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41번째 이야기
하나님께 돌려드리기..!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순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사역의 동기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섞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무엇이 섞여 있는지 정확히 보시고, 불순한 목적이 섞인 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나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백지 한 장 차이 같지만 그것을 제대로 분별하고, 나의 것으로 숨겨두었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나의 숨어 있는 야심으로부터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나를 쓰기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깨끗한 마음으로 나아오길 바라십니다. ![]() |
이런 것을 위하여 자기 힘을 쓸 이유가.. 요즈음 특급호텔이나 최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도중에 화장실로 가서 여러 번 옷을 갈아입고 오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합니다.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자신이 음식 먹는 모습을 셀카로 찍어 인터넷에 여러 차례 나누어 올린다는 겁니다. 마치 자신이 고급 식당에 자주 가는 것처럼 자기 생활수준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재판에서도 비슷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재정 상태와 가정이 파탄 직전인 사람인데도, 인터넷에는 유복하고 행복에 겨운 사람인 양 사진을 잔뜩 늘어놨습니다. 이런 예(例)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SNS가 얼마나 과장과 허위로 가득 차 있는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허황된 메시지를 올리고, 이를 들여다보고, 서로 과시하면서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인 고로, 다른 사람들에게 멋지고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과장을 넘어 거짓된 모습을 올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입니다. SNS 사용이 본격화된 2010년대 중반 이후, 청소년의 정신병원 입원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은 뭘 뜻하는 것일까요? SNS에 거짓 메시지를 올려서 피해를 입히는 사람은 바로 이런 행위를 하는 그 사람 자신이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옷을 갈아입고 식사 장면을 찍은 사람은 아마도 자신이 "가짜"라는 씁쓸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가짜 모습에 ‘좋아요’를 눌러주면 기분이 좋아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분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사실은 "다른 사람은 근본적으로 나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겁니다. 누구나 자기 문제만으로도 힘들고, 그것에 골몰해서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여유가 없습니다. 몇몇 가까운 사람 이외에는 누구도 나의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 특히 SNS 상에서 다른 사람이 보이는 반응은 0.1초도 안 걸리는 표피적인 것이어서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것을 위하여 자기 힘을 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윤재윤 변호사) 그렇습니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주께서 가장 싫어하실 뿐만 아니라 심하게 질책하신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僞善者)입니다. 그들은 마치 "회칠한 무덤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겉모양은 회칠해서 깨끗해 보이지만 속에는 썩어가는 시체가 있는 무덤처럼, 겉으로는 거룩한 사람처럼 보이나 실상 그 속은 거짓과 사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겁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태복음 23:27).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31-그리스도의 세례 세례 요한이 행했던 물세례는 새 언약의 표지로서 예수님이 제정하신 세례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 세례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해서 이 둘을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됩니다. 엄밀히 말해 요한의 세례는 구약에 속합니다. 그의 이야기가 신약에 기록되어 있지만 요한의 사역이 끝나기까지는 새 언약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 요구하신, 예비하는 세례였습니다. 요한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전하는 예언자이자 선지자였습니다. 메시아이신 왕이 세상에 알려지기 직전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메시아(Messiah)"란 "기름 부음 받은 자"란 뜻으로 하나님이 친히 선택하시고, 구별하여 세운 자들 곧 제사장, 선지자, 왕을 지칭하는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다윗 시대를 지나면서 구세주로서의 개념이 구체화되었고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또한 요한의 세례는 급진적인 쇄신이었습니다. 원래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정결 의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출현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도 회개하고 정결케 되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유대인 성직자들은 요한의 이러한 요구를 이단적이며 모욕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유대인들을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부정하게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요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복종하셔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메시아로서의 역할을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율법에 복종" 하셔야 했기 대문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것은 지상 사역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백성들의 죄와 결부시키셨을 뿐 아니라 사역을 위하여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 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고,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이사야 61장 1절의 예언대로 메시아의 사역을 이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고 나오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라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마 3: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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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있는 삶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숨을 거두며 나의 날은 모래알 같이 많으리라 하였느니라 내 뿌리는 물로 뻗어나가고 이슬이 내 가지에서 밤을 지내고 갈 것이며 내 영광은 내게 새로워지고 내 손에서 내 화살이 끊이지 않았노라 무리는 내 말을 듣고 희망을 걸었으며 내가 가르칠 때에 잠잠하였노라 내가 말한 후에는 그들이 말을 거듭하지 못하였나니 나의 말이 그들에게 스며들었음이라 그들은 비를 기다리듯 나를 기다렸으며 봄비를 맞이하듯 입을 벌렸느니라 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미소하면 그들이 나의 얼굴 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여 주고 으뜸되는 자리에 앉았나니 왕이 군대 중에 있는 것과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과도 같았느니라"(욥기 29장 18-25절). 함께 읽은 본문은 욥이 29장 전체를 풍자를 이용하여 과거의 자신에게 있었던 부와 영화와 복을 떠올리며 그러한 때가 다시 자신에게 찾아오기를 간곡히 소망하는 글로 채워져 있습니다. 지난날의 욥은 자신의 보금자리에 숨은 거두고, 자신의 날은 모래알같이 많을 것이며, 자신의 영광이 날로 새로워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희망을 걸었고, 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군대를 거느린 왕처럼,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처럼 욥은 으뜸 되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회복의 소원은 마침내 결말에 가서 하나님께서 다시 이루어 주십니다. 장구한 삶을 소망하는 욥(18-20절). 유한한 인간은 장구한 삶을 소망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잠언 3장 1-2절,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라고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이에게 장수의 복을 주십니다. 욥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복을 누렸기에, 마땅히 장수할 것을 소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날을 모래같이 많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피력하며, 19-20절, 다양한 비유로 묘사합니다. 욥은 자신의 생을 "나무"에 비유합니다. 그의 부리는 물로 힘 있게 뻗어나가며, 건기에도 이슬이 풍성히 맺혀 번성하는 인생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기대는 그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의롭게 살면서 풍성한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극심한 고난 중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은혜의 때가 다시 오길 갈망합니다. 환경이 어려워도 낙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우리의 생은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날 현재의 상황만으로 우리의 미래를 전적으로 확신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 있는지 깊이 묵상합시다.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욥(21-25절). 욥은 자신을 충분한 물이 공급되어 안정되고 풍성한 결실을 내는 식물에 비유합니다. 그의 영광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능력을 나타내는 화살은 그의 손에서 끊이지 않았다고 진술합니다. 욥의 삶은 확신과 소망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에는 감동과 존경이 따릅니다. 욥은 공동체에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말을 모두가 기대했고, 그가 말할 때는 모두가 잠잠했습니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지막 말이 되었고, 이슬과 비처럼 사람들 마음에 스며들었으며,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그는 신뢰할 대상이 없고 믿음 없는 자들에게 웃음으로 희망을 주었고, 사람들은 그로부터 새로운 용기를 얻었습니다. 욥은 사람들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했고, 많은 사람의 슬픔과 고통에 함께함으로써 참된 지도자요 권위자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삶으로 나타내는 신앙에는 모두가 감동하고 닮고 따르려고 합니다.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장해 주시고 최고 권위와 명예를 누리는 삶을 살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그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욥의 모습 중에서 우리가 본받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합시다! "우리들에게 욥의 삶을 통하여 본을 보이신 하나님 아버지, 많은 이에게 존경과 주목을 받으며 큰 영향을 끼쳤던 욥의 의로운 삶에 우리의 삶을 비추어 봅니다. 고난이 닥쳐 인생의 영광스러운 날이 끝날 것 같은 순간에도, 택하신 백성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시옵소서. 변함없이 선을 행하며 사람들을 돕고, 옳은 데로 이끌게 하시옵소서. 우리를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무장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배우게 하시며, 성령의 권능으로 힘 있는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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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전원을 기억하라..! 어떤 사람과 바둑을 두려면 바둑의 규칙을 다라야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흑과 백이 교대로 한 수씩, 그리고 가로세로로 그어진 줄인 교차점 어딘가에 바둑돌을 올려 두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규칙을 무시하고 혼자만 두세 번을 먼저 둔다면? 또는, 교차점이 아닌 네모 칸 안에 바둑돌을 쏙 집어넣는다면? 그렇게 하면 바둑을 두는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행동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바로 돌을 거두로 항복을 한다는 표시입니다. 이를 두고 "불계패(不計敗)"라고 합니다. 규칙을 어기면 바로 실격이 되고 패배가 된다는 뜻입니다. 바둑처럼 "부"에도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다 나옵니다. 부의 규칙 혹은 원리는 간단합니다. 먼저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출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계는 창조주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부 역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부에도 "전원(power source)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외함"입니다. 인생에서 부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하나님과 매번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잠언 22장 4절,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에게는 부를 바르게 작동시키는 지혜가 생겨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함 대신 부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면 부를 얻거나 말거나, 인생 자체를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부는 하나님을 경외함의 결과일 때에만 안전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과 바르게 연결되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부를 누리고 사용하시길 바랍니다.(송준기 목사) ![]() |
역사적 조망: 종교개혁 이후의 운동(1500년 이후)① 복음주의와 은사주의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은 16세기의 격동기를 돌아볼 때마다 서유럽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던 로마 가톨릭 교회가 신학적으로 정화되던 시기라고 간주합니다. 교회사는 이 시기를 "종교개혁"이라고 부릅니다. 마르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 같은 개혁자들이 믿음에 관한 중대한 재발견(신학)을 촉발했음에도, 그들은 이전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구조를 거의 바꾸지 않은 채(교회론) 그것을 새로운 개혁교회에 그대로 도입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변화가 충분하다고 모두가 만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대의 기치를 내건 이들은 급진적인 종교개혁자들로서 교회의 형태와 역할에 대해 보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고나서 온건한 종교개혁자들이 미처 준비되기도 전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습니다. 소위 급진주의자들로 불린 그들은 단순히 사도들의 신학으로만 돌아갈 게 아니라 사도들이 보여주었던 실행으로 돌아감으로써 교회를 병들게 했던 문제의 핵심을 더 깊이 파고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루터와 츠빙글리 같은 로마 가톨릭과 대립했던 온건한 종교개혁자들로부터 반대와 비판을 받았습니다. 먼저, "마틴 루터(1483-1546년)"를 살펴봅시다. 이 유명한 독일 개혁자는 좀 더 많은 부분에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가정에서 드리는 세 번째 예배 의식이 라틴어와 독일어로 드리는 공적 미사를 보완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러한 모임의 목적은 기도와 성경 읽기, 세례, 성찬, 상호 책임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모금 등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결국 이러한 생각을 전부 거부했는데, 그러한 모임이 자기들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불화를 일으킬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생각에 관심을 보이는 다른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고 믿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가정 모임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험한 반대론자들로 규정하고 이들을 조롱하고 박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음으로는 "카스파르 폰 쉬벤크벨트(1490-1561년)" 입니다. 영향력 있는 귀족이었던 쉬벤크벨트는 사업에 종사하던 사람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는 신앙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30세가 되었을 때, 루터의 강의를 접하고 영적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고향 실레시아에서 개혁의 심장이요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루터의 애제자였지만, 쉬벤크벨트는 그의 선생과 강하게 대립하는 바람에 불법적인 개혁자요 공식적인 이단자로 낙인찍혔습니다. 쉬벤크펠트의 간절한 바람은 교회의 신앙과 실행을 개혁하는 일에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봅시다. "우리가 교회를 개혁하기 원한다면 성경 특히 사도행전을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에는 최초의 교회 모습이 어떠했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칭찬받고 용납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저는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따라서 그는 루터에게 로마 가톨릭의 교회론과 다를 바 없는 교회론에서 벗어나도록 간청했고, 루터는 그러한 요청을 강하게 비난하고 박해했습니다. 쉬벤크펠트는 이후 30년 동안 유럽에서 루터파 사제들에게 쫓기는 수배자가 되었고, 그 와중에 기도와 성경공부에 초점을 맞춘 가정교회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를 쫓는 사람들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기 위해 모임에서 세례나 성찬을 권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에 루터파 목회자들은 수많은 쉬벤크벨트 추종자들에게 국가 교회로 되돌아갈 것을 강요했고, 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냈습니다. ![]() |
빛을 비추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함께하는 방송을 통하여 저희의 발걸음을 하나님 앞으로 향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저희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은 특권 중의 특권임을 믿습니다. 이 복된 예배의 자리를 언제나 사랑하고, 언제나 기다리며, 언제나 기대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주님! 오늘 저희들이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이 복된 자리로 이끌림을 받았지만 깨끗하지 못한 모습 밖에는 보여드릴 것이 없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허물과 잘못을 겸손히 주님의 보좌 앞에 내려놓습니다. 생명 싸개로 싸매시고, 만만의 강수 같은 주님의 긍휼하심을 덧입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특별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갈수록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야만 할 교회가 은혜의 빛, 복음의 빛, 사명의 빛을 잃어감으로 세상으로부터 많은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주님! 다시금 깨어 경성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고, 세상에 빛을 비추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이 저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입니다! 어렵고 힘든 이때에 이웃을 더욱 헤아려 나갈 수 있게 하시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눈물을 쏟으며 기도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세계 선교를 위하여 물질을 깨뜨려 선교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게 하시고, 선교 현장의 일선에서 몸을 깨뜨려 희생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을 위하여 기도로 도울 수 있는 사역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코로나19로 인하여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하게 하시옵소서. 교회 공동체가 코로나19 극복에 가장 앞장서게 하시고,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며 예배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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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게 말한다 할지라도.. 아무리 좋게 말한다 할지라도, 옛 자아의 지혜는 거짓된 가치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것 안에는 근본적으로 선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새로운 자아, 즉 그리스도 안의 새 사람만이 살아야 합니다. 이런 진리 위에 굳게 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본성에 관한 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분의 도움과 능력이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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