있으십시오. 침묵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당신이 예배로 부르심에 큰 개혁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 |
가정교회의 10가지 선언⑤ 가정교회의 여덟 번째 선언은, "우리는 성스러운 건물 대신 일반 가정을 선택한다!"입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교회당, 예배당, 대성당 같은 소위 성스러운 전에서 모여왔습니다. 모임을 위한 대형의 전용 공간이 필요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왔습니다. 이제 그 흐름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일종의 거실 운동으로서 일상의 장소인 평범한 "일반" 가정에서 모입니다. 교회의 예배와 모임을 위한 대형의 전용 건물 자체가 잘못은 분명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한계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합니다. 우선, 대형 건물에서는 현실적으로 예배 구경꾼을 막기가 어렵습니다. 둘째, 복음을 들고 바로 옆 이웃에게 다가가는 일에서 의도치 않게 방해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 전도를 받아 교회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 거대한 교회 건물에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셋째, 엄청난 시간과 재정이 투입되는 건축 프로그램 또는 막대한 임대 비용으로 인한 잠재적 대체효과의 상실입니다.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섬기거나 전략적 선교지에 믿음의 공동체를 시작하는 일에 필요한 자원 투입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가 예림교회를 통하여 직접 경험하고 있은 사항입니다. 일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회 모임은 이와 비교할 때 단순하고 비용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며 손쉽게 재생산 및 복제가 가능합니다. 또한 친밀감이 높고 구성원 모두의 참여가 이루어지며, 모든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도력을 개발할 수 있는 훈련장이 될 수 있습니다. 1세기 교회와 역사 속 다수의 개혁 및 부흥 운동, 그리고 오늘날 선교지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교회 개척 운동이 주로 가정 단위 모임의 분립 방식을 취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가정교회의 아홉 번째 선언은, "우리는 거룩한 헌물이 아닌 공공의 유익을 위해 헌금한다!"입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교회의 제도 및 성직 유지를 위한 재정적 지원을 감내해왔습니다. 이런 흐름에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각 가정의 형편에 기초하여 필요한 때에 자발적으로 그리고 즐거이 헌금하기를 원합니다. 재정 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전통적인 기부 및 투입 방식은 우리가 1세기의 신약성경에 종종 목격할 수 있는 형태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전통적인 교회에서 재정의 상당 부분은 교회 건축 및 임대, 전임 사역자의 사례비,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과 예배 진행을 위해 투입되었습니다. 그러나 1세기 교회에선 이런 비용 지출이 없었습니다. 지역 사역자 및 순회 사역자를 위해 필요할 때 모금을 하는 정도였고, 대부분의 헌금은 구제와 선교 및 기근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형제 교회를 돕기 위한 후원금으로 쓰였습니다. 마지막 가정교회의 열 번째 선언은, "우리는 거룩한 한 날만이 아닌, 일상의 날을 추구한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각종 절기와 기념일 같은 소위 "거룩한 날"들을 중시해왔습니다. 이제 이런 날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닌, 우리는 일상의 날 중 아무 때든지, 아무 계절이든지, 기독교의 정신이 실현되어야 하며, 언제든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특정한 날에만 종교적 의무감으로 모이기보다는 일 년 365일, 일주일에 7일,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예배하고, 만나서 예배하는 예배가 삶이 되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의 아무 날이든 자유롭게 만나 서로 격려하고 날마다 세상으로 뻗어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가정교회의 10가지 선언을 나누었습니다. 이는 선언을 기초로 하여 한국형 풀뿌리 가정교회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기존 교회를 거부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서로 힘을 모아 복음을 심는 운동이 확산되기를 소망합니다! ![]() |
소망 가운데 살게 하소서..! 우리의 산 소망이 되신 주님, 우리의 삶이 언제나 소망 가운데 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형편이 어려고 힘들지라도 밝은 내일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소망 가운데 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변의 모든 가능성이 닫히는 상황에 부딪친다 할지라도 "에바다" 열리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잠 소망이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공급하심으로 힘 있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그 어떤 시련과 아픔을 당해도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선언하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소망 가운데 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담대한 마음과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열정을 소유하게 하시옵소서. 우리 주님은 사막에서 샘이 솟게 하시고, 황무지에서 장미꽃을 피우시는 창조주 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있게 하시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시고, 있는 것들은 더욱 갈고닦아 주님의 도구로 사용될 때 기쁨과 소망의 열매를 많이 맺어가게 하시옵소서. 마른 뼈에서 생기를 넣어 살리시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고난을 영광으로, 슬픔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변하게 하시는 기적의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전능하신 주님! 그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굳게 믿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인내하며 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산 소망이 되시는 주님을 온전히 바라봅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로 모든 것을 하시며 우리는 기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소망이 넘쳐흘러 구원의 열매를 가득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 |
다리와 같은 분..! 예수님께서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놓인 다리와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여 이 다리를 건너 천국으로 가든지 아니면 지옥에 계속 머무르든지 해야 합니다. 현대는 이상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 심판의 확실성, 하나님의 진노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구주(救主)의 필요성에 대해 서로 침묵하자는 공모(共謨)입니다. 오늘날 우리 속에서 용광로처럼 솟아오르는 분노와 악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의도적으로 거짓을 행하는 당신의 근본적인 부정직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2456번째 이야기사색의 바다 (0) | 2021.12.13 |
---|---|
예림의집 2455번째 이야기 (0) | 2021.12.10 |
예림의집 2453번째 이야기 (0) | 2021.12.08 |
예림의집 2452번째 이야기 (0) | 2021.12.07 |
예림의집 2451번째 이야기 (0) | 2021.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