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39번재 이야기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의 내려놓음은 우리의 승리와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나의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내려놓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문을 여셨듯이, 우리의 내려놓음을 통해 하나님은 다른 이들을 위한 복의 문을 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역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핵심입니다. 사역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부담 대신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 있으려는 열망이 우리 안을 채워야 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치열하게 삶을 대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 |
후손들을 위하여 우리는..? 뉴스는 암담한 현실을 계속해서 쏟아냈습니다. “미국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소방인력이 진화에 나섰으나 좀처럼 불길이 잡히지 않아… 가속화된 온난화로, 호주에는 전례 없는 산불과 장마가 이어지고 있으며.. 대서양에 벌써 허리케인이 30차례 발생해..” 이와 같은 세상에서 아이를 가져도 될까요? 하루는 시어머니와 산책하다가 여쭈어봤습니다. 각종 사회와 환경문제, 그리고 지구 곳곳의 자연재해 소식을 연일 접하다 보니, 불안한 마음이 우리를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임신 3개월이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자연재해는 처음이었습니다. “음..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지..!” 전쟁과 동서독 분단과 통일 등을 겪으면서 워킹 맘으로 세 아이를 기른 시어머니는 우리의 고민을 이해한다면서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너희도 못 누리는 거 많거든. 그런데, 너희는 몰랐잖아? 너희는 너희 나름대로 세상이 아름답고 즐겁지 않았니?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도 그럴 거야. 그 대신, 세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꾸나.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자고!” 어머는 저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저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하긴, 나쁘고 어려운 일이 많은 세상이라지만, 눈물 나게 아름다운 것도 얼마나 많은가? 분명 웃으며 가볍게 한 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배 속의 아이에 대하여 갖게 된 날카로운 죄책감이 조금은 부들부들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금, 세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비극이 있는 만큼, 우리의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이 얼굴을 보면서 시어머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부디 우리 아이에게도 나름대로 아름답고 즐거운 세상이 펼쳐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고 있습니다.(오은경) 우리나라 어른 세대는 한국동란 직후에 태어나 무밥, 감자밥, 시래기밥을 비롯해서 멀건 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자랐습니다. 거기에다가, 4․19와 5․16, 그리고 1․21 사태와 10․26 사태 등. 사태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어른 세대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가장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사람마다 형편이 다 다르겠지만, 저 개인에게는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이 시대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 후손을 위하여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것을 소망합니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29-동정녀 탄생 동정녀 탄생이란 "예수님의 탄생이 육신의 아버지 없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태에 기적적으로 잉태된 결과"라는 교리입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기적적 탄생은 그의 본성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여자에게서 났다는 것은 그가 참으로 인간이며 우리 중 하나같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와 정확하게 똑같지 않습니다. 즉 우리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원죄가 없습니다. 또한 동정녀 탄생은 예수님의 신성과도 관계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다른 방법으로 세상에 오시는 것이 분명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탄생하신 것은 그분의 신성을 보여줍니다. 마리아와 천사 가브리엘의 대화가 이 점을 뒷받침합니다.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사람"이란 뜻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한 천사입니다. 성경에는 총 4번 이름이 언급되고 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전달하고 계시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아기를 낳으리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누가복음 1:34)라며 몹시 당황해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가브리엘의 대답은 우리가 동정녀 탄생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니라"(누가복음 1:35). 남자와 성관계를 기진 적 없는 여자가 임신을 한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도 이상할 뿐 아니라 명백하게 자연의 법칙에 반(反)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아기는 마리아 자신에게서 나지 않았습니다. 그 아기를 탄생케 하신 이는 성령님이십니다. 이 사실이 우리의 구원에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님이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그를 "덮으시리라"라는 말은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시던 성령님의 역사를 떠오르게 합니다. 또한 이것은 그 아기이신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는 자들은 대체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믿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동정녀 탄생 교리는 부활과 속죄를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정통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분수령이 됩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인 구원 사역의 출발점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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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실현되지 않은 공의의 심판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서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그의 자손은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의 후손은 음식물로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그 남은 자들은 죽음의 병이 돌 때에 묻히리니 그들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 그가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파수꾼의 초막 같을 것이며 부자로 누우려니와 다시는 그렇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아무것도 없으리라 두려움이 물 같이 그에게 닥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앗아갈 것이며 동풍이 그를 들어올리리니 그는 사라질 것이며 그의 처소에서 그를 몰아내리라 하나님은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던져 버릴 것이니 그의 손에서 도망치려고 힘쓰리라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손뼉치고 그의 처소에서 그를 비웃으리라"(욥기 27장 13-23절).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서 욥은 악인에 대한 아직 실현되지 않은 공의의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의 "좀의 집"은 무너지기 쉬운 집을 가리키며, 거미집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욥은 악인이 받을 대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 자손은 번성하고 많은 재물을 쌓아도 결코 심판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악인은 부자로 누울지라도 아무것도 남지 않으며, 두려움이 닥치고 폭풍이 그의 가진 모든 것을 쓸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않으시고 던져 버리시니 사람들이 그를 보며 비웃을 것입니다. 욥은 이렇게 얘기함으로써 자신은 악인이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악인이 얻을 몫(13절). 악인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욥은 13절,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라고 말합니다. 이는 20장 29절의 소발의 마지막 언급과 거의 같습니다. 소발은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기업이니라"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두 문장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소발은 "하나님으로부터(from God) 받을 분깃"이라고 말하고, 욥은 "하나님과 함께(with God) 있는 분깃"이라고 합니다. 전혀 다른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욥도 악인이 받을 심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현실에서는 악인이 받아야 할 분깃과 산업, 곧 심판이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심판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강력하게 질문하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은 절대로 악인이 아니며, 악인들은 속히 그 분깃, 즉,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욥의 주장은 도가 지나친 교만한 주장입니다. 그때는 하나님만이 정하실 수 있습니다. 실현되지 않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악인의 멸망을 기뻐할 것이다(14-23절). 욥은 27절의 나머지 부분을 악인이 맞이할 운명을 다양하게 설명합니다. 자손이 많은 것은 복 주심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악인의 경우 칼과 기근과 전염병의 심판으로 모두 죽기에 복이 아닙니다. 악인은 부를 축적하지만 그것도 허사입니다. 그가 가진 부와 재산은 폭풍과 동풍에 의해 순식간에 살아질 것입니다. 악인은 결국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당할 것입니다. 이렇듯 악인은 숨겨진 채 있지 않고 사람들이 그의 결말을 보도록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런 것이 악인의 운명이고 결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욥은 이제 고통의 원인을 묻거나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원망의 말도 하지 않습니다. 19절, "부자로 누웠다가 눈을 뜬즉 아무것도 없이 된" 자신의 고난을 깊이 숙고한 끝에 욥은 물음의 차원을 바꾸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나지?"라고 물으며 고난에서 도망치려 애쓰기보다 "이 고난에 감추어진 주님 뜻은 무엇일까"를 물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욥의 친구들에게는 악인의 운명이 "현실"이지만, 욥에게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행하실 줄 믿기에 우리가 믿음으로 선포할 일은 무엇일지 깊이 묵상합시다! "악인을 벌하시고, 의인을 세우시는 거룩하신 공의의 하나님,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며 악한 꾀를 따르려 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시옵소서. 이 땅에서 불의를 볼 때, 하나님이 악인에게 주실 심판의 분깃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악인이 끌어모아 쌓아 놓은 재물을 결국 의인이 사용하게 하실 반전의 주님을 신뢰하며 기대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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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신비..! 성경은 세상의 고통이 인간이 저지를 죄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인간이 겪는 역경이 모두 죄의 결과는 아님을 동일하게 강조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본보기는 바로 욥의 경우입니다. 욥은 친구들보다 훨씬 큰 고난을 받았습니다. 친구들은 이런 사실에 근거해 욥의 의로움이 자신들만 못함이 틀림없다고 우쭐해하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는 지극히 교만하고 잔인하며 그릇된 생각이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들의 판단을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이들이 고난과 역경을 당합니다. 모두 죄 대문이란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질서는 이미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지만 대부분 인간의 눈에는 감춰져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인과 간계에 비추었을 때 부당하게 보이는 고난이 허다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부당하게 보이지만 동시에 정당하기도 합니다. 절대적으로 옳으신 하나님이 부여하시는 모든 것은 정당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빚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고 순간순간 생명을 이어 가도록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보호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벌판에 놓인 어린양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며 섬기는 것은 지극히 타당합니다. 예수님은 주권자이시면서도 고난 당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고난이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임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5). 때로 삶이 몹시 불공평하게 펼쳐지는 것 같겠지만, 하나님은 공정하시며 최종적으로는 반드시 정의를 실현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믿고 힘을 내야 합니다.(팀 켈러 목사) ![]() |
역사적 조망: 교회의 전환점 처음 3세기, 지난 장에서 살펴본 대로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정교회 형태가 표준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12명을 택하여 제자로 삼으시고 나중에 사도로 파송하셨는데, 이는 오직 소규모 제자 공동체에서만 가능한 친밀하고 상호작용과 참여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모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직후 수천 명으로 불어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각 가정에서 모임을 갖도록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있던 각 제자 그룹에 편지를 보내 그들의 집에서 모임을 섬기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했습니다. 이러한 가정교회는 친밀하고도 사적인 부위기가 넘쳤는데 이는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편안하게 모였기 때문입니다. 모임은 열려 있고 상호 작용과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각자 무엇인가를 "신령한 식탁"에 가져왔습니다. 화려한 예배나 고비용 프로그램, 교호 건물 혹은 사례를 받는 성직자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가정교회는 단순하고 소규모이며 모두가 참여하는 가정 형태로 로마가 점령한 모든 제국에 침투하여 마침내 4세기에 이르러서는 전 인구의 5퍼센트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4세기, 교회의 전환점 시기입니다. 주후 313년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합법화한 후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로 말미암아 교회에 지대한 파급효과를 미쳤습니다.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정부 및 군사 제도를 모방해 전임 성직자 제도를 만들고, 특별한 교회 건물을 세웠으며, 정치적인 국가 교회(state-chruch) 합병을 이루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가 대성당이라 부르는 "커테드럴(cathedral)" 기독교가 탄생한 것입니다. 여기서 "커테드럴"이라는 단어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커테드럴은 좌석을 의미하는 라틴어 "카테드라"에서 유래한 말로, 교회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 중 지도자인 주교의 좌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단어에서 보듯이, 보편적인 교회에서 정치적인 교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돈 교회가 오랜 투쟁과 박해 끝에 마침내 악의 제국을 무너뜨렸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회 역사적으로는 가장 비극적인 순간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박해를 통해 교회를 무너뜨리려 애쓰던 사탄이 이제는 교회 앞에 먹음직스러운 유혹거리를 던지는 전략으로 바꾼 셈입니다.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에 말씀으로 단호하게 맞서며 이기셨던 예수님과 달리 교회는 권력과 유명세와 자리에 대한 유혹에 더 이상 저항할 의지를 붙들지 못했습니다. 주후 380년경, 테오도시우스와 그라티아누스는 모든 사람에게 믿을 바와 행할 바를 알려줄 단일한 국가 공인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기독교를 국교화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가정의 사적인 모임들은 이단과 당파 형성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자연스레 불법화되었습니다. 그 후 1700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국가 교회 내지 교파 교회가 이어져 왔습니다. 이 교회들은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이름 없는 신자들의 공동체로서 기독교라기보다는, 작지만 정치적으로 응집된 하나의 제국처럼 조직되고 관리되는, 소위 기독교 국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환대가 넘치던 곳을 이제는 특별하게 건축된 교회 건물이 대신했습니다. 평범한 신자들의 참여를 대신해 월급 받는 성직자가 자리를 채웠습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개방적이고 열정적이던 모임은 각종 프로그램과 종교 예식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살아 있는 몸 대신 종교적인 조직체들이 대신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
믿음의 옷으로 단장할 수 있게 하소서! 영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방송을 통해 성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찬양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온 세상의 평화가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고, 세계의 통치자들이 그리스도의 섭리 아래 일하고 있음을 저희는 확실히 믿습니다. 인류의 앞날을 주관하시고, 온 나라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오늘 방송을 통하여 예배드리는 모든 믿음의 자녀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간절한 간구에 응답하시옵소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 겨울의 문턱에서 주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이 어떤 신앙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하지를 돌아보게 하시옵소서. 자연은 주님의 섭리에 따라 계절에 맞는 옷을 갈아입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건만, 저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요? 이제 식어져 있던 열심을 다시 추슬러서 믿음의 옷을 단장하기 위하여 분발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그동안 계절을 탓하며, 코로나19를 탓하며 사명의 자리를 고의적으로 피한 적도 많았었고, 개인 생활에 우선권을 두고 신앙생활을 등한히 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저희 자신도 모르게 신앙이 식어진 상태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과 삶을 추스르고 믿음의 삶으로 복귀할 수 있게 인도하시옵소서. 오늘 수능을 치른 학생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참 쉼을 주시고, 흐트러지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 다시 열심을 내어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아무런 믿음이 열매를 맺지 못하여 주님께 드릴 것이 없는 모습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지 말게 하시고, 믿음의 결실을 풍성히 맺어 한 광주리 가득 담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모습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아직 1달 조금 넘게 남은 기간 동안 저희들의 신앙생활 전 영역에서 풍성함을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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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 그리스도적인 것..! 성경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변화되어 새 피조물이 되지 못한 것은 무엇이든지 반(反) 그리스도적인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주님 편에 서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주님을 반대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단호한 책은 영감(靈感)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풀면서 동시에 그들에 대해 가장 관용하지 않으셨던 분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적 원리를 확실히 세워야 할 상황이 벌어지면, 겁쟁이는 관용이라는 도피처로 도망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거나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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